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이미 임승훈에 관한 일로 머리가 꽉 차 있는데 이 상황에서 최적현이 이렇게 문제를 터트릴 줄이야.’
관자놀이 부근이 지끈지끈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한번 쓰러진 이후로 둔해졌던 뇌가 조금씩 깨어나는 게 느껴졌다.
조금 쉬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임승훈이 뱉은 말에 비해 최적현이 뱉은 말이 훨씬 더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기 때문인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처한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상황이었다.
‘생각해라, 서유태. 저놈한테 휘둘리기 시작하면 끝장이다.’
최적현은 강혁우보다 월등히 뛰어난 힘과 위치를 가졌고,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으며,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최적현은 한번 적으로 돌아서면 강혁우보다 더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놈이야.’
이번에 나를 협박하기 위한 무기로 한승범과 멤버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이용하는 걸 보니 그 사실이 더욱더 실감이 났다.
그렇게 쭉 생각을 이어 가던 중,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에 나는 가장 크게 위화감이 느껴졌던, 지금껏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생각을 다시금 곱씹었다.
‘…최적현이 적으로 돌아선다고?’
최적현이?
나한테?
아니, 아니다.
그런 일은 벌어질 리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 가능성을 부정하며 입을 다물고 있던 나를 향해 대답을 종용하는 말이 뱉어졌다.
“네가 사라지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응?”
느긋하고 여유로운 미소,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 기품 있는 태도와 몸짓.
모두 평소의 최적현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조바심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근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추측이 무작정 떠오르는 것을 가만히 두던 나는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무장하고 있는 최적현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봤다.
“…….”
나는 분명 화가 났다.
내 소중한 존재들과 제 목숨을 들고 협박을 하는 최적현의 행동에 정말 많이 화가 났다. 하지만 임승훈의 앞에서처럼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그저 고요하게 가라앉을 뿐이었다.
평소에는 습관적으로 화를 내던 내가 이렇게까지 차분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네 마음이 어떤지는 충분히 알았어.”
“아니, 너는 몰라.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몰라주더라도 상관없어. 나는 네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되니까.”
최적현은 내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바로 내 말을 부정했다.
그에 나는 줄곧 어깨를 둘러싸고 있던 놈의 팔을 밀어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크게 휘청거리며 몸을 무너트렸다.
“…큭!”
그러자 바로 최적현의 평온했던 표정이 단번에 일그러지며 녀석의 손이 다급하게 내 팔을 붙들어 내 몸이 바닥에 쓰러지지 않도록 들어 올렸다.
초라할 정도로 거칠게 흔들리고 있는 눈동자를 마주본 순간 나는 확신했고,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아, 이놈은 그저 불안하고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뿐이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의 내가 넘어가는 숨을 어떻게든 쉬어 보려 바닥을 기어다녔던 것과, 태어나서 처음 가져 본 소중한 것을 빼앗긴 아이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것과 똑같았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어찌 되든 좋다’가 아니네.”
“…….”
녀석의 손을 향해 턱짓을 하며 말하자 최적현의 눈썹이 보기 드물게 날카로운 모양으로 찌푸려졌다. 이화영과 아주 닮아 보이는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을 조금 흘렸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맙다, 최적현.”
최적현이 내게 화를 냈을 때와는 반대로 온화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최적현은 동요를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내비친 채 억눌린 소리를 가까스로 뱉었다.
“…뭐라고?”
“고맙다고. 나보다 나를 더 생각해 줘서.”
다시 한번 확실하게 고맙다는 말을 박아 버리자 녀석은 황당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내가 방금 너한테 무슨 협박을 했는지 잊어버린 거야?”
“너도 사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 텐데. 그런데 불안해서 어떻게든 잡아 보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뿐이고. 만약 내가 세운 가설이 맞다면 한승범은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는 무언가 특별한 힘이 있다는 건데, 그런 한승범을 순조롭게 처리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돈이고 권력이고 사람들이 꿈꾸는 걸 모두 가진 네가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낸 놈인걸.”
“…그런 건 상관없어. 어차피 한승범의 가족들은 일반인이니까.”
“글쎄, 나는 상관있다고 보는데. 자꾸 고집부리지 마라, 속으로는 계산 끝났으면서.”
“…….”
“그리고 한승범이 죽으면 언젠가는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궁금해했지. 네 안에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너는 앞으로도 절대로 멤버들에게 손을 댈 수 없을 거야.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것도 불가능할 거고. 너희들의 안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바로 폐인행이니까. 그야말로 네가 말했던 것처럼 비합리적인 일이지.”
‘폐인행’이라는 말에 최적현의 얼굴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그리고 내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이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최적현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녀석이 나에 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나 또한 놈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최적현과 다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딴 짓이나 벌이고 있는 또라이여도 내 하나밖에 없는 친구 놈이었고, 내가 기겁하는 기행들도 결국에는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 규범이고 뭐고 일단 제쳐 두고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람이었고, 최적현은 명확하게 내 ‘안쪽’에 있는 존재들 중 하나였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이더라도, 비난을 받게 되더라도 놈을 적대할 생각은 없었다. 나를 그렇게 괴롭게 만들었던 아버지마저 최대한 떠안고 가려고 했던 나 아니던가.
하지만, 그런 내게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존재한다.
“다시는 네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지 마. 이건 협박이 아니라 부탁이야.”
나는 최적현의 눈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한승범이나 판테이온, 프리즘 멤버들도 마찬가지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 손대지 마. 네가 항상 말하는 것처럼 나도 꽤 유능한 사람인데, 우리 둘이 싸우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거 알면서 왜 자꾸 무리를 하려 들어.”
“…….”
“나는 너희가 제명 다 누리고 죽을 때까지 잘살았으면 좋겠어. 이기적이지? 그래도 나는 양보 못해. 그러니까 네가 양보해. 처음에 만났을 때 내가 너한테 얘기했듯, 나는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없는 사람이거든. 내가 경고했잖아, 책임 못 진다고. 그걸 꾸역꾸역 선택해 버린 과거의 너를 원망해라.”
말도 안 되는 억지임에도 불구하고 최적현은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서운해서 그런 것인지,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건지 잘 감이 오지 않았던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놈을 회유할 수 있는 말을 했다.
“한승범이 돌아오는 건 그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야. 어쩌면 영원히 안 돌아올 수도 있어. 나는 ‘한승범’이 아닌 서유태로 살고 싶고, 한승범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그것도 그렇게까지 반갑지는 않지만, 너는 이걸 바랄 수도 있으니까 그냥 알아만 둬.”
사라지겠다는 말을 줄줄 뱉는 실수를 하기 전에 이 말을 미리 해 뒀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감이 있기는 했다. 그에 머쓱함을 느끼며 목덜미를 만진 나는 최적현의 얼굴을 다시 흘끗 확인했다.
놈은 방금 이야기에도 기운이 나지 않은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 한숨을 푹 쉬고 등 떠밀리는 느낌으로 약속의 말을 뱉었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노력할 거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불안해하지 마. 내 모든 걸 다 바쳐서, 지금보다 훨씬 더 필사적으로, 너희들을 두고 가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볼게.”
그러자 놈의 눈꺼풀이 사르륵 아래로 내려왔다.
‘우나?’
처음 만났을 적의 어린 모습이 살짝 비쳐 보이는 표정에 내가 눈을 껌뻑거릴 즈음, 녀석은 깊게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가 항상 이런식이니까 나도, 서유성도…….”
최적현이 차마 끝맺지 못한 그 작은 말을 꾸역꾸역 들은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한승범에게 어울리도록 만들어 낸 웃음이 아니라, 원래의 내가 웃던 그대로.
그리고 나답게 말했다.
“그래서 네가 나를 데려온 거였잖냐.”
* * *
최적현과 사나이의 대화를 나눈 후, 나는 해가 밝자마자 최적현의 집에서 나와 숙소로 이동했다. 최적현이 술에 쩔어서 끙끙거리는 게 보였지만,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못 본 척했다.
아마 녀석의 생활 전반적인 부분을 보조해 주는 사람들이 와서 멋대로 살려 놓을 것이니까 괜찮았다.
“…….”
약간의 찝찝함을 안은 채 택시에서 내리고 판테이온 숙소의 문 앞에 선 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평소처럼.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그리고 내게 암시를 걸 듯 몇 번이고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겉으로만 평소처럼 행동하기 위해 노력해서는 안 됐다.
나 자신마저 속일 수 있도록 사고 자체를 리셋해야 했다.
그렇게 숨을 훅 내쉬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멤버들이 우르르 몰려와 다같이 나를 반겼다.
“어, 형! 어서 오세요!”
“어떻게 형은 나가기만 하면 연락이 잘 안 돼요? 이제는 그냥 아무 소식 없어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 거 있죠.”
“승범아, 내일 스케줄 기억하고 있지? 일찍 일어나야 해. 아마 이것만 끝나면 활동기 대강 마무리될 것 같아.”
“기대됩니다, 미스터 리의 엄마님 등장. 재벌 처음 봅니다.”
“아니, 네가 지금 미스터 리라고 부른 사람이 재벌이잖아.”
“미스터 리의 지갑는 흥미 없습니다. 노잼.”
“…젠이 흥미 없으면 재벌이 아닌 거야?”
“예.”
신발장에서 신고 있던 구두를 벗으며 그 떠들썩한 분위기를 보고 있자 하니 지금껏 침체되어 있었던 마음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박동음을 내는 심장과 차갑게 식었던 몸에 온기가 도는 느낌에 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멤버들의 인사를 받아 주며 아까 최적현이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당연히 판테이온이나 프리즘 멤버들의 앞에서는 안 그러겠지. 항상 긴장하고 있으니까.
긴장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나 싶었다.
‘최적현도 가끔은 헛발을 짚을 때가 있군,’
이렇게나 마음이…….
이런 기분인데 최적현의 말이 맞을 리가 없었다.
“설거지 쌓아 두기만 한 놈 누구야, 이모님 휴가 가셨는데.”
나는 마음의 비어 있는 부분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평소처럼 멤버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자장라면과 계란후라이, 파김치, 양념게장의 잔해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던 젠이 비장하게 대답했다.
“돼지를 처형하시오.”
“도유다냐. 앉아.”
“배신자! 너도 같이 먹었으면서!”
“유짱이 자신이 전부 한다. 같이 먹자라고 했습니다. 나기 젠은 수면하다 잡히고 나왔어.”
“조용히 해! 형, 최후 변론 기회 한 번만 주세요. 제가요.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요. 원래 먹을 때는 흐름 끊기면 안 돼서 다 먹고 치우려고 했어요.”
“추합니다. 얌전하다게 리다의 철퇴를 받아, 유짱.”
“유다 형, 제가 그러니까 제때제때 치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힝.”
“승범아, 내가 애들 깨끗하게 치우라고 잘 타이를 테니까 이번 한 번만 봐줘, 응?”
떠들썩한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돌아보던 중, 이화영과 눈이 마주쳤다.
조용히 내 얼굴을 응시하고 있던 이화영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인상을 팍 찌푸렸다.
“…한승범.”
“어, 나 왔다. 보고 싶었냐?”
나는 그것을 못 본 척하며 대충 대답을 했다.
그리고 주머니에 왼손을 깊게 찌른 채 숙소의 안으로 들어갔다.
“…….”
등 뒤로 닿는 시선이 따가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