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바닥에 놓인 커피와 이치세의 문자를 보자마자 내가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 ‘…전부 들어 버린 건가?’
심장이 정삼 범위를 넘어서서 빠르게 쿵쿵 뛰는 것이 느껴졌다.
판테이온 멤버들과 프리즘 멤버들이 용기를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 이야기만을 조인찬이 들었다면 상관없었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조인찬은 평소에는 낯이 간지러워 녀석들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그 이야기가 가장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뒤로 내가 이단비와 나눈 대화는 조인찬이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를 끌어안은 채 조용히 숨을 고르던 이단비가 조심스레 꺼낸 말이 나를 완전히 무너트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 그런데 형, 형은 서유태 선배님을 왜 그렇게 미워하시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단비의 입에서 내 이름이 직접 거론되었기 때문에 동요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프리즘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아이돌 활동에 다른 멤버들보다 훨씬 익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제와서 정체를 들킨다고 해서 내가 심리적으로 타격을 얻을 이유는 없었다.
– …….
지금 나는 그저 내가 스스로를 증오하고 있다는, 지금껏 내가 애써 회피하고 있었던 사실을 덜컥 떠안은 충격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 …뭐?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든 채 무어라 대답할 말을 찾지도 못하던 나는 멍하니 이단비를 향해 되물었다. 그러자 어린아이 특유의, 순수한 통찰력이 담긴 눈동자가 나를 직시했다.
– 사이 안 좋으셨어요? 아니면 무슨 일이라도 있었다거나……. 형이 서유태 선배님을 말할 때 표정이나 뉘앙스가 너무 안 좋아서 모르는 척하기가 어려워서요.
– …….
– 제가 지금까지 봐온 형은 누가 뭐라 하든 본인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지지하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유독 서유태 선배님만 미워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서유태 선배님 스캔들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서유태 선배님은 원래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분이셨고, 경찰 조사에서도 혐의 없다고 제대로 밝혔는데, 그냥 이상한 사람들이 멋대로 그렇게 떠드는 것뿐이에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이단비는 내가 그 스캔들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열성적으로 ‘서유태’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딱딱하게 굳어 버린 나를 발견하곤 흠칫 몸을 떨며 멈추더니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 아니, 지적하는 건 아니에요. 다른 데에 가서 말할 것도 아니고요. 그냥… 형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잘못된 이유로 사람을 미워하지 않길 바라는 것뿐이에요.
나만큼이나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는 반응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기어들어갈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알고 있어. 그 스캔들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쯤은.
그러자 이단비는 안심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랬구나. 괜히 쓸데없이 나선 거였네요. 죄송해요.’, ‘역시 형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휘둘릴 리가 없죠. 다행이에요’라고 말했다.
– …괜찮아. 네가 무슨 의도로 말한 건지 충분히 이해해.
다행히 이단비와의 대화는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나는 결국 끝까지 ‘서유태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 거짓을 도저히 입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조인찬이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좋을 텐데, 혹여나 그것을 보았더라도 이단비처럼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다면 참 좋을 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미지근해진 커피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 * *
그렇게 이단비와 대화를 나누고 며칠 뒤, 우리는 고대하던 1차 경연을 치르게 되었다.
레이즈는 공성화의 그 애원과 눈물이 각성의 계기가 된 것인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인의 감정적인 모습마저 멤버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에 이용한 건가.’
리더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멤버들은 당연히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동요마저 긍정적인 결과를 낳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엿한 리더십이었다. 멤버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절대 취하지 않았을 방법이긴 했다만, 세상에는 여러 타입의 리더가 있으니까.
‘역시 공성화도 꽤 하네. 폼으로 1군 자리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인가.’
그를 보고 있자니 제이와 비슷한 놈은 이단비가 아닌 공성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가 아닌 제이가 그룹의 리더였다면 분명 공성화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정작 공성화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은 제이가 아니라 나라는 점은 좀 안타깝긴 했지만. 뭐, 현실과 이상은 원래 엇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돌아다니는 주제에 뒤에서는 지기 싫어서 필사적으로 발악하고, 본인한테 유달리 엄격하고…….’
제이와 비슷한 점을 하나하나 발견할 때마다 묘하게 정이 드는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다. 세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새끼들은 또 다른 영역 아니던가.
– [7: 요즘 왜 자꾸 공성화한테 인사 많이 해?]
– [7: 우리 연락에는 한참 느리게 답장하면서.]
이 와중에 제이는 공성화가 영 마음에 안 드는지 공성화와 나를 되도록 떨어트려 놓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공성화는 ‘서유태’가 아닌 ‘한승범’에게는 별 관심을 가지지 못할 텐데 참 쓸데없는 짓이었다.
‘동족 혐오 같은 건가?’
…역시 비슷한 사람끼리는 친해지기 어려운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공성화의 리드 하에 준비된 레이즈의 무대는 아무런 피드백도 얻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점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어 있었다.
아마 레이즈는 이단비의 경우와 달리, 멤버들의 능력에 절대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실성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 빠른 개선이 가능했던 것이겠지. 무대 구성 자체는 공성화의 프리즘을 향한 무서울 정도의 집착과 동경 탓에 처음부터 꽤 괜찮은 편이었다.
[1위: 레이즈] [2위: 판테이온]그 결과, 레이즈는 당당히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화영의 요청에 따라 아낌없는 도움을 준 댄서들 덕분에 판테이온은 바로 그 아래를 차지할 수 있었다. 몇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먼저 활동한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2위를 차지한 것은 그야말로 쾌거였다.
‘이화영은 1위를 다른 사람한테 뺏겨서 분한 것 같았지만.’
첫 출전에 이 정도 성격을 내놓은 것은 꽤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이화영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실제로도 아주 기뻐했고.
하지만 이 정도에서 훈훈하게 끝나게 내버려둘 만큼 프리즘 멤버들은 만만하지 않았다. 1위를 차지한 레이즈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그룹이 프리즘에게 혹평을 받게 되었고, 판테이온도 그 대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음, 화영 씨가 열심히 노력한 건 알겠어요. 다른 선배들과 다르게 무작정 프리즘을 따라하려고 하지도 않고 본인의 색깔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한 점을 보면 이화영 씨의 평소 성격이 티가 나는 것 같네요, 하하. 하지만 이 노래를 소화하기에는 아직 센터로서 미숙한 점이 보여요. 앞으로도 갈 길이 많이 남았네요. 열심히 자라고 있는 재능의 새싹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중간점검 때보다 무대 구성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댄싱에 너무 치중된 느낌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기껏 좋은 보컬 실력을 가지고 있는 도유다 씨나 백기량 씨가 덜 돋보이는 느낌이었죠. 하지만 여러분이 알고 있듯, 서유성 씨 파트가 그런 식으로 해도 충분히 퀄리티가 나올 수 있을 만큼 쉽지는 않아요.”
무대를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을 만한 합당한 피드백뿐이었다.
그리고 우리 그룹에서 가장 많이 지적을 받은 멤버는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이단비였다.
“전체적으로 허점이 많아 보이는 무대였어요. 모든 멤버가 본인의 포지션에서 제대로 역할을 다해 주지 않으면 이런 느낌이 들죠.”
“무대의 텐션이 막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간중간 그게 훅 떨어지는 모습이 자주 보였던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이 좀 개선되었으면 훨씬 나은 무대를 보여 줄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참 아쉽네요.”
“판테이온은 평균적인 능력치가 굉장히 높은 그룹이라 특정 멤버들이 유난히 묻히는 느낌이 있어요. 판테이온 활동에서는 이런 약점을 교묘하게 잘 숨겨 왔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프로듀서의 경험 부족 때문에 그대로 드러났죠. 뭐, 주어진 연습 시간이 매우 짧았던 이유도 있었을 거고요.”
딱 집어서 이단비의 문제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자리의 모두가 이단비의 실력 부족을 지적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이단비 본인도 그를 알고 있는 듯 무거움 숨을 토해 내는 게 느껴졌다.
일정하게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행동을 취하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당부했던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겠지.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단비는 씩씩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며 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를 신호로 나머지 멤버들과 함께 인사를 하고 나는 약간 시무룩해 보이는 이단비를 눈에 담았다.
‘이대로 방송이 나가면 이단비한테 민폐니 뭐니 하는 놈들이 또 있겠지. …너무 상처받지 않으면 좋을 텐데.’
착잡한 마음으로 이단비의 어깨 위에 팔을 얹자 이단비는 괜찮다는 듯 작게 웃으며 내 허리에 손을 둘렀다. 무언가를 떨쳐 낸 듯 후련함마저 느껴지는 미소였지만, 그 안에는 미약한 두려움이 있기도 했다.
그를 읽은 나는 더욱 강한 힘으로 이단비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잘했어’라고 속삭였다. 그에 이단비는 감정을 정리하는 듯 입술을 앙 다물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저 정말로 최선을 다했거든요.”
먹먹해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을 다시 마주보며 미소 지을 즈음, 제작진들이 이제 무대에서 내려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 판테이온 멤버들과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무대의 건너편에 놓인 프리즘의 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잠깐만!”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자 그곳에는 홀로 자리에서 일어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조인찬이 있었다. 아래로 축 늘어진 머리카락으로 그늘진 얼굴에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복잡한 마음이 채 정리되지도 않은 상태로 조인찬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