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이건 서유태를 배신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걸 당신이 말해?”
차분히 정론을 말하자 임승훈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이를 악물었다.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조인찬을 두고 협박하는 말을 들었을 때는 들끓는 듯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나에 대한 이야기가 저 입에서 나오니 놀라울만치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나는 임승훈의 앞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해서는 안 됐다.
놈이 프리즘을 논하든, 나를 논하든, 언제나 제3자로서 남일 보듯 행동해야 했다.
생전에 내가 강혁우와의 심리전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 약점이 프리즘이라는 사실을 들켰기 때문이었다.
강혁우의 약점을 움켜쥘 능력이 있으면 뭐 하나. 생전의 나처럼 울타리 안의 사람들에게 상처 하나 생길까 벌벌 떨고 있어서야 그들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프리즘 멤버들의 인생이 망가질 가능성이 단 1%라도 존재하는 한, 나는 놈에게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조인찬의 영상이 놈의 불법적인 사업과 연관되어 있으니 조인찬의 영상이 공개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프리즘 멤버들의 일상만 지킬 수 있다면 나는 괜찮았다.
내가 아무리 이용당하거나 통제당하더라도 그거면 족했다.
그리고 강혁우와 임승훈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승범’은 어떤가. 겉으로 보기에는 프리즘과 관련이라곤 고작 프로그램의 트레이너와 연습생, 그 정도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프리즘 멤버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들키면 안 돼. 원본 영상을 실제로 이용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도.’
이건 한승범이 내게 준 기회였다. 그리고 그것을 헛되이 날리지 않기 위해서 나는 임승훈에게 한승범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분명히 새겨야 했다.
한승범은 오로지 본인의 이익만을 좇고, 그를 위해서라면 프리즘이든 무엇이든 이용할 수 있는 비열한 인간이라고.
나는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임승훈을 내려보며 이어 말했다.
“서유태가 뭘 바라든 상관 없어. 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프리즘이고 뭐고 다 한꺼번에 끝장내 줄 테니까.”
“…당신, 정말…….”
나는 프리즘 멤버들에게 상처를 주고 모질게 행동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한승범이라는 인물의 일면을 놈에게 보여 줘야 했기에,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설마 당신 같은 인간한테도 배신당한 사람이 두 번은 못 당할까.”
대중이 보기에 서유태는 제 아비를 죽이고, 온갖 스캔들에 휘말려 비겁하게 죽음으로 도망간 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죽은 사람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의 시선에서는 상당히 비정상적인 짓이었다.
하지만 나는 경우가 달랐다.
그냥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그거면 충분했으니까.
“얼마나 멍청하고 미련한 사람이었으면 죽을 때까지 배신당한 줄도 모르고 당신을 믿고 있었겠어. 그러니까 나한테 속아넘어가는 거지. 안 그래?”
나를 향한 적나라하고 진심이 담긴 혐오가 ‘한승범’의 가혹함을 그럴듯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프리즘 멤버들에게 직접 상처를 주는 것보다 이게 몇만 배는 쉬운 방법이었다.
기계적으로 서유태를 공격하는 말을 내뱉고 있던 중, 프리즘 멤버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러자 멍하니 얼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 그래, 곡이 목적이었어? 진작 말하지. 치세 형이 히트곡 줄줄 뽑아내니까 그게 좀 욕심이 났나?”
‘그러고 보니 남이훤은 나를 이치세를 이용해 먹으려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던가.’
그때는 남이훤이 나를 오해하는 게 싫었지만, 지금에 와서 잘 생각해 보니 참 다행인 것 같았다. 변명하지 않았으면 좀 더 이 상황이 그럴 듯 했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긴 했다.
“…강혁우를 끝까지 해치우지 못하면 같잖은 법적 처벌이라도 받도록 이 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거니까 최선을 다해서 날 도와. 강혁우는 혼자 잘 빠져나올 수 있어도 당신은 아니잖아.”
이로써 조인찬의 영상을 숨기려 발버둥치는 것은 내가 아닌, 강혁우와 임승훈이 되었다. 바로 나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 때문에 차운을 조금 더 자유롭게 풀어줄 수도 있겠군.’
“당신은 고작 돈 하나 때문에 서유태를 배신한 사람이잖아. 돈보다는 목숨이 더 소중할 거라고 믿어.”
“…고작 돈 하나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임승훈이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마음에 안 들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내가 돈 때문에 서유태를 배신했다고요?”
마치 그게 아니라는 듯 헛웃음과 함께 또다시 이어진 말에 나는 눈을 길게 감았다.
저 입에서 얼마나 안타깝고 그럴듯한 이유가 나오든 나는 프리즘 멤버들을 함정에 빠트린 임승훈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됐고. 따라서 괜히 놈의 사정을 들어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그에 대놓고 고개를 돌려 버리자 녀석은 거에 더 악이 받친 것처럼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나를, 나를 고작 돈 하나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르는 놈 취급하지 마세요. 나도 어쩔 수 없었어요……. 서유태 때문에 내 인생이 망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요! 내가 그놈한테 당한 게 얼마인데!”
‘…뭐?’
‘강혁우에게 협박을 당해 어쩔 수 없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같이 예상하고 있었던 것과는 다른 말들이 쏜살같이 지나가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임승훈의 인생을 망쳤다고?’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프리즘의 매니저로 일을 하는 동안 내가 놈에게 무슨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하기라도 한 건가 하는 의문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정말 내가 임승훈에게 잘못을 했다면, 그래서 이렇게 관계가 꼬여 버린 거라면 결국에는 모두 내 탓이었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스태프들에게는 언제나 깍듯이 예의를 갖춰 대했다. 지금 판테이온의 소속사 직원들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리고 그건 프리즘의 매니저였던 임승훈에게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기도 전에 임승훈은 멈추지 않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나를 향한 원망을 쏟아 냈다.
“그놈 때문에 내가 계속 대회 우승도 못 하고 춤을 포기해야 했다고요! 다 그 사람이 도와줘서 그런 거야, 나도 그런 뒷배가 있었으면 그놈보다 더 성공했을 텐데!”
들려온 것은 매니저 시절이 아닌, 그보다 훨씬 전의 일이었다.
나는 그 말들을 듣은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착각을 해도 단단히 하고 있었구나, 하고.
‘처음부터…….’
언젠가부터 매니저를 쥐어팼다든가, 폭언을 퍼부었다는 기사가 자꾸 나오길래 그게 어디서 시작된 건지 궁금하긴 했다. 그 찌라시를 퍼트린 최적현의 손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그 기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정보를 전달해 준 그 소문의 근원이 어디인지 끝끝내 알아내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이 마치 사실인 양 퍼지는 일이 하루이틀 벌어졌던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냥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저 말들을 들으니 하나씩 퍼즐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재벌 눈에 들어서 겨우 성공한 주제에 사람들은 자기가 대단한 놈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잖아요! 갑자기 명품이나 두르고 나타나서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여 놓고 강혁우를 탓하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불안하긴 했지만, 설마 이런 속내를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꼭 나를 향한 열등감이 덩어리져 사람의 형태로 변한 것 같았다.
본인이 꿈을 포기한 것도 내 탓, 나를 배신한 것도 내 탓이었다.
애초에 내가 최적현을 만난 건 대회의 우승상을 쓸고 다닌 이후의 일이었다. 최적현에게 지원을 받는데 굳이 상금을 목적으로 출전했던 대회에 계속 나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임승훈이 대회에 입상하지 못한 것은 단순히 본인의 춤 실력이 부족해서였다.
‘…지금까지 계속 저렇게 생각했던 건가?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고맙다고 생각했고?’
내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서유성과 멤버들, 하나뿐인 친구, 팬들이 있었다. 그러나 임승훈이 말하는 것처럼 편의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적또한 없었다. 그런데 그걸 저렇게 표현하다니.
이제야 납득이 갔다.
제대로 된 약점을 쥐지도 못했던 임승훈을 강혁우가 본인의 계획에 끌어들인 이유, 나의 개인사가 자꾸만 이상한 방향으로 왜곡되어 퍼졌던 이유, 임승훈이 10년 전 최적현이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물건들에 집착하는 이유.
‘임승훈이 따라 하려고 했던 건 최적현 자체가 아니었어.’
밑창이 빨간 신발과 시계, 하다못해 만년필까지.
최적현은 당시 후원자로서 나의 생활을 모두 조원해 줬고, 그에 따라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녀석이 주는 물건들을 사용하며 돌아다녔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말이다.
그래, 마치 아들이 아버지의 것을 자연스럽게 물려받듯.
지금의 임승훈은 그 당시의 나를 모방하고 있었다.
임승훈은 최적현의 눈에 띄어 ‘편하고, 자신보다 급이 높은’ 삶을 살게 된 내가 부럽고 미워서.
– 유태야, 예전부터 너에 관해서 계속해서 안 좋은 기사를 올렸던 기자 기억나?
– 죽었대, 자기 집에서 목매달아서.
설마, 임승훈이 내게 그 이야기를 전해 준 것도 최적현과 나의 관계를 단절시키려고 했던 건가?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모두 당신이 저지른 짓이었어.’
“반지하에서 사는 놈이었다고요! 내 아래에 있는 게 당연했는데!”
그만, 그만하라고. 도중에 나를 배신했더라도, 적어도 내가 기쁨이라 생각했던 시간들을 모두 더럽히지 말라고. 그런 비명이 터져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프리즘 멤버들을 생각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됐다.
나는 눈을 질끈 감은 후, 숨을 내쉬고 차가운 목소리를 꾸며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당신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관심 없으니까 내가 물어본 말에만 대답해.”
* * *
그렇게 임승훈과 대화를 마친 후, 나는 며칠간 밖을 떠돌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새로운 스케줄이 생겼을 즈음, 어쩔 수 없이 잠시 숙소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숙소의 문 앞에서 눈꺼풀 위에 손을 꾹 얹고 잠시 숨을 돌렸다.
건조하게 마른 눈꺼풀이 충혈된 눈알을 할퀴는 것 같았다.
‘…멤버들 앞에서 내색하지 말자.’
그렇게 굳게 다짐하며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은 순간, 갑자기 문이 확 열리며 무언가가 내게 우당탕 달려들었다.
“형, 하이요!”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영문도 모르는 채 품속에 파고든 몸을 습관적으로 붙들었다. 그러자 나를 부서져라 강하게 꽉 안고 있던 놈이 경쾌한 목소리를 냈다. 그를 듣자마자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급히 고개를 돌렸다.
“짠! 저 이제 목발 짚고 돌아다닐 수 있어요! 짱이죠! 의사 선생님이 말하는데 저 회복이 엄청 빠르대요. 원래 좀 더 빨리 퇴원해도 되는데 엄마가 하도 걱정해서 좀 늦어졌어요. 원래 어렸을 때부터 다쳐도 금방 회복하는 편이긴 했는데……. 형?”
그러자 점이 여러 개 있고 희멀건한 피부, 긴 위 속눈썹이 아래로 처져 순해 보이는 녀석 특유의 눈매, 약간은 흐린 듯한 검은 머리카락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숙소에서 보지 못한 지 꽤 된, 그리운 얼굴이었다.
“우와, 형 다크서클 봐!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며언! 형님의 귀염둥이 도유다가 없어서 쓸쓸했던 건가?”
“…….”
“악! 잠깐만! 숨 막혀! 아이고, 숨 막혀요! 포옹하다가 죽겠네. 잠깐만 놔 봐요, 형. 네?”
…도유다가 돌아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