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나 좀, 나 좀 숨겨…….”
내가 지켜야 하는 존재도 아니며, 나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는 존재인 태의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내 속마음이 새어 나간 것 같았다. 만약 프리즘이나 판테이온 멤버들의 앞이었다면, 나는 절대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을 것이다.
‘…망할.’
그리고 정말 당연하게도 태의의 얼굴에 서려 있는 당혹감과 혼란을 발견한 나는 바로 후회했다. 조인찬을 앞에 두고 머리가 복잡해져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적현도 아니고, 어쩌자고 저렇게 어린놈에게 도움을 청한 거냐, 서유태.’
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깊이 후회를 하며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그 순간, 태의가 내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그리고 허겁지겁 나를 부축해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저쪽으로, 빨리!
태의는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내가 왜 그렇게 갑자기 동요했던 건지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장 내 상태가 너무 심각해 보이니 일단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는 내 말을 우선적으로 들어야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에 나는 놀랄 새도 없이 그대로 태의의 손에 이끌려 휘청휘청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바쁘게 몸을 피하기도 잠시, 조용한 병원 복도에서 날카롭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멈춰 봐요, 승범 씨.”
“…….”
조인찬의 목소리였다.
‘…그사이에 내 얼굴을 확인한 건가.’
모르는 척할 수 없도록 아예 이름을 포함하여 나를 부르고 있었다.
선배가 이렇게나 분명하게 불러 세운 이상 ‘정신이 없어서 계신 줄 몰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점점 퇴로가 봉쇄되는 느낌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침음을 흘렸다.
“…….”
조인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어깨를 파득 떨며 그 자리에 멈춘 태의가 손끝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나는 이상할 정도로 딱딱하게 굳은 태의를 보며 이미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인정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하고 딱딱한 인사를 건네며 조인찬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표정이나 눈빛을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숙인 상태였지만, 놈은 끝까지 메마른 눈동자로 내 얼굴을 좇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도망가. 나한테 죄지은 거라도 있나.”
“…급히 갈 곳이 있어서요.”
“…….”
녀석은 내 변명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삐딱하게 돌리며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니 전혀 그 말을 믿고 있지 않은 눈치였다. 피곤한 듯 깊게 내려앉은 눈꺼풀 위를 손바닥으로 쓴 녀석은 다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오늘 사고 난 그룹 멤버죠?”
조금 시간이 걸려서야 그 질문의 의미를 이해한 나는 ‘아.’ 하고 맥없는 소리를 뱉었다.
‘도유다에 대해 물어보려고 한 거였어. …그래,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사고 소식으로 난리가 난 도유다에게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게 당연하지.’
나를 ‘사고 난 그룹 멤버’라고 일컫는 말에 지금의 나는 서유태가 아닌 한승범이며, 조인찬이 나를 알아볼 리가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실감났다. 그에 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그 친구 다리 상태는 어떻대요? 수술한다고 들었는데.”
“수술 마치고 지금은 회복 중입니다. 앞으로 경과는 나쁘지 않을 거라고 들었고요.”
목소리가 떨리고 있나?
잘 모르겠다.
내 나름대로는 최대한 평소처럼 대답하려고 했는데, 객관적인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다행히도 특별히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는지 조인찬은 힘없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다행이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어두운 얼굴에 고작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을 뿐인데 그게 왜 그렇게 그리운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이상하게 술렁거리는 마음에 기억을 더듬어 보니 녀석이 저렇게라도 웃는 모습을 실제로 본 것은 몇 년 전이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 웃음이 더 이상 기껍지 않게 되었다.
“더 상하지 않게 열심히 치료받고 충분히 잘 쉬라고 전해 줘요.”
꾹 다문 입 아래로 울대가 울렁거리는 것을 애써 억누르고 있을 즈음, 조인찬은 보호대를 착용한, 선명하게 흉터가 남아 있는 무릎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테니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해 주겠습니다.”
나는 그 손짓을 따라 녀석의 무릎을 바라보지 않도록 시선을 불안정하게 바닥으로 굴렸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뱉은 후, 자연스럽게 대화를 마치기 위해 뒤로 조금씩 물러섰다.
삐리릭! 삐리릭!
그리고 그 타이밍에 조인찬의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 그에 가만히 나를 응시하고 있던 조인찬은 이만 가 보라는 듯 고갯짓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병원이야. 이미 매니저한테 이야기 들었을 거면서 왜 의심하는 건데.”
나는 조인찬의 그 지친 목소리를 뒤로한 채 아직도 넋을 놓고 있는 태의를 끌고 천천히 걸음을 뗐다. 그리고 긴 복도를 지나쳐 조인찬이 점점 멀어지는 것에 안도감을 느낄 즈음, 뒤에서 아주 작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승범 씨.”
그에 뒤를 돌아보자 전화기의 마이크 부분을 손으로 막고 아래로 내린 채 나를 응시하는 조인찬이 보였다.
“그 멤버가 혹시라도 모진 말 해도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진심이 아니라 그냥 불안하고 초조해서 제정신 아닌 상태로 하는 말일 테니까.”
“…….”
“그냥, 힘들어 보여서. 그 말 해 주고 싶어서 부른 거였어요.”
예전에 내게 그랬던 것처럼 온화한 말투였다.
나는 그것을 듣자마자 다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도망치는 것처럼 자리를 떴다.
* * *
그렇게 정신없이 휴게실까지 온 나는 의자에 걸터앉자마자 허리를 굽히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던 중, 내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태의가 내게 와 물었다.
“…조인찬 선배님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겁니까.”
나는 그 질문에 조금 망설이다가 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제게 가장 소중한 존재들 중 하나입니다. 선배님은 아마 저에 대해 아무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전혀 상관없을 만큼 아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상태가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서, 조금 놀랐습니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드려 죄송합니다.”
앞에서 이미 동요할 대로 다 동요해 놓고 이제 와서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거짓말해 봤자 그게 먹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까 태의가 나를 도우려 했던 모습을 보고 내 안의 태의를 향한 인식이 조금 변했던 것도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태의는 내 대답을 듣고, 조인찬이 나타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혈색이 모조리 빠져나간 채 고개를 떨궜다.
“태의 씨?”
그 모습을 본 나는 의아하여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놈은 그것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더듬더듬 정신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제가 도저히 말씀드리지 못했던 게 있습니다. 하지만 조인찬 선배님께서 한승범님께 그렇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안 이상, 더는 숨겨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
“한승범 님은 조인찬 선배님께서, 프리즘 선배님들께서 강혁우 이사에게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태의가 꺼낸 말에 심장이 싸늘하게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설마, 조인찬의 영상에 대해 태의가 알고 있는 건가. 그런 의문이 들어 조인찬이 끌려갔던 그 클럽의 이름을 아주 작게 말하자 녀석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태의 씨가 어떻게 아는 거죠?”
그에 날을 세우며 날카로운 투로 질문을 던지자 태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고백하기 시작했다.
“제 아버지가… 강혁우 이사의 아래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습니다. 강혁우 이사와 연관된 조폭에게 사채를 써서 당장 장기를 빼앗겨 죽거나,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설마, 그 영상이 찍힌 날 태의 씨의 아버지가 그 짓거리를 도왔다는 말은 아니겠죠.”
태의는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죄책감에 짓눌린 듯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말했다.
“…그 영상을 촬영하고 데이터를 저장한 사람이, 저희 아버지인 것 같습니다.”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 달라는 기대는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남의 인생을 구렁텅이에 밀어넣은 주제에 뻔뻔하게 행복한 삶을 살 생각도 없습니다.”
내게 죽어라 비는 태의의 모습을 보며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태의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인찬이 당했던 일을 떠올리면 분노가 들끓는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지금 아버지는 폐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빚은 다 갚았지만, 강혁우 이사가 끝까지 저희 가족을 놓아주지 않아서……. 저는 아버지의 대체품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RH 엔터테인먼트의 내부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거였어.’
하지만 부모의 잘못이 피를 따라 내려와 그것을 온전히 뒤집어써야 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직접 겪어 봤던 시기가 있지 않던가. 그게 무슨 기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책망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대신,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조금이라도 그 죄책감를 덜고 싶다면 무작정 이렇게 사과하는 것보다는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의 씨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요.”
조인찬이 태의의 아버지를 용서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아직도 멀쩡히 이 사회를 누비고 있으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우선순위를 지켜야 했다.
지금의 태의는 가족과 자신의 안위가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협력하여 RH 엔터테인먼트를 무너트리려 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곳으로 분노를 돌려서는 안 됐다.
“강혁우 이사가 협박을 위해 사용한 그 영상은 편집된 것입니다. 분명 원본이 있을 거고, 사실을 정정하든, 강혁우 이사가 그 영상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든 우리는 그걸 하루라도 빨리 빼앗아야 합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내 말을 들은 태의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저었다.
“원본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누실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막대한 빚을 대신 갚아 주고, 그 대가로 데이터가 잠긴 저장소를 훔쳐 오라고 지시한 사람이 있었거든요. 강혁우 이사는 해킹이나 도난을 염려해서 데이터는 오직 하나만, 철저한 보안 속에 보관하니 그게 사라진 이상 원본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작 말을 해 주셨어야죠! 원본을 얻을 수 없는 건 차치하더라도, 그게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건 아닐 텐데요.”
“…진작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강혁우 이사가 가지고 있는 그 편집 영상 외에 원본 영상이 또 악용될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맹세해도 좋습니다.”
“그 사람도 언젠가 마음을 돌려 강혁우처럼 악의적으로 영상을 이용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설마, 그 사람을 무작정 신뢰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내 말에 태의는 그 뜻이 아니라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나직하되 분명한 목소리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니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시커멓게 죽은 눈동자를 아래로 떨어트려 나의 시선을 외면한 채 작게 이어 말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그분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 원본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걸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기도 전, 녀석은 다시 내 정신을 모조리 무너트릴 만한 말을 뱉었다.
“서유태 선배님입니다. 그 원본을 손에 얻은 사람이요.”
…뭐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