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그 편지를 쓰는 동안의 기억은 매우 흐릿하여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작 그 몇 문장을 기억한 게 용한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내게 있어서 그 편지는 최후의 보루이자 희망, 미련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참히 짓밟힌 줄은 꿈에도 모르고 죽어 버렸다니, 이렇게 웃긴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싶었다.
‘벌이라도 받은 거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내가 프리즘 멤버들에게 무슨 마음으로 그 글을 썼는지 임승한은 알고 있을 것이다.
– 어떤 마음으로 쓴 글인지 몰랐다고는 하지 못하실 테죠. 긴 인연으로 겨우 쌓아 올린 신뢰를 저버릴 만한 대가라도 있었습니까.
‘…임승훈이 무슨 대가를 받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지. 들으면 납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단순히 궁금해서? 아니면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였던 건가? ’
나는 임승훈에게 도대체 왜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일까.
무엇을 호소하며,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임승훈이 내 마음을 안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설마, 임승훈이 죄책감을 느끼길 바라기라도 한 거냐?’
“…하하.”
나는 그날 분명 임승훈에게 분노를 토해 냈다. 나 자신을 잃을 정도로 거대한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채 이성을 거치지 않은 말들을 뱉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강혁우에게 향했던 맹목적인 분노와 완전히 달랐다. 구토를 하며 무너질 정도로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있었고, 나는 그에 필요 이상으로 동요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 이유를 단순히 배신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때의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꽁꽁 무장하고 있던 이성이 거대한 분노로 흔들리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틈 사이에서 결코 느껴서는 안 되는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정말 모순적이게도 두렵고 협오스러웠다.
임승훈이 아닌 나 자신이.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이를 공격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했고 할 생각도 없었던 그 행위 자체가 역겨워 토악질이 나왔다. 급소를 마구잡이로 두들겨 맞는 것 같은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그런데도 감히 임승훈을 공격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모르는 척하려 했다.
‘내가 임승훈을 믿지만 않았어도 프리즘 멤버들은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지지 않았을 텐데, 감히?’
왜 그렇게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주어서.
왜 그렇게 내 모든 것을 다하여 그를 아껴서.
어떻게든 임승훈을 믿은 이유를 떠올려 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믿었다. 지금의 내가 제이나 최적현을 대하는 것과 똑같이.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 대상, 프리즘 축하합니다. 아이돌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 나, 너희가 너무 자랑스럽다! 정말 수고 많았어!
– 다 형이 뒤에서 도와준 덕분이야.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많았고 함께 걸어온 길이 너무 길었다.
등신 같고, 아둔하고, 한심한 이야기지만, 나는 임승훈이 프리즘 멤버들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나는 임승훈을 용서했을지도 모르겠다. 놈이 내게서 돈을 아무리 많이 받아 가려 해도, 뒤에서 나를 함정에 빠트리는 짓을 했어도 눈을 감았을 수도 있다.
내 울타리에 들어온 존재라면 멤버들이나 최적현에게 대했던 것과 똑같이 대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처음부터 인간에게 차등을 두어 취급하는 놈이었잖아.’
임승훈은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다. 정말 아끼는 이들을 해친 지금에 와서는 더더욱. 그런데 그걸 부정하며 녀석을 끝까지 용인한 끝에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 잔가지를 쳐 내는 일을 두려워하여 결국 나무 전체를 썩히는 꼴이었다.
내 품 안에 있는 놈들이 피를 흘리고 나서야 나를 찌르던 날붙이의 예리함을 눈치채다니, 이렇게 멍청할 수가 없었다.
감히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존재들을 품에 가득 안고 있는 주제에 더 욕심을 부려 아버지를 끝까지 붙잡으려 했기 때문에 프리즘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임승훈을 용인했기 때문에 프리즘을 망가트렸다.
그것을 자각하자 내 안의 무언가가 낙엽처럼 바스라지며 무너진 것 같았다.
“…….”
그 녀석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울타리에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가시덤불을 두르겠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하고, 그 안의 평온을 위협하는 이들은 모두 찔러 죽일 수 있도록.
‘좀 더 빨리 이렇게 다짐해야 했는데.’
속으로 그렇게 후회한 나는 태의를 향해 가라앉은 투로 입을 열었다.
“그 원본 영상, 아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든 찾아 이 눈에 똑똑히 담을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걸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강혁우도 찾지 못한 걸 어떻게!”
“이미 대강 짐작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저는 서유태 선배님과 일종의 연결된 부분이 있거든요.”
조인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조리 확인할 것이다.
생전의 내가 그것을 보며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다.
한승범나 최적현이 내게 그걸 숨기고 싶어 해도 상관없었다.
그것은 나의 죄였다. 프리즘 멤버들을 위험에 빠트린 나의 죄를 직면하겠다.
“하지만 제가 그 영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조인찬 선배님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면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포기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그 원본은 내 판단하에 영원히 수면 아래에 가라앉을 것이다.
프리즘 멤버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면 무엇이든 그렇게 만들 것이다.
“아니요. 영상이 없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태의 씨, 아버지가 겁을 먹고 숨어 버렸다고 하셨죠.”
하지만 그게, 내가 입 처닫고 강혁우가 조인찬을 이용하게 둘 거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네요.”
“…예?”
태의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면 이해는 했지만, 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는 현실을 믿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죄송하지만, 태의 씨의 아버지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거부하시더라도 상관하지 않을 거고요.”
원본을 이용할 수 없다면 목격자를 이용할 것이다. 그러니 겁쟁이처럼 숨어든 네 아버지를 내놓아라. 네 아버지가 정신 질환이 있든, 강혁우에게 앞으로 무슨 위협을 당하든 그것은 지금 내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나는 네게 죄를 전가할 생각이 없는 것일 뿐이지, 딱히 네 아버지가 저지른 일을 용서한 것은 아니다. 내가 태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이 정도였다.
“주변에서 다들 말리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살지 말라고, 아버지의 잘못을 다 떠안고 살지 말라고. 압니다. 저도 태의 씨처럼 미련하게 행동해 본 경험이 있으니까요. 아버지가 저지른 일을 떠안으면서 내 소중한 사람들을 상처 입혔죠. 그리고 저는 지금, 그걸 무엇보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
“빚도 갚아 보고 순종도 해 보고 다 해 봤으니 알 것 아닙니까. 결국 강혁우를 망가트리지 않으면 태의 씨에게 영원히 자유는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설마 아버지를 위해 그걸 포기하는 건 아니겠죠.”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본 태의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녀석은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핏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에게 동일한 죄가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정말 안타깝게도 말이다.
하지만 태의는 나머지 가족들과 그 죄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어머니는요? 동생은?”
국어책을 읽듯 나머지 가족을 언급하자 태의의 몸이 덜컥 멈췄다. 나는 그에 반응하지 않고 이어 말했다.
“…태의 씨, 지킬 수 있는 사람의 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당신을 상처 입히는 사람을 위해 더 소중한 것들을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나는 태의를 상처 입히고 있었다. 녀석이 지금껏 지키기 위해 발버둥 쳤던 아버지를 사지로 내몰도록 종용하고 있었고, 그것은 가족의 유대를 망치고 나머지 가족과 아버지를 저울 위에 올려 두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의에게 그 선택을 강요했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태의 씨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위해 나를 방해하는 건 용서 못 해요. …원망하려면 원망하세요. 제 목적은 프리즘 선배님들을 지키는 것뿐이니 태의 씨가 절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거기에 방해가 되는 이들은 모조리 해치울 겁니다. 강혁우든, 임승훈이든, 그 외의 다른 누구든.”
* * *
태의를 돌려보낸 후, 나는 도유다가 입원해 있는 병실의 앞에 서 있었다.
그러자 타고난 음성 자체는 고상하지만, 까칠하고 예민한 성정이 중간중간 드러나는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서…….”
“이화영.”
방금 서유태라고 부를 뻔한 것 같았다. 한참 연상인 사람을 이름으로 찍찍 부르는 버릇은 도대체 어디에서 배웠는지…….
그런 생각을 하자 ‘최적현.’ 하고 연상의 이를 부르는 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그리고 ‘아, 나한테 배웠구나.’ 하고 뒤늦게 자각했다.
‘외국인이라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사람들한테 대차게 욕먹었을 수도 있겠어.’
덤덤하게 실없는 생각을 이어 가던 중, 이화영이 내 이름을 부르는 대신 내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뭐가? 아무 일도 없었는데.”
나는 그 질문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아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용암의 표면을 손끝으로 훑듯 기억을 더듬었다.
–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 임승훈과 다시 접촉하고 압박할 겁니다. 공동의 적이 생기면 지금 당장 프리즘 선배님들을 건드리지는 않을 테니까요. 외부에서 공격이 가해지면 내부의 결속력을 다져야 할 겁니다.
태의는 내 제안을 수락했다.
아니, 내 협박질에 결국 굴복했다.
‘태의는 내가 협박해서 자기 아버지를 배신한 거야.’
나는 태의가 나를 매우 원망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를 원망한다기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것 같았다. 그놈도 참 사람이 너무 좋아서 문제지.
– 조인찬 선배님의 스캔들을 이용하든, 뭘 이용하든 상관없습니다. 프리즘과 강혁우는 목숨줄이 이어져 있지만, 저는 아니지 않습니까.
– 프리즘 선배님들과 표면적으로는 적으로 돌아서겠다는 것 아닙니까. 한승범 님은 정말 그렇게 돼도 괜찮은 겁니까!
– 그러고 보니 임승훈에게는 제가 서유태 선배님의 협력자인 거로 되어 있군요. 그럼 말이 안 맞는데…….아니면 오히려 말이 안 맞는 게 우리에겐 더 이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놈들에게 혼란을 야기하는 거니까요.
– 지금 그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 괜찮은 거야?”
‘도유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너무 정신없이 돌아다녔나 보군.’
그리고 이화영이 내게 그런 질문을 건넨 이유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깨달았다.
또 괜한 걱정을 하는구나.
이놈은 어렸을 때부터 걱정이 참 많았는데 나이를 먹어서도 정말 여전했다.
“그럼, 괜찮지.”
옅게 주름이 진 미간 사이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너무 괜찮아서 오히려 정말 이상할 정도다.”
…아, 왠지 내 대답을 듣고 이화영의 낯빛이 더욱 안 좋아졌다.
얼른 들어가서 쉬게 해야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