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도대체 무슨 말이 그렇게 급하여 저렇게 마이크를 드는 것도 잊은 채 우리를 불러 세운 것일까. 제작진과 출연진을 포함한 촬영장의 모든 시선이 조인찬에게 집중되었다.
“…….”
하지만 조인찬은 주먹을 움켜쥔 채 절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곧 다음 촬영으로 넘어가야 할 텐데, 시답잖은 이야기로 촬영 흐름을 끊어서는 안 됐다. 프리즘이 아닌 보통 출연자였다면 PD가 시간상 그냥 넘어가야 할 것 같다는 말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걱정스러움 마음을 품고 있자 내내 정면을 응시하며 턱을 괴고 있던 이치세가 ‘에휴’ 하고 장난 섞인 한숨을 쉰 후, 조인찬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그에 얼떨떨한 얼굴을 한 조인찬이 이치세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자, 이치세는 조인찬의 손에 마이크를 억지로 쥐여 준 채 팡 소리가 나도록 녀석의 등을 손바닥으로 쳤다.
“하고 싶은 말 있잖아. 참고 후회할 바에야 조금 멋없어도 쏟아내. PD님이 뭐라고 하시면 나중에 우리 촬영분 대신 빼달라고 하지, 뭐.”
“윽!”
쓸데없이 힘이 장사인 이치세에게 얻어맞고 휘청거리던 놈은 프리즘 멤버들의 얼굴을 가만히 돌아봤다.
“아무도 안 말려, 하고 싶으면 해.”
“…….”
흔들림 없이 조인찬을 바라보는 멤버들의 눈동자에는 끝없는 신뢰와 지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조용히 그를 마주보던 조인찬은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 우리를 불러 세웠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안정된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무대 하나를 위해 여러분이 그동안 잠도 못 자면서 열심히 연습했던 것, 전부 알고 있습니다. 분명 연습한 만큼 실력이 늘지 않아서 실망했을 거예요. 그동안 연습에서 할 수 있었던 것만큼 오늘 보여 주지도 못해서 아쉬울 거고요. 저도 활동을 하면서 뼈저리게, 수천 수만 번 느끼고 고통스러워했던 감정입니다.”
그 말에 오늘 실수를 해 만족스러운 무대를 보여 주지 못했던 이나, 이단비처럼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았던 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한참 후배들의 시선에서 조인찬은 아득히 먼 곳에 고고하게 빛나는 존재였으니 본인들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이야기 자체가 놀라웠을 것이다.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지켜보는 것은 조인찬이 지나온 시간을 모두 알고 있는 나와 프리즘 멤버들뿐이었다.
“왜 내 노력은 보답받지 못할까, 왜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학대하며, 내가 정말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상처 입히고 스스로 놓아 버리는 짓까지 저질렀죠. 하지만 지금은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렇기에 여러분이 이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인찬은 이제 그 시절처럼 웃지 못하게 되었다.
때문에 나는 내가 지금껏 만난 누구보다 섬세한 마음을 가져 잘 웃고 눈물도 많았던 어린 조인찬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결국 그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그렇게 여겼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 노력한 시간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조인찬은 그 안에 여전히 따뜻한 온기를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의 실패는 반드시 성공을 위한 거름이 되어 내일의 여러분의 힘이 되어 줄 거예요.”
조인찬의 진심 어린 말을 듣고 있는 후배들의 눈시울이 점차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중 몇 명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말고 여러분의 노력을 폄하하는 사람들의 말은, 설령 그게 마음속 나 자신의 것이라 할지라도 귀 기울이지 말고 본인이 믿는 길을 향해 걸어 나가세요.”
“…….”
“분명 그 앞에는 여러분이 꿈에 그리던 답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예전부터 조인찬의 말에는 이렇게 유난히 사람의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 힘이 있었다.
– 그놈이 활짝 웃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무심코 덩달아 웃게 되거든.
그것은 분명 자신의 마음을 여과없이 드러내 상대의 가슴속에 파고드는 녀석 특유의 재능에서 비롯된 것이겠지. 이전에는 강혁우에게 이용당해 프리즘에 균열을 만드는 무기가 되기도 했지만, 나는 역시 녀석의 이런 부분이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를 시도하는 건 정말 두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지금 있는 자리에 정체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이미 잊어버린 그 공포에 맞서 싸우는 여러분을, 저는 정말 자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단비와 함께 나눈 대화가 네게 무슨 영향을 끼쳤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네가 그저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흐.”
“다음에는 진짜 잘할 거야. 나는 포기 안 해…….”
봐라,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네게 위로받고 있지 않은가.
‘…성장했구나.’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된 촬영장을 바라보던 조인찬이 카메라와 제작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조인찬의 옆에 앉아 있던 프리즘 멤버들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인찬과 함께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시청자 여러분께, 제작진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이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일어서기도 하면서 배워 가는 모습을 따뜻하게 지켜봐 주세요. 여러분께 좋은 무대를 보여 드리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쉽지 않은 길을 굳이 걸어가려 하는 아이들입니다.”
경쟁 프로그램.
시청률을 위한 자극적인 편집과 연출이 난무하는 그곳에 점점 잊혀 가는 ‘성장’과 ‘노력’. 그 초라하며 미숙하기 짝이 없으나 모두가 동경하며 결국에는 응원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가치를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짧은 발언으로 제작진에게 압력을 걸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후배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먼저 간 이의 입에서 나왔기에 비로소 설득력과 의미를 가지는 부탁이었다.
“…….”
그를 치하하는 마음으로 프리즘 멤버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자 주변에 함께 서 있던 출연진도 모두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제작진이 있는 쪽에서 작은 박수 소리가 들려오더니 마지막에는 함성 소리마저 먹먹하게 먹힐 정도로 거대한 갈채로 번져 갔다.
이렇게 출연진들이 많은 것을 얻어 가기도 한 [레전드 싱어>의 1차 경연이 종료되었다.
* * *
그 뒤로 몇몇 출연진은 제작진의 요청에 따라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판테이온에서 선택받은 인터뷰어는 이단비였다.
검은 배경을 뒤에 두고, 제작진에게 이번 경연에서 들은 혹평에 대한 심정을 말해 달라는 요정을 들은 이단비는 이렇게 말했다.
– [승범 형이 그랬어요. 가장 밝게 빛나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가장 오래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되라고. 용기를 가지라고.]
– [아직까지는 불안한 것투성이에 제 부족함을 마주할 때마다 솔직히 정말 초조해요. 니콜라스 형은 아직은 조금 어설프더라도 하나의 무대를 이끌 수 있게 될 정도로 성장했고, 그에 비해 저는 아직도 이 자리에 머물러 있고 칭찬 하나 듣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죠. 승범 형한테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갑자기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생기지 않았던 거예요.]
– [하지만 제 마음이 바뀌었죠. 1차 경연이 끝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재능을 축복받지는 못했을지라도 저는 환경에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저를 저보다 아끼고 믿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저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선배가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절대로 모를 거예요.]
– […앞으로도 끝없이 노력하는 이단비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이단비의 인터뷰 영상은 조인찬의 격려 영상과 함께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고, [레전드 싱어>는 지상파 포함 전 채널 동시간대 1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게 되었다. [레전드 싱어> 프리즘 편이 시작되고 1차 경연이 방영되기까지, 훨씬 뒤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대형 그룹이 줄줄이 등장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단순히 그 정도의 인상이었던 [레전드 싱어>는 처음으로 프로그램으로서 유의미한 가치를 시청자들에게 드러냈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무언가가 변했다.
출연진들이 서로를 헐뜯고 공격하는 자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던 방송의 분위기가 점차 지금까지 대중들의 앞에 보이지 않았던, 무대를 위한 출연진들의 눈물과 땀, 열정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업계에서 지대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프리즘의 멤버인 조인찬의 발언을 제작진들이 그냥 흘려 넘길 수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 [나는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에 약하다]
– [ㅈㄴ 비상이다 미치겠다 별들아……]
– [이단비 인터뷰 영상 보고 너무 성숙해서 놀랐다 잊지 말자 얘 17살에 데뷔했고 이제 18살 된 애임 ༼;´༎ຶ ༎ຶ༽]
– [┗ 22 이번 방송 보고 단비한테 치였어요 어떻게 18살이 저렇게 어른스러울 수 있죠 ㅜㅜ]
– [┗ ┗ 저는 프리즘… 선배미 미쳤다]
– [솔직히 애들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간다고 했을 때 너무 싫었음 이미 인지도는 쌓을대로 쌓았는데 도대체 뭐하러 괜히 욕먹고 고생할 자리에 나가는 건지 싶어서 너무 걱정됐는데 이번 편 보고 더 이상 그런 생각 안 하게 됐다 애들도 선배님 이야기 들은 이후로 표정부터 달라졌고… 멘토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 거였구나]
– [아이돌로 탑 찍어 본 프리즘 sbn들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함]
– [한승범은 정말 좋은 리더구나. 나도 한승범 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조금 더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 [한승범 그는 빛인가?한승범 그는 빛인가?한승범 그는 빛인가?한승범 그는 빛인가?]
– [방송보다가 우는 건 또 오랜만이네 그냥 조인찬이 본인이 걸어온 길이나 후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작 이 몇 분 클립 영상만으로도 알 수 있을 것 같음 정말 멋진 사람이다]
– [자극적인 편집이 시청률 뽑기 좋은 건 알겠지만 이제 그것도 적당히 좀 해야 한다고 봄 솔직히 진짜 피곤하고 지겨워… 흠 하나 보이면 죽자고 달려드는 사이버 렉카들 보는 것만으로도 족함 방송국도 슬슬 이제 배워라 그냥 욕할거리 던져 주는 건 상업적으로도 수명이 짧음 사람들한테는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 [일부러 악마의 편집 안 해도 이미 출연진들이 충분히 매력적이라 방송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본인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큼 아름다운 건 없으니까요]
프리즘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시청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조인찬의 발언에 동조하며 출연진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면 제작진들은 그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작은 톱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한 게 여실히 느껴졌다.
이단비가 말했던 것처럼 마음가짐 하나로 눈앞의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마음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결국에는 세상을 바꾼다.
나의 사랑이, 더 큰 사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 [더 단단해져서 돌아오자. 우리는 너희를 항상 응원하고 있을 테니까.]
– [단비야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진짜 진짜 사랑해]
아아, 역시 나는 이 업계를 정말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