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다음 예능 촬영을 위해 멤버들과 대기실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나는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바로 태의에게 문자를 보내 임승훈의 상태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먼저 RH 엔터테인먼트 내부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알아내야겠지.’
임승훈은 그 이후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이를 파악해야지만 나도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인이든, 뭐든 끝까지 파헤쳐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해.’
[나: 회사에 특별한 변화는 없습니까] [나: 특히 임승훈 씨나 강혁우 이사 측근들과 관련해서요]문자를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칼같이 답장이 날아왔다.
[ㅌ: 안녕하세요, 한승범 님. COMA-1 태의입니다.]“…….”
이놈은 관등 성명도 아니고 이런 딱딱한 인사를 연락을 할 때마다 매번 하고 있었다. 이미 번호 교환 했으니까 누구인지 아는 와중에 굳이 저런 자기소개를 할 필요는 당연히 없었는데, 내버려 두니까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저 짓을 반복할 생각인 듯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순진하게 굴 생각이지?’
온점까지 완벽하게 갖춘 고리타분한 문장에서 놈의 정직한 성정이 비쳐 보이는 것 같았다. 그에 한숨을 쉬던 찰나, 아직 답장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ㅌ: 가볍게 대화만 나누고 오는 것 아니었습니까.]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것 같았다.
약간의 조바심과 책망이 느껴지는 말에 ‘무슨 일 있었냐’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ㅌ: 한승범 님과 대화를 나눈 이후로 임승훈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뭐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회사 곳곳을 뒤지고, 강혁우 이사와 마주치지 않도록 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겁에 질려 있는 것 같은데 위험한 일을 한 것은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임승훈은 나와 있었던 일을 아직 강혁우에게 불지는 않은 모양이군.’
임승훈이 강혁우와 상의하여 빠른 대응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가장 경계해야 할 여러 가능성 중 일부였다. 그러나 걱정했던 사태까지는 상황이 이어지지는 않은 듯했다.
‘역시, 임승훈은 프리즘 매니저로 활동할 때보다 훨씬 더 강혁우를 무서워하고 있어. 안정적인 협력자 관계는 아니야.’
대충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강혁우는 제 수족들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는 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번 숨겨 버린 이상 임승훈은 나를 처리할 방법을 찾아낼 때까지 이번 일을 은폐하려 들 거야.’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불같이 화를 내며 상대를 비난하고, 때로는 폭력을 사용하기까지 했다. 무슨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실수를 한 부하에게 ‘네가 책임지고 전부 해결해 와라.’는 식으로 대응해 버렸고 말이다. 블랙 기업의 악행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형태라고 해야 할까.
그런 태도를 취하면 부하 직원들의 긴장감을 끌어올려 손쉽고 빠르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절대적인 복종을 보이는 부하들을 보며 마치 본인이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차원적인 효과에만 집중해서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기 일쑤였다.
지금 강혁우의 상황을 봐라.
후환이 두려워 가장 이성적이고 빠른 대처가 필요한 순간에 그저 문제를 숨기기에 급급해 하고, 과도한 긴장감으로 사고가 둔해져 결국 상황이 악화되기만 하지 않았는가.
‘강혁우의 평소 행세 덕분에 이쪽에 일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어.’
녀석이 스스로 팔자를 꼬아 망하길 바라며 그냥 내버려 뒀던 과거의 내 행동이 설마 이런 방향으로 작용될 줄이야. 정말 웃긴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알았다는 답을 보내고,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자 내 옆 구석에 웅크려 앉아 있는 백기량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뭐야?”
멀쩡한 소파를 내버려 두고 여기 앉아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치자 백기량은 생기가 탈탈 털린 얼굴을 하고 손가락을 들어 어느 곳을 가리켰다.
그에 따라 시선을 옮겨 보니 대기실의 공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주범이 보였다.
“…….”
바로 이화영이었다.
이화영은 팔짱을 낀 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예민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대낮부터 어째서 이화영이 이렇게 심기가 불편한 건지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분명 ‘Show me your parents’ 때문일 것이다.
‘Show me your parents’는 구설수로 인해 최근 들어 인기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에이전트 워’의 뒤를 이어 새로 나타난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을 때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의 부모님이 출연하여 해당 멤버 제외 나머지 멤버들과 대결을 펼치는 내용으로 방송되었으나,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이 된 이후로는 조금 더 알차게 코너가 구성되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판테이온이 출연하는 회차의 게스트로 초청된 것은 무려 이화영의 어머니, 카밀라였다.
이화영의 어머니는 유명 경제 잡지에서 선정한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에 이름을 자주 올리는 오너였다. 한마디로 분명 보통 부모들보다도 훨씬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제작진들도 자기들이 섭외했으면서 깜짝 놀랐겠지.’
그런 그녀가 도대체 왜 한국의 예능에 출연하기를 결심했는가 하면 바로 이화영 때문이었다. 그녀는 배경과 어울리지 않게 소탈한 사람이었고, 자기 자식에 관한 일이라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달려오는 어머니였으니까.
사랑이 많고 책임감이 있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워낙 마이페이스라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다. 텐션이 높아 다소 정신이 사납기도 했고 말이다.
…아, 기도 조금 빨리고.
마지막 생방송 때를 떠올려 봐라.
‘그’ 니콜라스 뭐시기를 카메라 앞에서 제멋대로 쥐락펴락하는 사람이니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이화영이 저렇게 신경을 세우고 있는 것도 대강 이해는 됐다.
나도 이화영을 ‘잭잭’으로 알고 있던 시절, 이화영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지독할 정도로 시달렸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숨을 쉰 나는 위를 부여잡은 백기량이 대기실 구석에서 점점 찌그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화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주의를 주었다.
“인상 좀 그만 써라, 이화영.”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어머니께서 오시는 건데 그렇게까지 짜증 내지 않아도 되…….”
그러자 이화영은 나를 팩 돌아보더니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아니야.”
“뭐가 아니야.”
“그것 때문에 화내는 거 아니라고.”
‘짜증’이 어느샌가 ‘화’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또 짚으면 성을 낼 게 뻔했기에 나는 그냥 고개를 까딱 기울이기만 했다.
그러자 이화영은 성큼성금 다가오더니 내 옷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쥐어뜯기 시작했다.
“왜 이래. 또 뭐가 문제인데!”
나는 예고 없이 찾아온 위기에 가슴 앞으로 두 팔을 교차해 얹어 놓고 옷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다.
이, 이 대낮에 무슨 망측한.
20대 초반에 서유성과 함께 갔던 일본 여행에서 사슴에게 옷을 물어뜯겼을 때와 너무 유사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 당혹감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이화영은 꼼짝도 하지 않고 눈을 희번뜩 뜬 채 윽박질렀다.
“옷을 왜 그따위로 입었어. 안 어울리니까 집어치워.”
“…스타일리스트 선생님이 입혀 주신 의상에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 인성 논란 생기니까.”
나는 이화영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질문을 회피했다.
“생기든 말든 관심 없어. 말 돌리지 마.”
아, 실패.
역시 현실은 쉽지 않았다.
행복 회로가 그대로 박살 나 버리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내 옷차림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베이지 컬러의 손을 다 덮을 정도로 팔 기장이 긴 오버핏 카디건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멍 자국이 사라지지 않아서 그걸 가리기 위해 일부러 고른 의상이었다.
‘최적현한테 한번 지적받은 이후로 계속 신경 쓰인다고.’
혹시라도 또 이상 반응이 나오거나 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주머니에 손을 찌르거나 장갑을 끼고 방송을 할 수는 없었으니 차선책으로 찾은 방법이 이거였다.
‘저렇게까지 싫어할 정도로 별로인가?’
내가 봐도 마치 쓰레기봉투에 잡아먹히기라도 한 것 같은 비주얼이긴 했다. 호리호리한 체형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이런 옷을 지금껏 거의 입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어색했고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그것도 패션의 일종 아니던가. 남들 다 멀쩡하게 입고 다니는 옷이고 스타일리스트와 다른 스태프들은 잘 어울린다며 사진까지 찍어 갔는데, 도대체 뭐가 저렇게 노여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영문도 모르는 채 필사적으로 옷을 사수하고 있자 이화영은 악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너 뭔가 숨기고 있잖아. 왜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하는 건데.”
그 말을 듣자마자 식은땀이 나오기 시작했다.
‘잭잭아,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른 거냐, 삼촌 곤란하게.’
잘 수습해야 했다.
이화영이 이상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럴듯한 이유를 대야 했다.
‘들키면 X된다.’
나는 이리저리 꼬이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다가 눈을 사선으로 치켜뜨고 말했다.
“나는 귀여워서 이런 옷도 잘 어울리거든.”
두뇌는 어른, 겉보기엔 20세.
마음이 급해 그만 무리수를 두었다.
“…….”
“…….”
대기실에 정적이 흘렀다.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이화영은 잠시 뒤에 나를 조용히 놓아주었다.
그리고 내 이마에 손을 짚은 후 아무 말 없이 대기실을 나가 버렸다.
나는 홀로 우뚝 선 채 그 고요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정적이 얼마 가지도 않았을 때, 도유다가 먹던 쉐이크를 행위 예술처럼 허공에 흩뿌리는 것을 신호로 우강원이 입을 틀어막았으며, 이단비가 매니저를 호출했고, 백기량은 기도를 하고 있었으며, 젠이 엄지를 치켜들며 ‘Love yourself. Good.’라고 읊조렸다.
“저 형 오늘 왜 저래요? 목 피부도 빨갛고.”
“나도 모르겠어…….”
“형, 조금 주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걱정 가득한 멤버들의 당부를 못 들은 척하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도유다가 내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물었다.
“형, 오늘 긴장했어요?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했다.
어쩐지 얼굴이 조금 홧홧한 것 같기도 했다.
저번 일로 얻은 피로가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원래 잠 좀 자면 금방 낫는 거 아니냐?’
설마 한승범의 몸이 아무리 허약하더라도 그 정도를 못 하겠는가.
예전 몸에서는 잠 안 자도 괜찮았다. 근성을 얕보지 마라.
역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이화영의 어머니가 온다는 말을 듣고 긴장을 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왜요?”
“학부형 상담을 앞둔 교사의 긴장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형, 하지만 형은 스무 살에 아이돌이잖아요…….”
대충 핑계를 대자 옆에서 흐릿하게 해탈한 표정을 지은 도유다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언제나와 같이 자연스럽게 그것을 무시하고 있자, 돌연 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문 너머로 들렸다.
‘온다.’
성격을 대변하듯 거침없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몸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마른침을 삼켰다.
벌컥!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화영보다는 조금 더 캐주얼하고 미국 발음이 섞여 있지만, 영국의 용인 발음에 가까운 영어가 까랑까랑하게 대기실에 울려 퍼졌다.
[Nicky! 네 엄마가 왔는데 마중 나오지도 않는다니, 맙소사! 정말 믿을 수 없구나.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니?]“…….”
모두가 침묵하는 와중, 젠이 입을 열었다.
“아임 재패니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