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나는 통화를 마무리한 후, 원본 영상을 받아오기 위해 바로 최적현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택시가 이동하는 동안 녀석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 [유태야, 그래도 앞으로는 어떤 사정이 있어도 내 앞에서 거짓말하지는 마, 싫거든.]
“…….”
부드럽되, 단호한 부정이었다.
마치 ‘나는 네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못을 박는 것만 같았다.
최적현은 내 거짓에 반박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그저 장단을 맞춰 준 후, ‘앞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마라’는 말을 덧붙일 뿐이었다.
‘원래 이상할 정도로 화를 잘 안 내는 놈이니까. 저번이 오히려 이상했던 거지.’
그리고 그 뒤에 얼핏 흘린 말은 내가 너무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내 거짓의 덜미가 잡힌 이유는 그것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진짜 기억을 떠올렸다면 이렇게 아무 문제 없이 통화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의미겠지. 그 정도로 영상의 내용이 충격적이라는 건가?’
영상의 내용을 알고 있는 이가 저런 반응을 보이니 자연스레 원본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생전의 내가 그것을 사용하지도 못한 채 꽁꽁 숨겨 뒀던 것으로 보아 그 정도는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저런 반응을 보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최적현은 다소 흐트러졌던 어투를 한순간에 되돌린 후, 다시 평소의 녀석으로 돌아와 통화를 이어 갔다.
– [지금 시간 괜찮지? 가지러 와.]
–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잖아. 네가 직접 오는 게 내 첫 번째 조건이야.]
‘그렇게까지 선뜻 돌려주다니…….’
나는 최적현의 제안에 순순히 알았다는 대답을 하면서도 또다시 느껴지는 위화감을 억눌렀다.
지금까지 나를 과하게 싸고 돌았던 최적현이 이렇게 순순히 원본을 넘겨주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이것으로 또 말씨름을 하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잔뜩 날을 세우고 있었는데 허탈할 정도였다.
‘내가 원본을 보고 충격이라도 받을까 봐 걱정하는 것 아니었나?’
‘나한테는 그 영상이 없다’, ‘네가 잘못 짚은 것 같다.’라고 거짓말을 해 버리면 나는 다음 후보자에게 접촉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최후의 최후에는 녀석이 모르는 척하든 말든 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하여 원본을 빼돌렸겠지만.
‘나는 이미 기억이 돌아왔기 때문에 네가 숨기려 해도 의미가 없다’. 그 말이 허풍인 것을 눈치챘으니 굳이 내 말에 따를 필요는 없을 텐데, 너무 선뜻 내 요청에 응하는 게 조금 이상했다.
‘기억만 멀쩡했다면 이렇게 복잡하게 눈치 싸움 할 필요는 없었을걸…….’
한승범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무슨 기준으로 내 기억을 지운 걸까.
단순히 내가 힘들어했던 기억이라면 모두 지워 버린 건가? 한승범은 아직 어렸으니 그것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도대체 뭘 위해서?’
최적현도, 한승범도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왜 이렇게까지 해서 나를 보호하려 드는 것인지조차 납득할 수가 없었다.
다소 어색한 듯한, 껄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 같기도 했고.
끼이익.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택시가 멈췄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급히 최적현의 집으로 향했다.
어영부영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 병원이야. 이미 매니저한테 이야기 들었을 거면서 왜 의심하는 건데.
조인찬이 병원에서 통화를 했던 그 상대는 아마 임승훈일 것이다. 매니저에게 보고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위치면서 조인찬이 말을 놓을 수 있을 정도의 관계에 있는 인물은 임승훈 외에는 찾기 어려울 테니까.
그리고 그것은 즉, 조인찬이 아직도 임승훈이나 강혁우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병원에 가는 것조차 그렇게 감시를 받을 정도로 통제당하고 있는 게 뻔한데, 그걸 알면서도 느긋하게 굴 수는 없었다.
삑삑삑삑삑!
초인종을 누르지도 않은 채 바로 도어 록을 누르고 쳐들어가자 완벽하게 정장 차림을 갖추고 있는 최적현이 긴 복도를 걸어오는 게 보였다.
‘일하다가 온 거군.’
최적현은 내게 바로 서둘러 건네주기 위해 일을 하던 중간에 나와 다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녀석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는 활동기가 끝났기 때문에 비교적 시간에 자유로웠고, 때문에 내가 녀석이 편한 시간에 맞춰도 무방했는데 말이다. 내 상황을 배려해 준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야 편하긴 하겠다만, 그럴 인간은 절대 아니었다.
“왔어?”
나는 내게 인사를 건네는 최적현을 향해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바로 본론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갑자기 턱끝을 들어 올리는 녀석의 행동에 바로 막혀 버렸다.
“왜.”
녀석을 향해 그렇게 물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최적현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미묘하게 창백한 느낌이 드는 얼굴로 나를 내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나를 위에서 아래로 나를 쭉 훑어봤다. 꼭 속을 파헤치기라도 하려는 것 같은 눈동자에 나는 바로 인상을 찡그리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뱉었다.
“뭐 하냐?”
“그냥.”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내 반응에 녀석은 곧바로 안심하기라도 한 건지 바로 옅게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전화를 하면서 말했던 그 ‘너무 멀쩡해.’인가 뭔가를 꼭 제 눈으로 확인을 하셔야 직성이 풀리셨던 것 같다.
최적현이 이렇게 또라이짓을 하는 것은 내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미간 사이의 주름을 풀고 녀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원본 영상을 달라는 뜻이었다.
“…….”
그러자 그는 순진한 낯을 꾸미며 눈을 깜빡거리더니 속눈썹이 겹쳐질 정도로 퍽 어여쁘게 눈웃음 지으며 내 손 위에 제 손을 포갰다. 그리고 나를 거실 쪽으로 데리고 가려 했다.
“이런…….”
그에 나는 본능적으로 튀어나올 뻔한 욕설을 겨우 삼키고 녀석의 손을 꾹 눌러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아, 한승범의 고운 미간에 다시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왜 또 이렇게 갑자기 멀쩡해진 거냐.’
“염병 떨지 말고. 원본 달라고.”
천연덕스레 시치미를 떼고 있는 모습에 대놓고 말하자 녀석은 내 어깨를 꽉 힘을 주어 억누르며 대꾸했다.
“응, 줄게. 약속했잖아. 재생 준비 다 해 뒀어.”
“…지금 장난할 기분 아니야. 돌아가서 혼자 확인할 거니까 파일만 줘.”
그러자 최적현은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나긋하게 말했다.
“나도 장난하자는 거 아니야.”
“…그러면 뭐 하자는 건데.”
“두 번째 조건이야. 보려면 여기에서 봐.”
‘그 영상을 보고 내가 뒤집어지기라도 할까 봐 이러는 건가?’
최적현은 아마 그 원본 영상을 이미 봤을 것이다. 그것을 고려했을 때 녀석이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내가 크게 충격을 받거나 낙담할까 걱정이 되어 저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나.’
나는 물러설 생각이 아예 없는 것 같은 최적현과 거대한 TV에 연결되어 있는 USB를 번갈아 보다가 잠시 고민했다.
‘그냥 지금 들고 튈까.’
나는 다른 사람의 앞에서 조인찬의 영상을 볼 생각이 없었다. 표정 관리를 할 자신도 없었으며 이미 영상의 내용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아끼는 놈이 고역을 치르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 주는 것 자체가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주변에 경호원도 없었고, 최적현 하나라면 힘으로 누를 수 있을 터였다. 제아무리 일반인보다 키가 크고 운동 좀 했더라도 나보다는…….
‘아.’
망할, 이제는 나보다 컸지.
고작 182cm가 나보다 크다니. 진심인가?
‘하, XX…….’
전생이었다면 그냥 힘으로 가지고 가면 되겠지만, 지금은 입장이 반대였다. 깡마른 한승범의 팔을 한번 내려다본 나는 깊게 한숨을 쉬고 최적현이 앉아 있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보고 파일은 가져갈 거다. 약속 지켜.”
“그럼, 당연하지, 유태야.”
가뜩이나 그 영상을 볼 생각에 한계까지 예민해졌는데 저놈과 말씨름할 기운도, 시간도 없었다. 기억에 문제가 생겼을 때와는 다른, 그냥 스트레스로 인한 평범한 두통이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었다.
‘빨리 확인하고 돌아가자.’
그런 생각을 하며 재생 버튼을 누르러던 찰나, 나를 빤히 바라보던 최적현이 내게 물었다.
“와인 마실래? 좋은 게 들어왔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투로 건네진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을 뻣뻣하게 굳히며 최적현을 멍하니 바라봤다.
“…뭐?”
하지만 그는 내 반응을 보더니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살짝 기울일 뿐이었다. 내 표정을 보고 본인이 무언가 실수를 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놈은 잠시 고민하더니 사과의 말을 내놓았다.
“미안해. 너 술 안 마시는 거 알면서 또 장난쳐서 짜증난 거야?”
“…….”
나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내가 지금까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는 내가 지금 술이나 마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종종 이런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최적현에게서 비정상성을 느낄 때는 그리 거창하고 극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장례식에서 유족을 위로해야 하는 상황처럼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이미 여러 번 ‘학습’되어 있지 않은, 이런 극히 일상적인, 순간에 티가 났다.
‘최적현이 내가 이 영상 때문에 충격을 받을까 봐 걱정한다고?’
녀석을 정상적인 사람의 줏대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최적현은 조인찬이 찍힌 영상을 보고도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전혀 모를 것이다. 따라서 그에 대해 크게 걱정하고 있지도 않을 터였다.
“…미안해, 그럴 기분이 아니었구나?”
“…….”
왜냐하면 이 영상의 무엇이, 얼마나 끔찍한지 본인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녀석에게는 이 영상이 다른 짓을 하면서 적당히 볼 수 있는, 그 정도의 영상이었던 것이다.
‘슬플 것이다’, ‘화가 날 것이다’ 그 정도의 짐작이야 노력하겠지. 녀석은 내 기분을 살피려 했으니까. 하지만 사전 속에 서술된 뜻을 암기하는 정도의 얄팍한 이해를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녀석이 내가 조인찬의 영상을 보고 심리적으로 얼마나 동요할지 예측하고, 걱정할 수 있을까? 아니, 차라리 내가 스토커에게 쫓기거나 눈앞에서 구토를 하고 실신하는 게 녀석에게는 더 큰 문제로 느껴졌을 것이다.
– 형, 아버지가 없어지면 좀 더 편할 것 같지 않아?
한두 번 겪어 보는 일도 아니었으니 동요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반대로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최적현은 도대체 뭘 확인하려고 지금 나를 이곳에 묶어 둔 거지?’
* * *
그 뒤로 나는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찾았던 원본 영상을 보게 되었다.
“…….”
그 원본은 증거로써의 가치가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정 안에서 한정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영상을 재생하자마자 생전의 내가 왜 그걸 끝까지 숨겼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만약 이 영상이 세상에 공개되면 조인찬은 연예인으로서의 삶은커녕 아예 일반적인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해졌을 테니까.
조인찬이 잘못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조인찬은 임승훈이 억지로 마시게 한 술에 취해 팔다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고, 그 와중에도 조인찬은…….
– 유태 형을 만나게 해 주는 거 아니었냐고!
– 이게 무슨 짓이야! 놔!
최후의 최후까지 저항했다.
그게 진실이었다.
– 무서워.
– 도와줘, 형…….
나는 조용히 그 영상을 몇 번이고 눈에 담았다.
피가 나올 정도로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내게 눈물을 흘릴 자격은 없었다.
– …내가 그렇게 말해서, 이제는 내가 싫어진 거야?
– 잘못했어. 제발 돌아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나를 찾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