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그런데 이 안에서 가장 재능이 없는 제가 쉬어 버리면 어떡하겠어요.”
나는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 이단비의 앞으로 가서 섰다.
그리고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쉬면 뒤처지는 거지. 그게 현실이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판테이온으로 이단비와 함께 활동을 하며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이단비가 제이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처음 이단비를 그룹에 합류시킬 즈음에는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역시 현실은 쉽지 않았다.
– 저는 곧 퇴출될 거라서요. 보여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겠죠.
처음 만났을 적의 제이는 춤과 노래의 재능을 아예 가지지 못했던 게 맞았다.
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메울 수 있을 만큼의 다른 재능이 있었다.
– 연습생들은 퇴출되기 직전까지 아무 얘기도 못 들을 텐데.
– 그런 건 말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죠.
소름 끼칠 정도로 예리한 눈썰미와 판단력.
재능의 원석이었다.
– 봐줄게. 한번 해 봐.
나는 나를 바라보는 형형한 눈동자를 보며 그의 잠재력을 단번에 읽어 냈다.
–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곧 퇴출될 거예요. 재능이 없어서, 아무리 해도 안 늘 거라고…….
– 그럼 너는 왜 아직도 연습하고 있는 건데?
제이에게는 눈앞에서 본인의 꿈을 꺾고 부정하는 이가 있더라도 끝까지 본인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집념마저 있었다.
분명 제이는 아이돌이 아닌 다른 어떤 일을 했더라도 결국 일류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그 재능과 의지로는 오히려 성공하지 못하는 게 더 어려웠다. 더 쉬운 길이 만천하에 널려 있는데도 굳이 굳이 아이돌이라는 꿈을 관철한 것을 보면 조금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기특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 결국 재능이 문제였던 거였어, 노력이 아니라.
그 재능의 유무는 제이와 조인찬의 차이였으며, 제이와 이단비의 차이이기도 했다.
차운은 분명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질책한 것이리라.
사실 Survive IDOL의 최종 경연 무대를 준비하는 것에는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연습 과정을 찍었던 제작진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
고작 하나의 무대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그랬다. 이단비가 나와 똑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동작에서 내가 직접 관절의 위치, 각도 하나하나를 교정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단비는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그에 반해 유제이는 특유의 눈썰미로 어떤 사소한 움직임이 춤의 퀄리티를 높여 주는지를 빠르게 분간할 수 있는 놈이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긴 세월 동안 함께 프리즘으로 활동하며 내 옆에서 그 과정을 끝없이 반복했다.
마치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처럼 제이는 내 모든 무대를 분석하는 과정 끝에 제이는 결국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본인만의 스타일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제이와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나와 함께하는 시간과 피지컬마저 절대적인 한계가 있는 이단비가 그것을 똑같이 수행하려면 도대체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의 이야기였다.
굳이 이단비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뒤처지는 게 그렇게 무서워?”
“…당연히 무섭죠. 저 같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추면 완전히 낙오될 테니까요.”
“차운 선배님은 네게 잘하고 있다고 했어. 그 연습실 안에서, 아니 이 프로그램의 출연진 중에서 프리즘 선배님들에게 그런 말을 들은 건 아마 네가 유일하겠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
“…더 해도 어차피 변하는 건 없을 거라는 의미겠죠.”
“그래, 이렇게 네 마음과 몸을 혹사시킨다고 해서 크게 변하는 건 없을 거라는 뜻이겠지. 너는 이미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거야. 그 최선마저 뛰어넘으면 네 의지를 보여 줄 수 있을 거라고, 이 꽉 막힌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
“…….”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야. ‘최선’의 다음 단계는 ‘무리’니까.”
쐐기를 박아 넣는 말에 이단비는 최선을 다해 덤덤하게 유지하고 있던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그리고 이를 악문 채 손으로 무릎을 세게 움켜쥐었다. 내 의도는 이해하지만, 자신에게서 그것마저 빼앗아 버리면 무엇이 남느냐는 울화가 치밀어 오른 듯했다.
“뒤처지는 게 무서워서 무리해서 뛰다가 완전히 넘어지기라도 하고 싶은 건 아니잖아.”
그 마음, 백번 이해한다.
비록 재능에 축복받은 몸이라 할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똑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이것이 나의 비겁한 자기만족일 뿐이라도 상관없었다.
– 더 상하지 않게 열심히 치료받고 충분히 잘 쉬라고 전해 줘요.
–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테니까.
그 바보 같을 정도로 미련한 놈은 분명 그것을 바라고 있을 테니까.
“다리 아프지? 계속 휴식 시간도 없이 연습했잖냐. 물도 제대로 안 마셨으니까 목도 마를 거고.”
나는 이단비의 억센 손을 떼어 내고 녀석의 무릎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러자 한계까지 혹사된 다리에 긴장이 풀려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이단비는 그를 보며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다가 내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매일 반복하는 동작에서 피로가 누적되어서 발생하는 부상을 한번의 사고로 생기는 부상과 똑같이 생각하면 안 돼. 치료를 받아서 어렵게 회복하더라도 부상을 일으킨 그 동작을 또다시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자리에 같은 부상이 두 번, 세 번, 그 이상으로 겹칠 수밖에 없거든. 그래서 운동 선수나 댄서들의 부상이 치명적인 거고. 항상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여 줘야 하는 사람들일수록 작은 차이에 민감할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지.”
“…….”
“너도 도유다가 다리를 다치는 장면을 봤으니 부상이 얼마나 활동에 큰 불이익을 주는지는 잘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도 네가 지금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이유는 네 초점이 온전히 너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네 앞을 달리는 사람들에게 있었기 때문이야.”
조인찬이 그렇게 몰렸던 것은 녀석이 다른 프리즘 멤버들에 비해 의지박약이거나, 형편없는 놈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몸이 무너졌다.
그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장기전이야. 그 긴 여정을 다른 사람의 페이스에 맞춰 달려다가 보면 언젠가는 네 몸이 무너져서 넘어지게 되겠지. 그리고 네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될 즈음에는 네 앞을 달리던 사람들은 이미 더 먼 곳에 있을 거고.”
“…그럼 저는 결국 계속 이렇게 뒤처져야 하는 건가요?”
“어.”
도유다가 부상을 입었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망설임 없이 그를 긍정하자 이단비는 입술을 앙 다물고 눈물이 고인 눈으로 바닥을 내려봤다. 나는 보기 드물게 제 나이대에 어울리는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흘리곤, 복슬거리는 머리칼을 손가락 사이로 훑어 넘기며 말했다.
“분명히 말해 주마. 너는 앞으로도 가장 앞에서 달리는 사람이 되진 못할 거야. 이 세상에는 노력하는 천재들이 수없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의 노력을 폄하할 수는 없어. 너는 항상 다른 사람의 뒤를 쫓아가야 할 거고, 몇 번이고 지금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 거야.”
내가 사랑하는 이 업계가 마치 재능이 전부인 것처럼, 지극히 잔인하게 보이는 이유는 정상을 목표로 하는 이 중 노력을 게을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정상의 세계에서 이단비는 언제나 뒤처지는 존재일 것이며, 거대한 재능을 가진 존재들이 필사적으로 노력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유일한 무기마저 빼앗긴 것 같은, 그런 절망을 수도 없이 마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단비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분한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앞으로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해. 지금처럼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쫓기다가 너 자신을 잃지 않도록, 다른 사람이 아닌 네게 집중하며 네 몸과 마음을 돌보는 연습을 해.”
결국에는 끝까지 이 길을 고집할 것이라면 나는 앞으로 찾아올 시련을 버텨 내는 방법을 알려 줘야만 했다. 비록 이 아이가 떠안고 있는 현실로 인하여 시련에 이기는 방법은 알려 주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상처투성이가 되어 무너지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어제의 너보다는 분명히 더 나은 네가, 지금의 너보다 성장한 네가 있을 거야. 다른 사람들보다는 느리고 희미할지라도 네가 노력한 시간들은 착실히 네 안에 쌓일 테니까. 그건 내가 장담하고, 지금의 네 실력이 장담해. 누가 알았겠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그룹 합류도 간당간당했던 이단비가 여기까지 올라올 줄.”
“……”
“가장 마지막까지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그리고 그게 네가 가진 힘이고.”
가장 마지막으로 뱉은 말에 이단비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 반동으로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후두둑 볼에 쏟아지고 그 뒤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왈칵 흘렀다. 그에 나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리며 녀석의 얼굴을 손등으로 벅벅 문질렀다.
‘꼭 이렇게 무표정이 기본인 애들은 볼이 참 부드럽단 말이지. …서유성도 그랬는데.’
“읏, 으에, 헝. 데 볼…….”
그렇게 한참을 이단비의 말랑말랑한 볼을 마구 주무르며 서유성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의식하지 못한 사이 입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서유태를 두고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런 것도 다 의미 없다고 생각해. 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 결국에는 끝까지 버티는 놈들이 이기더라.”
내 이름을 뱉은 순간 가슴이 차갑게 식다 못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네가 말한 ‘서유태 선배님’도 결국에는 지금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었어.”
멈춰야 한다.
이만하면 되었다.
이단비는 굳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잘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고 영리한 아이였다. 이 이상은 쓸데없는 이야기에 불과했으니 굳이 이단비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후배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악명 높은 프리즘의 안에서도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 멤버들은 있었어. 제이, 조인찬 선배님처럼…….”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멈출 수가 없었다.
“…형?”
내 손목을 붙잡은 이단비가 이상을 감지하고 자세를 낮추며, 시선을 맞추려 드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해서 쏟아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무대 위에 서 있는 건 ‘서유태 선배님’이 아닌 그 두 사람이잖아. 대중들이 모르는 곳에서 아무리 힘든 일을 겪고, 고통스러워 했어도 결국 끝까지 버텨서 지금까지도 정상의 자리에 서 있어. 나는 그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결국 누가 가장 밝게 빛나는지, 누가 가장 큰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는 상관없는 거야.”
– 우리가 지겨웠어? 형이 기대했던 것만큼 못해서? 그, 그래서 두고 간 거야?
– …내가 그렇게 말해서, 이제는 내가 싫어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랐다.
스스로 이룬 것들을 자랑스러워하며 자기 자신을 아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 우리 같이 평생 프리즘 하자!
언제까지고 그리도 간절하게 꿈꾸던 무대 위에서 빛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 마음이 한계에 달한 순간, 미처 억누르지 못한 마음이 터져 나와 버렸다.
“누가 뭐라 해도… 너희는 내 마음속에 가장 오래 빛나는 별들이야.”
“…….”
“그러니까 스스로를 조금만 더 믿어 줘.”
오직 둘뿐인 연습실에 스러질 듯 작은 목소리가 고요하게 울렸다.
‘아, 분명 처음에는 잘 말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너희’라니…….
이래서는 판테이온 멤버들을 두고 말하는 건지, 프리즘 멤버들을 두고 말하는 건지 그 경계가 모호해졌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로 점철된 채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자 잠자코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이단비가 갑자기 내 머리통을 껴안았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저, 언젠가 한번쯤은 다시 자신감을 잃고 저를 사랑할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게 부족한 자신을 차고 넘치도록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까요.”
“…….”
“…그러니까 그렇게 슬픈 얼굴 하지 마세요, 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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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이단비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눈 후, 연습실의 문을 열어 보니 문고리에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커피가 걸려 있었다. 그에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릴 즈음,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띠링!
[프리즘 이치세 선배님: 인찬이 애들 피드백 빠진 거 미안하다고 짬 내서 연습실에 커피 넣어 주고 온다고 하던데 잘 받았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