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7)
27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만 해도 나는 괜찮았다.
내 선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리 달갑지는 않았으나, 목격자가 한 명쯤은 생겨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뭐 하는 거야?”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제이였다.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상황이 개같이 망했다는 것을 감지했다.
최악이었다. 가장 원하지 않았던 전개였다.
‘젠장, 젠인가!’
젠은 걱정이 많고 생각이 깊었다.
이 난리 통 속에서도 프릭의 앞에 나를 홀로 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할 정도로.
따라서 연습실에 돌아간 젠이 한 선택은.
‘한승범에게 가장 우호적인 어른’에게 상황을 알리는 것일 터였다.
고마운데 안 고마웠다.
“아, 선배님! 이, 이건 그냥 사고고…….”
제이를 발견한 프릭이 당황한 듯 냉큼 내게서 떨어져 제이에게 다가갔다.
이 사태에 대해 해명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제 와서 설명하려고 해도 이미 처맞는 걸 다 봤는데, 없던 일이 되겠냐고.’
난리통이 된 연습실을 조금이라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프릭은 손을 휘저으며 거울 조각을 가렸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애초에 제이는 산산조각 난 거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연습실에 들어온 이후로 눈에 담고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
제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발짝씩 이곳을 향해 걸어왔다.
놈과 함께한 수많은 세월이 빅 데이터로 작용하여 내 머리에 위험 신호를 울렸다. 녀석이 아무 말도 안 하면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등과 손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주변에 휘두를 거 없지?’
나는 웬만해선 놈을 컨트롤할 자신이 있었다.
싸가지 챙기라고 등짝 갈기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다른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예외였다.
주변에 빠따가 없는 게 다행이었다. 나는 제이가 폭력 사건을 일으켜 커리어를 망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제이의 구두 밑바닥에 밟힌 거울 파편이 으드득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기어코 놈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내 옷자락을 들쳐 보았다.
말려 올라간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피부에는 푸른 멍이 가득했다. 계단에서 몸통 박치기를 시전한 결과였다.
“쟤야?”
상처를 입힌 것이 프릭이 맞느냐는 물음이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머리 좀 식히라는 뜻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건 지금 생긴 게 아니라 넘어져서 생긴 것이니까요. 제 일에 제이 트레이너님께서 신경 써 주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제이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괜히 고생하지 말라고 말해 줬더니 저놈은 또 뭐에 삔또가 상한 것 같았다.
넘어져서 생겼다는 말이 너무 핑계 같아서 그런가?
붉게 흔적이 남은 옆얼굴과 멍이 든 몸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놈이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리고 잠시 비틀거리더니 불안정한 숨을 뱉었다.
‘최악이다. 쟤 왜 저래.’
애 상태가 별로 안 좋았다. 빨리 내보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제이의 몸을 약하게 밀어 문밖으로 유도하려 했으나 이 기특한 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시 나가 계시면….”
‘나 혼자 알아서 해결하마.’ 따위의 대사를 다 말하기도 전에 제이가 조용히 내 입 앞에 손을 들었다.
닥치라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화났네.
오케이.
“선배님, 몸 안 좋으시면 먼저 들어가서 쉬십시오. 제가 제작진분들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딱 봐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제이의 비위를 어떻게든 맞추려는 것인지 프릭이 허리를 연신 굽히며 말했다. 제이는 구역질을 참느라 아래로 고정했던 시선을 들어 올려 프릭을 노려봤다.
“여기, 너무 지저분해져서… 한승범 연습생도, 조금 놀라셨죠? 하하. 정리해야 하니까 잠깐 나가 계시면.”
“…….”
“한승범 연습생이 실수로 거울을 깼거든요. 이거 참, 기강이 안 잡혀서… 제가 책임지고 다 잡아 두겠습니다. 제작진분들께는 제가 잘 설명할 거고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제이 때문에 당황한 것인지 프릭은 제대로 문장을 갖추지 못한 말을 생각나는 대로 줄줄 뱉었다. 그 와중에도 카메라 쪽에 흘끔흘끔 시선을 주는 것을 보니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저는 그냥 놀라서 한승범 연습생 보호하려고 했던 겁니다. 승범아, 많이 놀랐지? 손이 그렇게 부딪칠 줄 몰랐어.”
제이에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프릭이 눈썹을 찌푸리며 내게 눈치를 줬다. 자기의 말에 동조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눈.”
내내 침묵을 지키던 제이가 대뜸 짧은 단어를 입에 담았다.
“예?”
“한 번만 더 쳐다보면 넌 끝장이야.”
“…네.”
놈의 협박에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살벌한 경고가 떨어졌다. 프릭은 영문도 모르는 채 요동치는 눈동자를 바닥으로 고정하고 눈치를 봤다.
모를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그냥 제이의 원픽 연습생인데요, 사실은 제이 다 키워 놓고 말없이 죽었다가 이제야 되돌아온 형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종수야.”
“예, 선배님.”
한 손으로 내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운 놈이 프릭의 본명을 불렀다. 본격적으로 킬 각을 재고 있는 어투에 나는 녀석의 어깨를 끌어다 귀에 속삭였다.
“카메라 있습니다, 여기.”
“그래?”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 카메라의 위치를 확인한 제이가 덤덤하게 반응했다.
나는 나름 걱정해서 해 준 말이었는데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이런 싹바가지 없는 놈.
구두 소리가 점점 다가올 때마다 프릭이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후배들 괴롭히면서 스트레스 풀면 사는 게 좀 재미있어?”
“아, 아니요. 저는 괴롭히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고…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프릭의 어리석은 대답에 제이가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그러면 내가 너한테 똑같이 행동해도 불만 없겠네. 괴롭힌 게 아니니까.
“…….”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종수야, 어떡할래? 얘 몸에서 멍 하나씩 보일 때마다 맞을래?”
제이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눈가는 웃음기를 전혀 머금고 있지 않았다.
“나도 그러다가 선배한테 걸려서 연예계 인생 끝장나면 되는 건가? 프로그램 도중에 하차당하고.”
“…죄송합니다.”
벌을 서듯 양손을 앞으로 모아 잡은 프릭이 겁을 먹은 채 그제야 옳은 답을 내놓았다.
대대 후배들에게 과한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놈들은 본인도 선배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겁을 집어먹기 마련이었다. 프릭이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를 자랑하는 제이는 놈에게 있어 분명한 공포였다.
“나는 너 같은 놈들이 싫어.”
“…….”
“비굴하고, 오만하고 무능한 주제에 자존심은 세지.”
제이는 손끝이 저리는 듯 왼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네가 오만방자하게 굴 줄 알았다면, 그냥 PD님이 방송 좀 자극적으로 뽑자고 너를 섭외하겠다고 했을 때 두고 보지 말 걸 그랬어.”
일전에 내게 제이가 말하기를, 이 프로그램은 처음 섭외가 들어왔을 때 거절했으나, 메인 PD가 하도 구질구질하게 따라다니며 애원하기에 승낙한 것이라고 했다.
프로그램 내의 모든 출연진 중에서 최우선 사항으로 고려된 제이는 사전에 트레이너진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았고, 괜찮냐는 확인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제작진이 제이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등장 순서, 스케쥴 조정, 대우에 걸쳐 모든 출연진들이 은연중에 느꼈던 부분이었다.
‘제이 정도로 화제성과 커리어를 모두 갖춘 연예인은 드무니까. 아마 제작진 측에서도 제이가 간절했겠지.’
실제로도 제이의 콜라보 무대는 타 트레이너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화제성을 불러왔으니 본인의 가치를 톡톡히 증명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는 즉, 제이의 의견이 제작진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멀쩡한 스케줄 하나 잡는 것도 못 해서 욕받이로 불려 다니면 행동거지를 잘했어야지.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는데.”
“제발… 제발.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다시는 이런 짓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널 가만히 둔 게 용인이 아니면 뭐야?”
“네, 네가 좀 말해 봐. 그 멍들, 내가 만든 거 아니잖아!”
제이가 본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음을 깨달은 것인지 프릭이 내게 매달렸다. 제이가 내게 호의적이니 내 말이라면 들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전 모르겠어용.”
나는 모르쇠를 시전했다.
안타깝게도 꼴 보기 싫은 놈 지키자고 칼춤 추고 있는 놈 앞에 나갈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뭔가 몸 상태가 이상했다.
‘…몸이 왜 이러지?’
사지가 축축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해가 다 져 가는데 아직 끼니를 챙기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예민하고 까다로웠다.
사내놈들이 북적거리는 단체 생활은 내게 쥐약일 정도로.
전생에서는 매니저가 하나하나 챙겨 주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잘 챙겨야 했다.
‘오늘은 우강원과 도유다가 떠드는 소리 때문에 잘 못 잤고.’
하지만 프로그램 준비, 강혁우, 제이, 프릭, 젠, 박상중까지,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수면과 식사를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리저리 구르는 게 한승범의 비쩍 마른 몸에 생각보다 훨씬 더 부담이 간 모양이었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로 문제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다급한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것처럼 웅웅 울렸다. 뭔가 지들끼리 천만리 앞까지 이야기를 진전시킨 것 같았다.
주로 프릭의 연예계 인생을 조져 버리는 방향으로.
‘이 미친 똘추들아, 그만 싸워 봐.’
삐이익.
이명이 들리더니 이제는 시야까지 뿌옇게 변했다.
일단 머리가 너무 울려 두 놈의 입을 다물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제가 소속사에서 너무 많이 맞고 마음이 힘들어서 그랬습니다. 선배님, 제발 저 좀 불쌍하게 여겨 주세요.”
“지금 얘 몸을 봐. 내가 널 불쌍하게 여기게 생겼나.”
“두 분, 진정하세요.”
둘의 사이로 들어가 팔을 휘저었다. 드디어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좀, 진정.”
“이번만큼은 양보 못 해. 초장에 밟아 놓지 않으니까 분수를 모르고 계속 설치잖아.”
“알 수 있습니다. 몸 사리면서, 반성하면서 살겠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옆으로 빠져 있어. 내가 해결해.”
제이는 내가 일을 키우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RH 엔터테인먼트에 있었을 때처럼.
“나는 절대로 그냥은 못 넘어가니까.”
“선배님, 저 정말로 반성하겠습니다. 제발요!”
하지만 아니었다. 머리 아파 죽겠으니 제발 둘 중 하나라도 닥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거 말고. 개새끼들아!’
지금 도대체 뭐 때문에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나 때문에 싸우는 거잖아.
그 소중한 사람이 지금 상태가 메롱인데 뭘 계속 싸우고 있는 거야.
투둑, 툭.
얼굴에 화끈한 느낌이 들더니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리저리 날뛰는 시야를 애써 고정해 보니 바닥에 떨어진 것은 붉은색의 액체였다.
‘머리 쪽인가.’
처음에는 머리를 잘못 맞아서 두피가 찢어진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소매로 맞은 부분을 아무리 훔쳐 보아도 피가 묻어 나오지 않았다.
내 상태가 이상한 것을 감지한 제이가 바닥에 떨어진 피를 발견했다. 그리고 노성을 터트리며 프릭의 멱살을 잡았다.
“너! 도대체 얼마나 사람을 괴롭혔길래 상태가 저 모양이야!”
‘쟤를 잡지 말고 나한테 오라고.’
여기에 믿을 만한 놈이라곤 하나밖에 없는데 그놈이 저 모양이네.
“저, 저는 저기 때린 적 없어요!”
“뭐?”
프릭의 말이 구라는 아니었다.
지금 문제가 생긴 부분은 맞은 곳이 아니라 나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였다.
띵하게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얼굴의 축축한 부분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그러자 코의 근처에서 시뻘건 물이 가득 묻어 나왔다.
‘아, XX.’
피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그리고 기울어진 시야 사이로 내게 팔을 뻗은 제이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이제야 오시네.
“한승범!”
“그러니까 적당히…….”
하라고 했잖아. 이 개자식들아.
그 말을 끝맺지 못한 채 눈앞이 새카맣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