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그 뒤로는 각 그룹의 타이틀곡 무대를 보고 프리즘이 등급을 매기는 등급 평가가 이어졌다. 판테이온의 활동곡 같은 경우에는 이미 내 주도하에 질릴 정도로 연습과 무대 경험을 많이 쌓은 상태였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 역시 판테이온, 무대 잘하네요.
– 멤버들 개개인의 능력치가 뛰어나서 되게 다양한 구성을 보여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순조롭게 호평을 듣고, 우리는 레이즈와 함께 가장 높은 등급인 A등급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베네핏으로 연습에서 피드백을 줄 멘토와 경연곡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애들이라고 해도 내가 고른 놈들인데… 기본적으로 타고난 능력치가 다르지.’
무대 경험이니 후배들에게 지면 안 될 것 같다느니 떠들었던 주제에 더 낮은 등급을 배정받은 ‘선배 그룹’들은 마치 아무 말도 안 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을 뿐이었다. 평가 결과에 반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프리즘의 손으로 정한 등급이었으니까.
“어떤 선배님을 고르는 게 좋을까요?”
우리는 우선 경연곡을 정한 뒤 연습 기간 동안의 멘토를 고르는 동안, 도유다가 ‘힌트 주세요.’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망울로 나를 돌아봤다.
‘왜 프리즘 놈들 공략하는데 힌트를 나한테 찾는 거야. 내가 누구인 줄 알고.’
“…너희가 원하는 대로 골라. 나한테 의지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내 단호한 거부에 말에 울상을 지은 멤버들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나누고 있던 중, 내내 가만히 있던 이단비가 입을 열었다.
“…저는 차운 선배님이 좋을 것 같아요.”
“…….”
“그렇게 해도 돼요, 형?”
나는 나를 올곧게 올려보는 이단비를 응시하며 입꼬리를 느슨하게 끌어 올렸다.
* * *
첫 촬영을 마치고 일주일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은 프리즘 멤버들이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서 후배들의 연습을 보고 피드백을 해 주는 날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안녕하세요.”
발칙하게도 같은 멘토를 선택한 레이즈와 함께 연습을 하고 있던 중, 불시에 가벼운 셔츠 차림을 한 차운이 연습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잠깐 시선이 마주쳤지만, 녀석은 금방 고개를 돌리고 제작진들이 준비해 둔 간이 책상에 다가가 들고온 파일과 커피를 올려두었다.
‘아주 커피에 쩔어 있군.’
이미 빡빡한 스케줄 속에 [레전드 싱어>를 억지로 쑤셔 넣은 탓인지 얼굴에 조금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 얼굴을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즈음, 놈은 본인의 키에 맞지 않는 의자에 긴 다리를 불편하게 꼬아 앉은 후, 레이즈를 향해 물었다.
“…준비한 거 볼까요? 연차 높은 친구들부터.”
“네!”
이치세였다면 ‘자, 가위바위보!’ 이딴 식으로 순서를 정하며 분위기를 풀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차운에게 그 정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선택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꼼짝없이 무대를 선보이게 된 레이즈는 ‘어후’하고 버거운 내색을 내비치지도 못하고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공성화의 리드에 따라 대형을 맞춰 선 후, 제작진이 틀어준 MR에 따라 연습한 무대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곡의 도입부를 여는 것은 예상했던 것처럼 공성화였다.
공성화는 댄스를 메인 포지션으로 미는 것 같았지만, 존재감이 커 중앙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정돈된 듯한 느낌을 안겨 주는 놈이었으니 도입부를 맡는 것도 꽤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네. 선곡도 무난하고.’
레이즈가 선택한 곡은 정규 4집의 타이틀곡 [KnockOut>이었다.
프리즘의 곡 중에서는 난이도가 낮은 편에 속했지만, 훅이 귀에 꽂히는 느낌으로 부각되어 대중성이 큰 장점인 레이즈와 그나마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템포가 빠라서 무대 위에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도 쉽고.’
현역 1군의 수장다운 영리한 선택이었다.
그런 평가를 하며 무난하게 지나가는 파트들을 듣고 있던 중, 조인찬의 파트가 등장하는 타이밍에서 내내 뒤에 박혀 있던 멤버가 앞으로 나왔다.
“…….”
그가 입을 떼자마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이 곡의 작곡가인 나와 차운이었다.
내가 미세하게 눈꺼풀을 내리깔고, 차운이 만년필 끝을 책상에 툭 부딪친 다음으로는 백기량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마 이 자리에서 가장 음정과 박자에 예민할 터인 녀석이 갑자기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뻔했다.
‘…음정이 안 맞아. 박자도 반박자 빠르고.’
보아하니 노래 실력이 부족하여 평소에 AR에 많이 의존하는 버릇을 들인 멤버인 듯했다.
여느 그룹에나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구멍’이라고 부르는, 상대적으로 다른 멤버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멤버가.
‘본인들 노래였으면 그 파트만 죽도록 연습해서 그나마 괜찮게 부를 수 있었을 텐데, 이번에는 레이즈의 노래보다 난이도가 높은 노래를 짧은 시간에 준비해야 하니까 부족한 부분이 티가 나는 거야.’
앵콜 무대에서도 종종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공성화가 도와주는 일이 잦은 멤버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한테 쌩MR에 노래를 부르라 했으니 음정이든 박자든 미묘하게 엇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이 파트는 고음이 없긴 하지만 아주 낮은 음과 편한 음을 오가며 엇박으로 박자를 타야 하기 때문에 듣는 것보다 실제로 불러 보는 게 훨씬 더 난이도가 있었다.
한 끗 차이로 퀄리티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는 말이었다.
조인찬의 파트가 대부분 그랬다.
‘심지어 동선 이동도 신경 써야 하고…….’
고음에서 음 이탈이 나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음역대에 맞춰 파트를 배분한 것 같은데 그것은 조금 안일한 선택이었던 모양이다.
‘차라리 악 쓰면서 고음이라도 지르는 게 나았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상을 감지한 공성화가 흘끔 차운의 눈치를 본 순간, 차운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제작진들이 MR를 꺼 버리고 한참 준비한 무대를 선보이던 레이즈의 멤버들이 그 자리에 뻣뻣하게 멈춰 섰다.
“…….”
“…….”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차운은 고개를 숙인 채 파일 위의 종이에 빼곡하게 메모를 하고 있었다. 만년필의 펜촉이 신경질적으로 종이를 긁을 때마다 레이즈 멤버들의 눈깜빡임이 점점 빨라졌다.
“앞으로 나와 봐요.”
차운이 종이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렇게 말하자 연습실 안의 모든 눈동자가 단번에 실수를 한 멤버를 향했다. 아직 정신이 없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 멤버는 공성화의 손에 등을 떠밀려 주섬주섬 차운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까 본인 파트 다시 불러 볼래요?”
차운의 지시에 우강원이 숨을 훅 내쉬었다. 이 분위기에, MR 위에서도 제대로 못 부르는 놈에게 무반주 노래를 시키는 극악무도함을 보고 정신이 아찔해졌나 보다.
당연했다.
원래 한 놈이 선생의 기분을 조져 놓으면 그 뒤에 오는 놈이 기깔나게 하지 않는 이상 그날 레슨 분위기는 이미 망한 것이다. 혹여나 그렇게 뒤에 잘하는 놈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교 대상이 되어 눈치 보이는, 모두가 불행한 세계의 완성이었다.
‘그래도 차운치고는 나름 부드럽게 이야기한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표정이 너무 싸늘해서 부드러운 화법 따위는 이미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살벌한 비주얼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킨 레이즈의 멤버가 짤막한 파트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시.”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다시 하라는 말뿐이었다.
그에 재차 레이즈의 멤버가 노래를 불렀지만, 이번에는 박자가 좀 빨랐다.
“다시.”
모든 예체능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무한의 ‘다시’ 지옥이었다.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 속에서 다시 레이즈의 멤버가 어물어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공성화가 고갯짓으로 박자를 맞춰 주었다. 그러나 계속 틀리던 부분에서 또 음정 실수가 나와 버렸다.
“…….”
책상 위의 종이를 내려보고 있던 차운의 검은 자위가 도르륵 굴러 공성화를 향했다.
도와주지 말라는 지적이 훤히 보이는 눈빛에 공성화가 고개를 아래로 숙이자 차운은 별다른 말 없이 책상의 옆에 세로로 놓여 있던 건반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까부터 반복된 파트의 반주를 건반으로 쳐 주며 물었다.
“이렇게는 부를 수 있어요?”
그에 레이즈의 멤버가 파트를 제대로 부르는 것에 성공하자 레이즈 멤버들은 그제야 좀 숨을 돌릴 수 있는 듯 소리 없이 호흡을 내쉬었다. 하지만 차운은 감흥 없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원래 있던 책상으로 몸을 돌릴 뿐이었다.
그리고 메모를 해 둔 종이를 쭉 훑어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요.”
“…….”
“지금 이 단계에서 내가 건반으로 음을 짚어 줘야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지. 연습생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차운은 재즈 피아노도 잘 치는데.’
아까까지 건반 위에 올라가 있었던 길쭉한 손가락을 보며 태평하게도 딴생각이나 하고 있자 도유다의 울망울망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딱 봐도 ‘차운 선배님이 정답인 거 아니었어요?’ 하고 묻고 싶은 얼굴이었다.
나는 정면을 향해 고개를 휙 돌리며 그를 모르는 척해 버렸다.
‘내가 차운이 정답이라고 하긴 했는데 ‘가장 편한 선택지’라고는 말 안 했잖아.’
사실 모든 후배가 기피하는 프리즘의 안에서도 유난히 접근하기 어려워하거나 공포의 대상이 되는 멤버들이 있긴 했다.
나, 서유성 그리고 차운.
머리카락 시커먼 세 명이 그 주인공이었다.
‘생겨 먹은 것 때문이겠지. 서유성은 안 웃어서 그런 거지만.’
하지만 실상으로는 그 셋 중 두 명인 나와 차운이야말로 후배들에게 그나마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는 놈들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정을 못 버린다고 해야 하나.
‘서유성은 그냥 무슨 수를 써서든 피하는 게 맞고.’
이치세는 얼핏 보기에 프리즘 멤버들 중에 가장 대하기 편한 인상이었으나 실상은 그러지 않았다. 단순히 짧게 어울렸다가 멀어지는 것 정도라면 이치세가 가장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를 맺길 원하거나 감정을 기반으로 한 어떤 행동을 바라는 경우 이치세는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참 성격 독특한 놈이야.’
이치세는 후배들이 본인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더라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그저 하하호호 미소 지은 채 속으로는 ‘얘네는 글렀네.’라고 판단하며 그들의 이름 위에 빨간 선을 그어 놓을 뿐이었다.
‘아마 연습 분위기는 이치세가 있는 곳이 가장 좋지 않을까.’
본인 앞날 말아먹든 말든 상관없으니 무작정 너그러운 태도로 일관한다.
이게 이치세의 기본적인 자세였다.
‘조인찬은 스케줄이 꼬여서 이번 연습 멘토에서 빠져야 했고.’
그리고 제이나 남이훤도 후배들을 철저히 업무상의 관계로 구분 지어 제작진들이 최저한으로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관심을 쏟지는 않을 것이다. 제이가 ‘Survive IDOL’ 방송에서도 여러 번 보였던 모습과 비슷하게 말이다.
멘토의 엄격함에서 비롯된 적당한 긴장감은 결과물의 퀄리티를 향상시키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꾸중이나 격려는 멘토의 열정과 애정을 필요로 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판테이온에게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프리즘에 차운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제대로 두들겨 맞으면서 배워라. 어차피 이러려고 여기 나온 거였으니까.’
그냥 맞는 느낌이 아니라 칼로 찔리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렇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모두 준비된 무대를 선배 가수가 평가하기만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준비하는 과정을 우리가 중간중간 지켜보고 다음에는 더 좋은 무대를 할 수 있도록 피드백을 주는 거죠.”
“…….”
“최종적으로는 여러분이 좋은 무대를 대중들에게 보여 줄 수 있도록 보조해 달라고 우리가 있는 거예요. 우리는 그걸 제대로 이해하고 여기 출연을 결심한 거고요. 그래서 바쁜 스케줄 쪼개서 지금 여기 온 건데…….”
조곤조곤 막힘없이 말을 이어 나가던 차운은 팔을 앞쪽으로 괴어 몸을 숙이고, 아까부터 계속 실수를 했던 멤버를 위로 올려봤다.
“기본적인 노래 숙지가 안 되어 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