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응, 나도 만나 보고 싶다.”
치세 형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내 손목을 낚아챈 뒤 나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에 조금 당황한 나는 다급히 제자리에 멈춰서려 했으나 상대가 워낙 괴력을 가졌던 탓에 저항할 새도 없이 현관이 있는 곳까지 끌려 나왔다.
“지, 지금 당장 가자는 거야?”
“당연하지. 지금 내 작업실에 있거든. 회복하느라 내내 거기에 누워 있었어. 너도 거기로 가서 같이 쉬자. 어차피 네 집에는 임승훈이나 강혁우가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고 있잖아. 이렇게 열이 나는데 너를 여기에 혼자 두고 갈 수 없고.”
특유의 경쾌한 화법으로 내 정신을 쏙 빼놓은 형은 급기야 영차, 하고 내 발을 잡아 마구잡이로 신발을 구겨 넣기까지 했다. 지금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완전히 잊어버린 듯한 행동에 나는 가뜩이나 열감에 홧홧했던 얼굴을 더 빨갛게 물들인 채 됐으니까 그만하라는 말을 연신 뱉었다.
“우리 인찬이는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활동하다가 너 감기 때문에 한 번 쓰러져서 유태 형이 들쳐업고 응급실까지 뛰어간 거. 나도 형처럼 한번 해 보려고 했는데 고작 이것도 영 쉽지가 않네. 왜 이렇게 우리 멤버들은 다 남산만 한 거야. 아이고, 허리야.”
“…….”
“…형이 너 걱정 많이 하더라. 사고 나고 눈 뜨자마자 너부터 찾았다고 했어. 너 비 맞았으면 빨리 약 먹이래. 너는 한번 감기 걸리면 항상 심하게 아프니까.”
그리고 기어코 신발을 모두 신긴 치세 형이 작게 미소를 머금은 채 뱉은 말을 듣고, 치세 형이 말하는 ‘형’은 절대로 내가 아는 ‘서유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 조금 침울해졌다.
유태 형이 살아 있다면 분명 나를 만나는 것조차 싫어할 게 뻔했다.
그렇게 심한 짓을 했는데 나를 먼저 찾을 리가 없지 않은가.
‘…처음부터 이미 알고 있었잖아. 멤버들이 착각하는 거라고…….’
설마, 실망하기라도 한 건가?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주제에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약국 들렀다가 가자. 계속 여기 있다가 또 그놈들이랑 마주치고 싶은 건 아니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분명히 느껴지는 말에 어쩐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픽 웃음을 흘린 치세 형은 내 머리를 벅벅 문지르더니 고개를 돌리다가 욕실 근처에 있는 꽃잎을 발견하곤 잠시 멈칫했다.
“잠깐만.”
그리고 곧바로 욕실까지 다시 걸어 들어가 구석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던 꽃다발을 집어 왔다. 시들시들해져 색이 거멓게 변한 꽃송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지 치세 형은 일부러 장난기를 섞은 투로 내게 외쳤다.
“아, 서운하다, 서운해. 어떻게 형 줄 선물을 이렇게 바닥에 내팽개쳐 놓을 수가 있어! 형이 너 아프니까 봐주는 거야!”
“줘, 새 거로 다시 보낼 거니까…….”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놨는데 그걸 결국에는 건져 오는 모습에 나는 창피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외투의 밑자락을 주먹으로 움켜쥔 채 웅얼거렸다. 하지만 치세 형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싫다! 누가 줬다 뺏어, 치사하게.’ 하고 대꾸하더니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나를 데리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직 안 줬잖아.”
“안 들려, 안 들려. 내 거야, 이거. 아, 얘 벨트 채워 줄까? 불쌍하게 두 번 떨어지면 안 되잖아. 우쭈쭈, 가여운 것.”
뒤에서 내가 뭐라고 지껄이든 말든 치세 형은 막힘없이 걸어가 자신의 차 뒷자석에 그것을 내려놓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바로 나를 조수석에 욱여넣었다.
“…….”
정말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유태 형이 사라진 이후로는 제지해 줄 이가 없으니 그 정도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다시 또 원상 복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원인을 찾자면….
– 내가 만약 유태 형이 살아 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어?
분명 그것이겠지. 대강 짐작이 가는 상황에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린 나는 애써 입을 봉한 채 운전대를 잡는 형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 * *
그렇게 작업실에 도착하고 문을 열려는 사이, 후드 집업을 뒤집어쓴 이가 치세 형의 뒤로 바짝 다가와 붙었다.
“형.”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지자 바로 뒤를 돌아본 치세 형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장난스레 엉덩이를 툭 치며 입을 열었다.
“나갔다 왔어?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지.”
“아니, 그냥 전화 좀 하느라 나온 거야. 별거 아니었어.”
“그래?”
그 상대가 그룹 내 유일한 동갑내기라는 사실을 바로 감지한 나는 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치세 형의 뒤에 나를 숨기듯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정말 안타깝게도 나는 다른 사람을 가림막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아담한 몸뚱이를 가지지 못했기에, 건들거리는 목소리가 바로 나를 향해 떨어졌다.
“이게 누구야?”
잘빠진 이마 위에 나른하게 걸쳐 있던 눈썹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삐딱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곧바로 손을 뻗어 내 가슴께의 옷자락을 붙잡고 자신의 앞으로 훅 끌어당겼다.
“나 보고 꽁지 빠지게 토꼈던 조인찬이잖아. 이번에는 안 튀냐?”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 온전히 드러난 샛노란 눈동자가 나를 찍어 누를 듯 살벌하게 노려봤다. 남이훤의 것이었다.
“하긴, 나 같아도 가만히 있겠어. 또 튀었다간 그때는 나한테 진짜 뒤지게 처맞을지도 모르니까. 너는 안에 형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그 말을 들으니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것이야말로 멤버들이 한승범을 정말로 형으로 여겨야 할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타고나길 성질이 사납고, 몸집도 커 어딜 가든 지고 산 적이 없었던 멤버들은 프리즘이라는 그룹에서 저와 비슷한 이들을 처음으로 조우하게 되었다. 때문에 모든 멤버가 어렸던 초반에는 서로 죽일 듯이 쥐어패며 싸우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 다소 저속한 과정 속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얻은 것은 서열이 아닌,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불문율 하나였다.
‘서유태의 앞에서는 주먹질하지 말 것.’
그 규칙이 생긴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가 형은 선을 넘는 놈을 싫어한다는 것이었으며, 둘째가 형의 몸에 붙어 있는 살벌한 근육이 프로 선수들을 양성하는 복싱 체육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맏형의 앞에서 건방지게 주먹질을 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다는 뜻이다.
‘…남이훤이야말로 한승범을 가장 심하게 거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그저 위안을 얻기 위해 대강 구색을 맞춘 연극 아니던가. 아무리 한승범이라는 아이가 형을 닮아 봤자 그런 부분까지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없을 텐데. 남이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놔.”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막상 그룹 활동 내내 자주 다투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했던 친구를 만나니 습관적으로 날이 선 말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남이훤은 그에 오히려 기분이 풀린 듯 피식 입꼬리를 끌어 올리더니 나를 놓아주었다.
“그래, 이래야지.”
남이훤이 붙잡은 곳이 목 부근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손자국이 남은 곳을 손으로 감싸쥐고 있을 즈음, 문 너머에서 미세하게 날카로운 소리가 흩어지는 게 들렸다.
그에 치세 형이 다급하게 문을 열자 난장판이 된 작업실 안에는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패닉에 빠진 제이와 그 옆에서 제이를 붙들고 있는 차운 형이 눈에 들어왔다.
“진정해! 정확히 얘기를 해야 알아듣지!”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러자 머리를 양팔로 감싸고 있던 제이가 치세 형을 바라봤다.
그리고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진 후, 작은 목소리가 제이의 입술 사이로 빠져나왔다.
“…형이 사라졌어.”
* * *
제이의 두서없는 말들을 몇 번이고 다시 들어본 결과, 치세 형은 한승범이 서유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그대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승범 씨가 서유성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멤버들은 재빠르게 판테이온 멤버들에게 연락을 해 한승범의 행방을 알고 있는지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본인들도 지금 한승범을 찾고 있지만, 이 근방에서는 보지 못했다는 답뿐이었다.
“분명 서유성의 이야기를 듣고 이상해졌다고 했지.”
그 말에 제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치세 형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더니 말했다.
“…바다로 가자.”
.
.
.
멤버들은 한참 동안이나 한승범을 찾아 바다 근처를 헤매다가 한승범에게서 온 연락을 확인하고 바로 호텔로 향했다. 나는 한승범이 이 근처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간 제이와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는 멤버들을 보며 점점 마음 깊은 곳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이건 이미 선을 넘었잖아. 그런데 왜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납득하고 있는 거지? 정말 한승범이 형이라고 믿고 있기라도 한 거야?’
서유태인 척을 하기 위해 서유성이 죽은 장소를 어슬렁거리는 건 지나치게 악질적인 행동 아니던가. 아무리 멤버들이 제정신이 아니라 해도 이런 행동까지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우선 내가 강혁우에게 정보를 흘려 버렸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사과하자.
그리고 허리를 숙이든, 무릎을 꿇든 멤버들을 가지고 노는 짓은 그만해 달라고 부탁하자.
형의 대체제를 잃은 멤버들이 나를 원망하게 되더라도 상관 없었다. 이미 미움받는 건 익숙했고, 나는 이 관계가 멤버들을 병들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확신해 버렸으니까.
띵!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먹을 움켜쥐고 있던 사이, 엘리베이터가 100층에 도달하고 문이 열리고 멤버들이 한승범을 향해 뛰어나갔다.
“형!”
나는 한승범과 대화를 나누는 멤버들의 뒷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바라봤다.
“…….”
다들 정말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의 강박에 휘둘린 채 그저 형이 돌아왔다는 상황을 연기하는, 그런 기묘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유 모를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즈음, 등이 툭 밀리더니 한승범이 시야에 가득찼다.
“…너, 이게 뭐야!”
그리고 그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머릿속에 견고하게 세워 두었던 계획이 모두 무너져 버렸다.
10년 넘도록 함께한, 기가 막히도록 눈치가 빠른 멤버들도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고작 병원에서 한번 마주쳤던 아이가 단번에 간파해 버렸다. 그리고 정말 가슴이 무너져내린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내 옷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
손모양이 그대로 남은 멍자국이 드러났지만,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형의 것과 너무 똑같아서, 저항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죽어도 멤버들의 앞에서 이런 흉측한 상처따윈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그들이 알게 되는 게 수치스럽고, 무섭고… 미안해서.
멤버가 아닌 다른 이들의 앞에서는 더더욱 숨기고 싶었다. 그들이 나의 약점을 보며 도대체 뭐라고 수근거릴지,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워졌다.
그런데, 왜 이 아이의 앞에서는 그런 감정들이 느껴지지 않는 거지?
“강혁우가 이런 거야? 아니면 임승훈?”
“…….”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에 스스로도 놀라 ‘…어?’하는 소리를 뱉으며 얼굴을 더듬고 있던 사이, 언젠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 나 진짜 괜찮다고 생각했거든. 생각보다 견딜 만해서 스스로 놀라울 정도였다니까요?
– 그런데 현관문 딱 열고 엄마 얼굴 보니까 갑자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르고 막 펑펑 울었어요. 몰라, 그냥 갑자기 서럽고… 위로받는 느낌도 들고 그랬어.
그때는 그게 무슨 느낌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냥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왜 말을 안 해. 여기만 다친 거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눈물을 흘리고만 있자 형이 내 볼을 손끝으로 슬 쓸었다.
“…….”
그리고 그 순간, 복도에 판테이온 멤버들이 나타났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니 형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나를 향해 있던 얼굴이 점점 다른 이를 향해 돌아가자 열에 들뜬 머리가 비상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웅웅 울리기 시작했다. 그에 나는 무의식중에 손을 뻗어 형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
“…안 돼. 보지 마.”
나는 분명 한승범이 서유태라고 인정하지 못했을 텐데.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