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방금까지만 해도 마치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통증이 사라졌다. 그리고 쇳덩이처럼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지며 드디어 팔다리를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에 한승범의 몸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곤 깊게 숨을 내쉬었다.
“하아…….”
다급히 내려본 몸이 내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얄쌍하고 가벼웠다.
원래 몸으로 돌아갔던 것은 아주 잠시뿐이었으며, 나는 내 몸으로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또다시 잃게 되니 묘한 씁쓸함이 느껴져 입안이 썼다.
‘일단은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한승범의 몸 상태였다.
남이훤을 밀치고 차에 치였던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한승범의 몸은 멀쩡한 모양이었다.
‘역시 이것도 한승범이 가진 능력의 일종인 건가?’
내가 정신을 잃은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정말 사고를 당하고 한승범의 능력으로 몸을 수복한 것이라면 정말 예상대로 내 몸이 살아 있었던 그 기억은 꿈 따위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너희들을 두고 가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볼게.
‘어쩌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어.’
최적현에게도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그를 지킬 수 있을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확인했을지라도 그 구체적인 수단을 알 수가 없었다. 한승범의 어머니인 것처럼 보이는 그 시스템은 나의 접근을 허용하기는커녕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것 같았으니까.
‘그 사람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두 알고 있는 건가?’
나는 나를 지금까지 돌봐 준 것으로 추정되는, 마지막에 방에 나타났던 그 사람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끝끝내 그러지 못했다. 손을 보며 대략적인 연령대라도 추정하고 싶었지만,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나를 보고도 아무 말도 안 했었지.’
지금까지 내내 잠들어 있던 사람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있으면 누구든 당황을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소름 끼치도록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승범은 절대 아닐 거야.’
그 반응을 보고 나니 막연하게 부정하고 있었던 한승범이라는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왜냐하면 한승범은 내가 조금만 피곤한 모습을 보여도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 정도로 걱정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었으니까. 분명 한승범이었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최적현도 아니고, 한승범도 아니라면…….’
내 몸의 상태를 고려해 봤을 때, 그 사람은 내게 적지 않은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정성’ 같은 단어로 그를 표현해도 되는 것일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그것은 ‘집착’에 가까웠다. 그것도 병적인 수준의 집착.
내게 그 정도로 공을 들일 만한 인물은 도대체 누구일까. 솔직히 최적현이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는 내 몸이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지 않았던가.
나는 지끈지끈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재차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그 상태창은 내게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았으니까 일이 쉽게 흘러가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내게 가해졌던 ‘패널티’와 창 속에 가득 적혀 있던 나를 원망하는 말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방에 도배되듯 나타났던 빨간 창들이 생각났다.
‘‘결함’이라는 말은 최적현을 일컫는 건가?’
그 빨간 창이 나타난 시점은 최적현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직후였고, 그 이후로 시스템은 정말 결함이 생긴 것처럼 최적현과의 통화가 끊기는 순간까지 크게 흔들렸으니 그 ‘Glitch’라는 글자는 최적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시체가 사라지는 장면을 잊어버렸지만, 최적현은 끝까지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어쨌든 최적현은 한승범의 능력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 본인에게 이 일에 관해 이야기를 해도 아마 별다른 소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 이야기를 하든 말든, 최적현에게 1초라도 빨리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벌써부터 무섭다.’
이렇게 잠깐 고생하다가 한승범의 몸으로 돌아올 줄 알았으면 그냥 전화 같은 건 걸지 말걸. 끙끙거리다가 죽을 것 같아서 구급차 불렀더니 구급차가 도착할 즈음이 되니 갑자기 몸이 멀쩡해진 것 같은 묘한 난감함이 느껴졌다.
제대로 사정을 설명하지도 못하고 혼자 켁켁거리다가 전화를 끊는다니, 나 같아도 당혹스러울 텐데 그놈은 또 얼마나 황당했을지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골치가 아팠다.
“내 핸드폰…….”
그런 생각을 하며 비치적비치적 핸드폰을 찾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무언가가 내 어깨를 꾹 눌러 침대에 다시 몸을 눕히도록 만들었다. 그에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드니 엉망으로 흐른 눈물이 반쯤 말라붙어 푸석푸석한 것인지, 아니면 눅눅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
아, 앞에 제이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몸은.”
“…괜찮아.”
짧은 질문에 짧게 대답하자 충혈된 감색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요동치다가 짙은 회색 머리카락 아래로 숨었다. 그에 뭔가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즈음, 푹 숙인 고개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리고 잔뜩 잠긴 목소리가 물었다.
“…나한테 할 말 없어?”
‘할 말?’
일단 살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것 외에 떠오르는 감상은 그다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무신경해도 그렇지 그런 소리를 지금 이 타이밍에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따라서 나는 극심히 고민한 후 뒤늦게 입을 열었다.
“아, 수습하느라 고생 많았다. 미안하다.”
그러자 노기가 선명한 얼굴이 곧장 나를 노려봤다.
이게 아닌 것 같았다.
빠르게 오답임을 깨달은 나는 바로 다음으로 떠오르는 말을 뱉었다.
“남이훤이랑 조인찬은 괜찮냐?”
아무리 내가 직전에 밀쳤다고 하더라도 사고에 휘말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만약 그랬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그리고 조인찬을 만나려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건데, 그 날씨에 조인찬이 밖에서 오래 서 있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 또한 들었다. 무릎 상태가 아직도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런 마음을 담아 던진 질문에 제이는 이를 빠득 소리가 나도록 강하게 악물더니 괴로운 듯 머리를 움켜쥔 채 허리를 숙였다.
“왜, 왜 항상 형은 그런 식인 건데…….”
대화를 하고 있는데 표정이 보이질 않았다.
그에 놈과 시선이 맞도록 몸을 앞으로 숙여 아래에서 위로 녀석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지만, 녀석은 그럴수록 더욱 고개를 숙이기만 할 뿐이었다.
“…울었냐?”
“…….”
‘아.’
아마 내가 또 심각한 사고를 당해서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제이는 내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 더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나는 제이의 상태를 뒤늦게 짐작하고 놈의 뺨을 툭툭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뭘 이런 거 가지고 울어, 인마. 울지 마.”
그 말과 행동에 겨우 들어 올린 제이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음, 이것도 정답이 아니었던 모양이지. …정말 애들은 어렵다. 아니, 이제 애는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제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자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녀석이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그래, 알았다.”
이게 내가 원래서 일이 이렇게 된 게 아닌데, 하는 말이 턱끝까지 나왔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으면 제이가 나를 부둥켜안은 팔로 한승범의 삐쩍 마른 몸을 구겨 버릴 것 같아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내 팔자야.’
남들이 이 광경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분명 늑대가 토끼 위에 업혀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 같은 기묘함을 느낄 터였다.
남 보여 주기 껄끄러워도 뭐 어떡하나, 애가 이렇게 꺼이꺼이 울고 있는데. 일단 이놈부터 달래 놓고 모든 상황을 꼬이게 만든 달리를 처리하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
그에 눈동자를 굴리자 여지껏 제이의 덩치에 가려져 안 보이던 차운과 남이훤이 눈에 들어왔다. 제이가 대놓고 형이라고 부르길래 주변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두 놈들은 혼란스러운 듯 요동치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둘 다 할 말이 많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물론 이미 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훤아’라고 불러 버린 시점부터 아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대책 없이 마주하게 될 줄이야.
정신이 아찔해진 나는 내 어깨에 얼굴을 박고 있는 제이의 등을 재빠르게 두드렸다.
이 상황을 설명하든, 해결하든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거 아닌가.
“야, 야.”
“흐으…….”
그러자 실컷 우느라 정신이 없는 듯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얼굴이 영문도 모르는 채 위로 올라왔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철철 흘러나오는 눈물을 보자마자 녀석에 대한 기대를 깔끔하게 접고 다시 뒤통수를 눌러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어, 아니야. 계속 울어라.”
그러자 제이는 다시 코를 박고 울기 시작했다.
…많이 바빠 보였다.
‘그래,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지.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지. 인생은 혼자니까.’
설마 이런 가오 빠지는 모습으로 정체를 추궁받게 될 줄이야.
나는 묵직한 어깨와 꼼짝도 할 수 없는 상반신을 애써 무시하며 차운과 남이훤을 다시 바라봤다. 또, 애매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와 표정으로 어영부영 말을 꺼냈다.
“어, 그래서. 어디까지…….”
‘어디까지 아셨어요’로 말을 끝내야 할지, ‘어디까지 알았냐’로 말을 끝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런데 일단 내 정체를 알았다면 존댓말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대충 말머리를 흐리며 녀석들을 바라보자 줄곧 딱딱하게 굳어 있던 남이훤이 겨우 입을 열었다.
“내 이름,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해?”
‘역시.’
역시 각오했던 그 화제를 꺼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아직 혼란스러운 듯한 기색은 남아 있었지만, 결연한 눈빛을 보니 이제 와서 내가 부정한다고 해서 그것을 시원하게 믿고 넘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
그렇다면 내가 취해야 할 태도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내 소중한 존재들이 스스로 내 정체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찾아오면 그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기지 않는 것. 그 자세에 변화는 없었다.
아무런 동요 없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남이훤은 몸을 흠칫 떨며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할 말을 잃은 듯한 녀석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차운이 말하기 시작했다.
“…계속 물어보고 싶었어요, 제이가 왜 승범 씨를 계속 ‘형’이라고 부르는 건지. 처음에는 사고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차운의 말에 소리 없이 들썩거리는 등을 한번 내려봤다.
‘나랑 합의가 안 된 것 같은데.’
하긴, 누굴 탓하겠나. 상황이 그 지경이었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한승범’으로 대하길 바라면 그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창 같은 게 나와서…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갑자기 승범 씨의 몸이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분명 즉사 수준의 사고였는데.”
“…….”
“이훤이가 해 준 말이나 제이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계속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승범 씨가 형을 너무 많이 닮아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 창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수 있다면, 형을 살아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이 없는 듯 더듬더듬 이어진 말에는 혼란이 가득했지만, 그 모든 사실이 가리키는 바는 오직 하나였다.
바로 ‘서유태는 한승범이다’는 것 말이다.
나는 그것을 직감하고 덤덤하게 물었다.
“그래서?”
‘한승범’보다는 ‘서유태’에 더 가까운 말투였다,
그것을 들은 차운은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는 듯 몇 번씩이나 입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기어갈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심하지 않을게요. 실망하지도 않을 테니까… 아니, 실망해도 괜찮으니까 사실을 말해 줘요.”
“…….”
“…정말 형이야?”
그 질문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나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랜만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숨을 파르르 떤 차운이 휘청거리는 다리로 다급하게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 으스러질 것처럼 강한 힘으로 나와 제이를 함께 끌어안았다.
하지만, 남이훤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