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30)
230화
‘…그 스토커가 여기 왜 있겠어.’
하도 헛것이 들리고 보이는 일이 자주 있어서 이제는 뭐가 진짜인지 잘 판단이 안 됐다. 하지만 관자놀이를 꾹 짚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뜨자 다시 아무도 없는 골목이 보였다.
‘역시 기분 탓이었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신을 차리려 하던 찰나, 차운이 구부러진 발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비 좋아해요?”
말을 붙이기 위한 목적의 가벼운 질문이었다.
아마 진지한 대답은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그냥 똑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면 될 텐데 어쩐지 입이 바로 떨어지질 않았다.
‘내가 비를 좋아했던가?’
이 정도로 살았으면 이미 생각해 봤을 만도 싶은 질문이었는데 막상 그 질문에 대답을 하려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텅 비워진 것 같은 머릿속에 당황하던 사이 무심코 입이 움직였다.
“…아니요. 싫어합니다.”
‘비가 오면 자꾸 사고가 생기니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불쑥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단호한 대답이 돌아온 것이 의외였는지 차운은 새빨간 얼굴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가 대꾸했다.
“나도. …비가 오면 자꾸 사고가 생겨서 싫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그에 조금 놀라던 중, 여러 개의 술잔을 한 손에 들고 요란스럽게 다가온 이치세가 나와 차운에게 와인 잔을 쥐여 주었다.
“자, 승범이도 이제 성인이지? 한잔해. 형도 빼지 말고.”
“쟤 왜 또 저렇게 신난 거야.”
그리고 질색하는 차운은 보이지도 않는지 나와 차운의 잔에 제 잔을 맑은 소리가 나도록 부딪친 후, 내용물을 쭉 들이켰다. 차운은 그런 이치세를 보며 한숨을 쉬긴 했으나 대충 입술을 적실 정도로만 장단을 맞춰 주었다.
‘보통 후배들은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든 술을 마시던가.’
나는 손안에 있는 익숙하지 않은 액체를 내려다보며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그것을 잠자코 입에 머금으려 했다. 하지만 잔을 기울인 순간, 갑자기 위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와 내 잔을 낚아채 갔다. 그리고 허전해진 손에는 곧바로 음료가 담긴 잔이 대신 쥐여졌다.
“내가 승범이랑 술 마셔 봤는데 얘 한 잔만 마셔도 완전 가 버려서 안 돼. 그냥 맛있는 거나 많이 먹고 가라고 해.”
손이 나타났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태연하게 그럴듯한 말을 꾸며 대는 제이가 보였다. 이치세는 그 말이 거짓인 줄 눈치채지 못했는지 약간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진작 그렇게 말하지.”
“선배한테 그걸 어떻게 말해.”
“아, 그렇구나. 미안. 그럼 승범이는 그냥 음료수 마셔.”
우우웅!
그렇게 한참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시던 중, 핸드폰의 진동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치세가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는 것을 보니 이치세의 것이었던 모양이다.
핸드폰의 화면을 확인한 이치세가 조금 가라앉은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멤버들에게 ‘잠시 나갔다 올게’라고 말하고 외투를 집어 들었다.
“갑자기 어디 가?”
그에 제이가 목을 쭉 빼더니 이치세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이치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멤버들에게 앉아 있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냥, 이 앞에 편의점 다녀오려고. 안줏거리랑 술 좀 더 사 오게.”
뭘 더 사 오겠다는 말이 나오자 술에 잔뜩 취해 엎드려 있던 차운이 테이블 위에서 주섬주섬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비몽사몽한 채로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이치세에게 제 카드를 주며 말했다.
“…이거로 계산해.”
“됐어, 형. 벌만큼 버는데 뭐.”
“싫어.”
뭘 사겠다는 건지 제대로 이해도 못할 정도로 취한 주제에 꾸역꾸역 카드를 내미는 꼴에 이치세가 난감한 듯 한숨을 쉬고 있자 옆에 있던 제이가 냉큼 카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담뱃갑을 꺼내더니 안에 남아 있는 양을 확인하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지, 뭐. 좀 올라와서 바람도 쐐야 할 것 같고…… 어차피 나 담배 사야 해.”
“담배 사기만 해……. 진짜 죽는다, 유제이.”
“뭐야. 그럼 그거 말고 신상 지갑 하나 사 줘.”
“…그래.”
“아싸.”
사이가 나쁜 건지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둘 다 제대로 취한 건 알겠다. 저놈들 이제 슬슬 그만 마시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내가 보이지도 않았는지 제이가 히죽거리는 낯으로 느릿느릿 코트를 걸치며 말했다.
“그래도 따라는 가 줘야지. 입이 다섯 개라 혼자 가서 들고 오는 것도 힘들 거 아니야. 간만에 막내 노릇 좀 한다, 내가.”
“아니야, 그냥 여기 있어. 편의점은 나 혼자 갔다 올게.”
그러자 이치세가 제이의 어깨를 아래로 눌러 앉히며 거듭 거절의 말을 뱉었다.
“…왜 이래? 평소에는 낚아서라도 같이 가려고 했던 사람이.”
“…….”
“형 좀 이상하다? 우리 두고 누구 만나러 가?”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의아한 듯 제이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말했다. 그리고 제이의 그 말을 듣자마자 방금까지만 해도 풀어진 얼굴로 술을 마시고 있던 남이훤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조인찬이야?”
그 말에 내내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떠들던 멤버들이 아까 내가 언급됐을 때처럼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느슨하게 풀려 있던 멤버들의 입꼬리가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린 게 보였다.
“…….”
특히나 차운은 조인찬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술기운이 달아났는지 초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던 눈동자를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그 정적이 채 3분도 이어지지 않았을 즈음, 남이훤의 건조한 목소리가 울렸다.
“왜, 멤버들 앞에는 못 나오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면 형한테 미안해서 잠깐 얼굴 보자고 연락 왔어? 이 날씨에 무릎도 안 좋은 새끼가 밖에서 그게 무슨 궁상인데.”
“…….”
“올라오라고 해. 어려울 거 없잖아.”
“…네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어. 너한테는 쉬운 일이 조인찬한테는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함부로 강요하지 마. 그렇게 안해도 걔 이미 충분히 힘들어.”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리며 한숨을 쉰 차운이 지친 투로 말했다. 아마 남이훤이 조인찬의 사정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런 말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남이훤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실소를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은 채 다시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그 사정이든 뭐든 들어 줄 테니까, 들어 줄 준비 됐으니까 오라고. 언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어려워졌어. 강혁우랑 임승훈한테는 잘만 보여 주는 낯짝 우리한테는 못 보여 준다는 게 말이 돼?”
“…….”
“그 새끼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다닐 생각인데. 아, 그래. 곧 기일 있으니까 그때는 보겠지. 그리고 형 있는 곳에서 우리 마주치면 또 대역죄인인 것처럼 도망치겠지. XX, 도대체 그 꼴을 몇 년이나 보여 줘야 직성이 풀릴지 궁금하네.”
“…형, 이제 술 그만 마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갈수록 감정적으로 변하는 어투과 비틀거리는 몸짓에 제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남이훤은 멤버들 모두가 자신의 말을 술에 취해 한 어쭙잖은 말실수 정도로 취급한다고 오해했는지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안 취했어도 똑같이 말했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동생들에게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었던 남이훤이 그런 모습을 보이니 제이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제이의 얼굴을 보고 조금 주춤한 남이훤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흐트러트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이치세에게 다가가 녀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됐어, 여기서 이렇게 내가 옳네 네가 옳네 싸워도 쥐뿔도 의미 없으니까. 그래, 형이 못 하겠으면 내가 하지, 뭐. 내가 가서 끌고 올게. 주변에 어디든 숨어 있겠지.”
그리고 정말 본인이 뱉은 말을 지킬 생각인지 그대로 몸을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
이, 망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딜 가겠다는 말이냐.
계단을 내려가다가 사고라도 안 나면 다행이었다.
“…잠깐!”
이미 다른 멤버들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버렸다. 따라서 녀석을 말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가 되어야 했다. 그런 생각에 다급하게 녀석의 팔을 붙잡자 녀석의 눈동자가 날 향하더니 순간적으로 휙 도는 게 느껴졌다.
“놔!”
그리고 그에 반응할 새도 없이 뒤로 확 밀쳐져 몸이 뒤에 있던 가구에 부딪혔다.
쿠당탕!
“승범아!”
“승범 씨!”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
생각보다 소리가 실제보다 너무 요란하게 울려서 멤버들이 과하게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 몸이었다면 이 정도로는 끄떡도 안 했을 텐데, 참 웃긴 꼴이었다. 그에 자조를 흘리며 앓는 소리를 삼킨 나는 나를 부축하려는 제이의 손을 마다한 후 몸을 일으켜 세웠다.
“…….”
등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후회와 당혹감으로 점철된 남이훤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는 게 더 신경쓰였다. 저놈은 원래부터 미안하다는 말은 잘 못하는 주제에 얼굴로 저렇게 감정이 다 새어 나오는 놈인 것을,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괜찮습니다.”
술기운 때문에 조금 힘 조절을 못 했던 것 같았다.
뒤에 부딪힐 가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던 것 같고.
나보다 더 놀란 것 같아 보이는 모습에 나는 녀석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분히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그냥 부딪친 것뿐이에요.”
– 나는 괜찮다, 훤아.
하지만 내 의도와는 정반대로 남이훤은 더욱 심하게 패닉에 빠진 채 제 귀를 부서트리듯 강하게 틀어막고 비명 같은 소리를 뱉었다.
“하, XX…….”
그리고 그 자리를 박차고 뛰쳐 나가 버렸다.
나는 남이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다급히 그 뒤를 쫓아갔다.
“잠깐만, 승범아!”
계단과 현관을 지나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바깥까지 녀석을 따라가자 뒤에서 멤버들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굵은 빗줄기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남이훤을 놓쳐 버릴 것 같았다.
“선배님!”
끝까지 녀석을 부르며 뛰어가자 녀석이 천천히 다리를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웃음을 터트리더니 입을 열었다.
“…야, 너 진짜 대단하다. 내가 언제 너한테 이런 것까지 시켰다고 이렇게까지 하냐?”
나를 돌아보는 얼굴이 빗물과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충혈된 눈동자가 원망의 눈빛을 담은 채 나를 응시했다.
“그냥 숨 좀 쉴 수 있게 껍데기만 제대로 갖춰 두는 거. 내가 너한테 바라는 건 딱 그 정도라고……. 그 정도만 해도 다 줄 수 있어. 가짜면 가짜답게 시키지도 않은 짓 하지 마. 누가 그 형처럼 등신같이 계속 참고 있으래. 누가 진짜처럼 파고들어서 이렇게 다 산산조각 내 놓으라고 했냐고! 어차피 너는 진짜 서유태가 될 수 없고, 네가 그럴수록 나는 더 공허해지기만 하는데!”
“…….”
“형, 내가 형네 집안 다 망쳐 놔서 나한테 벌 주는 거야? 내가 어떻게 해야 직성이 좀 풀리겠어? 버리지도 못하겠고 쥐고 있지도 못하겠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할까.”
내가 한 걸음 다가가면 남이훤이 한 걸음 멀어졌다.
그걸 보니 가슴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작은 목소리로 입을 놀렸다.
“…필요할 때는 곁에 두고 필요하지 않으면 밀어내면 됩니다. 선배님께서 편한 방식으로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 말도 그만해. 듣기 싫으니까!”
그 말에 무의식중에 움직이던 다리를 멈추니 가로등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어두컴컴하던 골목에 갑자기 환한 빛이 들어찼다.
‘…어?’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였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몸은 움직이지 않는데 눈앞의 차량은 이미 제한 속도를 월등히 뛰어넘은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차량의 운전자는.
‘김영기.’
– 다, 다 너 때문이야. 이사님이 너 때문이라고 했어.
달리였다.
저놈의 목적은 나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나는 다급하게 눈동자를 돌렸다.
남이훤은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훤아!”
내 입에서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무거운 팔을 우악스럽게 뻗고, 있는 힘을 다해 남이훤의 몸을 밀었다.
그러자 나를 비추는 남이훤의 눈동자가 내게서 천천히 멀어졌다.
‘아, 다행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안도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걱정이 되었다.
“한, 승…….”
기껏 잘나게 타고난 얼굴이 또 엉망이었다.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은데.
듣기 싫으니까 아까 하지 말라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하자 입 밖으로 어떤 말이 툭 튀어나왔다.
“…미안하다.”
그 말을 뱉은 순간,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시간의 흐름이 돌아왔다.
끼이이이익!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