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
2화
생김새를 찬찬히 뜯어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긴 속눈썹 사이로 드러나는 눈동자는 색소가 옅어 이색적인 느낌이 들었고, 선명한 쌍꺼풀과 끝이 약간 얄팍하게 올라간 눈매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수채화처럼 번진 홍조 아래 흰 피부는 조명을 비춘 것처럼 하얗게 빛이 났다.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이목구비가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심지어 치열마저 완벽했다.
솔직히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렇게 생긴 얼굴을 여태껏 그렇게 가리고 다녔던 거야?’
아니, 외모가 뛰어났기에 오히려 꽁꽁 감추고 다녔을 수 있었다. 관심을 기피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SNS 하나조차 하지 않는 걸 보니 대충 감이 왔다.
‘그러고 보니 이 몸의 주인은 어떤 사람이지.’
불합리하게도 나는 엄청난 외모 외에는 이 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내가 다 계획이 있다.”
연예인들은 긴 대기 시간에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별짓을 다 한다. 뜨개질부터 요가 그리고 웹 소설 정독까지. 나도 동생이 읽는 김에 따라서 읽었던 웹 소설이 몇 편 정도는 되었다.
– 그런 나약한 마음으로 아이돌 해 먹으려고 하지 마라! 뭐어? 레벨으업? 스키이이일은 무슨. 뒤질 때까지 연습해애액!
– 형, 그냥 소설이야. 진정 좀 해. 걔네도 사정이 있겠지.
동생 놈은 꽤 웹 소설을 즐겨 읽은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래도 겉핥기로 배운 것이 있었다.
“상태 창.”
나도 쿨타임 차면 쭉쭉 정보 수집하고, 남의 능력치 보고, 꿀템 독점하고 뭐 그런 거 가능하다 이거 아닌가. 상태 창을 이용해서 실력을 높일 생각은 없었지만, 있으면 상황 파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대감이 서린 목소리로 상태 창을 외쳤다.
“…….”
아무것도 안 나왔다.
“…상태 창아.”
아무것도 안 나왔다.
“퍼뜩, 퍼뜩, 튀어, 나오, 라고.”
중지를 치켜들어 허공을 여러 번 내려쳤다. 아무것도 안 나왔다.
“…아, 어지러워.”
화가 나서 잠깐 현기증이 났다.
허공에 퍼덕거리는 게 창피해질 즈음 나는 인생을 쉽게 살아가려는 생각을 버렸다.
나는 원래도 잘나갔고, 굳이 스킬이 없어도 잘해 먹을 수 있다는 기적의 합리화를 마치자 그나마 화가 덜 났다.
‘그래서 얘는 뭐 하는 애인데.’
문제는 이 몸이었다. 전생 짬바로 실력은 어떻게든 커버 가능해도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었다.
“흠.”
아무리 싸가지가 출타한 세상이어도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괜찮았다. 진정하자. 이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본성은 생각보다 쉽게 알 수 있다. 핸드폰을 샅샅이 뒤져 보는 것만으로도.
다행히 핸드폰은 비밀번호나 패턴으로 잠겨 있지 않고 얼굴 인식으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카메라에 들이미는 것으로 열렸다.
연락처를 먼저 열어 보니 가장 위에 본인의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 등이 보였다.
[한승범]“뻔하지도 않고 제법 괜찮네.”
원래 연예인 되려면 이름은 좀 독특한 게 좋지. 합격.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갤러리였다.
“…가자.”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만약 이 몸의 주인이 불량한 놈이면 내 계획은 모조리 물거품이 된다. 초조한 마음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만약 초록 성수나 구름 과자를 처먹는 사진, 남을 괴롭히는 사진이 있으면 끝장이었다.
‘요즘 세상은 학교 폭력에 민감하단 말이다.’
살짝 습기를 머금은 손가락을 옷자락에 문지르고 갤러리를 열었다.
갤러리에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해 봤자 고양이나 강아지, 새 같은 동물 사진 그리고 바다 같은 풍경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있는 인물 사진은 친구로 보이는 아이들이 서로 교복을 입은 채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는 것이었다.
‘친구들 용모 품행 단정해 보이고, 교우 관계도 문제없는 것 같군.’
그러나 친구들의 사진과 영상도 겨우 몇 개 있을 뿐이었고, 자신의 얼굴이 담긴 사진은 없었다.
‘설마 한승범이 왕따인가?’
– 시험공부 열심히 했어?
– 적당히 했지.
– 얘는 맨날 적당히 했다면서 막상 보면 점수 높아.
순식간에 솟아오른 의문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담긴 동영상을 보고 나서야 해소되었다.
이외에 특이한 점은 핸드폰에 정말 기본 애플리케이션만 깔려 있었다는 점이었다. SNS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얼굴이었으면 SNS 정도는 했을 것 같은데.’
“천사의 탈을 뒤집어쓴 신선인가.”
물론 내게는 참 좋은 일이었지만, 무슨 지구에 떨어진 천사 같은 얼굴을 가지고 왜 이렇게 심심하게 살았나 싶었다.
갤러리를 정복한 나는 곧바로 인터넷 사용 기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지금 제대로 정보를 파악해 두지 않으면 정신착란으로 몰려 병원에 입원하게 될지도 몰랐다.
[새도빌딩]가장 최근 기록은 내가 죽은 빌딩의 이름을 검색한 것이다. 요즘에는 SNS에 무분별하게 정보가 올라오기 때문에 기사나 뉴스에서 아무리 정확히 알려 주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기어코 정보는 퍼져 나간다.
‘아마 내가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본 것이겠지.’
이 아이도 설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주인공이 제 몸에 들어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그리 생각해보니 안쓰러웠다.
[동해 바다] [고양이 간식] [한강] [기러기]‘그 외에는 평범하군.’
익숙한 검색 기록들이 보였다. 갤러리에 바다와 강, 새 사진이 잔뜩 있는 걸 보니 물이 많은 곳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재판 끝. 선량한 고등학생이었다. 땅땅.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추한 면이 없는 점이 무서워.’
“으, 추워.”
가장 걱정했던 것이 해결되니 긴장이 풀려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벌써 11월인데 후드 하나만 걸치고 나오다니, 추위를 많이 탔던 나에게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빠르게 문자 앱을 열고, 가장 위에 있었던 [아버지]와의 대화 목록을 눌렀다.
[아버지, 저 저녁에 나갔다가 올게요.] [어디로?] [청담동이요. 잠깐 친구 만났다가 들어갈게요.] [그래, 알았어. 재미있게 놀고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나는 문자 내역을 확인하며 주머니에 있던 지갑을 뒤졌다.
‘뭐 신분증도 없고, 사진도 없고.’
체크카드와 현금만 들어 있는 지갑을 휙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그것은 쓰레기통에 안착했다.
곧장 연락처로 들어가 [아버지]를 눌렀다.
‘애 키우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겁니다, 아버님.’
수신음이 몇 번 울리고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승범아. 무슨 일이야?”
“아버지, 저 지갑을 잃어버려서 집에 못 가고 있는데 혹시 데리러 와 주시면 안 돼요?”
통화 너머 상대가 잠시 주춤했다. 그리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지갑을? 아이고… 조심하지. 그래, 그럼 주변 건물 알려 주면 데리러 갈게.”
‘뭐지?’
나는 이상한 느낌을 애써 무시하며 주소를 불렀다.
“네, 여기 청담동 자이로 빌딩 옆에 편의점이에요.”
“알았다, 금방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 후로부터는 평범한 부자의 대화였다. 통화를 끊은 나는 편의점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지갑을 잃어버린 설정이니까 편의점 안에 들어가 있는 건 안 되겠군.’
얼어 죽어엇.
얼굴 때문에 주목받는 건 둘째 치고 얼어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지라,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장착했다.
빵! 빵!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더니 클랙슨 소리가 가볍게 두 번 울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중년 남자가 창문을 내리고 손짓했다. 한승범의 얼굴이 범상치 않았던 터라 그 아비도 천상계 얼굴일 줄 알았더니 그 정도는 아니고, 적당히 단정한 외모였다. 눈동자 색이 밝은 점이 그나마 비슷했다고나 해야 할까.
“승범아, 얼른 타라.”
통화를 할 때 들었던 것과 같은 목소리였다.
“죄송해요.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하다는 짧은 말을 건네며 조수석에 탔다. 문자 내역을 봤을 때 한승범은 반발심 가득한 아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살가운 아들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뚝뚝한 말투에도 별 이상을 못 느끼는 것을 보니 정답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잘됐군.’
“뭘, 괜찮아.”
“…….”
“아빠는 지금 퇴근해서 집에 가는 길이었고, 재운이는 엄마가 학원에 데리러 갔어. 얼른 가서 밥 먹자.”
“네.”
재운이는 또 누구요.
동생? 형? 이름을 보아하니 달려 있는 놈임은 틀림없었다.
‘주소록에는 그런 거 없었는데.’
“엄마가 요즘 동생 학원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어. 아빠도 오늘은 너 데리러 나왔고. 오늘은 배달 시켜 먹을까?”
‘아, 동생인가.’
아버지의 말에 나는 그제야 ‘재운이’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네, 좋아요.”
“…….”
“…….”
그 후부터는 정적이었다.
나는 사회성이 부족한 성격이었다.
* * *
‘비밀번호 763220. 오케이.’
한승범의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발을 씻고 방으로 쑥 들어왔다.
테이블에 놓인 액자를 집어 들자 뒷받침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액자에는 가족사진이 있었다. 한승범의 어깨에 손을 올린 아버지가 있었고, 한승범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의 팔에 팔짱을 낀 여자가 나란히 선 채 활짝 웃고 있었다.
‘이 여자가 어머니인 모양이군.’
여자가 팔짱을 낀 아이는 한승범의 동생인 한재운인 모양이었다.
‘같은 교복에 넥타이 색만 다른 걸 보니 한두 살 터울이네.’
남의 집 가족사진에 할 말은 별로 없었다.
“…화목한 가족이네.”
굳이 감상을 말하자면 한승범이 특출난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생각보다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가끔 있다. 돌연변이처럼 가족 중에서 확 튀는 외모를 가진 아이가.
드르르륵. 드르르륵.
책상 위에 올려 둔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해 보니 전화였다.
[이모]‘동생은 저장도 안 해 놨으면서 이모는 저장해 놨네.’
안 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 나름 중요해 보이는 ‘이모’의 정체를 알아 둘 필요는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여보세요.”
– 한승범이! 오늘 이모네 놀러 온다면서 왜 안 왔어!
‘그런 약속이 있었던가.’
약속이 있으면 메모를 남겨 두는 습관을 들여라, 승범아.
“아, 깜빡했어요. 죄송해요.”
– 그럼 오늘 못 온 거 보충으로 내일 이모네 가게 와! 어차피 오늘은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안 났을 테니까. 내일은 예약 손님 적어.
아니, 안 가고 싶다. 나는 이미 지쳤다. 사람 살려.
밑바닥까지 싹싹 끌어모은 사회성이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네, 알겠어요.”
정신은 거부해도 입은 순순히 답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 저항하더라도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이었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 주소는 알고 있지? 문자로 알려 준 거기야.
“네.”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문자 내역을 살펴보자 주소가 적혀 있는 문자가 하나가 있었다. 청담동의 상가 거리였다.
‘SU 엔터테인먼트에 한번 방문한 뒤에 가면 되겠지.’
청담동에는 연예 기획사가 쭉 깔려 있다. 오늘 이유인과 강혁우를 마주친 것도 그곳이 청담동 한복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오늘 중으로 이유인에게 연락을 하고, 내일 약속을 잡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근처 가게를 한번 방문하는 것 정도는 그리 번거롭지 않았다.
“승범아, 밥 먹어라.”
부엌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식사 시간이라서 이만 끊어야 할 것 같아요.”
– …그래, 알았어. 밥 맛있게 먹고 내일 보자.”
“네.”
전화를 끊고 방 밖으로 나가자 식탁 위에 포장을 제거한 배달 음식들이 줄줄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이미 식탁 앞에 앉아 있었고, 내가 착석하자 젓가락을 들었다.
차분히 식사를 하며 오늘 하루는 좀 어땠냐, 이 음식점 새로 주문해 본 곳인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같은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갔다. 나는 그것을 모두 흘려들으며 밥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맛대가리 없어.’
“청담동은 어땠어? 지갑 잃어버렸다고 아빠한테 들었을 때 엄마 놀랐잖아.”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기계적으로 음식을 씹고 있는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가족들이 모두 고개를 들었다.
“…….”
말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도대체 이 몸의 주인은 모친과 어떤 관계였는지 감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자 내역도 남아 있지 않았고, 심지어 통화 기록도 없었다. 의심받지 않으려면 뭐라도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보통 엄마랑 그 정도로 연락을 안 하나?’
반말로 대답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존댓말로 대답해야 하는 것인가.
무뚝뚝한 말투인가, 살가운 말투인가.
호칭은? 평소 자주 했던 대화는?
차라리 외딴 세계의 왕자로 빙의하는 게 나았을 것 같다. 그러면 쉽지 않은가.
소자, 원수를 마주치고 혈압이 올라 두 번 뒤질 뻔했사옵니다. 라던가.
꼭 지켜야 하는 말투가 있었으면 편할 것을. 에라이, 머리 터지겠네.
“…….”
“오늘따라 유난히 말수가 적네.”
실없는 생각을 이어 나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버지가 눈치를 보며 내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승범아? 엄마 무안하겠다. 대답 좀 해 줘.”
가족 전원의 시선과 함께 심판의 시간이 다가왔다.
“…재미있었어요.”
적당히 무난한 대답을 찾아 입에 담았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싸해졌다.
쨍그랑!
어머니가 쥐고 있던 숟가락을 놓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뭔가 이상한 말을 했던가?’
재미있었어요. 이 정도면 사실 크게 이상한 말은 아니었다.
‘그럼 뭐가 문제지?’
눈치를 보며 가족들의 얼굴을 슬쩍 보니 뭔가 이상했다. 다 같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다들 고개를 돌렸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군.’
나는 천천히 손을 올려 얼굴 근육을 더듬더듬 만져 봤다.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었던 건가.
“…….”
이상은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미소 지었을 뿐이었다.
나를 제외한 세 명의 가족들은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밥그릇만을 쳐다보며 식사를 이어 가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가족, 무언가 이상하다.’
나는 평범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이상하게 반응한다면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닐 터였다.
급격하게 피로감이 몰려와 눈가를 문질렀다.
상태 창 내놔, 개자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