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양궁 연습을 마치고 나는 바로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치세의 작업실로 향했다.
“승범이 안녕!”
작업실에 들어가자마자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운 이치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악수를 한 손을 잡아당겨 허그를 하고, 정수리를 손으로 꾹 눌렀다. 이치세가 항상 친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루틴처럼 하는 짓이었다.
‘진짜 여전하네.’
이치세는 지가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한다.
안 해 주면 해 줄 때까지 사람 귀찮게 만든다.
“…안녕하십니까.”
다년간의 데이터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나는 빠르게 저항을 포기하고 녀석의 허그를 받아 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내 반응이 아주 만족스러웠는지 하하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어깨를 으스러트릴 것처럼 강하게 한 번 더 안은 후 떨어졌다.
‘…블루베리 냄새.’
나는 이치세의 품에서 나는 풍선껌 특유의 저렴한 단내와 진한 에스프레소 향에 눈썹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무식하게 단 껌을 줄기차게 씹어 대고, 커피로 단맛을 지운 후 다시 껌을 씹는 것은 녀석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보이는 버릇이었다. 평소부터 주전부리를 입에 달고 사는 놈이니 단내가 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지금 작업실 데스크 한구석에 아무렇게나 수북하게 쌓여 있는 판박이 스티커와 포장지의 수를 보니 영 멀쩡한 상태로는 보이지 않았다.
‘프리즘 시절에는 음악 작업을 하다가 저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 슬럼프가 와서 그런 건가.’
이치세는 제 기분이 안 좋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때문에 저 행동은 본인의 스트레스를 나름대로 혼자 해결해 보려는 노력일 터였다.
‘그나마 담배가 아닌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제이처럼 흡연을 하게 되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생전에 피웠던 것과 똑같은 담뱃갑을 들고 다니는 제이를 떠올린 나는 무겁게 입을 뗐다.
“…아직도 작업이 잘 안 풀리는 겁니까?”
“그렇지? 그렇게 너 만나고 나서 뭔가 될 것 같아서 다시 시도해 봤는데 또 너랑 찢어지니까 귀신같이 안 되더라. 신기하지?”
이치세는 나의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테이블 위의 흔적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는지 나를 질질 끌고 가 소파에 앉힌 후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 저를 향해 돌리고 꽉 고정하는 시늉을 했다.
“자, 자, 여기 와서 앉으세요, 후배님. 쓸데없는 거 보지 말고 여기 봅시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바퀴가 달린 의자를 끌고 와 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물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지?”
“아니요. 매니저님이 태워 주셔서 큰 문제는 없었으니 걱정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보내드린 파일들은 들어 보셨습니까?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으시면 다른 것도 준비해 왔으니 들어 보시고 결정…….”
“축하해, 보니까 이번 앨범 엄청 잘되던데.”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가벼운 인사말에 짧게 대답한 후 사무적으로 바로 본론을 꺼내던 중, 이치세가 대뜸 내 말을 잘랐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미소를 머금은 채 천연덕스럽게 일과 상관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많이 바빴던 거야? 연락이 너무 안 되길래 형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꼭 ‘나는 아직 너와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 그렇게 앞서가지 말아라’는 의도를 분명히 박아 놓는 것 같은 행동에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네. 조금 바빴지만 나름 잘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보통 다들 나랑 계속 연락하고 싶어서 난리던데 이렇게까지 연락을 피하는 사람은 우리 승범이가 또 처음이라 놀랐거든. 얼마나 바빴으면 그랬겠어.”
무슨 애새끼라도 대하는 것처럼 둥글둥글한 말투였지만, 묘하게 가시가 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사적인 연락에는 최대한 늦게 대답하고, 음악 파일을 위주로 보내며 사무적인 태도를 취했더니 그게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역시.’
나는 이치세의 속내를 읽자마자 나오는 한숨을 가까스로 참았다.
나는 프리즘 멤버들과 ‘한승범’으로서 깊게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리운 마음이야 당연히 있었지만,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상황에서 그 감정을 드러내 봤자 어차피 그것은 거짓된 관계였고 내 이기심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치세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그저 이치세가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좋은 노래를 안겨 주는 것. 그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이치세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활동 기간 동안 꾸준히 연락을 하는 것을 봤을 때부터 감은 잡고 있었다.
“…바쁘실까 봐 연락을 잘 못 드렸습니다.”
“하하, 거어짓말하지 마. 승범이 거짓말 못한다는 소리 자주 듣지? 다 티 난다.”
적당히 뱉은 변명이 경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바로 묵살되었다.
그리고 이치세는 지금껏 머금고 있던 장난기를 모두 지운 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나도 나름대로 회사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최근에 계속 눈여겨보고 있었던 사람이 너에 대한 정보를 계속 찾고 있는 걸 알게 됐어. 낌새도 이상하고. 너한테 무슨 일을 당하기라도 한 걸까?”
아마 이치세가 말하는 ‘눈여겨보고 있었던 사람’이란 임승훈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이치세는 임승훈을 싫어하는 제이와 서유성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으니까. 애초부터 임승훈을 계속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이치세는 그런 임승훈이 내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나와 임승훈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같이하자고 했잖아, 승범아. 부담스러워서 그래?”
“…….”
“네가 우리를 도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 영상으로 인찬이의 약점이 잡혔고 그거로 차운 형이 협박당하고 있는 이상 이건 프리즘의 일이야. 임승훈은 프리즘의 매니저였고. 그런데 아무 상관 없는 네가 이렇게 혼자서 무리하는 게 이해가 잘 안 돼.”
‘아무 상관 없기는 무슨, 내가 서유태인데.’
치밀어오르는 답답함을 억누른 나는 차분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저는 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는 이치세의 말을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치세가 말한 것처럼 강혁우를 상대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나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프리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아니, 생판 모르는 타인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나보다 약점이 프리즘이 더 위험할 가능성이 높을 터였다.
‘역시 프리즘 멤버들을 끌어들이는 건 안 되겠어. 임승훈에게 더이상 속지 않고 멤버들끼리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최소한의 정보만 공유하자.’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후, 차분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일은 단순한 미팅으로 그쪽에서 제게 먼저 접근했던 거라 공유해 드린다고 해서 상황은 그리 변하지 않았을 겁니다. 딱히 별일도 없었고요. 제가 알아낸 정보는 지금이라도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
“그날, 조인찬 선배님은 본인이 원해서 그 클럽에 간 게 아니었습니다. 임승훈과 강혁우에게 속았던 거였어요. ‘서유태와 대화를 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요. 그러니 임승훈은 되도록 멀리하시고, 인찬 선배님을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인찬이를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어. 그러면 그 영상이 강혁우 이사가 약점을 잡기 위해 강제로 찍은 거라는 사실을 증명하면 프리즘 멤버들은 자유로워지고, 강혁우가 저지른 짓들을 공격할 수 있게 되는 거네.”
최소한의 정보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바로 줄줄 읊는 이치세를 보며 나는 조금 놀라 입술을 꾹 다물었다.
‘…역시 함께한 세월은 못 속이는 건가.’
끼이익.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갑자기 문의 손잡이가 돌아가고 문의 이음새가 움직이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굳게 문이 닫혀 있었던 작업실의 방문이 열린 것이었다.
분명 작업실에 우리 둘 외에 사람은 없었을 텐데, 멀쩡한 문이 열리는 것에 몸을 딱딱하게 굳히자 어둑한 방 속에서 길쭉한 몸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다소 어두운 톤의 피부과 아예 하얗게 색을 뺀 백발, 나른하게 풀린 짙은 눈매와 노란 눈동자, 190cm에 육박하는 큰 키 같은 눈에 안 띄려야 안 띌 수 없는 화려한 외모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
나는 그를 보며 속으로 쌍욕을 뱉었다.
‘이 XX, 얘가 왜 여기 있어.’
남이훤이었다.
대충 헐렁하게 걸치고 있는 의복과 세팅이 안 된 채 부스스하게 아무렇게나 흩어진 머리칼을 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왜 있긴. 이치세 작업실이니까 있겠지.’
나는 남이훤을 바라보며 스스로 멍청한 질문을 했음을 깨닫고 무의미한 자문자답을 했다.
사실 프리즘에게 집에서 갑자기 불쑥 멤버가 튀어나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프리즘은 서로의 작업실과 집의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일상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미 서로 너무 익숙해져 불편함을 느끼지도 못하고 예고 없이 서로의 집을 방문을 하곤 했던 것이다. 집에 누가 있든 말든 신경 쓰지도 않았고 말이다.
‘방이 한두 개 있어야 왔다 갔다 지나다니다가 발견하지.’
이치세의 작업실은 넓은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곳이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방이 몇 개씩이나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 들어가서 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치세는 남이훤을 보며 아차 싶었는지 잔뜩 커진 눈으로 나를 한 번, 그리고 남이훤을 한 번 보더니 서둘러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다.
“언제 왔어?”
하지만 배우계에 입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온갖 상을 쓸어담았던 배우 앞에서 래퍼가 연기를 잘해 봤자 얼마나 잘하겠는가. 남이훤은 필사적으로 상황을 수습하려 드는 이치세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픽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어제.”
나는 그 짧은 대답을 듣자마자 X 됐다는 것을 감지했다.
저건 일부러 말 돌리는 줄 알면서도 그냥 모르는 척 받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프리즘’ 이치세에게나 통하는 이야기였지, ‘한승범’에게도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치세는 제치고 옆에 있는 모르는 놈부터 조지겠다는 건가.’
남이훤은 프리즘 멤버들 중에서도 특히나 멤버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놈이었기 때문에 예상이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치세 또한 감지했는지 이치세 특유의 경쾌한 미소에 흐릿하게 안타까운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이고, 우리 승범이 어떡하지’ 같은,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이 놈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게 뻔했다.
“진짜? 온 줄도 몰랐는데.”
“형 작업실이 촬영장에서 가깝거든. 아침까지 촬영하고 와서 내내 잤어.”
“…그렇구나.”
동생들을 풀어놓고만 키웠지 통제하는 재주는 그다지 없었던 이치세가 무력하게 퇴장해 버리고, 바로 나를 향해 다가온 남이훤이 길쭉한 몸을 구부정하게 굽힌 채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그리고 코앞까지 제 얼굴을 들이민 채 살벌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그래서, 뭐야?”
긴장감이 가득한 정적이 흐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쾌함을 숨기지 않은 채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내게 물었다.
“야, 내가 무슨 소리 하는 거냐고 물었잖아. 안 들려?”
소개하겠다.
우리 프리즘 멤버들 중에서 가장 말 안 듣는, 간사함과 공격성을 무려 동시에 한계까지 찍어 버리신 낭랑 31세 남이훤 씨다.
‘XX, 사랑하는 프리즘 놈들아, 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