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물론 내가 가지고 있지, 유태야. 하지만 그걸 넘겨줄 수는 없어.”
“…….”
조금이나마 무뎌졌던 신경이 다시 날카로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최적현을 올려다봤다.
“그게 무슨 의미야.”
나는 어떻게 해서든 임승훈을 놓친 실패를 만회해야만 했다.
시간을 낭비했고, 임승훈이 무방비한 상태로 있는 하나뿐인 기회를 낭비했다.
임승훈이 가장 회피하고 싶어 하는, 내가 몰랐던 진실의 일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대로 만족한 채 이번 일을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그런 사고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끝에 떠올린 게 임승훈의 소지품들이었다.
내가 몰아붙이는 것에 당황하고, 술에 제대로 취했던 임승훈이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두고 간 그 소지품들 말이다.
어쩌면,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이번 일은 ‘실패’로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 안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걸 넘겨줄 수가 없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말 그대로의 의미야. 그건 내가 처리할 테니 너는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 안에는 프리즘과 RH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정보들이 들어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그걸 내가 아닌 누가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이야. 너야말로 아까까지 엄청 바빴으면서 일 늘리지 말고 내놔.”
나는 최적현의 말을 단칼에 잘라 내며 왼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최적현은 물건을 건네줄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는지 내 손을 조용히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손.”
그러던 놈이 갑자기 짧은 말을 뱉었다.
갑자기 무슨 맥락 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가 싶어 미간 사이를 좁히고 놈을 바라봤다. 그러자 최적현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짧은 말을 덧붙였다.
“떨고 있어.”
녀석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이자 내민 손이 잘게 떨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링거를 꽂은 채 몸을 급하게 움직인 탓에 푸르게 멍이 올라온 피부가 그 모습을 더욱 볼품없어 보이게 만들었다.
집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다. 아마 임승훈의 소지품에 대해 최적현과 대화를 나누다가 잠깐 신경이 곤두서고, 그에 몸이 멋대로 반응한 것 같았다.
최적현은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는 손을 움켜쥔 채 숨기는 나를 향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표정 변화 없이 물었다.
“모르고 있었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시선이 따가웠다.
그 시선을 버티지 못하고 ‘평소에는 이런 문제 없었다’ 같은 변명 비스름한 대답을 뱉으려 하자마자 최적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평소에는 이런 문제 없었다.’ 그렇게 말하려는 거지? 당연히 판테이온이나 프리즘 멤버들의 앞에서는 안 그럴 거야. 항상 긴장하고 있으니까.”
“…….”
‘내가 긴장을 하고 있다고?’
최적현이 하는 말들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입술을 달싹이고 있자 놈은 평소과 같이 부드러운 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넌 너 자신을 아직도 잘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아. 너를 아끼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서유태라는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뒤떨어지지. 그래서 항상 이런 오류가 생기는 거고. 적대하는 사람을 앞에 둔 순간에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 본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야.”
“…….”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는 재주가 없다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성격도 아니고……. 나는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놈은 이마에 흐트러져 내려왔던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린 후, 시계를 풀며 말을 이어 갔다.
“아파도 괜찮아, 유태야. 하지만 자기 자신을 혹사하는 습관이 있다면 고쳐야지. 더군다나 ‘그건’ 네 몸처럼 튼튼하지 않잖아. 네 몸이 축복받은 수준이었던 거고, 그게 일반적인 사람의 몸이야.”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나잇값 못 하는 도련님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 없이 제대로 된 지적을 받을 줄은 몰랐다.
‘아니, 이건 지적 수준이 아니라 거의…….’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부정도 하지 못하고 그저 등을 빳빳하게 굳히고 있던 사이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재킷을 벗었다. 그리고 넥타이와 셔츠의 단추를 풀어 조금이나마 편한 차림이 된 채 무작위로 양주 병을 쥐고 여러 소파 중 팔걸이가 있는 1인용 소파에 앉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자 녀석은 ‘조금만’이라며 작게 속삭인 뒤,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다시 임승훈의 핸드폰에 대한 말을 꺼냈다.
“너는 임승훈이 쥐고 있는 정보가 누구보다 필요하지. 그건 나도 이해해. 하지만 지금 네 상태를 봐. 당장 요양해도 부족할 정도로 컨디션이 무너졌는데 이걸 알아내느라 또 무리하면 안 되잖아. 차근차근 하면 돼.”
나는 최적현의 뱉은 ‘차근차근’이라는 단어에 이를 악물다가 어렵게 임승훈과 있었던 일들을 두루뭉술하게 털어놓았다.
“소득이 별로 없었어. 조금 더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준비를 하고 갔어야 했는데, 멍청하게 너무 감정적으로 몰아붙였다가 겁을 먹은 임승훈이 도망쳐 버렸어.”
“그래?”
“강혁우한테 말해서 대비를 할지도 몰라. 저번에 대기실에서 봤던 거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편한 관계는 아닌 것 같았지만……. 아니, 아니야. 어쨌든 한패니까 정보 공유는 어느 정도 이루어지겠지. 그건 어쩔 수 없이 감안해야 해. 그러니까 그쪽에서 대책을 세우기 전에…….”
답지않게 정돈되지 않은 말들이 터져 나오자 바닥을 드러낸 잔에 향해 있던 최적현의 눈동자가 내 얼굴을 향했다. 놈은 짧은 시간 동안 침묵하더니 나를 향해 차분한 투로 말했다.
“유태야, 상대에게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건 네게도 너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걸 의미해. 그렇게 상대방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네 몸부터 무너지게 될 거야. 세상에 대가 없는 일은 없다고, 네가 나한테 말했던 것 아니었어?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수는 네게도 치명적일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쐐기를 박듯 말했다.
“…나를 아무리 재촉해도 임승훈의 물건들은 이미 나한테 없어.”
임승훈의 소지품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은 말이었다.
그에 골치가 슬슬 아파와 관자놀이를 손으로 짚을 즈음, 최적현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이미 비서한테 넘겨 버렸거든. 지금쯤 프로가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서 시도하고 있지 않을까?”
“뭐?”
“말했잖아, 내가 처리한다고.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차근차근’은 ‘느리게’를 의미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 임승훈이 핸드폰을 분실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대로 대처를 하기 전에 가능한 시도는 다 해 볼 테니까. 네게 허락을 안 받은 건 미안해. 하지만 네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면 늦을까 봐 그랬어. 이해하지?”
그리고 눈꼬리를 휘며 웃더니 고개를 옆으로 까딱 기울였다.
나는 최적현의 그 천진난만한 미소를 마주하며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제발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 줘라.’
최적현의 화법은 왜 항상 이런 식인가.
저렇게 말하는 것이 무슨 메리트가 있기라도 한 건가.
그런 의문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허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 대답 없이 멍허니 입을 벌리고 있자 최적현은 기어코 내게 대답을 종용하듯 다시 반대쪽으로 고개를 까딱 기울이며 퍽 깜찍한 소리를 냈다.
“응?”
약간 애매한 표정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와중에 그런 태도를 보일 수는 없었기에 나는 속을 꾹 눌러 담으며 대답했다.
“…미안하다. 데이터가 나오면 전달해 줘.”
“그래, 연락할게.”
내 대답을 들은 최적현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느긋한 표정을 보니 평소의 최적현으로 어느샌가 돌아온 것 같기도 했지만, 어쩐지 속을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또, 그 불길함은 꼬리를 물고 물어 지금껏 계속 이상을 느끼던 부분까지 이어졌다.
‘…왜 내가 임승훈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물어보지 않는 거지?’
최적현은 아직까지도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나도 인간관계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보통 그렇게 허겁지겁 뛰어올 정도로 놀랐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 아니던가?
이화영이라면 벌써 꼬치꼬치 캐물었을 텐데, 최적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걱정의 말들을 늘어놓고, 주의를 줄 뿐이었다.
‘원래부터 나한테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일은 거의 없고 혼자 알아내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이건 어떻게 알아낼 방법이 없잖아.’
이미 임승훈의 일만 해도 머리가 복잡한데 또 고민거리가 얹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눈을 길게 감았다가 뜨고, 그냥 솔직하게 묻기로 결심했다.
“더 안 물어보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질문에 최적현은 눈을 조금 크게 뜨더니 ‘오늘 이상할 정도로 순순하네. 많이 피곤한가 봐.’라고 중얼거렸다.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던 중, 녀석의 대답이 들렸왔다.
“그렇게 실신할 정도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거잖아. 굳이 그걸 상기시키고 싶지 않은걸.”
“…차분하네.”
“반대로 묻고 싶어. 너야말로 왜 그렇게 항상 쫓기는 것처럼 조급해하는 건지.”
“…….”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모든 일을 실패 하나 없이 완벽하고 빠르게 해결할 수는 없어. 그게 인간이야. 넌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유능하긴 하지만, 그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 항상 말하는 거지. 그렇게 무리를 하면 몸에 축적되어서 이번처럼 몸으로 먼저 나타나기 마련이야. 알잖아?”
“…세상의 모든 일이 인간이 이겨 낼 수 있는 수준을 고려해서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 한계를 직면할 때마다 그렇게 쉬기만 하면 문제가 악화될 뿐이잖아. 내 인생에 책임져야 할 놈들이 한둘도 아니고… 망설이고 있을 시간 없어.”
“넌 원래도 그런 경향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게 더 심해진 것 같아. 도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야.”
“나는 시간이 없어. 한승범이 돌아오기 전까지가 내게 허락된 기한이니까.”
“…한승범이 돌아와?”
“만약 한승범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면 언제든 상황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프리즘 멤버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못한 채 모든 게 끝나 버릴 수 있어. 그건 안 돼.”
최적현이 쥐고 있던 잔의 얼음이 녹아 반으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에 시선을 빼앗길 틈도 없이, 최적현의 말이 이어졌다.
“…수입이 생겨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그거야? 한승범이 뒤늦게 돌아오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으려고?”
“한승범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싶었는지, 어떤 걸 잘하는지 정보가 아예 없어서. 그나마 돈이라도 좀 넉넉하게 있으면 다시 자기 인생 꾸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뿐…….”
둔해진 머리로 아무 생각 없이 대답을 하던 나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마주한 붉은 눈동자가 그림자를 집어삼켜 새카맣게 변한 것을 보며 아차, 싶었다.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무심코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해 버렸다.
‘망할, 그냥 아무 곳이나 잡아서 잠이나 잘걸.’
숙박 업소에서는 제대로 잠에 들지 못하는 편이었던지라, 이 상황에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가 안 굴러가는 상황에서 하필 최적현의 집에 와 놈과 대화를 나눴다니.
컨디션이 무너지면 항상 과부화가 올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던 뇌가 먼저 맛이 가 버리는 게 나 아니던가. 그런데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놈의 앞에서 대형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
그저 가능성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빨리 덧붙여야 했다.
하지만 최적현의 표정이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으로 변하는 양을 본 나는 그저 넋을 잃고 멍하니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서유태.”
최적현이, 처음으로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