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나는 조부모의 손에 자랐다.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부모님은 너무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나를 키울 여력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 인찬아, 열 밤 자고 나면 엄마 아빠 돌아올 거야. 알겠지?
– 응! 열 밤, 약속이야.
여름에는 건물 하나 없는 파란 하늘에 매미의 울음 소리가 아지랑이처럼 날아 오고, 겨울에는 바퀴에 짓무르는 일 하나 없이 소복이 눈이 쌓이는 그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 가수였다.
– 우리 인찬이 진짜 멋있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하고!
– …나 멋있어? 진짜?
고작 어린애가 마을 어른들의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던 것일뿐이므로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 이야기이긴 했지만 말이다. 10명도 안 되는 관객과 조명 하나 없는 마루 무대였으나, 나는 그 시간이 퍽 소중했던 것 같다.
꼭 마을의 모든 어른들이 내 가족이 되어 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 백 밤 잤는데 왜 둘 다 안 와?
– …그러게. 엄마 아빠가 많이 바쁜가 보다. 우리 강아지 오래 기다렸는데 어떡하지?
– 할부지, 나느은, 지금 엄청 엄청 행복하다? 노래 부르고 춤추면 다들 나를 봐주잖아. 머리도 만져 주고 칭찬도 해 주니까 좋아.
– …….
– 그러니까 울지 마……. 나 이제 엄마 아빠 얘기 안 할게.
그래서 부모님의 빈자리와 그로 인한 외로움 따위가 내 마음 속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내 하루를 차고 넘치는 사랑으로 메웠다.
– 그렇게 노래하고 춤추는 게 좋으면 가수가 되어야겠네.
– 가수?
– 응, 커다란 무대에 서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가수가 되는 거야. 할부지는 인찬이가 그렇게 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아.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가수를 꿈꾸게 되는 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철이 들 즈음, 부모님으로부터의 연락이 끊기고 얼마 없던 금전적인 지원까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각자 새로운 가정이 생겼고 얼굴도 몇 번 보지 않은 아이는 그들에게 방해물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추후에 듣기는 했다. 그때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 …할머니, 나 괜찮아. 불쌍하다고 하지 마. 그런 거 싫어. 할머니가 이렇게 울면 나 진짜로 불쌍한 애 되는 거야.
그냥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던 것 같다. 나는 괜찮은데 왜 다들 그렇게 나를 동정이 담긴 눈빛으로 보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가슴이 갑갑했다.
결국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나는 결국 할머니께 경제적인 부담을 안겨 드리고 싶지 않아 서울에서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학생의 신분으로 홀로 먼 타지에 가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 생활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왜 미성년자가 부모의 보호 아래 자라야 하는 것인지를 통감하는 시간이었다.
– …먼저 백 밤 버텨 보자.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니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특별히 내 상황에 비관을 느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의 내게는 꿈이 있었기에 지금의 고난은 결국에는 찾아올 행복한 미래를 위한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건지 수없는 노력 끝에 나는 프리즘의 최종 멤버로 선정되었다. 나는 혹독한 연습으로 언제나 연습생들 중에서 상위권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내게도 데뷔의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은 종종 했지만, ‘그’ 서유태가 기획한 그룹의 멤버가 되어 데뷔할 수 있다니. 이런 꿈같은 일이 일이 어디 있나 싶었다.
– 그래, 성실하게 노력하면 보답받는 거야…….
‘도대체 누가 멤버로 선정됐을까?’ 그런 기대감을 품은 채 나는 프리즘 멤버가 모이는 첫대면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쿵쿵 뛰는 가슴을 억제하지 못하고 테이블 위에 기대 앉아 있는 이를 멍하니 올려볼 수밖에 없었다.
– ‘우와, 서유태다.’
그때의 그 광경은 세월이 아무리 흘려도 잊을 수가 없었다.
참 웃기지만, 아직 어렸던 나는 완전히 연예인 보는 기분으로 형을 봤던 것 같다.
스케줄을 비워 놓은 듯 메이크업 하나 하지 않은 얼굴에 가벼운 차림이었지만, 화면 속에서 보던 모습과 완전히 동일한 외모였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긴 머리카락을 아무데서나 주워 온 것 같은 펜으로 대충 틀어 올렸다는 것 정도일까.
– ‘…왜 하필 펜? 그것도 길거리에서 나눠 주는 펜이네…….’
프리즘 멤버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한번 보기는 했지만, 그때는 평가자와 연습생의 입장에 있지 않았던가. 앞으로 함께 활동을 할 거라 생각을 하니 그제야 눈앞의 존재가 서서히 실감 나기 시작했다.
– ‘정말 이 사람이 나를 고른 거야? 깜짝 카메라 아닌가?’
만약 이 업계의 신이 있다면, 그의 축복을 한데 모아 태어난 존재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형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사람의 시선을 끄는, 압도적인 무언가가 있었고 실제로도 이 업계에 가장 큰 흔적을 남겼다.
그런 사람이 나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 …….
그리고 시간이 점차 흐르자 연말 평가에서 매번 1위를 기록했던 차운 형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실력이 좋기로 여러 소속사에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멤버로 선택되었겠지 싶긴 했다. 다만 특출난 실력 만큼이나 극도로 까칠한 성격이 유명해 다른 연습생들이 말도 섞지 못했던 사람이었던지라 앞으로의 활동이 쉽지는 않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다음으로 들어온 것은 치세 형이었다.
– 안녕하십니까아. 래퍼 포지션 이치세입니다아.
– …….
– …….
– 와, 인사를 나만 하네. 저 인사했어요, 여러분. 다들 입에 풀칠했나?
– …….
– 아이고, 서유태 선배님,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제가 선배님 때문에 이 회사 들어왔는데 알고 계셨어요? 허그 한번 해요. 아, 이제 선배님이 아니라 형이지. 같은 그룹이니까!
소문이 아주 무성한 사람이었다. 실력이 매우 뛰어나 힙합 레이블에서 촉망받는 래퍼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사람이 아이돌 그룹의 래퍼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게 신기했던 기억이 있었다. 내심으로는 조금 기가 죽기도 했던 것 같았다.
– 와, 형 몸 좋다. 3대 몇 쳐요?
그러든 말든 치세 형은 낯을 가리는 유태 형에게 다가가 팔뚝을 주물럭거리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 등 마이페이스인 면모를 뽐내기만 했지만.
– 안녕하세요, 유제이입니다.
그 뒤로는 제이가 들어왔다. 월말 평가에서 항상 안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외모가 아주 출중하고 두뇌가 명석해 여러번 퇴출 위기를 면했던 연습생이었다. 최종 멤버 선별 자리에 없어 벌써 다른 소속사로 옮겼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프리즘 멤버로 먼저 선출되어 특별히 평가를 할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방에 들어선 제이는 가장 먼저 유태 형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유태 형이 눈을 지긋이 감으며 그 인사를 받아 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혹시 그 전부터 아는 사이였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제이를 보며 내가 느낀 감정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선출 과정에 관한 의문?
또 나보다 월등한 존재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안도감?
나보다 어른 동생이 있다는 사실에 따른 책임감?
모르겠다. 셋 전부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제이와 친분이 생긴 이후로는 가장 마지막 감정이 가장 크게 남아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렸다.
그만큼 새로운 가족 안에 생긴 막내는 귀여웠다.
남들은 막내가 왜 저렇게 듬직하냐며 타박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제이를 마지막으로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기까지 다른 멤버들이 아무도 오지 않자 유태 형이 테이블 위에 잔뜩 뭉쳐 있는 옷가지를 퍽 쳤다.
– 아! 내 엉덩이!
– 슬슬 일어나라, 남이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약속 시간 못 맞출 것 같다고 약속 장소에서 자.
– 혀엉, 형 때문에 내 엉덩이 네 쪽 되면 책임질 거야?
– 어.
유태 형의 타박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고통에 부들부들 떨던 시커먼 패딩 뭉치가 후두둑 분리되고, 정전기로 잔뜩 일어난 하얀 머리칼이 빼꼼 나타났다.
– …진짜?
– 네 쪽 되면. 지금 그거로는 택도 없으니까 일어나라.
– 뭐야, 속았네.
남이훤의 것이었다. 자다 일어난 사람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조금 분하지만 ‘와, 저렇게 생겨야 연예인을 하는 거구나.’ 싶을 정도였다. 별다른 자기소개 없이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는 남이훤을 보고, 옆에 서 있던 강혁우는 이렇게 말했다.
– 남궁이훤은 공아연과 남궁지원의 외아들이다. 아역 활동도 어렸을 때부터 해서 정확히 따지고 보면 서유태보다 선배지. 앞으로 회사에서 연기 활동도 팍팍 밀어줄 테니까 다들 그렇게 알아 둬.
남이훤은 그에 방금까지만 해도 얼굴에 띠고 있던 장난기를 모조리 지운 후, 강혁우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 …죽어도 연기는 안 한다고 했잖아. 멋대로 말하지 마.
남이훤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던 당시의 나는 그의 마음을 알지도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돌은 다방면으로 활동해야 하는 엔터테이너다. 때문에 연기를 할 줄 아는 것은 분명한 장점으로 작용할 텐데, 왜 굳이 그를 마다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내 눈에는 대단해 보이는데…….’
유일한 동갑내기 멤버의 스펙이 저렇게 뛰어나니 나도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까지 했었다.
역시 ‘그’ 서유태가 선정한 멤버들이라 그런 건지, 제이를 제외하곤 모두 나보다 압도적인 실력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아직은 실력이 부족한 제이마저 외적인 매력이 아주 뛰어나니 곧 다른 멤버들만큼이나 빛나게 될 거라 생각했다.
– ‘메인 포지션을 잡는 건 아직 무리겠지.’
약간의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게 너무 과분한 사람들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저들은 저 정도까지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힘든 노력의 시간을 겪었을까. 분명 나보다 훨신 오래 전부터, 많은 시간을 노력한 사람들이겠지.
하지만 괜찮았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루지 못하는 건 없으니까. 나는 그것 하나로 이 과분한 자리까지 왔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런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선택되었다는 자부심과 나 자신 또한 그들과 함께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초조함을 앞섰다.
어쩐지 불쾌한 시선으로 나를 훑어보고 있는 강혁우를 외면하고 있던 사이, 시계를 보고 있던 유태 형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거친 말을 뱉었다.
– …하, 서유성 이 새끼가…….
그러고 보니 약속 시간을 아예 훌쩍 넘겼는데 마지막 한 사람이 아직 도착을 안 했다. 유태 형은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듯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들었고, 곧 뭐라 뭐라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 지각하지 말라고 했잖아. 오늘 중요한 날이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문이 벌컥 열리며,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아야 할 전화 너머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 미안해, 차가 막혀서.
감정이라곤 전혀 담기지 않은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묘하게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는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유태 형과 똑닮은 얼굴을 한 소년이 있었다. 굳이 소개를 하지 않아도 그가 유태 형의 동생이라는 사실은 누구나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방 안의 멤버들을 보고도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지 인형 같은 얼굴로 자신의 형을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그에 쯧, 혀를 찬 유태 형이 야단치듯 그에게 말했다.
– 인사해야지. 늦어서 미안하다고도 하고.
그러자 줄곧 무표정이었던 얼굴이 마치 명령어를 입력한 기계처럼 미소 짓더니 우리를 향했다.
– 안녕하세요. 서유성입니다. 메인 보컬 포지션으로 들어왔습니다. …연습생 경력은 없는데, 어떻게 말해 드려야 하죠? 아, 이렇게 말하면 되나.
– …….
– 노래 연습한 기간은 한 달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