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한승범은 유태 형과 정반대의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서유태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면 일단 생김새의 차이에 정신이 팔려 절대 한승범과 서유태 사이에 유사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이를테면 몸집이라든가.
한승범도 작은 키는 결코 아니었다. 판테이온 멤버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 있을 때면 꽤 큰 편에 속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유태 형은 방송국 복도를 걸을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무심코 쳐다보게 될 정도의 장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와 비교를 하면 아담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비쩍 마른 팔다리는 말할 것도 없었고.
이목구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한승범이 뚱한 표정과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차가워 보인다’는 평을 들어도 형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승범이 소복하게 쌓인 눈 같은 인상이라 하면, 서유태는 새카만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사람이었다. 짙고 매서운 눈매와 칼로 벤 것처럼 굴곡 없이 날카롭게 뻗은 콧대와 턱선, 핏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서늘한 피부, 동양인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흑갈색 머리카락과 다르게 완전한 흑색을 띠는 머리카락,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한 스타일까지. 그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꼭 현실의 인간이 아닌 이질적인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애초에 한승범은 미남보다는 미인에 훨씬 가까운 외모인데 어떻게 그를 보고 머리카락을 그렇게 길게 기르고도 ‘예쁘다’, ‘참하다’ 같은 농담을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남자를 떠올릴 수 있겠는가.
다만 여기까지는 서유태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이들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만약 서유태와 일정 수준 이상의 관계를 가져 본 이라면 한승범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이 한 번쯤은 생겼을 것이다. 제이처럼 관찰력이 뛰어난 이라면 더욱 의심이 되었을 것이고.
왜냐하면 서유태는 외모만큼이나 특별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한승범인 척을 하기 위해 했던 연기들을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나왔다. 그렇게까지 숨기고 싶었다면 다른 건 다 제쳐 두더라도 프리즘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것만큼은 고수했어야지. 그것 하나만 지켰다면 우리는 끝까지 한승범의 정체를 의심하지 못했을 텐데. 왜 그렇게 사람이 미련한지 모르겠다.
‘…그렇게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가 결국 이런 거였다니.’
나는 차운이 이런 저런 말을 두서없이 내놓을 즈음부터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 훤아!
– …미안하다.
아니다. 어쩌면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줄곧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잘 안 돌아갔던 것 같다.
“오랜만이다.”
그리고 자신이 서유태임을 부정하지 않는 말에 지금까지 ‘한승범’에게 뱉었던 폭언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 야… 넌 속도 없냐? 너 X 같다고 욕 퍼붓는 사람이 밥을 처먹었는지, 안 처먹었는지 그게 그렇게 신경 쓰여?
꾸역꾸역 식사를 챙겨 주려 드는 꼴이 보기 싫어 그런 말을 했다.
그런 모습마저 서유태와 너무 닮아서 그를 떠올리게 만드는 게 싫었다.
의도적으로 따라 하는 게 아닌 이상 이렇게까지 비슷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부아가 치밀었다. 지금까지 우리를 이용해 먹으려 들었던 존재들과 한승범이 똑같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를 거부하고 싶지 않은 듯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라도 하듯, 강하게 거부감을 표현했다. 그렇게 하면 내 숨통을 조이는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사라질까 싶어서.
– 너 뭐야. 서유태 따라쟁이 뭐 그런 건가? 우리 멤버들은 비슷한 놈 하나 찾았다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거고?
치세 형이 한승범을 작업실에 부른 것은 앨범 작업을 위함이라는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다.
사실 내가 정말 한심하게 생각했던 건 멤버들이 아니라 나였다.
‘비슷한 놈 하나 찾았다고 좋아하는 배신자’가 내가 되어 버릴까 봐 두려웠다.
– 죽은 사람 흉내 내면서 인생 낭비하면 마음이 좀 편한가 봐. 그런데 네가 아무리 그렇게 발악해 봤자 넌 고작 대체품이야. 죽어도 서유태는 못 돼. 왜? 서유태는 죽었으니까. 가루가 돼서 그 유골함에 담겼으니까! 영영 못 돌아와.
서유태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 한승범이 그의 빈자리를 채워 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그런 생각을 나 자신에게 새겨 놓기 위해 말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 납골당을 다녀오려 했다. 당장 이 두눈으로 뼛가루가 담겨 있는 그 항아리를 확인해야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주제에 결국 그 뒤로 또 술을 마셔서 회피하려고 했고.’
술과 분노는 회피의 도구였다.
– 네 아버지 술 취해서 사고 치는 거 창피해서 커리어 무너질 거 감수하고 이혼했어! 그리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겨우 재기했는데, 왜 너까지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거야! 너, 엄마 괴롭히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니? 어디 한번 죽어 보라고? 제발 엄마 평판에 문제 만들지 마.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정말 그때는 다 내팽개치고 죽어 버릴 거니까!
– 감독님 계시면 방긋방긋 웃으면서 인사해. 어떤 디렉이 있어도 싫은 티 내지 말고. 울지도 마. 알겠지? 엄마를 자랑스럽게 만들어 줘야지. 너는 절대 네 아버지처럼 되지 말아라.
– 네 이름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이 떠올라서 불쾌해. 저열하고 무능해 보이잖아.
어머니를 향한 열등감으로 매일 술에 빠져 살았던 아버지와 내게 고함을 지르며 분풀이를 하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 …너 나 괴롭히려고, 어디 한번 죽어 보라고 이러는 거냐? 그런 거지?
어느샌가 나는 그 두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금만 더 솔직해졌다면, 신중했다면 그 화살이 본래 어디로 향해야 했던 것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다른 멤버들은 다 잘해 낸 일이 내게는 왜 그리도 어려운 건지. 나는 내가 응당 감당해야 마땅한 감정과 책임들을 버티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고 비겁하여 죄 없는 사람을 상처 입혔다.
그리고 그 ‘죄 없는 사람’은 내가 결코 상처 입혀서는 안 되는 이였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해서 내가 했던 일이 없는 게 되나?’
왜 우리를 떠났던 건지. 마음이 힘들어 그랬던 거라면 이제는 괜찮아진 건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 멤버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이 코앞에 보이는데 정작 내 다리는 꼼짝도 하질 않았다.
‘용서를 빌어야 하나?’
용서를 빌면 분명 곧바로 ‘괜찮다’는 말이 돌아올 것이다.
나는 그 다정을 알고 있기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는 것조차 하지 못한 채 죄인처럼 서 있었다.
서유태처럼 무른 인간이 먼저 ‘미안해할 필요 없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 이유는 분명했다. 저 사람은 아마 내가 자신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고 자체가 없으니까.
‘…정말 한결같네.’
서유태의 애정은 여전히 투박하고 어려워, 내게는 버거웠다.
그런데 그게 사라지면 또 삶이 사무치게 그리울 것 같고 잠깐 또 이렇게 앞에 아른거리면 쥐고 싶어 안달이 날 것 같았다.
“…….”
나는 서유태라는 인간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느끼고 있는 신뢰나 친밀감, 고마움과는 별개로 말이다.
긴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미세한 이질감의 이유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생각해 보았으나 결국 나는 답을 찾지 못한 채 몇 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떠나고 후회에 가득 차 함께했던 모든 시간들을 되짚어 보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후에야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서유태의 말과 행동에는 언제나 뒤틀린 부분이 있었다.
내가 본 사람 중 ‘평범함’이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유능함이나 명성과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정이 많았으며,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희생적인 사람이었다.
제 품에 끌어안은 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했고 모든 위협의 판단 기준은 본인이 아끼는 다른 이들이 상처를 입었는지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언젠가 자신을 찌르는 일이 생기더라도 원망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서유태의 애정에는 도저히 정상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기이함이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새어 나오는 사소한 면들조차.
형은 우리가 외출을 하려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 눈을 가물가물 감으며 옷매무새를 다잡아 주었고, 식사를 할 때면 자연스레 수저 위에 반찬을 올려 주곤 했었다. 불쑥불쑥 남의 몸에 손을 대거나 본인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습관들은 분명 거기에서 온 것이겠지.
그리고 그 행동들의 뿌리를 찾아가 보면 그곳에는 언제나 서유성이 있었다.
네 살 어린 동생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어엿한 어른이 되는 순간까지 형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은 채 굳어 버린 것이었다. 형제보다는 부모에 가까운 모습으로.
– 서유성은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었으니까. 못 받은 사랑의 반절이라도 느끼게 해 주려면 내가 열심히 해야 해.
– 타고나길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차근차근 가르쳐주면 돼. 아버지나 다른 새끼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는 서유성 포기 안 할 거야.
서유태는 어린 나이부터 보통 사람들이라면 무너질 법한 일을 겪고도 휘청거리지 않는 강인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과 동생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 그거 알아? 형은 아직도 어머니가 가지고 있었던 말버릇을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고 있어. 나는 딱히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꼈던 것도, 어머니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형이 너무 필사적이라 그냥 모르는 척하기로 했어. 그러면서 버티는 것 같았거든.
– 오히려 기쁜 것 같기도 해. 내가 형을 필요로 했던 것만큼, 형도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서유성 또한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었으니 분명 이 생각에 틀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인격은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형성되는 것이며 인생은 곧 그가 경험한 상처로 설명할 수 있으니. 결국 인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의식중에 제 결핍과 상처에 휘둘리며 행동하고 말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형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았다.
결국 서유태의 비정상적일 정도로 희생적인 애정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그것을 감싸며 발버둥쳤던 세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유태가 멤버들에게 쏟은 애정이 모두 서유성의 덕분이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서유태는 원래 타고나길 다정한 사람이었으니 아마 정상적인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혼자 자랐어도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아꼈을 것이다.
다만 지금 서유태의 애정 안에 존재하는 병적인 수준의 관용이 서유태의 상처와 결핍에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쉬이 그것에 편승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
그런 생각에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 방에서 빠져나가려 할 즈음,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은 차운과 유제이를 감당하며 끙끙거리던 형이 ‘훤아’ 하고 나를 불렀다.
“또 뛰쳐나가지 마라. 그러면 다시 또 붙잡으러 갈 거니까.”
그리고 이어진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대뜸 들려 왔다.
“고맙다.”
그에 멍하니 고개를 멍하니 들자 형은 멋쩍은 듯 웃으며 이어 말했다.
“너 상 탄 거 봤거든. 연기 계속하라고 했던 거… 후회 안 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
“…….”
“부모님 때문에 꽤 좋아하는 걸 포기하는 건 좀 아깝잖냐. 생각보다 재미있었지?”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자 가벼운 손짓과 함께 다시 퍽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리 와 봐.”
그 말에 홀린 듯 형의 손짓에 따라 한 발, 한 발, 순순히 다리를 움직여 그에게 다가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형의 손이 내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잘했어. 자랑스럽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그동안 응어리진 마음이 탁하고 풀리는 듯했다.
그리고 이 거짓 하나 없는 올곧은 마음을 어떻게 나의 잣대로 잘못되었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뒤틀린 것이라고 해도 이것은 거짓 하나 없는 분명한 애정이었다. 형이 돌부리가 가득한 인생 속에서 하나하나 쌓아올려 가며 배운 사랑의 방식이었다.
나는 이것을 놓을 수 없어서…….
“…형.”
“오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