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핸드폰 내부 자료 전부 확보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꾸벅 인사를 하더니 USB와 핸드폰을 데스크 위에 올려 둔 후 다시 한 발 물러섰다. 나는 그것을 심드렁하게 응시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귀중한 증거품이 망가져 버렸네. 아직 정보도 제대로 빼내지 못했는데 참 아쉬워.”
“…예?”
핸드폰은 아직 멀쩡하게 작동되고, 정보는 무사히 전부 빼내는 것에 성공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아둔한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소리가 들렸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흐리멍덩한 듯 풀린 얼굴을 확인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상대는 바로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원하던 대답을 내놓았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서둘러서 작업해 보려고 했는데, 상대 대응이 너무 빨라서 원격으로 핸드폰 조작이 막히는 바람에 일부 정보밖에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말뜻을 이해한 듯했다.
그에 나는 방에 있는 이들을 향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나가 보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그들은 인사와 함께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입단속 철저히 해라.’ 같은 말은 내가 굳이 하지 않더라도 다른 이가 알아서 챙길 것이다. 이를테면 조마조마한 얼굴로 내 표정을 확인하던 비서라든가.
그들이 완전히 방 안에서 빠져나간 후, 나는 테이블 위의 임승훈의 핸드폰을 금고에 넣고, 다시 그가 건넨 데이터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
너와 연락이 안 되던 어느 날, 조카에게 연락이 왔다.
‘한승범’에게 문제가 생기면 곧장 알리라고 했던 것을 잘 지켜 준 것 같았다.
밝은 금발에 푸른 눈.
색소가 옅어 동양인과 거리가 먼 생김새를 가졌기에 한눈에는 피가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여럿 있는 혈연 중 유일하게 나의 가족이라고 여기고 있던 아이였다.
– [갑자기 한승범 상태가 이상해. 당신은 뭔가 알고 있는 거야?]
아이는 너를 따라 배운 듯 무뚝뚝한 말투로 내게 그런 질문을 했다.
나는 그 질문에 ‘알고 있다. 그러나 네게 말해 줄 수는 없다.’는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작게 혀를 찼다. 하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쁜 티를 내면서도 알려 줄 때까지 떼를 쓰지는 않았다.
그 아이도 내가 한번 안 된다고 말한 것은 지키는 성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알고 있듯, 니콜라스는 내가 제법 아끼는 얼마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너처럼 무작정 예뻐하지는 않았으니까.
애당초 크게 조심한 적도 없었지만, 네 정체를 지켜 줘야 한다는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에 잇따라 찾아온 문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 버거운 일이었다.
– 너, 나랑 연락 안 닿았던 적 있냐?
네가 넌지시 물어본 말을 듣고, 심장이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그냥, 그랬던 적이 있는데 기억이 잘 안 나는 것 같아서.
네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다.
아무리 달콤한 꿈을 꾸고 있더라도 언젠가는 잠에서 깨어나야 하듯, 내가 가장 바라지 않았던 상황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찾아오고 있었다.
기억의 편린이 떠오를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너를 보며 내가 무슨 마음이었을지, 너는 전혀 모를 것이다.
– [대표님, 그때 말씀 주셨던 손님께서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네 상태가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그 말을 들자마자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임승훈과 대화를 나눠야 하니 마땅한 장소를 소개해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각오가 충분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슈트가 구겨지고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는 줄도 모르고 다급하게 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시체처럼 하얗게 질린 네가 일어서지도 못한 채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 정신 차려!
네 이름을 몇 번이고 부르며 네 몸을 붙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네 눈이 감기고 몸이 축 늘어졌다.
– …최적현.
내 이름을 마지막으로 입에 담고 말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차갑게 식어 움직이지 않는 피부와 야윈 몸, 혈색 하나 없는 얼굴을 천천히 내려다보니 영안실에 누워 있는 네 얼굴이 플래시백처럼 떠올랐다.
구토를 심하게 했으니 탈수가 일어나고 위에 무리가 갔을 터였다. 원래 몸에서부터 달고 다니던 두통까지 심해졌을 것이다. 진통제를,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멍하니 앉아 움직일 수 없었던 그날처럼.
아예 굳어 버린 다리를 대신하여 늘어진 몸을 받치고 있느라 감각이 살아 있던 팔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목에 닿은 검지와 엄지에 작은 맥박이 느껴졌다.
– …….
살아 있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병원에 겨우 이동한 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네가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다시 강박적으로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걸음을 옮기기에 어깨를 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다시 가만히 앉아 있는 너를 보며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놀랐다. 다른 사람의 말이라곤 전혀 듣지 않는 네가 보기 드물게 순순하게 굴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수입이 생겨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그거야? 한승범이 뒤늦게 돌아오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으려고?
그 질문에 네가 순순히 답하기 전까지는.
화가 났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마치 나를 집어삼키는 것 같은 분노였다.
술기운이 모두 달아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바로 직전에 다리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네 앞으로 갔다.
그리고 평소의 내 말투 따위는 모조리 집어치우고 되는 대로 분노를 터트렸다.
– 한승범이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해 볼래?
정말로 저지를 생각이었다.
그를 위한 준비 또한 완벽하게 마친 상태였다.
당장 그걸 말하는 순간에도 재킷의 가슴 주머니에 한승범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을 끝장낼 수 있는 모든 정보가 담긴 USB를 들고 있었다.
한승범으로서 번 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너를 눈치챘을 때부터…….
– 네가 죽어 있는 동안 나는 그때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거든.
아니, 네가 죽은 날부터 매일 같이 후회 속에 생각했던 일이었다.
– 있잖아, 나는 그 아이가 가족이 눈앞에서 죽는 걸 보고도,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이 본인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도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그게 정말 궁금해.
나는 타고나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없었으며, 내 목적을 위해 울타리 밖의 타인을 이용하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낄 수 없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네 친우로서 살아가기 위해 숨기고 있었던 속내를 모두 열어 함부로 쏟아 냈다. 어떻게 해서든 너를 세상에 묶어 두기 위해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쓰겠다고 다짐하니 무엇이든 거리낄 게 없어졌다.
새의 날개를 자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목숨만 붙어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그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상대를 위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었다. 설마 그 대상에 네가 될 거라고는 너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터였다.
– 네가 사라지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응?
하지만 무심코 그 말을 뱉은 순간 네게 서려 있던 동요와 피폐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드는 걸까.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어 너를 무너트리고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가장 즉각적으로 프리즘의 멤버들을 위협할 수 있는 정보를 입에 담아 너를 옥죄려 들었다.
– 고맙다, 최적현.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순간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말이 나오질 않았다.
원망받게 될 거라는 각오를 충분히 하고 있었는데 들려온 것은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던 말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자 동요에 빠진 것은 내 쪽이 되어 있었다.
– 고맙다고. 나보다 나를 더 생각해 줘서.
그리고 내가 불안해서 어떻게든 잡아 보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는 말을 듣자 그만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내 생각에 너는 나를 너무 좋은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네 사람들을 미련하게 믿으니까 임승훈 같은 이에게 배신당하고, 나 같은 사람을 친우로 두며 상처를 받는 거라고. 턱끝까지 그 말이 차올랐다.
너는 항상 그랬다.
품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약했고, 그들을 너무 많이 믿었다.
나는 한승범이 인지를 초월한 능력이 있다 해도 상관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다면 눈을 도려내면 된다고 생각했고 육체적으로 강한 능력을 가졌다면 정신적으로 무너트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야 하는 이상 내가 위협할 수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의 인생을 유린하는 행동에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 그러니까 그렇게 불안해하지 마.
너는 나를 평범한 사람처럼 만든다.
남들보다 훨씬 미약하게 스쳐 지나가 그대로 사라지는 감정에 이름을 붙였다.
– 그렇게 술 처먹으면서 인생 낭비할 거면 입 다물고 따라와. 내가 그것보다 훨씬 저 즐거운 무대를 보여 줄 테니까.
웃고 잠을 자고 이야기를 나누는, 종종 여행도 가며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평범함을 향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 왜냐하면 나는…….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도, 서유성도 네가 필요했던 거겠지.’
그래서 그랬던 걸까.
네가 죽고 나서 세상의 색채가 모두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는 분명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네가 나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를 것이다. 마치 나를 잘 아는 양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너를 떠올리면 기가 막혔다.
분명 상당히 공을 들여 키웠는데,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니면 천성인가.
– 그래서 네가 나를 데려온 거였잖냐.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예전처럼 웃는 너를 보는 게, 그렇게 나쁘기만 하지는 않아서.
‘한승범’이 아닌 서유태로 살고 싶다는 너를 보며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나 또한 누구보다 바라는 일이었다.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닌, 그 막막한 소망을 목표점으로 다시 설정한 듯한 너를 보며 일단은 이 정도로 두고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너희들의 안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바로 폐인행이니까.
돌부리처럼 응어리진 채 남아 있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다시 저리기 시작하는 허벅지를 짚고 일어선 나는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그리고 손끝에 닿는 책상을 쓸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다음으로 예정되어 있던 스케줄이 스타의 부모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했던가.’
분명 아버지의 본처가 낳은 첫 번째 아들, 그의 아내가 니콜라스를 위해 한국에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여자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젓자 앉아 있을 때의 각도로는 잘 보이지 않았던 데스크 위의 USB가 눈에 들어왔다. 한승범의 아버지가 다니는 직장, 한승범의 어머니가 친분을 맺고 있는 학부모들, 한재운의 교우 관계까지 모든 정보가 들어 있는, 임승훈의 그 USB였다.
그것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던 중, 비서가 다시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들어오라는 말을 하자 서류를 들고 근처까지 다가온 비서가 데스크 위를 떠도는 USB를 발견하고 넌지시 물었다.
“대표님, 그 자료 폐기할까요?”
나는 그 말에 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 손대지 마.
그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내버려 둬.”
…나는 아마 네가 생각한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도, 너는 믿지 않겠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