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상관하지 않을 테니 마음대로 해라. 그런 말을 내뱉었을 때까지만 해도 남이훤은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내가 이번 작업은 끝내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헛웃음을 뱉으며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래, 곡이 목적이었어? 진작 말하지. 치세 형이 히트곡 줄줄 뽑아내니까 그게 좀 욕심이 났나?”
“…….”
“치세 형이 아무리 사람이 좋다고 해도 그렇지 이거 완전히 호구로 보고 있네. 아, 그러고 보니 유제이가 요즘 정신 놓고 뒤꽁무니 쫓아다닌다던 후배가 너였던가. 어떻게 우리 그룹 안에서도 제일 만만한 두 사람을 콕 찝어서 이렇게 깜찍하게 구나 몰라.”
이치세와 제이가 만만하다니, 제법 흥미로운 소리였다.
이치세가 아무리 우리 그룹 내에서는 가장 유하고 친화적인 성격을 가진 편이라고는 하나 저놈도 어차피 뿌리는 프리즘이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다면 위에서 찍어 누르는 게 프리즘 멤버들의 본성인데, 그중 일원인 이치세가 만만할 리가 없지 않은가.
‘콩깍지 한번 요란하네.’
제이는… 그냥 막내라 뭘 해도 형들 눈에는 다 만만하게 보이는 법이었다. 설령 밖에서 누구 하나 묻어 버리고 돌아오더라도 말이다. 학생 때부터 이미 180cm를 훌쩍 넘긴 놈이 혹시라도 등하굣길에 삥 뜯길까 봐 마중 나갔을 정도면 말 다 했다고 봐야겠지.
‘그건 제이도 잘못이 있긴 하지. 형들이 데려다주니까 좋다고 일부러 무서운 척이나 해서는…….’
그 여우 새끼 끼 부리는 거 다 알면서도 그냥 속아 줬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 제3자의 입장에 있으니 새삼 다들 정상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곡이 필요한 거면 다른 유명한 작곡가 소개해 줄 테니까 우리 멤버들 건들지 말고 지금 당장 나가. 나는 우리 멤버들 이용당하는 꼴 절대 못 보겠으니까.”
“다른 작곡가요?”
“그래, 난다 긴다 하는 작곡가 노래 받게 해 준다고. 그거면 만족해?”
남이훤은 내가 자신의 말에 솔깃해진 거라고 착각을 했는지 입꼬리 한쪽을 이죽 끌어 올리며 말했다. 나는 그에 고민하지도 않은 채 바로 거절의 말을 뱉었다.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 네가 원하는 거 준다고. 그러니까 지금 당장 꺼지라고.”
항상 나른하게 풀려 있던 녀석의 눈썹 한쪽이 신경질적으로 구겨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
언제나 내 옆에 붙어 알랑거리기만 했던 남이훤의 공격적인 모습에 속으로 감탄사를 뱉은 나는 녀석이 더 신경질을 내기 전에 느긋하게 말했다.
“굳이 다른 작곡가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히트곡쯤이야 스스로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까요.”
“…….”
무미건조하게 뱉은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렸다.
그리고 이치세가 가장 먼저 저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화를 내고 있었지만, 결국 오해로 비롯된 이 상황이 우스워져 노기를 잠재운 것이다.
남이훤은 내 말을 듣고도 그저 얘 제정신이냐는 듯 이치세를 한번 돌아볼 뿐이었다.
내가 노래를 직접 쓴다는 사실을 아는 놈과 모르는 놈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노래를 다른 사람한테 받긴 뭘 받아. 내가 저작권료로 1년에 얼마를 벌었는데, 이 자식아.’
“죄다 말아먹어서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저는 제가 쓴 노래로만 활동할 겁니다. 그러니 제가 곡 하나 받아 가려고 수작질하려는 거라는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그 말이 혀끝을 떠난 순간, ‘아, 실수했다.’ 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 싹다 말아먹는 한이 있어도 나는 내가 쓴 노래로만 활동해. 이건 내 자존심이야. 그거 굽힐 바에야 그냥 뒤지고 말지. 알아들었어?
언젠가 멤버들 앞에서 강혁우와 그렇게 언쟁을 벌였던 적이 있었는데, 그만 항상 입버릇처럼 뱉던 말을 하필 프리즘 멤버들 앞에서 해 버렸다. 가슴께가 약간 서늘해지는 느낌에 고개를 들자 두 놈들이 멍하니 내 얼굴을 내려다보는 게 보였다.
“…….”
“…….”
‘…이 정도는 괜찮아. 괜찮을 거다.’
셀프 프로듀싱 하는 사람들은 모두 본인이 쓴 곡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다. 래퍼들도 스스로 가사를 써야 한다는 무언의 규칙이 있지 않은가. 이건 딱 그 정도의 평범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자기자신을 위안한 나는 서둘러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입을 놀렸다.
“저는 곡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드리기 위해 온 거고, 그저 선약을 지키려는 것뿐입니다. 데뷔 전부터 이치세 선배님과 함께 작업을 하기로 약속했거든요. 그렇게 믿음이 안 가신다면 제 이름은 올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진짜 닮았네.”
그리고 이치세가 넋을 잃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아, 이것도 말하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운한테 곡을 그냥 줬던 걸 이치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녀석이 서유태와 한승범 사이에 유사성을 느낄 수 있을 만한 건수를 또 줘 버렸다.
‘…그냥 이놈의 프리즘 자식들이랑 마주치질 말아야지.’
왜… 이놈들은 자꾸 내가 한 말이나 버릇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제발 도유다처럼 살아라, 이 망할 프리즘, 최적현, 이화영아. 단순하질 않으니 그렇게 인생이 힘든 거다.
“…거짓말하지 마.”
정말 다행히도 두 번째 말에는 큰 이상을 느끼지 못한 남이훤이 불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끝끝내 나를 믿지 못하는 남이훤을 향해 이치세가 해명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붙잡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를 위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승범아.”
“괜찮습니다. 어차피 오래 작업할 것도 아니니까요.”
– 천하의 이치세가 남의 도움을 받아?
아까 남이훤의 태도를 보면 대충 감이 왔다.
이치세는 아직 프리즘 멤버들에게 본인의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남이훤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혼자 잘만 작업하던 이치세가 갑자기 내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하니 그냥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겠지.’
멤버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건지, 아니면 본인의 이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불편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나라는 변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멤버들의 앞에서 철저히 입을 닫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그걸 나 때문에 억지로 말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작업하는 데 뭐 얼마나 걸리겠냐. 그 정도 버티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다른 인간이 시비를 걸면 이미 처음부터 성질이 폭발하여 다 엎어 버렸겠지만, 프리즘 멤버라면 참을 수 있을 터였다.
“이렇게까지 말씀드려도 오해가 풀리지 않는다면 그냥 계속 그대로 계셔도 괜찮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선배님께서 저를 의심하시든, 불쾌해하시든 저는 상관없으니까요. 욕 좀 먹는다고 해서 작업에는 지장이 생기지 않으니 최대한 빨리 끝내고 나가겠습니다.”
“너…….”
나는 ‘네가 무슨 감정을 쏟아 내든 그냥 받아 주겠다’는 의도로 말했는데, 어쩐지 남이훤은 ‘네가 해 봤자 뭘 얼마나 할 수 있겠냐’는 식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놈은 나를 찍어 누를 듯 노려보더니 내 뒤통수를 움켜쥐었다가 고개가 약간 돌아갈 정도로 거칠게 놓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긁으며 말했다.
“어디 한번 버틸 수 있으면 버텨 봐.”
“…….”
“나도 궁금하네, 네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 * *
그 이후로 나는 이치세의 작업실에 거의 머무르다시피 하며 이치세의 솔로 앨범의 타이틀곡 작업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치세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긴 했으나 나는 그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남이훤은 정말 내게 했던 말을 지킬 생각인지 촬영이 끝날 때마다 이치세의 작업실로 찾아오게 되었다. 아마 아직도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내가 이치세나 다른 프리즘 멤버들을 이용하기 위해 프리즘과 RH 엔터테인먼트 사이의 관계를 빌미로 들러붙은 놈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녀석은 나와 이치세가 작업을 하는 동안 항상 잔뜩 경계하는 짐승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몸을 웅크린 채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치세가 자리를 비우면 그제야 내게 다가왔다.
갑자기 핸드폰을 뺏어 가서 대화 내역을 뒤지는 날도 있었고, 어떨 때는 완전히 투명 인간 취급을 하기도 했으며, 또 살벌하게 나를 위협하거나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나는 녀석이 그렇게 내게 난폭하게 행동할 때마다 별 반응 없이 그냥 넘어가곤 했다.
그러자 ‘이래도 상처 안 받아?’ ‘이래도 안 나가?’ 같은 속내가 뻔히 보일 정도로 녀석이 취하는 행동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그런 일들로 상처를 받을 만한 성정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작업이 바빠 다른 것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고, 남이훤의 지금 상태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아무리 부정해도 나는 프리즘 멤버들한테 꽤 무르긴 한가 보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려보니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는 이치세가 보였다.
“…….”
밝은 회색 눈동자에 모니터의 불빛이 선명하게 들이닥쳐 하얗게 빛이 났다. 랩 메이킹 작업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계속 저 상태였다.
‘슬럼프라더니 지금은 또 문제없이 잘하고……’
이치세는 예전부터 저랬다. 저렇게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인 집중력을 발휘하여 최적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게 녀석의 스타일이었다.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상상하는 천재의 이미지에 가장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작업실에 박혀 있는 나와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이미 작업실에 오기 전부터 훅 같은 중요한 부분의 작업을 대부분 끝내 놓은 상태였던 나는 놈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중얼거린 말들을 잡아내 묵묵히 녀석의 작업을 맞춰 주었다. 이번 작업물의 주인공은 이치세이기 때문에 최대한 녀석이 자신의 기량을 모두 발휘할 수 있도록 보조해줄 생각이었다.
“여기 좀 더.”
“네.”
제대로 된 대화가 오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부터 함께 굴러가도록 만들어진 톱니바퀴처럼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이질감이나 어색함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꼭 예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 작업을 이어가던 중, 어느샌가 작업실에 돌아와 가만히 우리를 지켜보던 남이훤이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거칠게 욕설을 뱉으며 신경질적인 걸음걸이로 작업실을 나서려 했다.
“…XX, 진짜 못 봐주겠네.”
그러자 마침 작업하고 있던 부분이 끝나 자연스레 집중이 끊긴 이치세가 녀석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어디 가는 거야. 너 촬영 끝내고 와서 계속 안 잤잖아. 끼니도 안 챙겼고.”
“…….”
“밖에 비도 오는데 그렇게 무리해서 가 봤자 형은 안 기뻐해.”
“…….”
“네가 무슨 마음인지는 충분히 이해하는데 촬영 중에는 웬만하면 형 보러 가지 마, 훤아. 네 몸이 버티질 못하잖아.”
“…….”
묵묵부답이었다. 그에 이치세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남이훤이 지금 가려는 곳이 어디인지는 나도 대충 짐작이 갔으니까.
착잡한 마음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억누른 나는 걱정 어린 마음에 다시 작업실을 나서려는 남이훤의 뒤를 쫓아갔다. 그리고 손에 다급하게 봉투를 쥐어 주며 말했다.
“…식사는 챙기세요. 좀 식었지만.”
도시락이었다.
작업에 몰두해 있는 동안 방치해 조금 식긴 했지만, 아직 나름 먹을 만할 터였다.
남이훤은 내가 내민 도시락을 흘끗 내려다보더니 픽 웃음을 흘리고 내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내 멱살을 잡고 벽에 강하게 몰아붙였다.
쾅!
등이 욱씬거리는 감각에 찌푸렸던 눈을 천천히 뜨자 이치세와 언쟁을 벌였을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하게 노기가 서린 눈동자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야…… 넌 속도 없냐? 너 X 같다고 욕 퍼붓는 사람이 밥을 처먹었는지, 안 처먹었는지 그게 그렇게 신경 쓰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