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나는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운다.
설령 억지로 기억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린다.
업무와 관련된 중요 인물의 정보는 상대가 겁을 먹을 정도로 속속들이 암기할 수 있지만,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 형, 멤버들 집 공동 현관 비밀번호까지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으면서 방금 만난 사람이 전에 만난 적이 있는지 없는지 기억 못 하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아?
멤버들도 그렇게 말하고 스스로도 이상이 좀 있다고 생각하여 검사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뇌에 별문제는 없었다.
고릴라 수준으로 튼튼하다는 의사의 답변을 들은 내가 결국 고민 끝에 찾은 결론은 단순했다.
아무래도 나는 관심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만약 배제해도 되는 사안이라면 그 정보를 완벽하게 차단하여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것 같았다.
나는 평소부터 프리즘과 멤버들의 개별 활동 기획, 제작, 작곡, 무대 구성, 사생활 관리 등 많은 일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 주제에 예민하기까지 하여 보통 사람들보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했던 내가 본능적으로 찾은 해결 방법이 그것이었다.
예를 들어 COMA-1. 그들은 완전히 우리의 경쟁 대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태의를 제외하고는 아예 관심이 사라졌다고 보는 게 옳았다.
‘하지만 레이즈는 달라.’
연차가 쌓임에 따라 진작 자연스럽게 정상에서 멀어졌어야 할 프리즘이 비정상적으로 오래 버티고 있는 와중, 그나마 근처까지 쫓아와 아이돌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그룹이었고, 지금 판테이온으로 있는 순간에는 우리보다 앞서 1군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발 주자였다.
‘지금 우리가 현실적으로 경쟁 대상으로 삼아야 할 그룹이지.’
따라서 레이즈는 내 관심 범위 안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 소속 회사의 전략, 멤버들의 성향과 스캔들 등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 안에서도 특히나 센터는 요주의 대상이지.’
친목질 할 생각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아직 이름을 기억하지 않은 것뿐, ‘레이즈 센터’에 대한 정보는 꽤 있는 편이었다.
[센터, 저는 리다가 탑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물은 모두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다.]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저 발언은 완전히 아웃이었다.
‘…….’
라이즈 센터의 눈동자에 실시간으로 안광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자세히 살펴 보면 방금 젠의 발언은 ‘센터’, ‘저는 리다가 탑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물은 모두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다.’ 짧게 나뉘어진 세 개의 영상을 교묘하게 이어 놓은 것이었다.
‘아마 각기 다른 질문에서 나온 대답을 엮은 거겠지.’
하지만 저 정도로 끊어지는 편집은 딱히 악마의 편집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상황에서도 곧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출연진들은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오.”
일단 장본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관건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젠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했다.
[Q. 목표 순위는 몇 위인가요?] [당연히 1등입니다. 언제나 정상을 노리지 않는 자, 승리을 쟁취할 수 없다.]저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타이밍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와, 배짱 좋다. 요즘 친구들은 다 이런가 봐?”
“선배들 다 제치고 1위 하겠다고? 진짜? 아이고, 귀엽다, 귀여워!”
휘파람을 부는 소리와 함께 레이즈의 다른 멤버들이 방송용 미소를 지은 채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화면 속의 젠은 언제나와 같이 혼자 풀 악셀을 밟을 뿐이었다.
[짓밟아 주겠습니다. 덤비시오.]그리고 엄치를 척 들어 목을 가로로 긋고 다시 아래로 처박는 제스처가 이어졌다.
[붐따.]‘…뭔따?’
인터넷 용어인 것 같았다. 설마 방송 불가 용어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살벌한 얼굴로 도유다의 허벅지를 소리없이 움켜쥐자 공포에 잠식된 녀석이 ‘제, 제가 가르친 거 아니에요!’ 하고 정신없이 해명하기 시작했다.
“아하하! 우리보고 붐따래!”
그리고 그사이, 스크린에서 젠이 사라지고 이단비의 얼굴이 꽉 차게 나타났다.
[Q. 레이즈 멤버들이 뽑은 가장 견제되는 대상이 판테이온이에요, 현재 예상 순위 1위 그룹하고 앞으로 경쟁하게 될 텐데 어떻게 생각해요?] […하면 하는 거죠. 제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얼마나 힘들든 해야 하면 그냥 한다. 그리고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이단비의 평상시 태도가 잘 드러나는 차분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현재 나기 젠의 발언으로 어그로 킹 포지션이 되어 버린 판테이온의 멤버가 그렇게 말하니 마치 ‘고작 레이즈 정도로 내가 왜 호들갑을 떨어야 하냐.’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와…….”
젠의 ‘붐따’ 발언에 억지로 유쾌한 척, 여유로운 척 웃고 있던 선배들의 눈썹이 삐딱하게 올라갔다. 그러자 인터뷰 영상이 재생된 이후로 내내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던 우강원과 백기량이 이제는 급기야 머리를 부여잡고 ‘아아아, 단비 너마저.’ 하고 절규했다.
‘개판이네.’
그 광경을 무표정으로 바라보던 나는 차라리 이화영이 끌려가지 않았던 것에 감사하기로 다짐했다.
– 왜 내 가치를 내 입으로 떨어트려야 하는 거지?
– 알아서들 떠들라고 해. 나는 신경 안 쓰니까.
천산천하 유아독존, 겸손의 미덕이라는 것을 거부하며 나나 카밀라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앞에서는 공격성을 숨기지 않는 그 도련님이 인터뷰를 했다면 굳이 ‘악마의 편집’을 하지 않아도 우리 그룹은 끝장났을 것이다.
“…….”
봐라, 우리 꼬마 도련님은 이단비의 대답이 아주 만족스러우신 듯했다.
미세하게 호선을 그리는 입꼬리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어디 있어? 얼굴이나 한번 좀 보자.”
그룹 이름이야 자막에 나와 있었고, 젠의 얼굴은 방금까지 화면에 꽉 차게 나와 있었다. 그런데 굳이 고개를 저렇게 불량하게 빼 들고 멤버들을 보려고 하는 이유는 필시 눈깔질로 기를 눌러 놓겠다는 생각이리라.
보통 후배라면 그에 시선을 피하거나 침을 꿀꺽 삼키는 등 기가 죽는 모습을 보였을 터다.
하지만 판테이온 멤버들이 어디 쉽게 기가 죽을 놈들인가.
“다들 쳐다보시네요.”
“…….”
이단비는 자신을 쳐다보는 선배들을 가만히 마주보고 있었으며, 이화영은 다리를 꼰 채 배부른 사자처럼 의자에 편안히 기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기 젠은…….
“모두가 나를 바라봐. 지금부터 천재 아이돌 나기 젠의 시대가 시작되다.”
항상 독보적이었다.
‘…그래, 사고 칠 거면 차라리 콘셉트라도 확실하게 유지해라.’
아, 그리고 나머지 쫄보들은 선배들의 압력에 눌려 모두 앉은 채로 기절했기 때문에 미동도 없었다.
후배들이 겁 좀 먹고 움츠러드는 모습을 한번 보여야 선배님들 마음도 좀 풀리고, 폼도 좀 잡을 텐데 강강약강 이씨 두 명과 이 사태의 근원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는 나기 젠으로 인하여 스튜디오에 더욱 살벌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동안 출연진들을 쓱 훑어본 이치세가 조인찬 쪽으로 고개를 젖히고 말했다.
“되게 애들이 순하다, 그치.”
그야 그냥 꼬우면 쌍욕 하고 디스 랩 하는 래퍼들에 비교하면 여기는 뭐 참새 소꿉장난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마냥 또 만만하게 보아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래퍼나 댄서들의 싸움이 대놓고 치고 패는 주먹질이라 하면, 이곳의 신경전은 마치 정신 빼놓고 있으면 모르는 사이에 입에 문 칼로 찔리는 귀족 영애들의 티파티 같았다.
싸울 거면 그냥 대놓고 싸우지 성가시게 깔짝거리기만 하는 기 싸움에 약간의 피곤함을 느끼고 있을 즈음, 레이즈의 센터가 출연진들을 향해 말했다.
“아이고, 다들 그러지 마라. 무서워서 애들이 아무 말도 못 하잖아. 아마 어려서 잘 모르고 한 말일 텐데. 그냥 예쁘게 봐주자. 앞으로 얼마나 잘하는지 보면 돼.”
“선배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쩔 수 없죠.”
“역시 우리 라온 친구들 너무 착해. 고마워요.”
‘꼴값들을 떠네.’
카메라를 향한 인성과 선배다운 여유로움 어필, 싱그러운 미소, 묘하게 판테이온에 위축된 이미지를 뒤집어씌우는 발칙함, 어울려도 별문제가 생기지 않을 그룹을 편으로 만드는 것까지 무엇 하나 빼먹지 않았다. 저놈 저거, 드레스만 안 입었지 소설 속 영애의 화신 같은 놈이었다.
딱 봐도 성가신 스타일이었지만, 어쨌든 이대로 넘어가면 상관없었다.
나는 어차피 우리 멤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니까.
“제가 도와드린 거예요, 승범 씨?”
하지만 녀석은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것인지, 굳이 나를 콕 집어 저런 말을 했다. 아까 젠의 미물 발언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 저러는 건가. 대중들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농담을 하듯 윙크를 하고 애교 섞인 투로 말하는 게 참 능숙했다.
‘아, 어린놈이 꼰대질 한번 기가 막히게 하네.’
그에 속으로 쯧, 혀를 찬 나는 일부러 작가가 들고 있는 스케치북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다가 내게 조용한 주변과 나를 향한 여러 개의 시선에 그가 내게 말을 건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것처럼 눈을 크게 뜨며 조금 놀란 시늉을 한 뒤, 퍼뜩 라이즈 센터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상대가 내게 건넨 말의 내용을 잘 듣지 못한 것처럼 미안한 얼굴로 되물었다.
“네?”
자, 다시 말해 봐라. 고맙다는 말 듣고 싶어서 미친 사람처럼 볼품없어 보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악플 방지용 윙크질이나 애교도 두 번은 민망해서 못 하겠지만 어디 한번 해 봐라.
“…….”
레이즈 센터의 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는 걸 확인한 나는 약간 걱정하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러자 그는 의도적으로 사투리 억양을 과하게 섞어 ‘됐다!’ 하고 너스레를 떨며 웃어넘겼다.
그렇게 적당히 마무리되는 듯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제이가 은근한 미소를 머금은 채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 성화가 많이 컸네요. 이제 후배들한테 선배 노릇도 하고…….”
원래 제이는 카메라의 앞에서 후배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씨’를 꼬박꼬박 붙여서 존중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굳이 ‘우리 성화’라고 상대를 낮춰 불렀다.
“그렇지?”
지금 그가 취한 행동의 의도를 모두 파악하고 있고, 아무리 경쟁 그룹들 사이에서 레이즈가 가장 인기가 많고 연차가 높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프리즘의 아래에 있으니 한참 선배들의 앞에서 후배들을 잡는 버릇없는 짓은 적당히 하라는 경고였다.
‘…허.’
그에 단번에 스튜디오 내의 공기가 환기되는 것을 보니 역시 악역 영애도 꼬리 아홉 개 여우의 앞에서는 힘을 잃어버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 뒤는 차례대로 순서를 돌아가며 각 그룹에 대한 출연진들의 평가를 듣는 시간이 이어졌다.
– [솔직히 후배들한테 지는 건 자존심 상하죠. 그래도 무대에 선 경험이 다른데 못 이기면 저희 팬분들이 속상해하실 것 같아요.]
– [아, 판테이온 연말 무대 봤죠. 정말 멋있던데요. 그런데 약간 궁금한 건 그거를 과연 우리 친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한 게 맞을까? 그런 거죠…….]
– [메인 보컬이 되게 빵빵한 건 알아요. 그런데 댄서 라인은 솔직히 말하면 한… 한승범? 그 친구 외에는 막 엄청 경계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우리 그룹이 주로 공격당한 것은 ‘경험’, 그리고 우강원이나 이단비처럼 상대적으로 무대에 관련된 재능을 타고나진 못한 멤버들의 실력이었다. 혹은 젠의 기본기라든가.
하도 불편한 티를 많이 내길래 다른 그룹들은 좋은 소리만 한 줄 알았는데 무슨 ‘웃는 얼굴로 수동 공격 하기’ 잔치였다. 경쟁 프로그램의 맛을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제작진들의 유도에 모르는 사이 넘어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 그룹은 가장 연차가 적은 그룹이었기 때문에 다른 출연진들이 훨씬 더 편안하게 비평을 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연습실 가서 연습이나 하고 싶다.’
쉬는 시간 직전까지 이어진 촬영의 피로를 덜기 위해 손을 씻고 있던 중, 누군가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근처에 서더니 숨을 깊게 들이마시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나 따라다녔던 스토커랑 되게 비슷한 향기 난다.”
“…….”
“기성 제품 아닌 것 같은데.”
레이즈의 센터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