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쓰레기가 가득 차 있는 방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것은 자신을 꾸미는 것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어머니가 매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물건을 사들이고, 그대로 바닥에 쌓아 두기를 반복한 결과였다.
‘아마 어머니는 그때부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이겠지.’
어린 나이부터 나를 돌봐 주었던 유모는 내가 그런 어머니의 근처에 다가가는 것을 몹시 걱정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렸던 나는 몇 번쯤은 그 쓰레기 더미를 치워 보기도 했던 것 같지만, 곧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집을 보며 그 행위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한 번도 입지 않은 명품이나 온갖 화장품이 쓰레기 더미의 주된 물건이었기에 냄새가 난다든가, 벌레가 꼬이는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 적현아, 봐. 다 그 사람이 사 준 거야. 아아, 분명 그이도 아직 나를 사랑하는 거야…….
내가 기억하는 한 어머니는 항상 그런 상태였다.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도 않고, 그저 거울 앞에 앉아 빼어난 외모를 더욱 아름다워 보이도록 치장하는 것에만 열중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긴 속눈썹과 붉은 입술, 루비 같은 눈동자, 백옥 같은 피부에 장밋빛으로 물든 홍조를 가지고 있어 화장을 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잠을 잘 때마저 화장을 지우지 않은 채 강박적으로 자신을 치장하려 들었다.
그것은 분명 내가 태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아버지’가 혹시라도 찾아올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겠지.
– 어쩜, 네 아버지를 쏙 빼닮았구나.
거울을 보면 어머니의 얼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내가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보며 언제나 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다.
– 네가 있는 한 네 아버지는 다시 나를 찾아올 거야.
그리고 그 탓인지 어머니는 항상 내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단적으로 두려워했다.
내가 아버지의 바람으로 태어난 자식이라는 사실은 철이 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 그 여자를 버리고 나랑 결혼하겠다고 했어. 그렇게 약속했단 말이야!
어머니는 어린 나를 옆에 앉혀 두고 아버지가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얼마나 많이 칭찬했는지,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어머니의 곁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 매일매일 똑같은 이야기를 듣는 건 꽤 고역이었다. 꼭 어린아이가 생떼를 쓰는 것 같아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을 즈음에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는 말을 꺼낼 수 없도록 부서트려 주자고 생각했다.
– 어머니, 자기 처자식을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한심한 인간의 사랑이 대단해 봤자 얼마나 대단할까요. 이제 그만 버림받았다는 걸 인정하세요. 아무리 부정해도 저는 어머니의 성씨를 물려받았고, 우리는 그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이곳에 살고 있다는 현실은 변하지 않아요.
– …뭐라고?
그렇게 나긋하게 속삭이자 흰 피부에 분을 칠해 더욱 희게 꾸며졌던 얼굴이 한순간에 죽기 직전의 노인의 것처럼 새카맣게 시들어 썩어 갔다. 나는 그 처참한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 아름다운 외모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건 그것 외에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당신이 사랑하는 그 이기적인 사람이 필요로 하는 존재는 부유한 집안에 좋은 학벌을 지니고 있는 아내지, 당신이 아니에요. 그러니 더는 의미 없는 사랑 놀이에 취해서 나를 번거롭게 만들지 말고, 가진 것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삶을 사세요.
– 내가 왜 필요가 없어? 너를 낳고 키웠잖아!
– …지금 당신을 봐. 고작 사랑하던 사람에게 버림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쓰레기 더미에 갇혀 사는, 지저분하고 초라한 사람이 되어 버렸잖아. 그리고 나는 그런 당신에게 이미 질릴 대로 질려 버렸는데.
그 말을 뱉은 순간 미친 사람처럼 ‘너도 네 아버지처럼 날 버리고 가는 거냐’며 중얼거리던 어머니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쓰레기 더미에서 무언가 번쩍이는 것을 찾았다. 그리고 몸을 벌벌 떨더니 손에 피가 나도록 움켜쥔 그것을 바로 내게 휘둘렀다.
– 아아아아악! 거짓말하지 마!
깨진 거울의 파편이었다.
목 근처의 살갗에 뜨거운 느낌이 나더니 바닥에 새빨간 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중, 큰소리가 나 달려온 유모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렸다.
– 도련님! 피가!
어머니는 내가 기억하는 한 계속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이런 사태가 벌어질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때문에 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유모는 그러지 못했던 모양이다.
– …별것도 아닌 일로 소리지르지 마. 머리 아파.
내 평온한 표정과 목소리에 놀란 듯 굳어 있던 유모는 뒤늦게 정신을 차린 후, 나를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대략적인 응급처치를 받은 후에야 긴장이 풀린 것인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어딘가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 이제 정말 안 되겠어요. 자기 아들을……. 저 정말 이런 일까지는 감당 못 해요. 무섭단 말이에요.
나는 유모가 맨 앞치마의 끈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화가 끝나자마자 미소를 머금고, 그녀의 눈물 서린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 유모, 슬퍼?
그러자 유모의 얼굴에 잔뜩 서려 있던 걱정과 동정이 사라지고 혐오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꼭 이상자나 괴물을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겁을 먹은 모습에 무언가 가슴 속에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 …….
순식간에 기분이 나빠졌다.
벌레가 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에 상처가 난 부위를 손톱으로 마구 긁기 시작하자 유모는 경악에 빠진 채 굳어 있다가 다급히 대답했다.
– …당연히 걱정했죠! 도련님이 다쳤는데 어떻게 안 슬플 수가 있겠어요.
이상했다.
결국 원하던 대답을 들었는데 그 목소리가 떨릴 때마다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그에 유모를 뿌리치고 병원 밖으로 나가려던 중,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들어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 어디 가시는 겁니까.
그들 중 가장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남자는 자신을 ‘할아버님의 비서’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가 건넨 명함을 본 순간, 내 아버지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고 앞으로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 처치가 끝나면 함께 집으로 가서 짐을 가져 오시죠. 더 이상 그곳에는 머무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어머니에게 그렇게 쏟아 낸 것과 별개로 내가 그쪽 집안에 완전히 무의미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생계를 위한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가난한 삶을 살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넓은 평수의 고급 아파트와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사립학교 학비, 어머니의 과도한 사치까지. 오히려 차고 넘쳤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도대체 누가 감당했을지는 거의 답이 정해져 있었다. 내가 어떻게 자라든 아무 관심이 없었던 어머니를 대신하여 유모를 고용한 사람이 누구였을지 또한.
– 왜, 내내 모르는 척하면서 살더니 꼴에 핏줄이라고 죽을 뻔했다는 얘기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나?
– …아버님을 많이 닮으셨군요.
어머니가 내게 항상 했던 말과 비슷한 그것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비서와 함께 얼마 되지 않는 내 짐을 챙기기 위해 집으로 향하자 어머니는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했다. 나를 해친 일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 드디어! …드디어 그 사람이 나를 찾아 준 거죠? 돌아오라고! 아아, 다행이다!
여지껏 보여 준 적 없을 정도로 강한 쾌락과 희열에 빠진 채 비서의 다리에 매달린 그 얼굴이 어찌나 웃기던지, 나는 그만 푸핫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뻣뻣하게 서 있기만 하는 비서를 대신하여 말했다.
– 당신은 이제 정말 완전히 버림받은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딱히 승리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 집안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하등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그 집안에 있어 불순물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냥 친모가 처한 상황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말한 후, 몸을 돌리자 유모와 비서가 할 말을 잃은 채 나를 바라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아까 병원에서 봤던 유모의 것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친모에게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채 그 집에서 자라게 되었다. 처음부터 아버지와 조부에게 친모에 대한 것은 완전히 잊으라는 지시를 듣기도 했고, 우선 나부터가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친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신체적으로 큰 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하여 거주하던 집에 화재 같은 사고가 일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죽은 건지는 모르겠다.
알아보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번쯤은 봐 두지 않으면 머릿속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이 느낌이 사라지질 않을 것 같아 유모와 함께 조용히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한 내가 가지게 된 것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과 불쾌감뿐이었다. 영정 사진을 보고 있으면 비서의 앞에 비굴하게 엎드린 채 눈물을 흘리던 그 얼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에 미련없이 장례식장을 떠나려던 찰나, 옆 빈소에 있던 어떤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 자기 엄마가 죽었는데… 울지도 않고 계속 자기 형 얼굴만 보고 있잖아, 하나도 안 슬픈 것처럼.
못 본 척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 아이를 바라보며 숙덕거리고 있었으니까. 그 아이는 자신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저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 형, 슬퍼?
저렇게 미숙하게 속마음을 드러냈다가는 주변인들의 경멸을 얻게 될 것이다.
나 또한 여러 번 겪었던 일에 자연스레 그 결과를 예상하고 있던 중,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아주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 …응, 슬퍼.
그 순간, 이 세상에 멈추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신의 감각이 곤두세워지고, 고양감에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너는 눈물이 흐르는 제 뺨 위에 아이의 작은 손을 잡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마를 맞댄 채 다정하게 속삭였다.
– 어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어서, 네가 너무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사랑을 잃게 되어서… 슬퍼.
– …….
– 그리고 너도 슬퍼할 수 있어. 같이 노력하면 돼.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 …나도 가지고 싶어.
– …도련님?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탐욕에 뇌가 타 버리는 듯했다. 유모의 표정 따위는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 빈 곳을 채워 줄 수 있는 존재를 드디어 찾았다는 쾌락과 희열에 빠져버린 나는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 유모, 나는 가족을 만들 거야.
– 이번에는 내가 내 손으로 고른, 진정한 가족을.
그것이 너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언젠가 술에 취한 채 네게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의 죽음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당시 내가 어머니에게 쏟아 냈던 말들과 그를 목격한 이들의 반응을 모조리 말했다. 그러자 너는 무겁게 늘어지는 내 몸을 붙들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나를 올곧은 시선으로 응시한 채 나지막이 속삭였다.
– 당신, 그때 정말 웃고 있었던 거 맞아?
– 있잖아. 그전까지 어머니가 당신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라도 있긴 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