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그러니까 너희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말한 형은 꽤 긴 시간을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입가에는 옅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정처없이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까지는 말 안 했거든. 그런데 이제 내 정체까지 알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아, 설마 서유성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다. 내가 그놈 노래 따라가려면 한참 부족하니까……. 그냥 나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 꼴이네.”
“…형.”
“사실 그 프로그램 나갈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멤버들한테 정 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 그냥 보통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인지도만 쌓고 내 입맛에 맞게 소속사 옮기려고 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이렇게 됐다. 내가 항상 그렇지, 뭐.”
다른 사람들이라면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서유태’와 10년을 훌쩍 넘기는 세월을 함께했던 우리 아니던가. 차마 지워 내지 못한 씁쓸함을 눈에 담고 있으니 무의식중에 판테이온 멤버들이 형을 거부하기를 바랐던, ‘한승범’ 외의 존재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를 바랐던 찰나의 이기심이 후회되었다.
“니콜라스라고…… 아까 그 자리에는 없었던 멤버 있지? 걔가 잭이야. 너희들이 몇 번 같이 놀아 줬잖아. 콘서트에도 자주 와서 인사했고. 이화영은 내 정체 다 알고 있으니까 걔하고는 편하게 얘기해도 돼.”
서유태는 원래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지적을 듣고, 항상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우리가 떠들썩하게 노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정도로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정말 한승범의 정체가 형이 맞다면 저렇게 두서없는 말들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상적인 상태로는 보이지 않았다.
판테이온 멤버들의 거절 자체가 썼던 건지, 그들에게 거부당하는 것을 우리의 앞에서 보여서 타격이 더욱 컸던 건지, 아니면 판테이온 멤버들에게 미묘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나름의 해명을 하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것을 알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그가 걱정될 뿐이었다.
그에 손목을 쥐고 있던 손의 힘을 강하게 하자 아차 싶었는지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자리 좀 옮길까. 여기에 계속 서 있다가 아까처럼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면 곤란하잖냐.”
그렇게 말한 형은 잠깐 있어 보라는 듯 손짓을 하더니 객실 문을 열고 고개만 빼꼼 집어넣어 뭐라 뭐라 말을 쏟아 냈다. 그 내용은 ‘잠깐 나갔다 오겠다.’, ‘사고 치지 말고 잠이나 좀 자라.’, ‘쓸데없는 짓도 하지 말고.’, ‘판테이온 애들한테 말 걸지 마. 쳐다보지도 마.’ 등 꼭 다섯 살배기에게 주의를 주는 듯한 잔소리가 대부분이었지만, 마지막에는 ‘나 나간 동안 술 처마시면 죽는다’는 살벌한 경고가 붙은 걸 보면 어린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그에 의문을 가질 즈음, 객실 안에서 누구와 함께 가는 것이냐며 묻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흠칫 떨며 그의 정체를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이새화…….’
프리즘이라는 그룹이 결성되기 전부터 형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었다.
‘이런 호화스러운 객실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도 분명 그 사람 때문이겠지.’
제이에게 이새화가 먼저 형에게 향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실제로 그가 곁에 있다는 것을 보니 정말 눈앞의 이 소년이 형인 것만 같아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형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이새화한테 저런 식으로 말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됐어, 가자.”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당부의 말을 모두 토해 냈는지 형은 가볍게 손짓을 하며 우리를 이끌었다. 그 습관적인 손짓마저 내 기억 속의 형과 똑같은 것을 보며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 * *
호텔 밖으로 나와 조금 걷자 바닷가가 나타났다.
이런 추위에, 이런 시간대에 바다를 찾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은 나름의 규칙성을 가진 파도 소리 외에는 소름 끼치도록 고요했다.
형은 겨울 바다의 매서운 바람이 아리지도 않은지 특유의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모래를 밟으며 바다의 경계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던 중, 발자국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곳에 형이 멈춰 섰다. 멀리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의 위치였다.
형은 서유성을 집어삼킨 그곳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형과 다르게 옅고 따뜻한 색을 가진 눈동자가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일렁이는 것을 멍하니 응시하던 나는 문득 어떤 사실을 자각했다.
그렇게 좋아했던 바다나 하늘 따위를 도대체 언제부터 보지 않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형을 따라 내내 발치에 고정해 두었던 시선을 천천히 들자 시야가 확 트이며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
작은 물결이 햇빛을 머금은 채 빛나다가, 잘게 흩어지는 광경이 무심코 입이 벌어질 만큼 너무나도 아름다워 소름이 돋았다. 사고가 났을 때까지만 해도 속이 탁하게 물들어 마치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것만 같이 꿈틀거리던 그 끔찍한 모습이 마치 허상이었던 것처럼 순진해 보였다.
형은 저것을 보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의문을 가지자 순식간에 서늘해진 팔뚝을 손으로 움켜쥐고 있을 즈음, 형이 바다를 응시한 채 말문을 열었다.
“믿을 수 있겠어? 내가 서유태라는 거 말이야.”
그 질문에 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성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리가 없다고, 또 속고 있는 것이라며 실낱같은 희망을 부정했다. 하지만 현실성을 제외한 모든 요인이, 나의 본능이 눈앞의 상대가 ‘서유태’라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남의 말에 잘 휘둘리는 성격이었기 때문일까.
애초에 나보다 더 영리하고 눈치가 빠른 멤버들이 모두 그를 서유태라 여기고 있는 시점에서 마음은 이미 그를 형이라 칭하며 그동안 고여 있던 회포를 모조리 풀고 싶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었는지, 이루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애초에 내가 강혁우와 임승훈에게 속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곳으로 향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만큼 형과 말 한마디 섞는 것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장본인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니, 이런 꿈만 같은 일이 어디 있나 싶었다.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야. 판테이온 멤버들이 그랬던 것처럼, 항상 너희의 선택에 따를 거니까. 충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아는데 굳이 내 욕심으로 너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내가 믿지 못하면 어떡하려고?”
아까와 같은 표정을 지을 것이냐는 뜻이 내포된 질문이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너는 지금까지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되겠지. 나는 그걸 절대 방해하지 않을 거고.”
하지만 돌아온 것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내게 치중된 답이라 그만 웃음이 나왔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고작 그 이유뿐이야?’
서유태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들의 거부와 공격에 가장 크게 상처 입고 흔들리는 사람이다. 본인은 그를 자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호텔에서 겪은 것과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면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걸 아니까… 강혁우가 나를 노린 거잖아.’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바로 나였다.
– 형, 도대체 왜 나를 이 그룹에 넣은 거야? 괴롭히려고?
– 형만 아니었다면 나는 프리즘으로 데뷔하지 않았을 텐데.
무엇보다 견고하던 이의 얼굴이 끔찍하게 무너지는 것을 코앞에서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보고 그짓을 또 하라고.’
서유태는 본인의 정체성을 손쉽게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단단하고 확고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에 서 가장 큰 흔적을 남길 정도로 특별한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이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평생 살 수 있겠는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뤄 놓은 것이 너무 많았고, 그를 선망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 옆에 서 있었던 나 마저 그를 바라보는 동경의 시선에 도취될 정도로 말이다.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서유태가 있기 때문에 프리즘에 있고 싶었고, 서유태가 있기 때문에 프리즘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
“…싫어.”
과연 나는 그것을 내 손으로 저버릴 수 있을까?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단 말이야.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다고, 아직 형한테 제대로 사과도 못 했는데……. 나를 이 그룹에 넣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내가 지금 형을 부정해 버리면 그럴 수 없게 되는 거잖아.”
무언가를 의심하는 것은 그를 잃어도 상관없다는 여유에서 비롯된다.
“만약 형이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면? 나는 또 형한테 상처 주는 거야? 그리고 아무 죄책감 없이 희희낙락 살아?”
이미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에게 의심 따위는 사치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어도, 그냥 내가 또다시 멍청하게 속는 것일지라도 살기 위해서는 모르는 척 붙자고 있어야 한다.
“나 지금까지 진짜 엉망으로 살았어. 더 떨어질 것도 없다고. 차라리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게 나아. 그렇게 해서 위안이라도 얻고 싶어. 지금 형을 부정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일상은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그 마음을 마구잡이로 토해 내자 형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깊게 한숨을 쉬며 ‘왜 너희는 다 이 모양이냐’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내 볼께를 손등으로 벅벅 닦아 내더니 다리쪽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무릎은 이제 좀 어때?”
“…많이 나아졌어. 치료도 받고 있고…….”
“거짓말 못하는 거 여전하네. 너도 그 모양이라 프리즘 멤버들 안 만나려고 했던 거지?”
정곡을 찔려 버렸다.
그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니 옆에 서 있던 차운 형이 혀를 쯧 차고 남이훤이 나를 죽도록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형은 웃음을 흘리며 ‘그만해라, 애 잡겠다’며 나를 등 뒤에 두었다.
그리고 조용히 나를 불렀다.
“야, 인찬아.”
멤버들을 피하기 위해 아래로 처박아 두었던 시선을 겨우 끌어 올리자 작은 목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형이 속삭였다.
“우리 한 번씩만 솔직해지기로 하자. 서로를 위해서든, 뭐든 절대 거짓말하지 않고 딱 한 번만 솔직하게 대답하는 거야.”
그리고 내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흐르는 것처럼 물었다.
“목에 있는 상처, 그놈들이 낸 거야?”
나를 바라볼 때와는 상반되게 서늘하게 식은 눈동자가 내 목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순간 위압감을 느낀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형은 눈을 길게 감았다가 뜨더니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래, 솔직하게 대답해 줘서 고맙다. 앞으로는 나한테 맡겨.”
목을 툭툭 두드리는 손길과 모든 불안감을 지워 버리는 목소리가 참 여전했다. 그에 마법처럼 안도감을 느낀 나는 형을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형은, 왜… 우리를 떠났던 거야?”
나는 형이 그룹을 떠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따라서 그 질문은 왜 그룹을 탈퇴한 것이냐는 의미가 아니었다. 내가 물은 것은 ‘왜 우리를 두고 죽어 버린 것이냐.’ 그것이었다. 형은 그를 예상하고 있었는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천천히 눈꺼풀을 깜빡인 후, 내게서 멀어지더니 나지막이 대답했다.
“서유성을 지키지 못한 나를 용서할 수가 없어서.”
그 답은 줄곧 예상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어서, 우리는 무거운 숨을 가까스로 토해 냈다. 하지만 형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는지 다시 바다를 바라보는 듯 우리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부러 가벼운 투로 이어 말했다.
“아직도 보고 싶어.”
“…….”
“진짜… 진짜로 보고 싶다.”
그 순간, 바다쪽을 향해 강한 바람이 바람이 불더니 허공에 넘실거리는 머리칼에 형의 얼굴이 가려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가 어떤 마음일지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다시 우리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더니 우리의 앞에서 아주 드물게 보였던 웃음과 완벽하게 똑같이 웃어 보였다.
“역시 이렇게 다시 보니까 좋다. 이것도 다 살아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겠지.”
“…….”
“서유성이 나 숨 좀 돌리라고 너희 보냈나 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