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4)
24화
작은 녹음기를 손에 꾹 쥐고 복잡한 머리를 정리했다.
“후우…….”
이런 방식으로 모은 것들은 증거로는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굳이 재판에 활용하지 못하더라도, 스캔들을 터트릴 때는 이런 종류의 증거들이 아주 유용했다. 지금의 나는 어차피 재판을 통한 처벌에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필요한 건 객관적인 설득력을 갖춘 무기가 아니라, 대중에게 자극과 충격을 줄 수 있는 무기였다.
나는 전생을 통해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 강혁우를 상대하려면 더 모아야 해.’
아마 고작 이 정도의 스캔들로 강혁우는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작은 잎사귀에 불과했다.
하지만 작은 잎을 모으고,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거대한 나무가 될 것이다.
“…돌아가자.”
녹음기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무도 없는 통로를 걸어갔다.
“리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뭔가 길쭉한 게 튀어나왔다.
젠이었다.
‘미친, 깜짝이야.’
“…아직도 안 자고 뭐 해.”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먹으로 꾹 누르고 입을 열었다.
“할 말 있습니다.”
“뭔데?”
“…….”
놈은 내 물음에도 쉽게 말문을 떼지 못하며 망설였다.
‘아.’
젠은 박상중이 꾸미고 있는 일을 알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마 박상중이 내게 또다시 위험한 짓을 할까 걱정이 되어 기다린 것 같았다.
“왜, 또 무슨 짓 당할까 봐?”
작게 웃으며 묻자 젠이 삐걱거리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를 들었습니다. 리다한테 나쁜 짓 하겠다고. 외국인이라 한국말 못 알아들을 거라고 의심 안 했습니다.”
“그래서 박상중이 나한테 접근할 때마다 막았던 거야?”
“리다한테 나쁜 짓 했으면서 동료인 척하는 것 구역질이 납니다. 동료는 지켜 주는 존재입니다.”
묘하게 박상중을 배척했던 놈의 태도가 그제야 이해됐다. 강혁우와 박상중의 통화를 엿들은 이후, 내내 박상중을 막으려 촉을 세우고 있었던 것 같다.
“비열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박상중 군. 인간의 도리를 잊으면 들개가 된다.”
‘말투 왜 이래.’
도대체 무엇으로 한국어를 배운 것인지 어휘는 완벽했는데 말투가 기묘했다.
일단 놈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사과도.
“아무튼 고맙다. 이제는 괜찮아. 박상중이 옷까지 훔쳐 가고 별짓을 다 했더라고. 나는 네가 가져간 줄 알고…….”
“아, 옷 가져간 거 저입니다.”
오해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려던 중 놈이 내 말을 댕강 자르고 대뜸 말했다.
“…너?”
“네.”
‘…설마.’
내 옷과 바뀌어 놓여 있었던 외투는 디자인이 상당히 심각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것을 가져다 놓은 줄 알고 괴롭힘으로 착각했던 것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만 젠의 소지품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촌스러운 금발, 과하게 화려한 액세사리. 밟을 때마다 번쩍번쩍 빛이 나는 운동화.
“선물. 제일 세련된 옷입니다. 화려한 거 좋아.”
뿌듯해 보이는 나기 젠이 엄지를 척 들며 말했다.
“가루를 박상중 군이 외투에 붙인 걸 봤습니다. 리다의 옷은 버려야 했습니다. 알레르기 조심해야 합니다.”
요컨대 박상중이 견과류 가루를 몰래 옷에 묻힌 것을 보았고, 그것을 몰래 버리느라 본인이 가지고 있던 옷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내게 준 것이었다.
“…….”
할 말을 잃은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젠이 손가락으로 수줍게 하트를 그렸다.
“리다의 수호천사.”
“…와서 옷 가져가라.”
왜 야마다 하야토가 이놈과 친해지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성격 한번 독특하네.
* * *
“그럼, 지금부터! Survive IDOL 미니 운동회를 시작하겠습니다!”
1차 경연이 마무리되고 다음으로 예정된 스케줄은 미니 운동회였다. 스포츠웨어 브랜드의 PPL을 진행하는 김에 2차 경연의 팀 배정을 한꺼번에 진행하려는 모양이었다.
미니 운동회의 진행은 제이가 맡게 되었다.
“좋은 아침!”
“…….”
내게 아는 척을 하며 해맑게 손을 흔들기에 그냥 못 본 척했다.
편애한다고 욕 처먹으면 어떡하려고 저러나 모르겠다.
“전체 종목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연습생은 팀원 우선 선택권을 가지게 됩니다. 참가는 자유이며, 참가를 희망하는 연습생은 앞으로 나와 주세요.”
계단에서 생쇼를 하는 동안 온몸에 멍이 들어버린 나는 그냥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팬들은 픽셀 단위로 방송 캡처본을 볼 텐데, 마음껏 팔다리를 휘적거리면 분명 루머가 생길 것이다.
왕따라든가. 왕따라든가. 왕따라든가.
내게 입히라고 지정된 PPL 의상이 있었기 때문에 손목 아대부터 헤어밴드까지 완전히 갖춰 입은 상태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형, 오늘 입은 거만 보면 운동회에 목숨 건 것 같은데 참가 안 해요?”
“시꺼.”
PPL 때문인 줄 뻔히 알면서도 깝죽거리는 도유다의 머리를 꾹 잡아 눌렀다.
“가장 데리고 오고 싶은 연습생이 누구인가요?”
참가를 위해 모인 연습생들에게 제이가 다가갔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딱 보기에 좋은 결과를 거둘 것 같은 우강원에게 물었다.
“한승범 연습생입니다.”
“아, 역시! 그렇군요. 저 같아도 한승범 연습생이 탐날 것 같습니다. 편곡부터 안무까지 모두 가능한 유능한 연습생이니까요!”
“네, 탐이 납니다. 열심히 한번 해 보겠습니다.”
우강원이 내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파이팅.’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우강원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그러는 동안 또다시 이동한 제이가 이화영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이화영 연습생은요?”
“저도 한승범 연습생 선택하겠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나였다.
이화영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나와 팀을 맺어 보고 싶다는 의향을 내보였으니까.
‘너도 파이팅.’
“오호, 한승범 연습생이 굉장히 인기가 많네요. 아주 열렬한 러브 콜을 받고 있어요.”
솔직히 누가 1등을 하던 관심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내 입맛에 맞게 두들겨 놓으면 된다.
“본인은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이네요. 저렇게까지 흥미 없어 보일 수가 있나요. 소감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제이가 나와 인터뷰를 하려는 듯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나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놈을 응시했다.
‘부르면 뒤진다. 네가 와.’
온몸이 아파 죽겠는데 똥개처럼 부르는 대로 왔다 갔다 하는 건 딱 질색이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옳지.
빛의 속도로 뛰어온 제이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참가 연습생 중 과반수가 한승범 군을 선택했는데요. 한마디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잠시 고민하다 양팔을 교차해 가슴팍 위에 두었다.
“모두들, 나를 위해 싸우지 말아 줘.”
“표정 보면 그냥 이기는 사람 따라가겠다는 것 같은데요?”
“하하하!”
내 어색한 히로인 연기와 제이의 태클에 연습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 어쩌겠는가. 참가한 놈들이 하나같이 다 진지충뿐인데 나라도 웃겨야지.
분량을 다 땄다고 생각했는지 작가가 스케치북에 시작하라는 말을 써서 보여 줬다.
‘…그러고 보니 메인 PD 어디 있지?’
이런 중요한 이벤트에는 항상 메인 PD가 참석했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엿듣기 해야 하는 건가.’
나는 아이돌이 되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 도청기가 되려는 것인가.
그러니까 싸게 싸게 상태 창 줬으면 다 해결됐을 문제를 왜 굳이 이런 개고생을 시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능력을 사용해도 유의미한 정보가 들어오는 경우는 극단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참 난감했다. 무슨 바다낚시 하는 것도 아니고.
‘공민석.’
– …돌려.
능력을 사용해 보니, 메인 PD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하도 속닥거리길래 왜 이러나 싶었는데, 들어 보니 그럴 만한 내용이었다.
엿들은 내용을 곱씹던 중 잔뜩 흥분한 제이의 외침이 들렸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준비! 땅!”
.
.
.
1위는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우강원이었다.
압도적인 점수 차이에 대부분의 연습생들이 의욕을 잃고 늘어져 있는 와중, 제작진들이 이것만큼은 꼭 해야 한다며 미션 달리기를 진행했다.
“미션 달리기의 포인트는 1등 30점입니다. 순위가 이것으로 뒤바뀔 수도 있어요! 나머지 연습생들도 한번 의욕을 보여 줍시다!”
‘30점 같은 소리 하네.’
지금까지 쌓아 온 순위가 단번에 뒤바뀔 수 있는 점수였다.
사실상 미션 달리기가 메인이었고, 나머지는 헛수고에 가까웠던 것이다.
‘우강원이 순해서 다행이지, 뭐.’
팬덤 장사에는 미션 달리기만 한 게 없었다.
팬들은 내 새끼가 누구랑 어떤 관계이고, 다른 동료들에게 어떤 이미지인지 항상 궁금해하니까.
“준비, 땅!”
제이가 신호를 주자마자 출발선에 서 있던 연습생들이 의욕에 넘쳐 뛰쳐나갔다.
“으아아! 비켜!”
“모자 쓰고 있는 사람!”
“최연소가 누구지? 단비?”
‘시끄러워.’
미션을 확인한 연습생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강원은 곤란한 미션에 걸려 버렸는지 곰처럼 이리저리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아아, 우강원 연습생! 이렇게 1위를 뺏기는 건가요? 꼼짝도 못하고 있습니다!”
우강원의 다음으로 순위가 높은 것은 이화영이었다.
만약 이화영이 이번 종목에서 1등을 차지하고, 우강원이 3등 이하를 기록하면 전체 종목 1등이 바뀌게 될 것이다.
‘이화영은…….’
우강원에게서 시선을 돌려 보니 드물게 상기된 얼굴을 한 이화영이 보였다.
쪽지를 펼쳐 본 놈은 짐작 가는 사람이 있었는지 바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 형! 니콜라스 형이 저 쳐다봤어요. 저인가 봐요! 가장 높은 음 낼 수 있는 사람이라든가!”
옆에 있던 도유다가 폴짝폴짝 뛰었다. 발목을 다쳐서 운동회에 참가하지 않은 주제에 들떠 있는 걸 보니 속이 턱턱 막혔다.
“오면 거절해.”
“우우, 그러면 미안한걸요.”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도유다는 바보라 거절을 못 한다.
한숨을 쉬고 이쪽을 향해 뛰어오는 이화영을 막기 위해 도유다의 앞에 섰다.
“도유다는 지금…….”
“와줘.”
“어?”
거절의 말을 뱉기도 전에 이화영의 손에 팔이 강하게 잡혔다.
“그엑.”
그리고 볼품없는 소리만을 남긴 채 그대로 끌려갔다.
‘나였냐고.’
“이화영 연습생이 한승범 연습생을 데려갑니다! 과연 저걸 데려간다고 표현해도 되는 걸까요?”
사람을 끌고 갈 거면 잘 따라오는지도 확인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이 미친놈은 진짜 앞만 보고 지 멋대로 뛰어갔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
덕분에 자세도 잡지 못한 나는 바람 앞의 태극기처럼 펄럭거리며 질질 딸려갔다.
“이화영 연습생 첫 번째로 골인입니다!”
“쪽지 확인하겠습니다.”
도착선을 넘자 제이의 옆에 서 있던 제작진 하나가 쪽지를 건네받았다.
“…….”
“…….”
제작진이 쪽지를 펼쳐 보는 동안 이화영과 나 사이에 서먹한 공기가 흘렀다.
나는 카메라가 있는 앞에서 놈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허탈하게 잡혀 있었다.
“큷.”
‘죽인다.’
쳐 웃고 있는 것은 제이뿐이었다.
“쪽지 내용 발표하겠습니다. 이화영 연습생의 미션은!”
쪽지를 전달받은 제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제일 잘생긴 놈이거나 제일 실력 좋은 놈이겠지, 뭐.’
장담하건데 이화영의 지정 아이템은 그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미션이 공개됐을 때 할 리액션을 머릿속에 생각해 둬야 했다.
“‘가장 친한 사람 데려오기’였습니다!”
‘뭐?’
리액션이고 뭐고 그대로 돌처럼 굳었다.
히죽거리며 곁에 다가온 제이가 쪽지를 내 손에 쥐여 줬다.
“빛나는 우정을 응원합니다아?”
천천히 고개를 내려다보니 쪽지의 내용이 보였다.
[가장 친한 사람 데려오기.]진짜였다.
이화영은 무엇이 문제냐는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봤다.
나는 차마 무어라 말도 못 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새끼야, 친구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