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서유성의 이름을 불렀잖아, 서유태처럼.”
그 말을 듣자마자 당혹감이 밀려 들어왔다.
꿈에서 깬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내가 서유성의 이름을 불렀다고?’
그런 기억 따위는 없었다.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은 강혁우의 목을 조르는 손의 감각과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울화의 흔적뿐이었다.
한승범으로 존재하는 동안 서유성에게 관여되면 돌이키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최대한 엮이지 않도록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을 텐데, 나는 왜 서유성의 이름을 부른 걸까.
‘아니,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서유성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운 나는 턱끝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친 후, 내 앞에 버티고 있는 이화영을 응시했다.
“너, 설마…….”
평소에는 짜증과 의문으로 덮여 있던 얼굴이 오늘은 당혹감과 혼란을 담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나는 이미 이화영이 내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지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이화영은 제이와 마찬가지로 서유태와 한승범 사이에 유사성을 느끼고 그에 대해 내가 설명해 주길 바라는 것일 터였다.
“…당신, 서유태야?”
심지어 이화영은 지금 내게 그저 막연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유태’라는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걸 보니 이미 스스로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려 버린 것 같았다.
‘나와 한승범 사이에 유사성을 느끼더라도 바로 빙의라는 생각까지는 가지 않았을 텐데.’
카밀라가 내가 스스로 눈치채기 어려운 영어 발음이나 표정이 비슷하다고 했을 때나 최적현이 이화영에게 허튼소리를 했을 때부터 조금 불안불안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서유성의 이름을 부른 것 때문에?’
이화영은 내가 ‘서유태처럼’ 서유성을 불렀다고 말했다.
서유성은 사람을 가까이 접근시키는 법이 없는 놈이었다. 아버지조차 편한 마음으로 대하지 못하는 녀석을 친밀하게 부르는 존재는 프리즘 멤버들과 나뿐이었다. 심지어 그 프리즘 멤버들도 서유성을 친밀하게 부르기까진 시간이 꽤 걸렸고.
‘내 옆에서 서유성을 간간이 본 적이 있었던 이화영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어.’
한참 후배인 한승범의 몸을 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서유성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냥 흘려넘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른 멤버들의 이름이었다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고 뭉뚱그리면 되지만, 서유성에 한해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아니, 그것도 영향을 주긴 했겠지만,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았을 거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의심은 할 수 있어도 한승범의 몸에 내가 들어 있다는 발상까지 이르는 건 어려워.’
“…….”
뭔가가 더 있었다.
나를 그렇게 잘 알고 눈치가 빠른 제이도 내가 먼저 진실을 털어놓았고, 그것조차 제대로 믿지 않아서 생방송 무대에서 나를 엿먹이지 않았던가.
이화영 같은 현실적인 놈에게 빙의 같은 초현실적인 일의 가능성을 열어 준 사건이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 네 시체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거든, 흔적도 없이.
그런 생각을 하자 돌연 최적현이 다시 만났을 때 내게 해 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설마 이화영도 최적현처럼 내가 모르는, 한승범의 능력이 사용된 것 같은 장면을 목격한 것인가?
그렇다면 이화영이 저런 의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해가 됐다. 그리고 만약 그런 경우 내가 어떻게 부정을 하든 아무런 소용이 없을 가능성이 컸다.
이화영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대답은 우선 그것을 파악한 다음의 일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떻게…….”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하지만 제대로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이화영이 내 어깨를 강하게 움켜쥔 채 윽박질렀다. 그에 놀라 눈을 크게 뜨자 그제야 끔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화영의 얼굴이 벌어진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어깨를 쥔 억센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제이의 때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제이는 절박함과 불안감이 더 컸고, 이화영은 혼란스러움이 더 컸다고 봐야 할까.
‘…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도대체 왜 이화영이 어린 시절 잠깐 마주쳤던 나의 흔적들에 이렇게까지 연연하는 건지.
나는 형편없이 흔들리는 파란 눈을 바라보다가 다급하게 놈의 손을 붙잡고 문 쪽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아직 밖이 조용한 걸 확인한 후 고개를 잘게 저었다. 목소리를 낮추라는 뜻이었다. 숙소 안이었기 때문에 다른 방에 있는 멤버들에게 우리의 대화가 들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한 핸동이었다.
‘판테이온 멤버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안 돼.’
그러자 이화영은 그것조차 놓치지 않고 지적하며 나를 압박했다.
“멤버들이 들을까 봐 무서운가? ‘한승범’이면서?”
나는 그런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숨을 훅 내쉬고 일부러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뭐?”
“아니면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거냐고 물어야 하나, 잭?”
이화영은 내 대답에 할 말을 잃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놀란 건지 넋을 잃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또 모르는 척을 할 거라고 생각했나.’
나는 제이나 최적현에게 그랬듯, 내 주변 인물들이 스스로 확신을 가진 채 내게 찾아왔을 때, 나의 정체에 대해 부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살아 있는 누군가를 보며 이미 죽고 떠난 이를 떠올린 후, 그것을 입 밖으로 뱉는 순간까지 그 사람의 내면에서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많은 의문이 스쳐 지나갔을지, 그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아니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 정도로 생각을 거듭한 이들에게 나의 어쭙잖은 거짓말이 통할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것은 나를 소중히 여겨 준 그들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미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잖아. 넌 그냥 확신이 필요한 것뿐이지.”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이화영을 보며 고민했다.
지금의 녀석을 ‘잭’으로 대해야 할지, 아니면 ‘이화영’으로 대해야 할지, 그 판단이 잘 안 서기 시작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선택해.”
나는 결국 잭에게 했던 것처럼 다소 유한 목소리, 이화영에게 했던 것처럼 무뚝뚝한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의미야.”
“나라는 존재의 비현실성을 묵인하고, ‘서유태’를 다시 네 인생에 끼워 넣을지, 아니면 지금까지 네가 살아온 현실을 믿으면서 나를 ‘한승범’이라고 정의할지.”
“…….”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존재할 거라는 의미야.”
나는 내 의사가 어떻든 이화영의 선택을 존중하여 녀석이 받아들이기 쉬운 방향으로 행동할 것이다.
지금 녀석이 나의 존재를 긍정하면 앞으로 서유태로서 이화영을 대할 것이다. 하지만 이화영이 나의 존재를 부정하면 앞으로 한승범으로서 이화영을 대할 것이다. 그리고 놈이 생활 중간중간에 필연적으로 느끼는 여러 위화감과 의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할 것이다.
이화영은 이제 겨우 성인이 된,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였고 나는 굳이 녀석에게 나의 생사로 혼란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녀석은 내 말을 들은 후 한참을 가만히 서 있더니 주먹을 세게 움켜쥔 채 작게 입을 움직였다.
“…왜 그렇게 죽어 버린 거야.”
가장 먼저 뱉은 말은 그것이었다.
“힘든 일이 너무 많이 벌어져서, 당신을 아끼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될 정도로 세상이 싫어져서 다 두고 떠나 버린 거야?”
“…….”
“‘한승범’의 삶을 살면서 당신은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어? 정말 그거로 만족해?”
몇 년 동안 버티고 있던 댐이 터진 것처럼 점점 놈의 목소리가 격양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놈이 스스로 답을 내리기를 기다렸다.
“나는 얼굴도 못 본 채 몇 년이나 흘러 버렸고,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아직 보여 주지도 못했는데, 그게 괜찮을 리가 없잖아.”
“…….”
[…나는 아직 당신이 필요하단 말이야.]애처럼 고개를 푹 숙인 놈이 뱉은 대답은 그것이었다.
결국 제이나 최적현과 마찬가지로 이화영이 선택한 것은 서유태였다.
‘역시 이렇게 되나.’
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화영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예전처럼 녀석의 머리를 툭툭 만지며 말했다.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애 같아서 어떡하냐.]그 짧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렸을 때와 똑같은 놈의 표정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 즈음, 녀석이 갑자기 나를 강하게 껴안았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컥.”
꽤 감동적인 장면인데 숨이 안 쉬어졌다.
그렇게 얼굴이 좀 파래질 때까지 한참을 잡혀 있던 나는 탭을 치고 겨우 풀려난 후, 녀석에게 물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안 건데.”
그러자 이화영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제대로 숨기기나 해야…….”
“그건 말 안 해도 돼.”
정체를 숨길 생각은 있긴 한 거냐는 이야기가 또 나오는 것에 나는 녀석의 말을 자르고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제이와 최적현에게 너무 많이 들어 질려 버렸단 말이다.
“…….”
이화영의 머릿속에 ‘당신이 그딴 식으로 행동했잖아.’ 같은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간 게 표정을 통해 읽혔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며 이화영이 다른 대답을 내놓도록 종용했다.
“다른 이유가 더 있잖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믿게 될 만한 이유가.”
그러자 이화영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당신이 너무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컨디션이 안 좋아졌던 적이 있었어. 기억해?”
나도 그 일은 기억하고 있었다.
코피 좀 나서 어질어질했던 그때 아닌가.
그 기억을 떠올린 나는 계속 말하라는 듯 이화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머리라도 박고 쓰러질까 봐 걱정이 돼서 방에 쫒아 들어갔더니 당신은 이미 상태가 더 악화되어 있었고…….”
‘상태가 악화됐다고?’
내 기억으로는 좀 앉아서 쉰 이후로 상태가 바로 괜찮아져서 멀쩡하게 돌아다녔다. 그런데 저게 무슨 소리인가 의문이 들어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화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 그러더니 갑자기 상태가 좋아졌지. 왜 그랬는지 기억해?”
“…아니.”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거대한 짐승이 갑자기 나타나서 당신을 자기 몸으로 둘러쌌거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태가 급격히 호전되었어.”
갑자기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이유 모를 불길함을 느낀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그 동물에 대해 더 설명해 봐.”
그러자 이화영은 도대체 왜 그러냐는 듯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이면서도 나의 재촉에 못 이겨 기억을 더듬는 듯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말하기 시작했다.
“몸이 조금 투명하게 비쳐 보이고, 흰 털에 앰버색의 눈동자를 가졌어. 뾰족한 귀에 날카로운 이를 가졌고.”
“…….”
“그리고… 아주 조용했는데 당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았어.”
– 애옹.
그 말을 듣자 돌연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것 같았다.
‘설마, 설마…….’
그즈음에 한 마리 주워 왔었다.
추운 겨울에 동해 바다 앞에서 거의 다 죽어 가는, 새하얀 털과 호박색의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를.
유난히 사람 말을 잘 알아듣고 소심하던, 내가 마지막까지 키웠던 그 고양이는 내가 나를 ‘아빠’라고 칭할 때마다 항상 가만히 멈춰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곤 했다.
– [동해 바다]
‘한승범의 핸드폰에는 그 바다를 검색한 기록이 남아 있었어.’
신비한 힘을 가진 짐승.
그 짐승을 닮은 나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몸을 내게 넘겨줄 정도로 이상하게 내게 호의적이며 신비한 힘을 가졌던 소년.
이건 과연 우연인가?
“…한승범?”
그 고양이를 떠올리며 한승범의 이름을 중얼거린 순간, 경쾌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띠링!
지금까지 계속 불이 들어오지 않았던 노트북에서 나는 알림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