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 인사해야지, 잭.
– …….
최적현이 금발 머리에 저와 똑같이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를 데리고 온 날, 나는 생각했다. ‘이 쓰레기 자식이 제대로 대형 사고를 쳤구나’ 하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최적현은 설명이란 것을 제대로 하는 법이 없었고, 나는 뚱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는 아이를 보며 혼자 생각의 미로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한마디 ‘누구 애냐’ 물어봤으면 됐을 텐데, 이미 머릿속으로는 엉망진창으로 살았던 예전의 최적현이 주마등처럼 뇌를 스쳐 지나갔기에 그런 질문 따위는 떠오르질 않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닌 거냐’ 같은 지극히 민감한 질문과 ‘아들이 생긴 걸 축하한다.’ 처럼 속 편한 소리, 이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 놓인 채 고민을 하던 나는 결국 어느 쪽도 아닌 침묵을 선택했다.
– …너 애 안는 법은 아냐?
– 왜 안아 줘야 하는 건데?
– …….
그리고 서둘러 잭잭을 안아 올려 내 인생에서 가장 유해한 인간에게서 격리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잭잭은 최적현이 그다지 믿음직스러운 어른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어린 나이에 이미 알고 있었는지 칭얼거리지도 않은 채 내게 덥썩덥썩 안겼던 것 같다. 잭잭은 보통 아이들과 다르게 서유성처럼 아주 조용해 보였기 때문에, 이미 서유성을 키워 본 경험이 있었던 나는 이런 성격의 아이를 돌보는 것에는 꽤 자신이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떠올려 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항상 내게 인형처럼 가만히 안겨 있었던 서유성과 다르게 이화영은 좀 정들고 나서는 사람을 살벌하게 쫓아다니고 내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절대 놓지 않는 무서운 놈이었다. 말수가 적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을 비슷하게 보다니 내가…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건지…….’
아무튼, 음습한 최적현이 상당히 불안했던 나는 종종 잭잭을 돌봐 주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어떤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 [우리 귀염둥이, 잘 놀고 있었니? 좋은 하루 보냈어? 미안해! 엄마가 일을 할 때에는 자주 데려가 주지 못해서.]
어느 날 최적현의 집에 가 보니 대답이 전혀 돌아오지 않음에도 불구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이 톤 질문 폭격과 뽀뽀 세례를 날리는 금발 절세미녀, 그리고 질릴 대로 질려 약간 해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잭잭이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대고 ‘뉘신지’라는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유전자의 신비를 몸소 보여 주는 것처럼 붕어빵인 얼굴을 보며 나는 그만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리고 직감했다. ‘아, 이 사람이 형수씨구나.’ 하고.
장담하건대 이화영의 한승범에 준할 정도로 화려한 외모는 99%가 카밀라에게서 비롯된 것일 터였다.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실제로 목격한 여성 중에 가장 미의 완성형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출아법으로 낳은 것처럼 쏙 빼닮은 두 모자의 얼굴을 보면 잭잭의 이목구비가 최적현과 그다지 닮지 않은 것도 납득이 됐던 것 같다.
‘뭘 납득하고 있어. 다 틀렸는데.’
그 말도 안 되는 오해는 단순히 내가 남의 일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크게 관심도 없다는 이유만으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이라 한국의 호칭에 익숙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형수님’이 아닌 이름을 불렀던 문제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내가 카밀라에게 ‘내가 잭을 봐줄 테니 둘이 데이트하러 다녀와라’는 말을 했을 때 그녀가 ‘우리는 딱히 그런 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밀라는 도대체 왜 그때 내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냥 내버려 둔 거지.’
나는 그것이 아직까지도 의문이었다.
– [적현은 빈틈이 없어서 재미없는데 당신은 꽤 순진한 면이 있네. 귀엽다.]
나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짓는 카밀라의 얼굴을 무의식중에 떠올리자 순간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농락당한 건가?’
아니, 아니.
분명 잭잭의 안전을 위해 정보 누설을 막으려는 의도로 그랬을 것이다.
– [당신 몸의 두 배는 되는 사람한테 잘도 그런 말을 하네.]
– [왜, 네 외관이 끝내주게 핫한 게 네 성격이 귀엽지 않다는 것의 근거가 될 수는 없어. 자꾸 그렇게 깜찍하게 어색해하면 더 괴롭히고 싶어지니까 조심해.]
– …….
– [나는 순진한 남자 놀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거든.]
…아마도.
나는 순진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으니 그 말은 농담임이 틀림었었다. 여자와 어린이의 앞에서는 전투력이 99% 정도 삭감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 이후로 나는 종종 그녀에게 붙잡혀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그녀의 짓궂은 농담과 질문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그녀가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조건 반사적으로 긴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황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여성을 보며 나는 그만 본능적으로 약간 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랑 얼굴이 하나도 안 변했군.’
뾰족한 하이힐, 달마시안 무늬가 있는 핸드백, 검은 머메이드 드레스, 보석이 박힌 선글라스, 화이트 컬러의 재킷까지 명품이 아닌 게 없는 의복, 칼로 그린 듯한 레드 립, 윤광이 날 정도로 완벽하게 웨이브를 넣은 금발. 이화영과 똑같이 과한 것들을 한꺼번에 다 때려 넣어 오히려 조화로워 보이는 외관이 한눈에 들어와 눈이 따끔거렸다.
결국 와 버린 것이다, 형수님이.
‘아니, 아니. 이제 형수님이 아니지.’
정신차려라, 서유태.
저 사람은 최적현의 애인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붙잡고 있을 즈음, 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임 재패니즈.”
여기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다고 새삼스럽게 그걸 말하는 거냐.
젠의 당당한 영어에 다시 대기실에 정적이 흐르던 중, 카밀라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새파란 눈동자를 드러낸 채 젠을 향해 똑바로 다가왔다. 그러자 그녀의 외모와 차가운 분위기에 겁을 먹은 도유다가 젠의 팔을 부여잡고 다급하게 속삭였다.
“바보야, 사과드려! 너 때문에 화나신 것 같으니까!”
“무엇을 사과합니까?”
“몰라, 바보야! 아무거나 사과해.”
“오, 바보이기 때문에 죄송합니다.”
두 사람이 어디 내놓기 창피한 수준의 콩트를 하고 있는 동안 코앞까지 다가온 카밀라는 놈들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 분위기에 압살당한 똥강아지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기 직전, 그녀는 활짝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Nikolaos Lee 엄마입니다. 미안합니다. 한국어 서툽니다.”
발음과 어조에서 약간 어눌한 티가 나긴 했지만, 의미는 명확하게 전달되는 말이었다. 그녀는 한국어를 할 줄 모르니 아마 통째로 외운 말일 터였다.
그 말에 대기실에 나타난 의문의 갑부 절세미인의 정체가 멤버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은 멤버들이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한 후 입을 어물거리더니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져 구석에 있던 백기량을 찾아내고, 그대로 녀석을 앞으로 끌고 왔다.
“가라, 수능 영어 1등급!”
“기량아, 믿을게.”
저항할 새도 없이 끌려 나온 백기량은 이미 퇴로가 막혔다는 것을 확인하고 얼굴을 절망감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하이 나이스 투 미츄 왓 이즈 유어 네임…….”
아, 공교육의 캐치프레이즈가.
갑작스레 마주한 외국인을 마주한 긴장감으로 유치원생도 말할 수 있는 문장이 그룹 유일 대학생의 입에서 나오자 멤버들은 벙찐 채 백기량을 바라봤다.
“나는 시험용 영어만 공부해서……. 미안해…….”
새빨갛게 익은 얼굴이 곧 터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판테이온의 외국어 능력은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하는 걱정이 동시에 들 즈음, 카밀라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부러 교과서처럼 대답했다.
[나도 만나서 반가워. 나는 카밀라 리야. 너는 기량이지?]갑작스럽게 상대의 입에서 자신이 이름이 나오자 백기량은 깜짝 놀란 눈치였다.
“헉, 우리 이름을 알고 계시나 봐.”
‘이화영이랑 같이 활동하고 있는데 당연히 이름 정도야 알고 있겠지.’
해외 방송에서나 보던 유명인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을 먹어 본인들의 직업을 잊어버린 멤버들은 오두방정을 떨며 저들끼리 발들 동동 굴렀다. 멤버들의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반응에 슬슬 내가 개입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사이 다시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아까 대기실을 나갔던 이화영이 돌아온 것이었다.
카밀라는 그런 이화영을 보자마자 경쾌하게 달려가 이화영을 와락 껴안았다.
[니키! 엄마 보고 싶었어?] […내가 출연 거절하라고 했잖아.] [싫어. 재미있어 보이잖아!]이화영은 그에 작게 한숨을 쉬더니 제 어머니를 마주 안은 채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모국어를 뱉었다.
“…내일은 해가 동쪽에서 뜨려나 봐요.”
“유다야, 해는 원래 동쪽에서 뜨는 거야.”
‘그’ 이화영이 그나마 좀 다정하게 구는 모습을 보며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멤버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가 이화영에게만 안 들릴 리가 없었고, 결국 도유다는 이화영의 살벌한 시선을 받고 깨갱 기가 죽은 채 내 등 뒤에 숨었다.
[니키, 멤버들한테 상냥하게 굴어야지. 그러다가 친구 하나 없이 돈만 있는 불쌍한 사람이 될 거야.]“…….”
카밀라의 걱정 어린 지적이 바로 따라왔지만, 이화영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내게 걸어와 손에 쥐고 있던 것을 건넸다.
“…뭐야?”
이화영이 건넨 것은 해열제였다.
그것을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자 녀석은 평소처럼 눈썹을 찌푸리고 예민한 투로 말했다.
“너 지금 열나.”
그 말에 근처에 있던 이단비가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 진짜네요. 조금 뜨끈뜨근해요. 미열 정도라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지만요. 약 먹으면 금방 괜찮아질 것 같아요.”
아, 얼굴이 좀 홧홧한 건 그것때문이었나.
이마에 닿은 이단비의 손이 조금 서늘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해열제와 물을 벌컥벌컥 삼켰다.
[…니키가 유태 말고 다른 사람한테 저러는 거 처음 봐.]그사이에 카밀라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바로 촬영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는 크게 내색하지 않고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 * *
“해당 사진의 니콜라스 씨는 몇 살일까요!”
MC의 멘트와 함께 스튜디오의 거대한 스크린에 이화영의 어릴 적 사진이 떠올랐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내 앞에 있는 벨을 재빠르게 눌렀다.
바로 ‘Show me your parents’의 간판 코너인 ‘Parents vs Friend’를 하기 위함이였다.
그 코너의 내용은 간단했다.
스타에 대한 퀴즈가 나오고, 스타의 부모와 멤버들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정답을 맞히는지를 겨루는 것이 전부였다.
“네, 승범 씨!”
“정답. 네 살.”
MC의 호명을 받은 나는 바로 마이크를 들고 답을 말했다.
그러자 두두두둥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며 MC가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나는 MC가 시간을 끌든 말든 상관없었다.
이미 정답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볼살, 금발의 명도, 헤어스타일, 신체 비율, 장소 등을 고려했을 때 정답은 4세였다.
띵동띵동!
“네, 승범 씨 정답!”
정답을 알리는 소리에 이화영이 미묘한 표정을 짓고 방청객석에서 환호도, 야유도 아닌 애매한 소리가 ‘오, 오오…….’ 하며 흘러나왔다. 그리고 건너편에 서 있던 카밀라가 절규했다.
[어떻게 아는 거야! 나는 니키 엄마라고! 나도 모르는데!]‘당연하지. 내가 찍은 사진이니까.’
나 서유태.
서른을 넘긴 나이이지만, 띠동갑을 넘은 놈의 어머니를 상대할 때도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도끼눈을 뜨자 옆에서 멤버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형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정상 아닌 것 같지?”
“아직 약 흡수 안 됐습니다. 유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