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잠깐 쉬는 시간 가지겠습니다!”
“네에에.”
해열제가 효과를 발하기 시작하려면 대개 30분에서 1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리고 지금은 첫 번째 코너를 마쳐 녹화가 시작된 지 1시간 20분째인 시점이었으며, 그것은 한승범의 몸에 점점 해열제가 들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그에 따라 굳었던 뇌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하고, 점점 현실이 와닿기 시작했다.
[10:4]거대한 스크린의 하단에 나와 카밀라의 극단적인 점수가 나란히 보였다.
참고로 높은 쪽이 나의 것이었으며 낮은 쪽이 카밀라의 것이었다.
‘저질렀다.’
이 망할 놈의 승부욕.
정신을 차려 보니 카밀라의 두 배나 되는 점수를 획득한 뒤였다.
원래부터 승부욕이 남들보다 배는 강한 편이긴 했지만, 평소에는 나름 때와 장소, 상대를 가려 가며 잘 조절하…….
– 1등을 해야 합니다. 2등이고 졌잘싸고 뭐고 다 필요 없습니다.
– 그래, 죽을 때까지 해 보자고. 잠은 사치야, 그치?
아니, 원래부터 조절을 잘하는 편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대형 사고였다. 둔해진 뇌가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화영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굴면 수상해 보일 수도 있다’는 이성적인 사고를 생략하고 타고난 본능에 따라 움직여 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관한 이들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한승범은 이제 거의 리더가 아니라 아버지인 것 아니냐’며 약간의 경외가 섞인 박수를 보내는 방청객들과 본인의 아들에 관한 퀴즈에서 만난 지 고작 1년 정도인 낯선 이에게 패배했으면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카밀라. 이미 포기한 듯 공허한 눈을 하고 있는 멤버들.
그 모든 광경을 눈에 담은 나는 침착한 표정을 지은 후, 생각했다.
‘X됐네…….’
약간 아차 싶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사실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한승범으로서 지금까지 방송상에서 보여 줬던 이미지는 빈틈없는, 멤버들에 관한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으며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의 강박을 보이는 리더였기 때문이다.
‘재미있자고 과장을 많이 섞은 것 같기는 했지만.’
내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고,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결국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
이화영이 이제는 나를 노려보지도 않고 그저 고요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해명을 바라지도 않는 것이다.
‘이제 네 변명 따위는 듣기도 싫다’는 의지가 보이는 모습에 그만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애써 괜찮을 것이라며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한승범과 나 사이에서 아무리 유사함을 느껴도 결국 빙의라는 결론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테니까.’
지금 내 정체를 알고 있는 두 사람은 특이 케이스였다.
제이는 본인의 성이 풀리는 방법으로 내 정체를 확인했고, 최적현은 내 시체가 사라지거나 사람들의 기억에 혼동이 오는 초현실적인 능력을 그대로 목격했으니까.
빙의 같은 초현실적인 일을 덥썩 믿는 것에는 최소한 그 정도의 조건은 필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지간히도 상상력이 뛰어나거나 그 두 사람과 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 어쨌든 이화영은 나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이화영이 서유태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보다 관심이 없을 가능성도 있었고 말이다. 어쩌면 내 정체를 알게 되어도 별 반응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귀하디귀하게 자란 이화영을 지금까지 돌봐준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서라도 수 명, 혹은 수십 명이 있었을 거고, 나는 그저 이화영의 어린 시절 스쳐 지나갔던 인물에 불과했으니까.’
다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화영에게 필사적으로 정체를 숨기려 드는 이유는 내가 내 입으로 ‘그래, 나 서유태다’라고 해 버리면 이화영이 나를 정신적으로 질환이 있는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강제로 정신과 진료를 받게 하거나 입원을 시키고, 주변인들에게 나의 이상을 알리는 일이 벌어지면 최악이었다.
‘그것만큼은 피하자.’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즈음, 이화영과 함께 쉬는 시간을 보내던 카밀라가 이화영에게 질문을 건네는 것이 들렸다
[니키,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 있을 생각이니?]보통 사람들이라면 대화 내용이 잘 안 들릴 정도로 꽤 떨어져 있는 상태였는데 대화 내용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잘 들려 헛웃음이 나왔다.
‘한승범도 참 어지간히도 청력이 좋군.’
다른 사적인 이야기였다면 자발적으로 자리를 피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화영의 아이돌 생활이 걸려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나는 핸드폰을 보고 있는 척을 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화영은 카밀라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화영이 긍정을 해야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보이는 행동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알고 있었던 카밀라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룹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언제라도 그만두고 영국으로 돌아와도 되니까. 굳이 불편하게 타국에 머무를 필요도 없잖니. 가수가 하고 싶은 거라면 더 큰 곳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서포트해 줄 테니까.]“…….”
마치 영국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 같은 말에 가슴이 술렁거렸다.
‘충분히 서포트해 주겠다’는 저 말이 허세나 빈말이 아니고 정말 진심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화영은 그룹보다는 솔로, 케이 팝보다는 팝 음악이 더 어울리는 놈이라는 생각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기회가 있다면 미국이나 영국을 노리는 것이 이화영의 커리어에는 결과적으로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이화영은 한국 생활에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게 저 녀석한테는 좋을지도 몰라.’
하지만 머리로는 그런 현실적인 판단을 하면서도 왜 이렇게 저 말에 기분이 이상한지 모르겠다.
카밀라의 제안에 따라 이화영이 모국으로 돌아가 버리면 앞으로는 거의 만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을 생각하니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시큰거리는 가슴께를 애써 무시하며 이화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돌아가지 않을 거야.]그러자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이화영이 차분하지만 분명한 투로 대답했다.
그에 내가 놀랄 새도 없이 카밀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슬픈 일이지만, 그 사람은 이미 떠나고 없잖아. 추억은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거기에 휘둘려서는 안 돼. 네가 아무리 과거에 연연해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으니까.]‘…무슨 소리지?’
이화영이 왜 한국에 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깊게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다.
‘한국에 머무른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으니 카밀라가 말하는 ‘과거’란 이화영이 한국에 있을 적을 뜻하는 것일 터였다. 그리고 그 시기 이화영이 관계를 맺었던 이들 중에 이미 죽고 세상에 없는 것은 나뿐이었으니 그녀가 말하는 인물은 분명 나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이화영이 나 때문에 한국에 온 거라고?’
분명 Survive IDOL의 첫 번째 촬영이 이루어졌을 때, 이 프로그램이 왜 나온 것이냐는 질문에 트레이너들의 질문에 이화영은 ‘유태 선배님을 동경해서 한국에 왔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주변 어른들에게 영향을 받아 꿈을 꾸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나는 어린 이화영에게 내 무대를 자주 보여 줬었기 때문에 이화영도 당연히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카밀라가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단순히 동경의 마음만으로 한국에 온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야.]나를 언급하는 말에 이화영은 단번에 날카로워진 태도로 카밀라에게 대꾸했다. 하지만 카밀라는 이화영의 예민한 태도를 보고도 한 치의 흔들림없이 단단하게 대응했다.
[설명을 제대로 해 줘야 알지, 니콜라스. 아무런 설명 없이 상대방에게 무작정 이해를 바라면 안 된다고, 그건 네 세계를 좁아지게 만들 뿐이라고 유태가 네게 알려 준 거 아니었니? 그 사람이 겨우 고쳐 놓은 버릇이 또다시 나오는구나. 누군가를 소중히 여긴다면 그 사람이 해 준 말도 소중히 여겨야지.]카밀라의 단호한 지적에 이화영은 자신이 무의식중에 흥분했다는 것을 그제야 자각했는지 다소 누그러진 채 대답했다.
[…설명해 줘도 어차피 믿지 못할 거야.]나는 작게 들려온 말에 고개를 가로 기울인 채 깊게 생각에 빠졌다.
‘어차피 믿지 못할 거라고?’
카밀라는 자녀들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굉장히 오픈 마인드에 수용적인 태도를 가진 부모였다.
본인부터가 이화영의 아버지와 결혼을 하기 위해 사랑의 도피를 했을 정도의 사람 아니던가. 어쩌면 보수적이고 고상한 성향을 타고난 이화영보다 카밀라가 훨씬 더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최적현의 말에 따르면 카밀라는 이화영이 퍼블릭 스쿨을 졸업하자마자 남들이 그토록 꿈꾸는 일류 대학에 다니지 않고 아이돌 데뷔를 위해 한국에 오는 것마저 흔쾌히 허락을 해 주었다고 들었는데, 그런 그녀가 이해해 주지 못할 만한 이야기가 도대체 무엇일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이화영도 원래는 카밀라에게 조언을 자주 구한 것 같던데…….’
제대로 설명만 한다면 어지간히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아닌 이상 카밀라는 최대한 이화영의 말을 믿어 주고, 지지해 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이화영이 어째서 이번 일에 관해서는 카밀라가 믿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카밀라조차 자신의 아들이 설명 자체를 거부한 게 상당히 놀라웠던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에 이화영은 카밀라와 똑같은 색의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더니 ‘말하는 게 서툴러서 미안해. 하지만 정말 말해 줄 수 없어.’라고 조용히 말했다.
카밀라는 처음으로 보는 아들의 모습에 생각이 많아진 듯 잠시 이화영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네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니야. 너는 이제 성인이고, 딱히 나를 납득시키지 않아도 네 인생을 마음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어. 앞으로 네 인생을 이끌 사람은 이제 내가 아니라 너니까. 나는 그저 너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너를 걱정하는 것뿐이고, 네가 언제든지 돌아와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만약 네게 무심코 상처를 줬다면 미안해.]카밀라의 사과에 이화영은 고개를 저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성격이 사나웠던 이화영이 이렇게나 순순해지다니, 정말 놀라울 지경이었다. 역시 이화영 같은 범상치 않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는 보통이 아닌 법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마른침을 삼키고 있을 즈음, 다시 평소처럼 경쾌하게 미소 지은 카밀라가 이화영에게 물었다.
[적현하고 연락은 닿고 있니?] […….]최적현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화영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꽤 순둥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저렇게까지 드라마틱하게 표정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그렇게 인상을 쓴 이화영이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카밀라는 배를 붙잡고 깔깔 웃음을 터트리다가 겨우 대답했다.
[그래? 다행이다.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 […그 사람은 별로 도움이 안 돼. 연락도 잘 안 되고.] [아하하! 맞지. 이사를 한 이후로 아예 잠적을 해 버렸던 적도 있었잖아. 데이트하기에 그렇게 좋은 남자는 아니야.]‘…저건 또 무슨 소리냐.’
최적현이 이사를 했다?
그리고 아예 잠적을 했다?
금시초문이었다.
최적현은 내가 어렸을 때 이화영을 자주 놀아 줬던 집에서 아직도 잘 살고 있는데,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아니면 최적현이 내게 그 사실을 숨기고 있거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