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삐리릭 삐리릭.
노트북의 알림음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화영의 주머니에서도 알림 소리가 났다.
이화영은 그 소리를 듣고 바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이새화]그리고 화면 속의 이름을 확인한 후, 매섭게 혀를 찼다.
“쯧, 이 인간은 자기가 필요할 때만 연락하지.”
질색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혼잣말을 한 녀석은 전화를 받자마자 인사도 건네지 않고 매도의 말을 뱉었다.
“당신은 정말 최악이야.”
최적현에게는 쥐뿔도 먹히지 않을 듯한 공격적인 말이 날카롭게 흩어지자 전화기의 스피커에서 언뜻 익숙한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점잖게 웃는 게 들렸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며 서둘러 서랍 안에 놓아 두었던 한승범의 노트북을 꺼내 왔다.
이왕이면 이화영이 최적현에게 시달리는 동안 노트북을 확인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
노트북을 열자 지금껏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던 화면에 밝은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전에 봤던 그 게임의 아이콘이 보였다.
그것을 클릭하자 저번에 봤던 것과 똑같은 로딩 화면이 나타나고, 유저의 이름이 나타났다.
★ User name: 한승범 ☆
다행히도 저번과 똑같이 ‘한승범’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천의 기프트 숍 아이콘 부근에 흘끗 시선을 주니 뭔가 저번과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에 대해 유심히 생각을 해 보던 나는 기프트 숍의 선물 상자 모양 아이콘에 적혀 있는 숫자를 보며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숫자가 0이 아니야.’
분명 저번에 중간에 능력을 사용하려다가 ‘COST 부족’이라는 알림을 받지 않았던가.
– [너의 Voice가 들려: COST 1]
도청 능력과 가장 거리가 가까워 보이는 기프트의 코스트는 1이었다. 그 능력조차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코스트가 동이 난 상태였다면 분명 숫자는 0으로 바뀌어 있어야 할 텐데 벌써 1,000 정도의 코스트가 쌓여 있었다.
‘나는 한 번도 코스트를 얻었다는 알림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를 보며 술렁거리는 마음을 뒤로 한 나는 속으로 임승훈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임승훈.’
코스트가 부족하다는 알림이 나타난 후로 사용이 불가능했고, 코스트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더더욱 사용을 시도하지 않았던 도청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익숙한 감각이 느껴지며 머릿속에 임승훈의 목소리가 작게 흘러 들어왔다.
– 으, 나는 잘못 없어. 다 시켜서 한 거야. 다, 다 시켜서…….
주변이 아주 조용했다.
시간이 너무 늦었던지라 아무래도 혼자 있는 것 같았다.
– 해, 해결해야 해. 빨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작 몇 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에 파묻힌 것처럼 먹먹한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이불을 둘러싼 채 벌벌 떨고 있는 것 같았다.
‘…능력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됐어.’
내내 사용하지 못했던 능력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과 임승훈의 상태에 대한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즈음, 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고 아이콘 속의 숫자가 1 차감되는 것이 보였다.
‘역시 아이콘 속의 숫자는 남아 있는 코스트를 의미하는 것이었군.’
다만 문제는 도대체 코스트가 왜 다시 늘어난 것인가였다.
한승범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코스트를 획득해 놓은 것일지, 아니면 단순히 한승범의 몸에 눌러앉은 내가 얼떨결에 퀘스트를 수행한 것일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전자라면 한승범이 아직 살아있고, 내 의식이 사라진 사이에 지속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 시간이 극단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저 정도로 코스트를 모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게임의 퀘스트는 일상생활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일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니 후자가 훨씬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퀘스트들은 한승범의 어머니가 오직 한승범을 위해 만든 것 아니던가. 이 게임의 시스템은 내가 한승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꿰뚫어 봤는데, 과연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개입된 것인가?’
그런 생각도 가져 봤지만, 이 게임에 접속한 유저명에는 오직 한승범만이 적혀 있었기에 그것 또한 무리가 있는 것 같았다.
“…….”
이루 말할 수 없는 찝찝함이 느껴졌지만, 이번에도 접속이 차단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서둘러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게 뭐지?’
저번에는 없었던 다이어리 모양의 아이콘에 깜빡깜빡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분명 아까 울렸던 알림음은 이것으로 인한 것이었을 터였다.
나는 바로 마우스 패드를 조작해 그 아이콘을 클릭했다.
★ 일기
그러자 일기라는 글자가 적힌 로딩 화면이 짧게 뜨고, 내가 일전에 봤던 상태창과 똑같은 모양의 칸이 나타났다.
[엄마는 자는 것처럼 세상을 떠났다.고통스럽게 눈을 감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모습을 잊어버릴 수 없는지 모르겠다.]
나는 날짜 없이 가장 위에 쓰인 그 글귀를 보자마자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한승범의 일기였다.
한승범이 남겨 둔 유일한 삶의 흔적을 드디어 발견한 나는 조용히 그것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쓰린 감정에 점점 갑갑하게 올라붙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한승범.’
저 글을 적어 놓은 날의 한승범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
화면의 어두운 부분에 한승범의 얼굴이 비쳤다.
그것을 보고 있으니 어쩌면 그날의 한승범은 지금의 나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한승범이 정말 사라져 버렸다면…….’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 것으로 인한 절망과 상실감.
당시의 어렸던 한승범이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을 터였다.
그렇게 화면 속의 한승범을 응시하고 있자,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전환되었다.
[12월 20일.아버지가 모르는 여자와 나보다 조금 어린 남자아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너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겼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서워져서 도망쳐 버렸다.
무엇이 무서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이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날짜가 제대로 적혀 있는 첫 번째 일기를 보자마자 주먹을 움켜쥐었다.
분명 이날의 일기에 적혀 있는 ‘모르는 여자와 나보다 조금 어린 남자아이’는 한재운과 한재운의 어머니를 의미하는 것일 터였다.
한재운의 아버지가 한재운의 어머니와 재혼을 한 시기는 한승범이 갓 중학교에 입학했을 즈음이었다. 아직 사춘기조차 제대로 오지 않았을 어린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아버지나 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기에는 너무 많이 외로웠고, 그럴 수 있는 성정 또한 되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마저 저버리면 정말 혼자가 될 것 같아 두려웠다.]
12월 23일 일기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니 한승범의 이모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혹시 승범이 아버지한테는 먼저 연락 안 오던가요?
– 승범이는 자기 아버지만큼은 의지했는데…….
그리고 뒤이어 최적현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그래도 가족이니까’. 네가 항상 입에 담던 그 이상한 말. 한승범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참담했다.
이렇게 미련할 정도로 다정한 아이가 한재운의 아버지 같은 인간의 아래에 태어났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재운의 아버지가 끝까지 한승범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사실과 그들이 마지막 경연일에 했던 말들을 떠올릴 때마다 속이 들끓는 것 같았다.
나 역시 한승범과 같은 미련함을 반복했던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2월 24일길을 잃어버렸다.
수중에 남은 돈이 없었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는 그냥 시체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었다.
그리고 도로에서 차에 치여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죽어 가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죽어 가는 고양이’라는 단어를 발견하자 이화영에게 ‘거대한 짐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가슴이 또다시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를 향한 끝을 알 수 없는 한승범의 호의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점점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12월 25일.새로운 기프트를 사용한 후, 가까스로 도착한 바다 앞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다.
TV에서 봤던 것처럼 차가워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품이 따뜻했다.
나는 그 온기가 너무나도 그리워 그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 사람을 따라갔다.
내가 고양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키면 분명 그 사람의 옆에 있을 수 없겠지?
소름 끼친다는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이기적이지만, 내 정체에 대해서는 영원히 비밀로 하자고 다짐했다.] [1월 2일.
가족이 생겼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
1월 2일은 내가 그 고양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길 결심했던 날이었다.
이로써 내가 키웠던 그 고양이가 한승범이라는 사실은 확실해진 셈이었다.
‘한승범은 내게 미움받을 게 무서워서 그렇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건가.’
[엄마, 저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마지막으로 적혀 있는 글은 이것이었다.
일기라고 하기에는 마치 본인의 생일을 캘린더에 적어 넣은 듯한, 일종의 표시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저 몇 번이고 그 글자들을 반복해서 읽었다.
“한승범이 남긴 글이야?”
그렇게 한참을 서 있으니 어느샌가 최적현과 통화를 마친 이화영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걸었다. 녀석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한승범의 일기를 읽고 그 ‘짐승’의 정체에 대해 대강 짐작을 마친 모양이었다. 녀석도 내가 키웠던 고양이를 알고 있었으니까.
“…걔, 나를 보고 눈을 길게 깜빡였어. 고양이는 그렇게 인사를 한다던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향해 이화영은 작게 그런 말을 뱉었다.
서툰 위로였다.
“너랑 친해지고 싶었나 보다. 내가 걔한테 네 얘기를 자주 했었거든.”
“…그 고양이는 결국 어떻게 된 거야?”
이화영의 질문에 나는 내 팔 안에서 경직된 차가운 몸을 떠올렸다.
그리고 일부러 덤덤하게 대답했다.
“죽었어. 어느 날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거든. 병원에 데려갈 새도 없이 죽었어.”
한승범이 내 기억에 손을 댄 건지, 아니면 내가 단순히 힘들었기에 의도적으로 잊으려 했던 건지 그때의 기억은 잘 나질 않았다.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그 아이도 내게 온갖 힘든 일이 몰아쳤을 즈음 세상을 떠났던 것 같았다. 그때는 그게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 뒤로도 살아 있었을 수도, 어쩌면 지금도 살아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항상 내 맥박이 느껴지는 곳에서 잠을 자는 놈이었다.
내가 잠을 잘 때마다 목, 손목, 가슴과 같은 불편한 곳에 필사적으로 몸을 구기고 붙어 있었다.
꼭 내가 자다가 죽어 버리기라도 할까 봐 무서워 어쩔 줄을 모르는 것처럼 굴기에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너무나도 신경 쓰여 그 후에도 도저히 그 아이를 다른 곳에 입양 보낼 수 없었다.
내가 그 아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한 날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 누가 아빠 자는데 머리카락 가지고 장난치냐.
내가 처음으로 나를 ‘아빠’라고 칭하자 그 아이는 나를 가만히 올려다봤다.
그리고 맑은 눈동자에 마치 별이 빼곡히 수놓인 밤하늘이 담겨 있는 것처럼 이채가 서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내가 마치 저의 세상인 양 나를 가득 담은 채 빛나고 있었다.
살면서 누군가의 그토록 순수한 감정을 과연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 애옹.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