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2)
22화
“니콜라스 형, 불만 있어요?”
평소의 귀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야마다 하야토를 상대했을 때처럼 살벌한 기색이 감돌았다.
모두의 시선이 주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단비는 끄떡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아니?”
그런 아이를 내려다보며 흥미롭다는 듯 웃은 이화영이 고개를 까딱 기울이며 말했다.
이상하긴 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기분이 뭣같을 이화영이 멀쩡했다.
오히려 본인이 1등이었을 때보다 기분이 나아 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래요?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단비는 애초에 이화영이 무어라 대답하든 별 관심이 없었는지 몸을 휙 돌려 나에게 원망의 말들을 쏟아 내던 연습생들을 돌아봤다.
“지금 가장 아쉬운 사람이 불만 없다는데 말들이 많으세요, 아주. 누가 보면 구독자들한테 한승범에게 투표하라고 칼 들고 협박한 줄 알겠어.”
“…….”
“좋은 무대를 보여 준 사람이 좋은 결과를 얻는다. 이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어찌 되었든 구독자들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연습생들에게 자유롭게 투표했다. 대형 기획사든 뭐든 특별한 압력은 아무것도 가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오히려 현장 평가단의 방식이 문제가 있었다면 있었지, 구독자 평가는 발표 방식과 순서 외에는 꽤나 타당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할 말 있으면 앞으로 나와서 당당하게 말합시다. 누가 잘못했든 뒤에서 욕하는 건 비겁해요.”
“…….”
할 말을 잃은 연습생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자 이단비는 다시 발랄하게 내 곁으로 뛰어왔다.
“시원하다! 형! 1등 축하해요. 저는 형이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대충 이단비의 발언으로 분위기가 정돈되자 양하준이 슬슬 진행을 하려는 듯 프롬프터를 흘긋 내려다봤다.
“음…….”
제작진의 코멘트를 확인한 양하준은 난처한 듯 머쓱하게 웃으며 목덜미를 긁적였다.
“…한승범 연습생! 다른 연습생들 반응이 조금 안 좋은데 특별히 하, 하고 싶은 말 있습니까?”
본인들이 이 상황을 만들었으면서 제작진 놈들은 아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양하준의 입을 빌리니 양심의 가책이 덜해 그런 것일지 모르겠지만.
아주 미세한 감정 표현일지라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여러 대의 카메라가 내 얼굴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모두가 조용히 나를 지켜보았다.
“아니, 어떻게 이 상황에서.”
또다시 발동되려는 이단비의 주둥이를 막았다.
“…….”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시청자들은, 제작진들은 무슨 말을 기대하고 있을까.
‘위축되거나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여 주길 원하겠지.’
그들이 원하는 장면은 대충 짐작이 갔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쌓아 갈 이미지는 다르다.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 아이돌들은 어째서 본업으로 대성하기 어려운가.
그것은 연습생 시절이 모조리 노출되는 프로그램 자체가 아티스트의 약점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카메라 마사지를 받기 전의 생김새가 어떤지, 어떤 인격적 결함이 있는지.
좀처럼 볼 수 없는 연예인의 적나라한 모습이야말로 프로그램의 성장 비결이지만, 아이돌 활동에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독이었다.
사람들은 눈부신 성장보다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를, 자수성가보다는 타고난 부유층을 선망하니까.
하여 나는 결코 카메라 앞에서 사과하지 않는다. 위축된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한승범 연습생?”
양하준의 재촉에 마이크를 잡아 입가 곁에 두었다.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그리고 짧게 대답한 후 더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바로 마이크를 제작진에게 돌려주었다.
나는 유능하고 바쁜 사람이기에 파리 새끼들 소리에 신경 쓸 시간 따윈 없다. 이런 뉘앙스가 가감 없이 느껴지도록.
“어우, 멋있는데요?”
내 대답에 눈꼬리를 휘며 웃은 양하준이 대본에 없는 멘트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그래야 한승범이지.”
우강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하다… 얼굴만 잘생겨라! 멘탈도 잘생기지 말고!”
“부럽다!”
어느 정도 나와 우호적인 관계이고, 플러스 구독자 표로 순위가 내려가지 않은 연습생들이 한두 마디 거들었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을 충분히 뽑아냈다고 생각했는지 양하준에게 계속 진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고개를 끄덕인 양하준이 예정되어 있던 멘트를 읽으며 인사했다.
“그럼, 이제 1차 경연 발표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연습생 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많다면 많고, 수월했다면 수월한 1차 경연이 마무리되었다.
* * *
숙소로 이동한 우리는 매점에서 간단히 허기를 때우게 되었다. 저녁 식사는 제공되었기 때문에 굳이 매점까지 올 필요는 없었으나, 성장기인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며 하도 칭얼거리기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왔다.
“네 마음은 알겠는데 그래도 다음에는 그렇게 나서지 않아도 돼. 알겠어?”
그리고 음식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는 이단비에게 아까의 상황에 대해서 줄줄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단비는 내 기대와 달리 반성은 무슨, 철옹성 같은 태도를 유지했다.
“저는 아마 다음에도 그럴 거예요. 그냥 제 성격이 그렇거든요. 말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알아. 아는데 너무 그렇게 편집거리를 주면 너만 힘들다는 말이야.”
“저는 안 힘들어요.”
“방송 나가고 사람들이 욕할 수도 있어.”
“괜찮아요.”
“안 돼.”
무언의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거리던 이단비가 핫바를 입에 쑤셔 넣고 말했다.
“형, 싸가지 없게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욕 덜 먹는 방법이 뭔 줄 알아요?”
“…글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욕을 처먹었던 경력이 있는 나에게 묻는 것인가?
1시간은 잡고 말해야 했다.
“맞는 말 하는 거예요. 반박할 거리가 없거든.”
내가 할 말이 없어 대답을 안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이단비가 자신 있게 본인의 대답을 내놓았다.
“나 오늘 맞는 말 했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나는 안 괜찮아.”
“저는 이미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저를 지키고 있다는 말이에요. 아마 가만히 있었다면 찜찜해서 잠도 못 잤을걸요? 저는 욕 먹는 것보다 그게 더 싫어요.”
“…….”
저렇게까지 말하니 내가 더 이상 얹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어른은 어린애들이 너무 똑 부러지면 할 말이 없단 말이다.
한숨을 푹 쉬고 음료수 캔을 따 아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래도 나중에 감당 안 되는 일 생기면 꼭 주변에 도와 달라고 해.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네, 그럴게요. 약속!”
잔소리가 끝나감을 직감한 것인지 이단비가 배시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당히 알아들었으니 그만 말하라는 것 같았다.
“다들 수고 많았어.”
“승범 형이 제일 수고했죠! 들어가서 푹 쉬세요.”
멤버들을 이끌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니 노란 표지판이 있었다.
[엘리베이터 수리 중. 계단 이용할 것.]“…….”
“…….”
우리가 위치한 매점은 지하 1층이었고, 방은 4층에 있었다.
“설마 우리 4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해요?”
“그런 것 같은데.”
“…되는 일이 없네.”
하필 지금처럼 체력이 다 동난 시점에 숙소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다니.
우리는 꼼짝없이 불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비상계단을 오르게 되었다.
“헉, 허억!”
“내 귀에 숨 몰아쉬지 마! 소름 끼쳐!”
“좁은데 어떡해! 네가 옆으로 좀 가든가.”
아이들이 투덕거리는 소리를 노동요로 꾸역꾸역 계단으로 오르자 겨우 출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우리는 문 앞의 작은 공간에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오늘 진짜 힘들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여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 꾸역꾸역 서 있으니 자리가 비좁았다. 하지만 센서가 달린 등의 빛이 너무나도 미약하여 출입구 앞이 아니면 발밑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깨끗한 공기. 제발.’
가뜩이나 공기도 안 좋은데 출입구는 도대체 왜 죄다 꽁꽁 닫아 놨는지 모르겠다.
겨울이라 그런가?
“단비야, 얼른 문 열어라.”
“앗, 불이 꺼져서 문고리가 안 보여요. 승범 형! 등에 손 한 번만 흔들어 주세요.”
멤버들 중에서는 젠이 가장 키가 컸지만, 한국어를 잘 못 알아들을 것 같았는지 아이가 나를 지목했다.
“잠깐만.”
까치발을 들고 손을 흔들려는 순간.
툭.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를 뒤로 떠밀었다.
“…어?”
바로 뒤에는 가파른 계단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높은 곳에서 몸이 붕 떠 추락하는 느낌.
계단 아래로 몸이 떠밀리는 찰나의 순간, 주마등처럼 머리가 핑핑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몸을 떠민 손은 C등급 연습생의 것이었다.
분명 RH 엔터테인먼트의 직원이 독립해 세운 기획사의 소속 연습생이었던 것 같다.
‘XX, 멍청했어! 나기 젠한테 정신이 팔려서!’
나의 잘못을 굳이 말하자면, 안일했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안일함은 내가 매일 밤 강혁우에 대한 꿈을 꾸며 이를 바득바득 갈 정도로 독한 놈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던 점이었으며.
– 조금이라도 데뷔하고 싶으면 사람들 틈에 섞여서 계단에서 그놈 밀어 버려. 팔다리 하나쯤은 부러트려 놓으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걔도 연예인 하려는 놈이 괜한 기삿거리나 만들지는 않겠지.
두 번째 안일함은 강혁우가 경쟁자를 어떤 방식으로 제거해 왔는지를 경솔하게 여겼던 점이었고,
– 걔는 크게 될 거야.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데뷔하면 흐름을 타고 정상에 도달하겠지. 우리 회사가 이기려면 지금부터 꺾어 둬야 해. 나는 SU 엔터테인먼트가 승승장구하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거든.
세 번째 안일함은 연습생들에게 지속적으로 가해졌던 강혁우의 가스라이팅을, 생전의 내가 모두 끊어 놓았다고 착각했던 점이었다.
– 너같이 한심한 놈이 데뷔하려면 하나라도 데뷔권에 자리 비워 둬야 가능성이 있을 거 아냐. 한승범 떨어트리면 내가 꼭 우리 회사에서 데뷔시켜 줄게. 대신 걔가 멀쩡하게 돌아다니면 너는 평생 데뷔 못 하는 거야. 알겠어?
설마 럭키 센터 입소일 아침, 아주 미세하게 들렸던 대화 소리가 진짜 강혁우의 것이었을 줄이야.
데자뷔였다.
분명 빌딩에서 떨어질 때도 이런 감각이었다.
‘X됐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은, 내가 여기에서 굴러떨어지면 단순히 팔다리 하나 부러지고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다급히 난간에 팔을 뻗으려 했지만, 닿지 않았다.
“이런, 씨!”
까지 말하다가 입을 탁 다물었다.
나는 아이돌이니까.
‘발.’
“형!”
내 몸이 짙은 암흑 속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는 것을 본 멤버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나를 밀어 버린 C등급 연습생의 얼굴에도 당황 어린 기색이 느껴졌다.
그랬겠지. 본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내 몸이 심하게 떠밀렸을 테니까.
연습생이 무슨 암살자도 아니고 적당히 다치게 하는 일 따위 가능할 리가 없었다.
‘이 미친 강혁우 새끼야!’
물론 그 쓰레기 새끼는 뒷일 따윈 고려하지 않았겠지만.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감싸려 몸을 웅크리는 순간, 기묘한 외침이 들렸다.
“리다! 내가 지켜 주다!”
쟤는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