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몸을 주춤 앞으로 물리려 하던 중, 녀석이 손을 천천히 앞으로 뻗어 나를 붙잡았다. 뿌리치려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 뿌리칠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한 힘이었다. 그러나 그 힘이 죄 빠진 몸짓과 노기 하나 없이 침체된 기색에 녀석을 밀어내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워진 나는 겨우 목소리를 내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유제이.”
녀석은 나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은 채 조용히 소매를 걷어 팔에 남아 있는 흔적을 확인했다. 나는 처음부터 안광이 죽어 있었던 제이의 눈동자가 더욱 깊게 가라앉는 것을 보고 그만 마음이 답답해져 도망치듯 시선을 아래로 숙였다.
그런 우리 둘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화영이 ‘매니저와 이야기를 하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피해 준 후, 숨이 막힐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희미한 목소리가 제이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내가 유성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이렇게 된 거지?”
“…아니야.”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질문에 서둘러 부정의 답을 내놓자 어깨 위에 얹어졌던 머리가 작게 들썩이다가, 곧이어 ‘거짓말.’ 하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고는 다시 정적이었다.
제이의 숨결 소리만이 조용히 귓가를 스치는 시간이 꽤 오래 반복되자 슬슬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섣불리 녀석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불안정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놈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했다가는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몰랐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정말 다행인 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이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프리즘 멤버들이 알고 있는 건 서유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연락 두절된 게 전부였다.
고작 그것으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은 나는 제이가 먼저 말을 꺼내도록 두자고 다짐하며 녀석을 기다렸다.
“…….”
정신을 차리고 제이에게 다시 연락을 취한 이후, 나는 여러 상황을 상정에 두고 있었다.
이를테면 제이나 멤버들의 서슬 퍼런 질문 같은 것들 말이다.
– 내가 형 말을 어떻게 믿어? 나는 형이 왜 죽었는지, 왜 그룹을 탈퇴했는지조차 아직 모르는데. 아니, 설명해 줄 생각이 있긴 한가?
분명 궁금한 게 많을 터였다. ‘왜 나를 두고 나갔냐.’, ‘그동안 왜 연락을 하지 않았던 거냐.’ 등 나를 몰아세울 수 있는 질문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제이와 프리즘 멤버들에게 걱정을 끼친 대가로 어떻게든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 승범아! 괜찮은 거 맞아?
– 형! 무슨 말이라도 해 주세요…….
나는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멤버들을 상처 입히지 않도록 거짓으로 둘러싼 대답을, 내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준비하기 위해 꽤 긴 시간을 고민했고 나름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돌아가자.”
하지만 긴 침묵 끝에 제이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은 해명을 요구하는 말이 아닌, ‘돌아가자’는 말이었다.
“나 배고파. 형이 그렇게 사라져 버려서 밥도 못 먹었고 잠도 못 잤어.”
“…….”
“형도 많이 피곤해 보인다, 그치? 밥 한 끼도 못 먹은 사람처럼 비쩍 말랐어. 그래도 전에는 젖살이 좀 남아 있었는데……. 내가 말했잖아, 그 몸으로는 예전처럼 살면 안 된다고. 예전 몸이 이상했던 거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조금 놀라 고개를 들었으나 녀석은 눈을 길게 감은 채 어물어물 뭉개지는 발음으로 응석 같은 말들을 내게 늘어놓고 있을 뿐이었다.
부드럽게 귓가에 쏟아지는 말들을 멍하니 듣고 있던 나는 어리광부리는 태도와 상반되게 고요하기만 한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 나를 향하는 것을 보고 곧 직감할 수 있었다.
‘…내 반응을 확인하고 있어. 지금 내 상태가 멀쩡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거야.’
저것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사고 아래 보이는 행동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제이는 타고나길 애교가 많거나 밝은 성격이 아니었다. 때문에 피곤하다고 해서 무작정 어리광을 부리거나 거의 습관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교정해 둔 발음이 무너지는 일은 사실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지금 녀석의 행동은 모두 연기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돌아가자. 돌아가서 제대로 쉬자…….”
제이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은 온전한 나와 함께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오직 그 목표만을 위해 머리를 굴린 제이는 한계에 몰려 있는 상태의 나를 더욱 몰아세우는 것보다 제 약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노출하여 멤버들에게 유난히 마음이 약해지는 내가 거부하기 어렵도록 상황을 유도하는 것. 그것이 본인이 원하는 결과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건 중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부터 180cm를 넘긴 놈이 ‘등하굣길이 무섭다’는 너스레를 떨었던 것과 같았다. 제이는 아마 그때부터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속아 넘어가 주며 휘둘리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겠지.
‘…나이 먹을수록 점점 심해지네.’
정말 솔직히 말하면 제이가 판테이온 멤버들보다 먼저, 그러니까 최적현이 사고를 쳐서 조금 쿨다운이 되기 전에 나를 찾아왔다면 저 꾀가 상당히 잘 먹혔을지도 몰랐다. 만약 눈을 뜬 직후 내가 만난 이가 제이였다면 나는 아마 판테이온 멤버들의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패닉에 빠지지 않고, 잠자코 녀석과 함께 돌아가게 되었겠지.
‘좋게 말하면 내 상태를 신경 써 준 거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소름 끼칠 정도로 꾀를 잘 부리는 거라고 해야 하는 건가.’
“…그래. 돌아가자.”
뒷골에 약간 서늘한 느낌이 들었지만, 티를 내 버리면 기껏 나를 배려해 주려 했던 제이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찜찜한 마음을 애써 지운 나는 알았다는 듯 제이의 목을 손바닥으로 툭툭 친 후, 최대한 평상시처럼 물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야? 난폭 운전 한 건 아니겠지.”
그러자 녀석은 갑자기 뜬금없이 내 머리카락을 집어 엄지와 검지 사이에 두고 문질렀다. 그러자 평소보다 조금 더 결이 안 좋은 머리카락이 퍼석퍼석한 소리를 내며 마찰되었다.
‘…뭐지?’
내가 질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듯한 모습에 팔을 툭툭 두드리자 표정 하나 없던 얼굴에 옅게 미소를 머금은 녀석이 뒤늦게 대답했다.
“…치세 형이.”
“이치세가?”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짧은 대답에 고개를 가로 기울인 채 잠자코 녀석을 바라보자 작은 목소리로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치세 형이 혹시 모르니까 이 근처부터 찾아 보자고 해서……. 가까운 곳에 있었어.”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제이가 대강 이치세의 이름을 언급하자 나는 아아, 하고 납득할 수 있었다. 아마 이치세가 혼비백산한 제이를 달래 내가 ‘서유성에 대한 이야기에 이상한 반응을 보이고, 잠시 눈을 뗀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를 끄집어낸 후, 내가 있을 만한 장소를 유추했던 것이겠지.
‘하여간 이치세 그놈은 방심할 새가 없어.’
대충 상황을 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의 코끝과 손이 추위에 빨갛게 변한 게 눈에 들어왔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꼴에 쯧 혀를 찬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외투를 제이의 어깨에 둘러 주며 타박하듯 말했다.
“왜 벨도 안 누르고 앞에 계속 서 있었어. 여지껏 이 날씨에 이렇게 얇은 차림으로 돌아다닌 거냐?”
“…나 온 줄 알면 객실 밖으로 안 나올까 봐.”
아, 그래서 나올 때까지 소리 소문도 없이 문앞에 계속 서 있다가 방심하고 외출하는 사이에 직접 붙잡는다? 참 건강한 생각이었다.
‘역시 이놈도 꽤 이상한 것 같지.’
최적현과 서유성에 비교하면 아주 귀여운 수준이긴 했다만, 또 이러는 걸 보면 유제이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 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똑같은 소리를 하면 신경질 내겠지만.
“내가 왜 안 나와, 네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적 있었잖아.”
“…아, 미안하다.”
그러나 짧지만 살벌하기 그지없는 문답이 오간 후, 그것이 모두 나의 업보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기로 하였다. 방금 제이의 눈알이 약간 돌았던 것 같은데, 보지 못한 것으로 하겠다.
처음에는 내가 외투를 둘러 주는 것을 익숙한 듯 내버려 두고 있던 제이는 옷에 배어 있는 무거운 향수 냄새를 맡더니 그 외투가 내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채 버렸는지 어깨를 움츠리며 그를 거부했다.
“이새화 거야?”
“맞긴 한데, 뭐가 어때서 그러냐. 그냥 옷이야. 어차피 지금 내 거는 너무 작아서 입지도 못하잖아.”
“싫어. 나는 예전부터 이새화 마음에 안 들었어. 매번 차운 쥐락펴락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정보 빼돌려 놓고 뒤에서 일 꾸미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 인간, 이번에도 다 알고 있으면서 우리한테는 언질 한마디도…….”
희번득 눈을 뜨고 중얼거리는 말에 나는 다급히 유제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다급하게 객실을 향해 눈짓을 했다. 안에 있다는 뜻이었다. 그에 유제이는 ‘들으라지’ 하고 다시 불퉁한 말을 뱉으려다가 또 내 손에 의해 막히자 미간을 더욱 찌푸린 채 손바닥에 입질을 했다.
나는 익숙한 듯 손을 훌훌 털어 버린 후, 자연스레 프리즘 멤버들을 찾았다.
“나머지 멤버들은?”
띵!
그 질문을 한 순간, 도착을 알리는 경쾌한 소리가 나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조막만한 얼굴에 마스크나 모자를 적당히 뒤집어쓴 길쭉한 남자들이 우르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니, 진작 뛰쳐나갔는데 왜 연락이 안 되냐고. 걔한테도 뭔 일 생긴 거 아니야?”
“진정해, 걔도 이제 곧 서른이야. 객실 잘 찾아갔겠지.”
“서른이고 나발이고 유제이는 유제이잖아!”
“쉿, 조용히 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프리즘 멤버들이었다.
‘…얼굴을 가리는 게 의미가 있긴 한가?’
누가 봐도 연예인에, 심지어 프리즘인 것까지 한눈에 보이는데 여기까지 문제없이 온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숨어 있어도 엄청 눈에 띄는 놈들이 우글우글 한곳에 몰려 있으니 여기가 방송국 복도인지 호텔 복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약간 식은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 가장 먼저 내려 복도를 두리번거리던 차운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0.1초의 짧은 시간 동안 얼굴을 새하얗게 물들인 채 곧바로 엄청난 속도로 다가온 차운이 내 목덜미를 확 낚아채 들었다.
“헉, 허억… 잡았다!”
마치 우리에서 탈출한 짐승을 포획하기라도 한 것 같은 외침이었다.
그리고 내가 튀지 못하도록 내 목덜미를 꽉 움켜쥐고 있는 현실적인 손과 별개로 따뜻한 입은 나를 향해 걱정의 말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형, 괜찮아?”
“얼굴이 뜨끈뜨근한데? 열 나는 거 아닌가?”
얼굴이며 팔이며 하도 주물럭거려 슬슬 정신이 없어질 즈음, 나는 입을 열어 짧게 말했다.
“놔라.”
그러자 차운이 몸을 덜컥 떨더니 뻣뻣하게 굳은 채 나를 살포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내 옷자락 끝을 찔끔 붙잡았다. 그를 조용히 바라보자 ‘형이, 형이 먼저… 도망갔잖아! 연락도 안 받고요!’ 하고 나름 앙칼지지만, 기어들어 갈 것처럼 목소리가 작아 그 효과가 미미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 끝으로 짚고 있자 이번에는 이치세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내내 전화로만 이야기하느라 잘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실제로 보고 나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게 꽤 감격스러웠던 모양이다.
“진짜 형이구나!”
“우욱…….”
가뜩이나 힘이 장사인 놈에게 온 힘을 다해 붙잡히니 장기가 파열될 것 같았다. 약간 헛구역질이 나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중, 남이훤이 누군가의 등을 철썩 때려 내 앞으로 밀어 버렸다.
“인사 해. 뒤에 숨어 있지 말고.”
그리고 그토록 그리워했던 목소리가 들렸다.
“…승범 씨.”
조인찬이었다.
무슨 얼굴을 하고 녀석을 바라보면 좋을까?
어떻게 녀석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 줘야 하지?
두려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끼며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녀석의 모습을 두 눈으로 담은 순간, 나는 얼굴을 사색으로 물들이며 조인찬이 입고 있는 옷의 목 부분을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너, 이게 뭐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