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음악 방송의 대기실에 앉아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나는 매니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 방송에서 좀 일부러 자극적으로 편집을 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기량 씨가 프릭 씨를 많이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여서요. 그래도 괜찮겠죠?
‘프릭…….’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흐릿한 얼굴만이 떠올랐다. 딱히 기억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그다지 인상에 남는 얼굴이 아니라 잊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사람 얼굴 잘 못 외운다고.’
오직 생김새만으로 내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으려면 적어도 얼굴이 한승범이나 남이훤, 이화영처럼 충격적일 정도의 미형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 남들은 다 나보고 잘생겼다고 난리인데 왜 형은 내 얼굴을 자꾸 동네 똥개 보듯 하는 거야. 나 얼굴로 뽑은 거 아니었어? 나 어디 가서 비주얼로 무시당해 본 적 한 번도 없는데?
–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밥이나 먹어.
– 아하하하! 아서라, 제이야. 유태 형은 앞으로도 영원히 너를 코찔찔이로밖에 못 볼걸. 얼굴로 CF 쓸고 다니는 애 보고 적당히 봐줄 만하게 생겼다고 하는 인간은 저 형밖에 없을 거야.
…그래. 너른 마음으로 제이도 포함시켜 줘야지.
안 그러면 잘생겼다고 말해 줄 때까지 찡찡거리니까.
그러고 보니 나름 레전드짤까지 있었던 프릭의 비주얼이 매우 흐릿하게 느껴졌던 게 항상 놈의 옆에 제이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디지털 풍화된 이미지와 8K 영상 정도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인성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실력도 내 기준에는 부족했고.’
아무튼, 프릭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출난 부분이 없었기에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알쏭달쏭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 뚱한 표정을 지은 채 팔짱을 끼고 있으니 도유다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을 걸었다.
“선배님 때문에 그래요?”
“…어.”
“눈 찢어지고 얼굴 동글동글한 얼굴이에요. 키는 약간 아담하고요. Overture 그룹에서 탈퇴한 다음 다른 소형 소속사로 옮겨서 솔로 데뷔 했대요. 잘 모르시죠?”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아량이라도 베푸는 듯 귓속말로 떠드는 도유다를 향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누구를 속세에서 탈출한 신선으로 아는 것 같았다. …Survive IDOL의 트레이너였던 건 기억해도 얼굴과 어느 그룹에 있었고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전혀 찾아보지 않았지만.
“형 얼굴에 적혀 있는데요. ‘하나도 모르겠다’고. 제가 형 그 얼굴 하고 있는 걸 도대체 몇 번이나 봤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정말, 다른 사람한테 흥미 못 가지는 것도 정도껏이어야지. 형이 맨날 그러니까 제가 다 찾아 보고해 드리는 거예요.”
“…….”
“그룹 탈퇴할 때 멤버 분들이랑 진짜 많이 싸웠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아이돌들 이름값이랑 인기로 기 싸움 하고 눈치 보는 것도 이제 진절머리나고 인형 같이 사는 삶이 본인이랑 잘 안 맞는다고 하던데요. 라방에서 한 말로 팬분들이 엄청 욕하는 거 봤어요.”
‘지X…….’
마치 이름값이나 인기로 본인을 부당하게 대한 인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은근히 티 내는 말이었다. 제이한테 제대로 얻어터지고 버림받더니 ‘내가 못한 게 아니라 이 길이 나한테 안 맞는 거다’라고 제대로 합리화를 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도유다의 설명에 내가 속으로 쌍욕을 뱉음과 동시에 함께 귀를 들이밀고 있던 이단비가 ‘…대단하네요.’라며 짧게 거들었다. 지독할 정도의 무표정에 무미건조한 투인 걸 보니 분명 대단한 멍청함이라는 뜻이겠지.
‘그러고 보니 그룹에서 거의 쫓겨나듯 나갔다고 했나.’
당시 개판이었던 내 상태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상황에 제대로 화가 난 제이가 무슨 짓을 하긴 했다고는 들었지만,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듣지 않았다.
‘…도유다는 이걸 도대체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야. 하루 종일 핸드폰만 하나.’
“너 핸드폰 중독이야. 이제 그만해.”
“요즘 세상에는 제가 정상이고 방해 금지 모드 계속 켜두고 답장도 안 할 문자 계속 쳐다보는 형이 더 이상하죠.”
“…….”
차마 프리즘 멤버들을 차단할 수는 없고 연락이 끊이지 않는 핸드폰에서는 불이 날 것 같아 방해 금지 모드를 내내 켜 뒀더니 그걸 또 그사이에 본 모양이었다. 별로 건드리지 않았으면 했던 부분을 정확하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에 눈꺼풀을 아래로 내리깐 채 입술을 달싹거리자 녀석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말이다.
“제 말이 맞죠? 그리고 저는 솔직히 이유가 있었잖아요. 프릭 선배님은…….”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리며 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백기량을 향해 눈짓을 하는 걸 보니 대충 저 초식동물만도 못한 깡을 가진 놈이 걱정된다는 거겠지. 왜냐하면 백기량은 나와 함께한 경연 무대를 통해 좌절감과 두려움은 떨쳐 냈을지라도, 본인을 무차별적으로 매도했던 프릭에 관해서는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는 상태였으니까.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상처는 원래 그런 법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임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가해자의 앞에 서면 무의식적으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그런 고약함이 있었다.
“…….”
도유다의 눈짓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프릭의 이름이 적혀 있는 대기실을 본 이후로 계속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백기량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으니 도유다는 수호천사처럼 내 등에 들러붙어 쉴 새 없이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같이 기량 형한테 가서 무슨 말이라도 해 주는 건 어때요? 솔직히 형도 걱정되잖아요. 아아, 걱정 돼. 너무 안쓰러워! 우리 멤버가 저렇게 기죽어 있다니!”
밀가루를 뿌려 놓은 찹쌀떡처럼 생긴 볼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것을 애써 무시하던 증, 내게 매니저가 스리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승범 씨, 프릭 씨가 인사하러 찾아왔어요.”
“…하.”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백기량의 멱살을 잡고 탈의 부스에 냅다 쑤셔넣었다.
“잠, 잠깐만! 아! 승범…….”
“조용히 하고 가만히 있어. 이왕이면 귀도 막고.”
그러자 프릭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희게 질려 있던 얼굴이 급기야 파랗게 물들었지만, 나는 그것을 못 본 척 한 채 웃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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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그 친구 진짜 데뷔 못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승범이한테 진짜 고마워해야 해.”
솔직히 처음 프릭이 우리 대기실에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보통은 후배가 선배의 대기실로 찾아가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승범이 덕분에 데뷔한 거라니까?”
‘지금 해보자는 건가?’
그러나 나는 대기실에서 한참 동안 입을 놀리며 내 눈치를 흘끔흘끔 보는 프릭의 모습에 녀석의 목적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아, 병아리들 앞에서는 착하게 살려고 했는데.’
지금 프릭은 내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본인보다 서열이 아래라고 생각하는 백기량을 대신 까 내리면서.
분명 내가 그 폭행 영상을 공개해 버릴까 무서워 그러는 것일 터였다. 눈치 보기 싫어서 아이돌 못 하겠다는 사람치고는 손발을 비비는 게 꽤 익숙해 보여 웃음이 나왔다.
‘이래서 다시 솔로 데뷔도 할 수 있었던 거겠지. 이런 사탕발림에 은근히 우쭐해지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언행에 조소를 흘린 나는 형식적인 말을 뱉었다.
“그렇습니까. 대기실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희가 곧 무대에 올라가야 해서요.”
꺼지라는 뜻이었다.
다른 스태프들이 내 얼굴을 볼 수 없는 방향에 있었기에 표정으로는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자 프릭은 또다시 내 눈치를 보더니 꽁지 빠지도록 정신없이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아아, 내가 너무 방해했네! 무대 잘해!”
곧바로 죽은 눈을 한 채 프릭의 뒤를 따라 나가려는 순간, 굳은살이 박힌 커다란 손이 내 입을 막더니 저항할 새도 없이 몸이 뒤로 쭉 끌어 당겨졌다.
“…읍!”
“잡아요, 형!”
‘어떤 새끼가 또 귀찮게…….’
가뜩이나 짜증 나는데 또 어떤 새끼가 귀찮게 하는 거냐며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잔뜩 긴장한 채 똥강아지처럼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강원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우강원이네.’
그에 나는 거칠게 뿌리치려던 팔의 함을 풀고 악귀처럼 치켜 올라갔던 눈꼬리를 원위치로 돌린 후 녀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자 곰 같은 몸을 웅크린 우강원이 눈을 질끈 감고 대뜸 이런 소리를 뱉었다.
“아니야, 승범아. 아니야! 한 번만 봐주자. 그냥 봐주자!”
그리고 항상 침착하게 있던 이단비마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우강원과 함께 내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속삭였다.
“형, 상대 안 하는 게 이기는 거예요. 똥도 무서워서 피하는 거 아니고 더러워서 피하는 거잖아요.”
“승범아, 물론 네가 후환 안 생기도록 알아서 잘하는 거는 알고 있는데! 네가 자꾸 무리해서 다쳐서 돌아오니까……. 나는 못 보내. 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
‘…뭐야?’
마치 들짐승을 상대하는 것만 같은 두 사람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하여 가만히 서 있자 곧이어 도유다마저도 내 다리에 달싹 달라붙었다.
“아학, 재밌겠다. 저도 할래요!”
“치졸한 들개의 앞에 나뭇가지를 보내는 행위, 불가합니다. 저번처럼 또 다치면 어떡합니까. 절대로 가고 싶다면 이 나기 젠을 밟고 가시오.”
급기야 젠은 문의 앞에 차렷 자세로 드러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화영은 그런 젠의 위를 넘어 걸어가 대기실 문을 닫아 버리기까지 하였다.
“오, 굿 팀 워크, 미스터 리.”
“조용히 해.”
저렇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거면 드러눕는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이성적인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젠이 바보인 이유가 하나라도 더 늘어나면 판테이온의 아이돌 활동에 지장이 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굳이 그것을 지적하지 않기로 하였다.
“…….”
멤버들의 바보짓으로 인한 허무함과 약간의 어처구니없는 마음에 분노가 사그라든 나는 얼떨결에 말했다.
“알았다고. 아무 것도 안 할 테니까 놔. 왜 이렇게 사람을 못 믿어.”
“당연히 형이 지금까지 한 전적이 있으니까죠.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돌아온 막둥이의 무미건조한 말에 눈동자가 거하게 흔들리는 와중, 문을 닫고 돌아온 이화영이 내 어깨를 강하게 눌러 소파에 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 인간한테 연락하기 전에.”
‘아.’
내가, 내가 아무래도 단단히 잘못 키운 것 같다.
이거 패륜이다.
이화영의 도전적인 말버릇에 마치 자식의 첫 사춘기를 목격한 부모처럼 충격을 받고 있던 중 줄곧 탈의 부스에 숨어 있던 백기량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 승범아. 괜히 나 때문에…….”
그 말에 내내 떠들썩하게 난리를 치던 멤버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울망울망한 표정을 지으며 다 함께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쉰 후, 물빛을 담은 것처럼 흔들리는 백기량의 눈동자를 고요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신경을 왜 써.”
“…….”
“그럴 필요 없잖아. 아니야?”
그러자 백기량은 내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멍하니 나를 한참 동안이나 응시하던 놈은 내 뚱한 얼굴을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썹 끝이 처지도록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응. 맞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