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속사포처럼 쏟아 낸 말에 너는 할 말을 잃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네가 나를 막을 수 없도록,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기 위해 모든 계략을 꾸몄고 실제로 그건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걸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게 되었는데, 별로 즐겁지가 않았다.
‘…왜?’
내 손으로 네게 상처를 줘서?
모르겠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내 감정을 돌아보는 건 어려웠다. 그 행위에 일말의 효율성도 찾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감정뿐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 그렇게 감정을 등한시하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지.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야. 그건 너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니까.
– 너를 소중하게 여겨 줘. 네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다른 사람들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야.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내 목적을 위해 착실히 나아가고 있는데, 내가 원하던 것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은 모순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뭐였지?’
밑바닥까지 침체된 감각으로 조용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문득 네가 데뷔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 그렇게 술 처먹으면서 인생 낭비할 거면 입 다물고 따라와. 내가 그것보다 훨씬 저 즐거운 무대를 보여 줄 테니까.
무대 위에서 빛나는 너를 보고 있으면 고양감이 느껴졌다.
그때는 행복이라는 게 무엇인지… 나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상처받은 듯한 네 얼굴을 보고 있으니 무언가가 어긋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네가 슬퍼할 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짓을 벌였다. 그리고 내심 어떤 반응이라도 보이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면 좀 살아 있는 사람 같아 보일까 봐.
“…나 너랑 싸울 기운 없어.”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역시나 마른 볏짚처럼 힘없는 반응이었다.
건조한 목소리가 작게 흩어지는 것에 나는 눈을 길게 감았다.
내가 그렇게 지키고 싶어 했던 서유태는 이제 없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고,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몸이 앞으로 훅 끌려가 매트리스 위로 곤두박칠쳤다.
“그러니까…….”
‘…어?’
이상했다.
나는 지금 너와 단둘이 이 방에 있었다. 따라서 내 몸에 손을 댈 수 있는 이는 너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는 내 몸에 손가락도 댈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지지 않았던가.
“선 넘지 말고 슬슬 적당히 해. 봐주는 것도 이젠 한계야.”
그런데 지금 내 눈앞의 너는, 내 멱살을 단단히 움켜쥔 채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을 적의 ‘서유태’처럼. 아까까지만 해도 생기를 잃은 채 죽어 가던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이게 현실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선을 넘어?’
어떤 걸 말하는 거지?
억지로 안정제를 놓은 것? 아니면 나를 두고 이 세상을 떠나려는 너를 억지로 잡아 묶어 놓은 것? 그것도 아니면 서유성의 죽음을 네게 숨기고 있었던 것?
대부분의 사람이 별 고민 없이 바로 알 수 있을 터인 답을 찾기 위해 한참동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그러고도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천천히 네 얼굴을 올려봤다.
그러자 자연스레 이전의 네가 내게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 뭐가 옳은 건지,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으면 나를 생각해. 너를 기준으로 삼지 말고 내가 뭐를 싫어하고 거부감을 느끼는지 고민해 보면 좀 더 쉬워질 거야.
나는 그 말을 두 번, 세 번 곱씹은 후에야 아, 하고 답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앞서가지 마. 알려 줬잖아, 이런 짓은 하면 안 된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사람들한테 상처 주는 건 용서 못 해. 그게 나를 위한 일이라면 더더욱.”
“…….”
“예상 못 했다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나 하고 있고……. 너, 일부러 이런 거잖아. 내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 내가 이번 생으로 맺은 인연들 때문에 흔들릴까 봐. 그런데 어떡하냐. 나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그룹에서 나가 달라는 소리 들었을 때도 나는 내 멤버들 사랑했어. 그런데 고작 내 존재 하나 부정당한 거로 그놈들을 저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너까지 끝까지 붙잡고 있는 거 보면 감 안 와?”
너는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네 소중한 존재들을 마치 도구인 양 함부로 대하고 상처를 주어서…….
– 다른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 어렵다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애들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봐. 내가 그놈들을 어떻게 대하고, 아껴 주는지 잘 보고 배우면 돼. 할 수 있어. 다행히 나한테 하는 걸 보면 너는 네가 생각하는 거나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 어때, 잭도 이제 제법 귀여워 보이지 않아? 잭, 가서 ‘안아 주세요’ 해. ‘안아 주세요.’ …아, 도망갔다.
이 사회에서 단절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너와 나눈 약속을 너무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어겨서 화를 내고 있었다.
서유성의 진실을 알게 된 이후로 네게서 절망감 외에 다른 감정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런데 그게 고작 분노라니, 짜증이 났다.
“…….”
– 너를 소중하게 여겨 줘.
…아니, 이건 짜증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정말 우습게도 서러운 것 같았다.
처음으로 이름을 붙인 감정에 이를 악문 나는 잠긴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 걱정 없이,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도 이런 짓 안 했어.”
– 그러니까 모든 일이 끝나면 원래 몸으로 돌아가자. 알겠지?
죽은 사람을 살려 낼 힘은 없었다.
그러니 그 시절과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살려면 너는 계속 살아 있어야 하고, 원래 몸으로라도 돌아오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는 안 되잖아. 너는 나를 두고 떠나려고만 하고,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려는 것뿐인데.”
나는 너와 함께했던 시간이 행복했다.
“…나는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단 말이야.”
돌아가고 싶었다.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너잖아. 그런데 왜 이건 이해해 주지 못하는 거야.”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액체가 이상했다.
다른 사람의 앞에서 이렇게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 주는 건 불쾌했다.
마치 벌레가 뇌의 사이사이를 기어다니는 듯 소름이 끼쳐 참는 것이 고역이었다.
내가 이렇게 추하게 변한 것은 모두 네 탓이었다.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잖아. 왜, 왜 내 눈에 띄어서…….”
왜 나를 이렇게 절박하게 만들어서.
왜 이렇게 추잡하게 눈물까지 흘리며 매달리게 만들어서.
“…최적현.”
왜 고작 이따위 체액을 보고, 그렇게 괴로운 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할 만큼 다정해서.
항상 그런 식이었다, 너는. 내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품에 안겨 줘 놓고는 그 뒤로는 모르는 척 사라져 버렸다. 다른 사람들과 원활하게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웠던 것은 모두 너와 함께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노력들을 모두 무용지물로 만들어 놓은 줄도 모르고 그냥 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강요하지 않고, 그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길 바라는 게 사랑하는 마음이야.
“…내가 너를 불행하게 만들었어?”
이런 감정은 알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흘려 보는 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채 그저 너를 절박하게 바라보고만 있자 넋을 잃은 채 나를 응시하던 네가 천천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멱살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내 몸을 툭, 툭, 하고 끌어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야, 최적현.”
저항하지 않은 채 네가 움직이는 대로 작게 흔들리고 있던 중, 곧 멈춘 손이 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너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땅이 꺼질 듯 숨을 내쉬더니 입술을 세게 다물고는 스르르 손의 힘을 풀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들어 올린 손을 내 어깨 위에 올린 너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은, 억눌린 듯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약속했잖아, 안 죽는다고……. 그렇게 불안하면 몇 번이든 말해 줄게. 나는 못 죽어.”
그토록 바라던 삶을 약속하는 말이 네 입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그를 믿을 수 없어 멍하니 네 이름을 중얼거렸다.
“…유태야?”
“서유성을 죽인 놈들이 이 세상에 똑바로 살아 있는 이상, 내가 죽고 프리즘 멤버들이 강혁우한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봐 버린 이상 그놈들을 죽여 버리기 전까지는 절대 죽을 수 없다고.”
하지만 너는 부정이든 뭐든 쓸데없는 이야기는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아예 내 입을 틀어막고 계속해서 제 말을 늘어놓았다.
“미안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예전처럼은 못 살아. 나한테 서유성은 그런 존재였으니까.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어, 내가 앞으로 멀쩡한 정신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정신이 망가졌든, 서유성이 그리워서 돌아 버리겠든 그런 건 관심 없다고. 팔다리 다 꺾여도 그놈들 찢어 죽일 때까지는 기어다니면서라도 살 거야. 또 모르는 사이에 바다까지 들어가는 일이 생겨도, 어떻게든 정신 차려서 걸어 나갈 거야.”
“…….”
“게다가 웬 정신 나간 친구 새끼가 목숨 가지고 장난질까지 하면서 협박해 대는데 싫어도 정신 차려야겠지, 너 살리려면.”
그런 말을 뱉은 너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은 채 나를 다시 살벌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더니 내 턱을 억세게 움켜쥐며 말했다.
“내가 너 때문에 방심하고 있을 새가 없지. 이 또라이 새끼가… 힘들어 죽겠어서 잠깐 정신 놓고 있었더니 감히 그사이에 이딴 사고를 쳐? …차라리 노린 거라고 하지 그러냐.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나 때문에 내 새끼들 죽어나는 꼴 보고도 마냥 넋 빼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인간이거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서유성의 죽음과 이 세상이 아무리 널 무너트리려 해도, 결국 네 중심은 변하지 않는다.
“네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헛소리는 또 뭐야. 아주 고맙다, 억지로든 정신 차리게 해 줘서. 틈만 나면 엇나가려고 하고, 사람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숨 쉬듯이 사람 가스라이팅하는 새끼를 나도 참 뭐가 예쁘다고 붙잡고 있는지.”
너는 지켜야 할 존재들이 있을 때 누구보다 강해지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너는 나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처럼 치열한, 삶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리자 한승범의 얼굴 위로 어렸을 적의 네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러니까… 그래, 네가 아직 강혁우를 만나지 못하고,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던 때였다.
– 곱상하게 생긴 도련님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야?
너무 여러 번 입어 허름해진 옷과 보통 남자들과 비슷할 정도로 짧지만, 직접 자른 듯 군데군데가 엉성한 머리카락 그리고 굳은살이 벌써 박여 거칠어진 손을 보면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어렸던 네가 얼마나 안 좋은 환경에 놓여 있는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너는, 그 황폐한 곳에서 홀로 당당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고난이 닥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발버둥 치는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찬란함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네게 마치 홀린 듯 이끌려 버렸다.
– 여긴 동네가 꽤 험하거든. 딱 봐도 미친 듯이 비싸 보이는 옷이랑 시계 치렁치렁 달고 있는 주제에 그렇게 꽐라 돼서 돌아다니면 100% 소매치기 당하거나 삥 뜯길 텐데.
양손으로 머리채를 움켜쥐고 정신을 잃은 남자들을 질질 끌고 다니고 있었던 것이나 듬직한 어깨 한쪽에 동생의 것인 듯 초등학생이나 쓸 법한 가방을 매고 있었던 것도 네게 시선을 줄 수밖에 없는 요소이긴 했지만 말이다.
– …그 사람들처럼?
– 아니, 얘네는 그냥 내 동생한테 시비 걸다가 나한테 얻어터진 애들. 이런 애들이 당신 같은 사람도 괴롭히는 거지.
– 하하, 나는 괜찮아. 계속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거든.
– …진짜 도련님이네, 그렇게 경호원이나 줄줄이 데리고 다니는 거 보면. 뭐, 본인이 괜찮다면 상관은 없지만…….
너는 분명 기억도 못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날은 너를 두 번째로 만난 날이었다.
–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해?
– …뭐라고?
– …그냥, 좀 지친 것 같아서.
너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