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멤버들과 함께 깊게 대화를 나눈 결과, 판테이온은 결국 [레전드 싱어> 출연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레전드 싱어>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멤버들 힘에 맡겨 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프로그램 출연 기간 동안 나는 멤버들에게 필요 이상의 조언이나 개입은 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이 디렉을 한 무대에 서는 건 또 오랜만이네.’
파트도 최대한 다른 멤버들에게 많이 넘겨주기로 했다.
모든 곡은 원작자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지 않던가. 프리즘의 노래는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으로 만든 것들 뿐이니 거기에서 너무 많은 지분을 차지해 버리면 괜히 서유태와의 연관성을 대중에게 지적당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레전드 싱어> 프로그램에서 한발 거리를 둔 나는 대신 연말 무대와 다음 활동에 시간과 노력을 온전히 쏟으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 [아이돌 별로 안 좋아해서 연말 무대는 잘 안 보는데 판테이온 무대는 진짜 하루에 한번씩 돌려보는 중 스크린 이용해서 명화 속 장면처럼 연출하는 거 쾌감 죽인다]
– [┗ 써아사 때 무대도 진짜 레전드니까 한번만 봐 주세요ㅠㅠ]
– [한승범 무대 구상 능력 진짜 미친 듯 신화 컨셉 자기가 원한 것도 아니면서 알잘딱으로 버무려주심]
– [┗ 와 이거 회사에서 짜준 게 아니라 한승범이 다 한 거예요? ㄷ]
– [┗ 뭔ㅋㅋ 회사에서 전문가 불러다가 다 해 준 걸 한승범이 했다고 이미지 메이킹하는 거임ㅋㅋㅋㅋ; 에휴 순진하게 아직도 속는 사람이 있네ㅋㅋㅋ 응 너네 한승범 그정도 아니야]
– [┗ ┗ 자컨에 승범이가 무대 디렉 보는 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찍혀 있어요 애가 잠도 못 자면서 팬들한테 좋은 무대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거 아는 사람으로서 진짜 불쾌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유언비어 퍼트리는 주제에 쪼개기는 왜 자꾸 쪼개 이 대가리에 총 맞은 새끼야]
– [┗ ┗ ┗ 아 뒤로 갈수록 왜 이렇게 화났냐 그라데이션 분노]
– [┗ ┗ ┗ 한승범 팬들 가끔씩 너튜브 댓글에서 급발진하는 거 개웃김]
– [┗ ┗ ┗ 그만큼 대장이 잘했다는 거지~]
내가 디렉을 본 판테이온의 연말 무대와 새로운 활동은 화제성 면에서도, 퀄리티적인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멤버들은 해당 무대들이 좋은 반응을 받으면 받을수록, 좋아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이단비가 이치세의 도움을 받아 했던 랩을 아직까지도 뛰어넘지 못한 것과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판테이온이 [레전드 싱어>에서 경계해야 하는 것은 프리즘이나 레이즈의 무대뿐만이 아니었다.
‘어떻게든내 디렉으로 지금까지 대중 앞에서 선보인 무대를 뛰어넘어야 해.’
대중이 기본적으로 판테이온에게 기대하고 있는 무대의 퀄리티가 멤버들의 경험에 비해 너무 높아진 것이다. [레전드 싱어>도 결국 ‘판테이온’의 이름으로 참가하는 것이니 이 문제는 회피할 수 없었다.
의도치 않게 내가 멤버들의 최종보스로 돌아선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우리 잭이 한 건 했네? 형 머리카락 움켜쥐고 안 놔줄 때부터 이 삼촌이 다 알아봤지. 그래서 애들한테 두 손 두 발 다 든 거야? 콜록! 우웩, 큭… 하하하!]“…어.”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화영과 나눴던 대화를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자 핸드폰 너머의 이치세는 헛구역질까지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남의 일이다 이거였다.
[아하하하학! 아, 나는 형이 애들 때문에 안전부절못하는 거 보면 왜 이렇게 웃기냐. 병아리 밟을까 봐 벌벌거리는 것도 아니고. 역시 형 이겨 먹으려면 한참 어리고 약한 애들 데리고 오는 게 맞나 봐. 강혁우가 이걸 몰랐네.]‘안 웃겨, XX.’
나는 새카맣게 죽은 눈동자로 핸드폰을 응시하다가 통화 종료 버튼에 흘끗 시선을 주었다.
“…….”
슬슬 내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색을 귀신같이 읽은 이치세가 다급히 다시 말을 걸어 전화를 끊을 수는 없었다.
[걱정 안 돼?]“뭐가.”
[내가 말하기엔 좀 뭐하지만 솔직히 나는 형이 안 된다고 끝까지 버틸 거라고 생각했거든. 솔직히 활동 끝나고 휴식도 못 가진 상태에서 바로 프로그램 나와야 하는 것도 좀 그렇고, 사람들 반응도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그냥 촬영 안 한다고 하면 다른 거 알아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솔직히 걱정은 돼. 그런데 애들이 싫다고 하니까…….”
[형 지금 되게 자식한테 PPT로 독립 설득 발표 들어 버린 부모 같다. 큽, 자식의 성장이 기특하면서도 마음이 헛헛하고 앞으로 걔네한테 닥칠 고난을 생각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헛소리할 거면 끊어.”
[아아, 아아앙. 안 할게. 안 놀릴게. 끊으면 전화 받을 때까지 걸 거야.]“…후, 아무튼 너희도 똑바로 해, 애들 진심이니까.”
[네네, 애들한테 피드백 열심히 해 주라는 말이지? 알았어. 그래도 일인데 형이 그렇게까지 말 안 해도 어련히 알아서 하지. 지금 개인 스케줄 끝내고 촬영장으로 이동하는 중이야? 곧 보겠네?]“어, 너희는 언제 오냐?”
[당연히 대선배님들은 제일 늦게 가죠, 아하하하! 우리 후배님, 다시 신인부터 하려니까 죽겠지?]“…….”
나는 차분히 눈을 감고 핸드폰의 전원을 꺼 버렸다.
곧이어 차량에서 내린 나는 [레전드 싱어>의 대기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판테이온의 대기실을 찾기 위해 복도를 떠돌아다니던 중, 내 등 뒤로 무언가가 퍽하고 부딪치는 게 느껴졌다.
“으아아악!”
한승범보다 체중이 20kg 정도는 더 나갈 것 같은 남자였다.
바닥에 떨어진 물을 밟고 미끄러진 듯했다.
‘아, 조졌네.’
태평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 휘청 넘어지려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내 팔뚝을 잡아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한 후, 제 옆으로 내 몸을 끌어당겼다.
“아이고, 이렇게 뼈만 남아 가지고 휘청거리면서 돌아다니면 당연히 자빠지지.”
그리고 어휘 자체는 표준어였지만, 묘하게 사투리 억양이 섞인 듯한 어투가 뒤에서 들렸다.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전문가의 손길을 받아 세팅된 헤어와 의상, 촬영용 메이크업으로 ‘나 연예인이오’ 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이 뭐더라.’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 게 조금 문제이긴 했지만, 아무튼 뭐 하는 애인지는 알고 있었다.
‘레이즈 센터.’
끝이 간당간당하게 묶이는 와인색 머리카락과 애굣살이 두툼하게 올라온 눈매, 적당히 햇빛에 그을린 피부를 차례로 바라본 후에도 결국 상대의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한 나는 그냥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후배는 선배 이름 안 불러도 돼서 편하단 말이지.’
“…….”
그러자 그는 내 팔을 놓지 않은 채 눈 한 번 깜빡이지도 않고 내 얼굴을 빤히 내려다봤다. 그에 내가 조금 의아하여 고개를 비스듬히 들 즈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활짝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승범 씨구나. 판테이온 한승범.”
“네, 안녕하십니까.”
카메라 앞에서 늘 웃는 모습만 보여 남녀노소 호감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놈이었만, 나는 뭔가 예전부터 저놈을 보면 항상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음흉한 눈빛을 하고 있으면서 아무 꿍꿍이도 없는 것처럼 싱글벙글 웃고 있는 게 뭔가 찜찜하다고 해야 하나.
‘왜 이렇게 응큼하게 컸지?’
–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이번에 데뷔하는 신인, 레이즈 ……입니다. 선배님들을 동경해서 이 업계에 들어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선배님,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혹시 제 이름 기억하고 계실까요? ……입니다!
– 유태 선배님,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제 이름…….
신인 시절 프리즘 대기실로 인사를 하러 왔을 때는 저 정도로 속이 안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적당히 귀여운 느낌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건지 징그러울 정도로 많이 변해 버렸다.
‘외관도 많이 변했고……. 사투리 느낌도 많이 사라졌고.’
처음 봤을 때보다는 덩치가 훨씬 더 커져 이제 소년 같은 느낌은 완전히 사라지고 근골격이 두꺼운 성인 남자 같은 몸을 하고 있었다.
‘180cm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정도인가?’
아무튼 ‘키’는 한승범과 얼마 차이가 안 나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 ‘덩치’ 차이가 상당하여 한승범보다 훨씬 더 큰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 프리즘 멤버들 옆에 있을 때는 꽤 왜소한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 저 정도도 프리즘 멤버들 옆에서는 작아 보이는 거면 나와 프리즘은 이제 완전히 애와 어른처럼 보이는 것 아닌가. 아직도 한승범의 몸을 인정하지 못한 뇌가 거부반응을 일으키듯 지끈지끈 울리기 시작했다.
‘방송 나간 거 보면서 쪼갤 거 뻔하니까 그 새끼들 옆에 나란히 서지 말자.’
그렇게 다짐한 나는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며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저는 아직 차례가 아니라서 촬영 방해 안 되도록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제 슬슬 꺼지고 싶다는 표현을 대놓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전혀 그에 동조하지 않은 채 내 팔을 붙잡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멤버들이 그를 툭툭 치며 ‘야, 왜 그래.’ 하고 눈치를 줄 무렵, 내게 대뜸 말했다.
“프리즘 선배님들이 판테이온이 출연하지 않으면 이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 하던데. 무슨 개인적인 친분이라도 있나.”
‘하…….’
역시나 프리즘이 판테이온의 출연을 제시했다는 이야기가 일파만파 퍼져 버린 것 같았다. 부정을 하기에도, 긍정을 하기에도 뭐한 상황에서 나는 그냥 애매하게 대답을 회피하기로 하였다.
“글쎄요. 저는 그런 이야기가 오간 줄도 몰랐어서.”
“맞나.”
“예.”
“…대답 안 해도 된다.”
믿지도 않는 얼굴이었다. 대답해 줘도 안 들을 거면 뭐 하러 물어본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녀석이 또다시 수상쩍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러면 기대 많이 해야겠네. 승범 씨가 워낙 무대를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해서 프리즘 선배님들도 한번 보고 싶으셨나 봐.”
사실 저렇게 내면이 꼬인 놈들은 섬세하게 대해 줘야 하는데 솔직히 그럴 의욕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프리즘도, 판테이온 멤버들도, 최적현도 아닌 놈에게 신경을 쓸 여력 따위는 없단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냥 이제 귀찮아졌다는 뜻이었다.
“우리도 지지 않도록 노력할게. 선배님들이 너희를 하도 많이 예뻐하시는 것 같으니까.”
“예.”
뭔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은 말에 멀뚱멀뚱 서 있다가 간결하게 대꾸하며 대화를 종료하자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러든 말든 나는 간다.
* * *
드디어 [레전드 싱어>의 촬영이 시작되고, 연차에 따라 출연진이 차례대로 등장한 다음 스튜디오의 불이 완전히 꺼졌다.
그리고 프리즘의 데뷔곡이 흘러나오며 무대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스크린에 프리즘이 지금까지 걸어온 눈부신 성취의 순간들과 프로그램 출연진들의 인터뷰가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 [프리즘, 또다시 대상입니다!]
– [프리즘 선배님들처럼 되고 싶어요. 이건 남자 아이돌이라면 모두 다 꿈꾸는 거 아닌가요?]
“와… 진짜 대박이다.”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를 보며 후배들이 감탄을 흘리고 있을 즈음, 다시 스크린의 빛이 꺼지며 스튜디오가 완전히 암전되었다.
[Yes, we are PRISM.]그리고 마지막으로 긴 세월 동안 수도 없이 입에 담았던 구호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순간, 깜깜하게 불이 꺼져 있던 무대에 한줄기 조명이 떨어지며 프리즘 멤버들이 나타났다.
“와아아!”
“프리즘 선배님들이다!”
고막을 찢을 듯이 열광적인 후배들의 환호 속에서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함께 박수를 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돌덩이가 된 것처럼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왜 이러지?’
그런 나 자신에게 위화감을 느끼고 있던 중, 판테이온의 쇼케이스 날 봤던 제이의 모습이 무심코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이런 기분이었구나.’
지금의 나는 그때의 제이와 똑같았다.
그를 자각하며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하자 스크린 속의 제이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카메라도 아닌 어딘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카메라도 아니고, 어디에 저렇게 정신이 팔려 있나 싶어 제이 본인에게 고개를 돌려 보니 바로 시선이 마주쳤다.
“…….”
녀석은 무대에 올라온 순간부터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내가 있을 장소는 이곳이 아닌, 자신들의 옆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