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만약 한승범이 돌아온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한승범의 의지는 지금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것을 일단 제쳐 두고,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생각해 보면, 일단 강혁우를 처치하는 것에 성공했는가. 그것이 중요했다.
복수를 이루지 못한 상태라면 나는 죽어도 죽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 경우 염치없지만, 한승범에게 시간을 구할 것이다. 차운을 시작으로 하여 프리즘 멤버들이 위험에 처한 상황이니까.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으니 한승범도 어쩌면 협조해 줄 수도 있었다. 한승범이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복수를 이룬 후에는 어떻게 행동할까.
명확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은연중에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렇기에 일상적인 순간에 그런 생각들이 새어 나와 최적현의 앞에서 실수를 벌인 것이겠지.
한승범의 몸은 한승범의 것. ‘자유롭게 가져가세요’ 문구가 붙은 무료 제공품이 아니었다.
나의 원한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거부한 채 한승범에게 인생의 일부를, 일상의 귀중한 순간들을 내게 넘겨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승범의 이모는, 한승범의 어머니는 생판 모르는 남에게 제 몸과 시간의 일부를 내어 주는 희생’을 ‘공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자신의 아들이 착취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아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한승범이 내게 친절을 베풀어 자의로 공존을 바란다?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조차 불쾌해.’
한승범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희생양, 도구가 아니다.
사람의 삶은 모두 숭고하며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한승범에게 공존을 기대하는 건 한승범의 삶을 그저 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가치하다고 여기며 그 숭고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고로 나는 내가 가능한 한 한승범의 삶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상태로 시간을 보낼수록 점점 더 실감이 났다.
‘나는 완전히 한승범으로 존재할 수 없어.’
‘한승범’이라는 정해진 틀을 ‘서유태’라는 인간의 자아가 점점 침식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 타고난 영혼이 저는 결코 다른 껍데기로 덮어씌울 수 있을 만큼 미약하지 않다며 매 순간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서유태다.
서유태로 시작하여 서유태로 끝날 것이다.
내 삶의 숭고함보다는 나의 존재 여부, 생사를 우선시하는 이들에게는 몹쓸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를테면 최적현이라든가, 프리즘이나 판테이온 일부 멤버들처럼 말이다.
– 형은 남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하니까 항상 그렇게 피곤할 정도로 짊어져야 하는 게 많은 거야.
서유성이 내게 언젠가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이 그 말이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던가.
아니, 서유성도 모든 일을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를 위해 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저것은 옳고 그름보다는 내게 중점을 둔 말이니 의존해서는 안 됐다.
나는 좋은 사람 행세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나를 위해 주었던 소년 하나의 무고한 인생이 걸린 일이었으니까.
내 행동의 도덕 잣대를 내 주변 인물들에게 한정 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최적현은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서유태.”
선명한 분노가 나를 덮치고 있었다.
단순히 나를 부르는 목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위압감이 들 정도였다.
최적현이 내게 이렇게까지 화를 낸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그 생소한 광경에 마른침을 삼키자 최적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불안정한 걸음으로 내가 앉아 있는 곳의 정면까지 와 멈췄다.
속눈썹 사이로 까맣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도망칠 틈도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안 되지, 그런 말을 하면.”
평소의 나긋한 말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낮은 목소리가 넓은 거실에 울렸다.
놈은 내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네 시체를 보면서 앉아 있었다고. 그런데 또 사라지겠다는 거야?”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내 주변 놈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에게 꽤 가혹한 일이라는 눈치 정도야 있었다. 따라서 설득을 시도할 생각은 없었다.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나의 모습을 확인한 최적현은 팔을 움직여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쓸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린 후, 숨을 멈추더니 ‘이제 됐어’ 하고 서늘한 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상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새도 없이 최적현이 평소처럼 입을 열었다.
“네가 항상 지적했듯 나는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사고 방식을 가지지는 못하는 것 같아. 왜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분노하고, 거기에 속박되어서 시간을 허비하는지, 불필요한 감정에 휘둘려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 거슬리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야. 내게 중요한 건 나는 네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너의 존재 여부거든.”
“…….”
“내가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 흥미 범위 밖이야. 누가 죽고 누가 살든, 강혁우가 무슨 짓을 벌이든… 네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시점부터 어떤 일이 벌어져도 진심으로 어찌 되든 좋아.”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보통 사람이 최적현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복수는 비합리적이지. 강혁우를 벼랑 끝에서 밀면, 최대한 잔인한 최후를 맞이하게 만들면 내가 네 시체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조금이나마 해소될까? 아니, 이미 무언가를 잃었다는 결과는 앞으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변하지 않을 텐데. 나는 그 행동에 아무런 가치도 느끼지 못하겠는걸. 하지만 ‘그런 종류의 행동’에는 때로는 가치가 생겨나기도 하지. 바로 이렇게.”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지은 최적현은 내 턱을 붙잡고 억지로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퍽 다정한 투로 내게 물었다.
“한승범이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해 볼래?”
왜 갑자기 한승범의 이야기가 나오는 건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한승범을 언급한 의도를 읽기 위해 녀석의 눈을 다시 마주본 순간, 나는 숨을 턱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상반되게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눈이 단 한 번의 깜빡임도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네가 예상하는 것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네게 일부러 자신의 몸을 넘긴 게 맞다면 정말 다정한 아이일 거야. 신체의 주도권을 포기하고, 좁은 인간관계를 고수하고, 인터넷을 포함한 모든 장소에 본인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걸 보니 본인의 삶에 대한 애착이 부족한 아이겠지. 이건 분명 한승범이 자란 환경에서 비롯된 결핍일 거야.”
“…….”
“보통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대개 자기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고 타인의 공격에 이상할 정도로 둔감해지던데, 한승범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 다른 누구도 아닌, 양육자의 공격을 어렸을 때부터 받았던 아이니까. 그런 아이는 본인의 일상이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오히려 단단해질 뿐, 타격은 보통 사람들보다 덜 받을 거야. 단순히 겁이 많고 위축된 성격으로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몸을 타인에게 넘길 정도의 행동력을 가진 아이잖아? 그럴 확률은 0에 가깝다고 봐도 괜찮겠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멈춰.”
“한승범 같은 유형은 본인보다 주변 인물을 공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말이야. 그렇다면 누구를 공격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한승범은 가까운 인물이 없어서 참 곤란해. 친구 하나둘쯤은 만들지, 번거롭게.”
정말 곤란하다는 듯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팔짱을 낀 채 턱을 괴고 있던 놈이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내가 벙쪄 있을 즈음, 놈은 시선을 움직여 ‘한승범의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봤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더니 갑자기 눈을 길게 휘며 활짝 웃었다.
“본인의 영혼이 사라질 걸 알았다면 그 전에 얼마든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가족들을 해칠 수 있었을 텐데, 한승범은 그러지 않았어. 원망할 수 없었던 걸까? 아아, ‘그래도 가족이니까’. 네가 항상 입에 담던 그 이상한 말. 한승범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그만, 그만하라고!”
“있잖아, 나는 그 아이가 가족이 눈앞에서 죽는 걸 보고도,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이 본인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도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그게 정말 궁금해.”
“…….”
조금의 주저 없이 뱉어진 말을 들은 후에야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강혁우의 방식은 너무 진부해. ‘약점을 잡아서 협박한다.’ 사람을 조종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가장 간결하고 합리적인 방식을 취하는 거겠지만, 그래서는 상대방이 반격할 힘을 몰래 비축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래, 지금 너나 프리즘 멤버들처럼. 허점이 생기고 싶지 않다면 정신을 완전히 망가트려야지.”
최적현은 지금 내게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네가 한승범을 위하며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서든 한승범을 고통스럽게 만들겠다’고.
– 더군다나 ‘그건’ 네 몸처럼 튼튼하지 않잖아.
최적현은 분명 아까 한승범의 몸을 ‘그것’이라고 칭했다.
본인이 만든 세계 속에 갇혀 그 밖의 인간은 동등한 인간으로조차 취급하지 않는 본성. 그럴듯한 껍데기를 뒤집어써 필사적으로 가리고 있던 그것이 일상적인 순간에서도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네가 죽어 있는 동안 나는 그때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거든. 그리고 내가 찾은 방법이 바로 이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한승범의 인생을 지옥에 떨어트려 줄게. 설마, 나한테 강혁우 같은 어설픔을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최적현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며 평범함을 조금이나마 ‘연기’할 수 있게 된 것일 뿐, 녀석의 본성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한 번 죽으면 네가 다시 돌아오려나? 걱정하지 마, 유태야. 나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특출나거든. 너는 한승범도 아끼는 것 같으니까 최대한 짧게 끝날 수 있게 해 줄게.”
“…제정신이야?”
“…설마. 이미 알고 있었잖아, 유태야.”
할 말을 잃었다.
최적현은 나에게 절대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 ‘나’에 한승범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쯤이야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수를 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두 번은 없어, 너는 이미 첫 번째이자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렸으니까.”
첫 번째 기회. 저 말은 분명 내가 빌딩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의미하는 것일 터였다. 피부가 오싹해지며 근육이 뻣뻣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놈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한없이 온화하다가도 돌연 태도를 바꾸고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은 가리지 않는다. 일반적인 인간의 상식과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는, 그런 비인간적인 면모가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한승범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거야!”
나의 외침에 최적현은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천진하게 물었다.
“한승범이 마음에 안 들어? 그러면… 판테이온으로 할까? 그것도 부족하다면 프리즘?”
“…뭐?”
“아니면… 나?”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확장된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최적현은 멈추지 않고 이어 말했다.
“너는 강한 사람이 아니야. 약점투성이지. 자기 삶도 버거운 주제에 품에 있는 것들을 내려놓지도 못하는 미련한 사람이야. 전에는 그게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네게 그런 면이 있어서 지금 같은 속박이 먹히는 거잖아.”
“너… 진심이야?”
“그럼, 나는 언제나 진심이었지.”
떨리는 내 목소리를 들은 놈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런 말을 뱉었다.
“상처 줘서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리고 허리를 굽혀 내 어깨에 팔을 올린 채, 눈을 감고 속삭였다.
“그러니까 죽지 말고 나를 잘 감시해 줘, 유태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