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치세 형에게 문자가 왔다.
[치세 형: 인찬아, 형 이번에 앨범 잘된 거 알지? 간만에 멤버들 모아서 파티라도 열려고 하는데 와서 얼굴이라도 한번 보여 줘라.] [치세 형: 다른 관계자들은 따로 모아서 이미 자리 가졌고, 이번에는 내 작업실에 우리 멤버들만 모아서 할 거야. 우리 애들이 하도 사회성이 없잖아. 그러니까 너도 부담 갖지 말고 와.] [치세 형: 아, 프리즘 멤버 말고 딱 한 명 더 올 거니까 놀라지 마! 한승범이라고 이번 타이틀곡 써 준 애인데 너도 만나면 분명 좋아할 거야.]“…한승범?”
문자 속에서 낯선 이름을 보고 무심코 그것을 중얼거렸다.
수술을 해 준 교수님께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간 날 마주쳤던 아이의 이름이었다.
분명 멤버가 다리를 다쳐서 수술을 했다고 들었다. SNS며 기사며 온통 그 이야기를 함부로 떠들어 대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한번 벌어지면 그룹 멤버 전원이 신경이 날카로워져 외부인은 차라리 말을 얹지 않는 게 더 낫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모르는 척하려고 했다.
하지만 잠깐 스쳐 지나간 창백한 얼굴이 수술을 마치고 나서 처음으로 마주했던 유태 형의 것과 너무나도 비슷해 보여서.
– 멈춰 봐요, 승범 씨.
어쩐지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억지로 돌려세운 얼굴은 나를 마주하자마자 더 처참한 꼴로 무너졌다.
무심하기 그지없던 목소리는 형편없이 흔들리고 있었으며 커다란 눈동자는 단 한 번도 나를 제대로 응시하지 못했다.
내가 TV 속에서 보거나 다른 이들에게 전해 들었던 한승범은 절대 저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멤버의 부상이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건가?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유태 형도 그런 상태였을까?
내가 다쳤을 때 말이다.
모르겠다.
그때는 그냥 제정신이 아니라 모든 상황이 왜곡되어 보였던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이 웃음을 터트리면 나를 비웃는 것 같았고,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다 나를 험담하는 것 같았다.
– 차운은 이미 춤 노래 올라운더인데도 욕심내서 작곡까지 배우기 시작했지. 이치세는 힙합 프로그램 우승했으니까 뭐 말할 것도 없고……. 서유성은 원로 가수들 나오는 경쟁 프로에서 1위까지 받아 왔어. 남궁이훤은… 아, 이렇게 부르면 그 새끼 지X했었지. 그래, 남이훤은 대배우 엄마에 유명 영화감독 아빠 빽까지 달고 있는 천재 배우고. 그나마 너랑 같이 떨거지였던 제이는 이제 서유태 코치 받고 쭉쭉 올라오고 있는데 넌 뭐 하냐? 그래도 이제 핑곗거리는 하나 생겼네. 그냥 다쳐서 춤 못 추는 거라고 떠들고 다녀.
– 야, 내가 비밀 하나 알려 줄까? 서유태가 왜 프리즘을 만들었는지 알아? 그거 제이 때문이야. 내가 그룹 하자고 몇 번을 말했는데 계속 싫다고 버티다가 걔 퇴출될 것 같으니까 고집 꺾은 거라고.
– 서유태한테 가서 물어봐. ‘왜 나를 이 그룹에 넣은 거냐’고. 그럼 말해 줄 거야. 그냥 인원 메우려고 집어넣은 거라고. 그런데 그렇게 쓸모없는 놈이 이렇게 자꾸 결함만 생기면 짜증이 나지 안 나겠어? 곧 나가라고 할지도 몰라.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시기에 강혁우에게 그런 말을 듣고, 불현듯 몇 년 전에 유태 형이 내게 해 주었던 얘기를 떠올려 버렸다.
– 이치세나 서유성처럼 춤이나 노래에 직접적인 재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제이는 머리가 잘 굴러가거든. 원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얻으려는 집념도 있고. 그것도 어떻게 보면 재능이지.
– 소질 있어, 그놈. 그런데 아무도 안 알아주는 것 같으니까 내가 한번 잘 키워 보려고.
강혁우가 한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병실에 찾아와 나를 내려다보는 유태 형의 눈빛이 나를 두고 ‘쓸모없는 놈’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 …….
유리가 깨진 것처럼 마구잡이로 금이 간 시야 사이로 보이는 실망과 경멸이 가득한 그 표정을 도대체 몇 번이나 상상했던가.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상황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태 형에게 그런 시선으로 보여지는 것은.
그를 마주하며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던 나는 결국…….
– 형, 도대체 왜 나를 이 그룹에 넣은 거야? 괴롭히려고?
내가 상처 입는 게 너무 두려워 형을 상처 입혔다.
그리고 나 자신 또한 무엇보다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다.
– 어딜 가겠다는 건데. 내내 입 다물고 있더니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고!
정말 무의미하며 이기적인 짓이었다.
나는 형이 있기 때문에 프리즘에 있고 싶었고, 형이 있기 때문에 프리즘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거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어디까지 파고드는 거야.’
무의식중에 한승범을 유태 형과 동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승범의 이름 하나로 너무 생각이 멀리 와 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나: 미안. 이번에도 일이 있어서 못 갈 ㄱ]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거절하는 말을 입력하던 중, 다시 새로운 문자가 도착했다
[치세 형: 나 진짜 이번에는 너한테 축하받고 싶다. 슬럼프 벗어난 모습 꼭 너한테 보여 주고 싶었어.]“…….”
“어디 가?”
긴 고민 끝에 외투를 챙겨 입자 옆에 있던 강혁우가 나를 불러세웠다.
그에 몸을 흠칫 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치세 형 작업실. 축하 파티 한다고 하길래.”
“프리즘 멤버들이랑 자주 만나지 말라고 했잖아. 누구누구 있는 자리인데?”
“그냥, 프리즘 멤버들이랑… 한승범 씨. 잠깐 치세 형 얼굴만 보고 올게. 허튼짓 안 해.”
거짓말을 하면 또 그것으로 언제 트집을 잡을지 몰랐다. 그냥 솔직하게 치세 형에게 들은 대로 말하자 강혁우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승범?”
그 소름 끼치는 시선을 비스듬히 피하고 있자 강혁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뭐, 됐어. 좋은 것도 알려 줬으니까. 간만에 인사 좀 하고 와. …사고 안 나게 조심하고.”
* * *
멤버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작업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치세 형과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치세 형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왜 안 오지?’
혹시 잊어버린 건가?
그래,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깜빡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금방 다시 기억해 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기다리기 시작했다.
또 꽤 시간이 지났을 즈음, 무릎 안쪽이 시큰거렸다.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 거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나도 축하 정도야 해 주고 싶었다.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겨우 결심할 수 있었다.
‘…돌아가자.’
끼이익.
집으로 돌아왔다.
들고 갔던 꽃다발과 옷에서 물이 자꾸 흘러나와 현관에 축축하게 물이 고이고 있었다.
고작 몇 분 서 있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이렇게까지 흠뻑 젖을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어쩔 수 없이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옷을 벗어야 하나?
아니면 입고 있어야 하나?
어쩌면 치세 형이 나를 기억해 내고 다시 오라고 해 줄지도 모르는데, 실내복으로 갈아입으면 나가는 게 늦어질지도 몰랐다.
‘지금이 몇 시지?’
집에 시계를 두지 않아서 시간을 알 수가 없었다. 뒤늦게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려 했으나 화면에 전원이 들어오질 않았다. 배터리가 다 닳은 것 같았다.
‘…배터리가 없었구나.’
전화라도 해 볼걸.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멤버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고, 멤버들의 연락 또한 습관적으로 피하게 된 지 벌써 몇 년째가 되어 전화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니면 지금 내가 그냥 단순히 멍청해졌거나.
작업실까지 올라가 볼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러면 프리즘 멤버들이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줄 것 같아서 무서웠다. 유태 형은 이미 죽었으니 나는 평생 내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받을 수 없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멤버들을 만나면 그들의 다정함에 의지하여 감히 용서받고 싶어질 것 같았다.
– 영상 찍혔으니까 넌 평생 못 벗어나.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거야.
– 멤버들이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면 예전처럼 널 봐줄 리가 없잖아. 대중들도 마찬가지야.
– 인찬아, 멤버들도 너랑 똑같은 꼴 만들고 싶냐?
그리고 더러워진 몸으로 뻔뻔하게 그들이 살고 있는 터전마저 시커멓게 물들여 버릴 것 같았다.
핸드폰에 충전기를 꽂고 전원을 켤 수 있을 정도로 충전이 되자 드디어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3:47]‘두 시간…….’
그렇게 겨우 볼 수 있게 된 시간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늦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이라면 치세 형은 이미 깜빡 잠에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 생각하니 뭔가 조금 위안이 되는 것 같아 기뻤다. 치세 형이 의도적으로 내 연락을 무시한 게 아닐 거라는 이유가 하나라도 더 생긴 셈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순간, 20분 전부터 나란히 쌓여 있는 부재중 전화들이 보였다.
자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전화가 왔다.
삐리리릭!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손등을 타고 흐른 물방울이 멋대로 통화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치세 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인찬아!]“…형.”
[진짜 미안해, 못 나가 봐서. 사정이 있었어.]“괜찮아. 얼마 안 기다리고 다시 돌아왔거든.”
[정말?]“응, 내일 일이 있어서 오래 기다릴 수가 없었어.”
치세 형에게 죄책감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말했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단순히 멤버들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 아니냐는’ 물음이 기어 나왔다. 그에 주춤 몸을 뒤로 물리자 차갑게 식은 무릎 관절이 녹슨 철근처럼 삐걱거렸다.
그 끔찍한 감각에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아, 병원.’
무릎 상태가 다시 안 좋아졌으니까 병원에 가야 했다.
그럴듯한 명분이 생기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미안해하지 마. 오히려 내가 미안해 해야 하는걸. 연락도 없이 집에 와 버렸잖아. 배터리가 없어서 전원이 나가 버렸더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해방감에 입꼬리가 올라가 발음이 미묘하게 바뀐 것을 감지했는지 치세 형이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로는 얼굴을 볼 수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냐, 아냐. 별로 안 기다렸다니까 다행이다. 무릎도 안 좋은데 비가 와서 걱정했거든. 내가 지금 네 쪽으로 가고 싶은데 지금 제이 상태가 안 좋아서 나가 볼 수가 없어.]‘아, 그래서 나올 수 없었던 거였나.’
나는 평온한 목소리를 꾸며 내고 입을 열었다.
“그랬구나. 제이 잘 돌봐 줘. 숙취 심한 편이잖아.”
[뭐? 아니, 그런 게 아니라…….]발치에 내내 빗줄기를 맞아 시들어 버린 꽃다발이 밟혔다. 그것을 잠시 바라봤으나 금방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 이렇게 망가졌으니 알아봐 달라고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아서 보기 불편했다.
새거로 다시 보내야겠다.
이번에는 깨끗하고, 내가 직접 전해 주지 않아도 되는 거로.
“꽃, 다시 보낼게. 1위 축하해.”
[인찬아!]아무 말이나 덧붙인 후, 일방적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거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중얼거렸다.
“…나, 언제부터 이렇게 볼품없어졌지?”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했다.
젖은 옷이 계속 체온을 빼앗아 가 치아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것을 벗을 틈도 없이 다급히 욕조에 들어가 뜨거운 물을 받았다.
그리고 살을 때리는 마찰음과 비슷한 소리가 날 즈음,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샌가 욕조에 가득 차 넘친 물이 바닥에 철퍽 떨어지는 소리였다.
물이 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를 잠그자 주변이 소름 끼치도록 조용해졌다. 그리고 약간의 틈이라도 용서할 수 없는 것처럼 내 목소리가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나를 그냥 잊어버렸던 건가?’
…그만.
‘멤버들은 내가 없는 편이 더 행복하겠지.’
그만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저항해도 걷잡을 수 없이 불이 번진 것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것을 참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다급히 물속에 머리를 담갔다. 그러자 물이 가득 찬 귀가 단번에 먹먹해지고 시야가 캄캄해졌다.
고요했다.
“…….”
깜빡, 눈을 뜨니 욕조가 아닌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광활한 바다를 마치 제집인 양 유유히 누비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고래가 나타났다. 나는 그 압도적인 존재를 앞에 두고는 저항할 새도 없이 매료되어 그 뒤를 따라갔다.
죽을 힘을 다해, 나의 모든 것을 바쳐 그와 함께 바다를 누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작은 물고기에 불과했고, 거대한 고래의 등판에 몸을 숨겨 거센 물살을 이겨 낸 것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 고래를 내 손으로 찔러 죽여 버렸다.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차가운 바다에 홀로 남았다.
‘…물속에서 숨을 어떻게 쉬더라?’
새빨갛게 물든 손을 보며 패닉에 빠져 있다가 문득 그런 의문을 가진 순간.
꼬르륵.
입 안에 있던 공기가 모두 빠져나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내가 물고기였다는 사실조차 거짓인 것처럼 느껴졌다.
“콜록! 컥! …우욱! 커흑!”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마자 매섭게 기침을 하며 기도로 넘어온 물을 토해 내고, 욕조에 팔을 기댄 채 폐가 아프도록 급하게 호흡했다.
그리고 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똑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도와줘,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