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비가 오면 통증이 심해져서요.”
바닥에 뿌리를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리가 무거웠다.
코옆에 있는 태의의 상태가 이상했는데, 서둘러 멤버들의 옆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모든 사고가 날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한쪽 다리가 저리는 듯 절뚝거리며 걸어온 조인찬은 제 이름을 아는 이가 말을 걸자 경직된 채 두 다리에 동등하게 무게를 주며 멈춰섰다. 마치 아무런 문제도 없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말이다.
간호사는 그런 조인찬을 바라보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요즘 병원에 자주 오는 것 같아요. 무릎 상태가 또 악화된 거예요?”
그 질문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인찬은 상대에게 특별히 불쾌한 낌새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답을 하고 싶은 것은 또 아니었는지 그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눴을 때 아주 감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과 상반되게 녀석은 무감각한 느낌이었다.
– 우리 같이 평생 프리즘 하자!
아니, 건조하게 메마른 느낌이라고 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이전에 조인찬이 우리의 앞에서 보였던 수많은 감정이 모두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간호사는 자신의 말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조인찬을 보며 대충 상태를 짐작했는지 부드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인찬 씨처럼 부상이 너무 여러 번 반복적으로 생기고 적기에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은 환자분은 만성적으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수술도 계속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터져서 한 거였잖아요.”
‘여러 번? 끝까지 버티다가 수술을 한 거라고?’
지금의 나와 조인찬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굳이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친한 선배의 동료, 남이나 다름없는 관계라고 해야 할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나의 일방적인 감정을 내보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 정도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눈동자가 볼품없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동요하고 있었다.
저 간호사는 마치 조인찬이 수술을 하기 전부터 녀석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그렇다면 조인찬은 그전에도 무릎의 상태가 안 좋았던 것일까.
“…….”
전혀 몰랐다.
나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이 막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조인찬은 그날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지기 전까지 내 앞에서 거의 아픈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게 조금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한 건 고작 사흘 정도였던가. 그것마저도 대수롭지 않은 근육통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수술을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으니 훨씬 전부터 고생을 했을 게 분명했는데, 녀석은 그랬다.
‘…말도 안 돼.’
아무리 내가 바빴다고 하더라도 나처럼 극단적으로 예민한 사람을 하루 종일 옆에 두고 있으면서 이상을 숨기는 일이 쉬웠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는 양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해 보여, 나는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왜?’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자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 형, 허리 아프면 좀 쉬지.
춤을 추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나도 디스크나 관절염으로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게 조금 심해졌던 시기에는 간혹 무대 뒤편 구석에서 허리를 손으로 받친 채 인상을 찌푸리는 일도 종종 있었고 말이다.
조인찬 그런 나를 발견할 때마다 걱정을 늘어놓았고 당시의 미숙했던 나는 매번 심드렁한 투로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 …됐어. 하루이틀 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이런 것 가지고 나약하게 무대 빠지기 싫다. 팬들 걱정시키기도 싫고.
‘다들 이 정도는 아프니까 엄살부려서는 안 된다.’
‘고작 부상 정도로 휴식을 취하는 것은 프로답지 못하며 나약한 짓이다.’
멤버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무대에서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고집에 가득 차 그런 말을 했다. 나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우상화했던 멤버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심은 전혀 하지 않았던, 이기적인 실언이었다.
‘…설마, 내가 그런 말을 해서 조인찬은 내게 끝까지 부상을 감추려고 했던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뺨을 얻어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다.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 얼굴 가죽의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게 되니 내 낯짝이 얼마나 두터운지 드디어 체감이 되는 느낌이었다.
– 사람들 말에 휘둘리지 말고 네 연습에 집중해. 뒤처지는 게 무섭다면 그런 거나 보고 있을 시간 없잖아.
내 예상이 맞다면 그 시점부터 조인찬은 이미 다리에 문제를 겪고 있었고, 그걸 내게 숨기려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그때 그런 말을 하면 안 됐는데.’ 하고 막심한 후회가 몰려왔다.
– [스텝 꼬이는 거 ㅅㅂ ㅋㅋㅋㅋ 아니 보컬 멤들도 칼같이 맞춰서 하는데 왜 얘만 자꾸 어긋나는 느낌임? 옆에서 서유태가 정석으로 완벽하게 추니까 더 비교된다… 군무 망치는 거 솔직히 개민폐임]
– [어떻게 얘는 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 계속 퇴화하냐?]
– [┗ 신인때가 제일 잘했음 ㄹㅇ 솔직히 이제 초심 떨어져서 연습도 잘 안 하는 듯 발동작 대충 날리는 거 보면… 원래 잘했던 애인 걸 알고 있어서 더 실망임 연습 부족이라 그런 거잖아]
– [조인찬은 상체만 찍어야 해 다리 존나 못 써서]
조인찬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조롱당했던 것은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서 스텝을 밟아야 하는 안무였다. 분명 연습은 게을리하는 것은 아닌데 그 부분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실력이 늘지 않고 실수가 잦아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다.
– 스텝 처리가 어설퍼. 제대로 세게 밟고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왜 계속 힘 빼고 대충 추냐. 카메라에는 실수 더 부각되게 찍히는 거 알잖아.
그래서 나는 발동작이 조인찬의 약점이라 생각하여 계속해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종용했다. 그게 녀석을 덜 욕먹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녀석은 내가 그럴 때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지적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계속 반복적으로 연습을 할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미간을 찌푸리고 있기에 나는 녀석이 기분이 상해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다리의 통증 때문이었다면…….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손끝이 떨렸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미련하게 이미 놓쳐 버린 희망에 연연하며 후회했다.
언젠가 이화영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조인찬의 부상을 바로 감지할 수 있었다면, 도유다에게 그랬던 것처럼 멤버들이 자신의 몸을 가장 우선할 수 있게 이끌어 주었다면, 과연 조인찬은 그렇게까지 부상이 악화되었을까?
만약 조인찬이 초기에 제대로 치료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면 녀석은 지금쯤 건강한 다리로 본인이 사랑하는 춤을 얼마든치 출 수 있었을 것이다. 부상 탓에 제 실력을 완벽하게 드러내지 못해 대중들에게 조롱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몰릴 대로 몰려 내 앞에서 말실수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무릎에 저렇게 선명한 흉터를 남기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활동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작 날씨 하나로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미숙했다.
어리석었다.
내가 남긴 작은 씨앗이 끝을 모르고 자라 기어코 이 지경이 되었다. 모든 일이 연쇄되어 조인찬의 목을 조르고 있었는데 이 모든 일의 장본인인 나는 지금까지 모든 전말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인찬 씨, 또 인대가 파열되면 재수술해야 하니까 관리 꾸준히 해서 더 악화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재수술은 성공 확률이 떨어져서 최대한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게 좋다는 거 알고 있죠? 평생 안고 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계속 관리 신경 써 주세요.”
“…네, 알고 있어요.”
간호사가 재수술의 가능성을 입에 담자 조인찬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또 내가 모르고 있었던 일이었다. 나는 무작정 녀석이 잘 회복하여 내가 곁에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것 외의 다른 결과가 두려워 비열하게 외면하려 했던 것일까.
– 도유다 씨는 나이가 어려서 회복력도 좋기 때문에 지금 초조해하지 말고 꾸준히 관리를 잘해 주면 춤 계속 출 수 있을 거예요. 붓기도 빨리 빠진 편이고요. 응급처치를 잘해서 연부 조직이 더 상하지 않은 게 한몫했으니까 우리 어머님 아버님, 승범 씨 많이 칭찬해 주셔야겠어요.
– 승범아, 고마워……. 정말 고맙다.
도유다를 수술을 해 준 의사가 했던 말과 도유다의 어머니가 나를 껴안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동시에 도유다의 다리를 붙잡고 마치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완벽하게 응급 처치를 하는 나의 손이 보였다.
– 구급차 불러! 못 일어나잖아!
그리고 찢어질 듯한 이치세의 비명과 바닥에 쓰러진 조인찬의 앞에서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못했던 거울 속의 내가 보였다.
‘…나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은 프리즘 멤버들의 인생을 망가트린 경험을 바탕으로 판테이온 멤버들을 ‘실수 없이’ 온전히 보살피며 내가 겪었던 실패에 대해 위안을 찾으려는, 자기만족에 불과한가?
‘아니야, 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멤버들을 소중하게 여기니까…….’
“…….”
내가 처음으로 울타리 안에 넣은 아이들은 아직도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가라앉고 있는데 나는 혼자 극복할 생각인가?
–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면 나를 원망해도 좋아. 그러라고 리더가 있는 거 아니겠냐.
‘원망해도 된다’가 아니었다. 나는 원망받는 게 당연한 놈이었다. 나는 언제나 최악의 리더였다. 자신을 혹사시키는 짓 따위를 옳은 것이라 생각하게 만들고, 압박하여 기어코 부상을 입게 만든 주제에. 주제에 그런 말을 했다.
“…우욱.”
그것을 인정하자 나 자신을 향한 혐오감에 위가 벌컥 뒤집히며 구역감이 몰려왔다.
이 반응조차 정말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생리적인 반응으로 신음을 흘리자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던 조인찬이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잠시 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조용히 다리를 움직였다.
“…….”
조인찬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인식하자마자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분명 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일 터였다. 저놈은 나와 다르게 다정한 놈이라 누군가의 상태가 안 좋아지면 꼭 몸을 부축해 주며 괜찮냐는 물음을 건네곤 했으니까.
조인찬과 나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아질 때마다 입을 틀어막은 손바닥의 혈관이 더욱 빠르게 펄떡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한승범 님?”
태의의 당황스러운 반응은 살필 여력조차 없었다.
어디로든 숨어야 할 것 같았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내 정체를 알아볼 수 없을 거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냥 지금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죄책감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무언가에 짓눌려 죽어 버릴 것 같은 막연한 공포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발은 떨어지질 않아 미칠 것 같았다.
그에 이를 악물고 있을 즈음, 머릿속에 계속해서 똑같은 말이 반복되었다.
‘도망치지 마.’
내 목소리였다.
– 어딜 가겠다는 건데. 내내 입 다물고 있더니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고!
‘도망치지 마.’
– 나 다리 아파. 그런데도 두고 갈 거야?
‘도망치지 마.’
– [아무래도 속여서 데리고 간 모양이야.]
– [서유태와 대화를 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도망치지 마!’
그러는 사이 어느샌가 조인찬은 긴 복도를 걸어와 나와 태의가 있는 곳에서 고작 4m도 되지 않는 거리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나는 방금까지 스스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뻔히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태의의 팔을 붙잡고 허덕거리며 비겁하게 말했다.
“나 좀, 나 좀 숨겨…….”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