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레전드 싱어>의 두 번째 경연에서 출연진들은 프리즘 활동이 아닌, 솔로 활동 곡으로 무대를 꾸리게 되었다. 예를 들어 랩 포지션 경쟁을 해야 하는데 보컬 파트가 많은 그룹 노래를 커버해야 하면 무대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다행히 프리즘은 솔로로 각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멤버들이 널려 있었기에 노래가 부족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프리즘의 센터’라 하면 대중은 가장 먼저 서유태를 떠올렸지만, 서유태는 먼저 팀에서 탈퇴를 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프리즘의 멤버는 아니었다. 따라서 센터 포지션 팀은 지금 프리즘의 센터로 있는 유제이의 솔로곡을 커버해야만 했다.
처음 그 사실을 전달받았을 때 공성화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프리즘의 노래는 다 어려운 것이 맞았지만, 그중에서도 서유태의 솔로곡과 서씨 형제로 이루어진 유닛, 스타즈의 곡은 완곡을 하는 것조차 버거운 괴물들의 진기명기에 가까워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제이의 곡은 대중성에 조금 더 힘을 준 편이었기에 ‘비교적’ 난이도가 낮았다. 하지만 그조차도 자신들이 평소에 소화하던 안무에 비하면 월등히 어려웠고, 같은 안무를 춘다고 하여도 추는 사람의 실력에 따라 그 퀄리티에서는 당연히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에 조금 초조함을 느낀 공성화는 본인이 아무리 부정해도 무의식중에는 가장 견제하는 대상이었던 서유태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 승범 씨는 이 노래 춰 본 적 있어요?
서유태는 그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 아니요. 없습니다.
실제로도 서유태는 정말로 유제이의 솔로곡의 안무를 춰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보고 간단한 피드백이나 해 준 것이 정말 전부였다.
복잡하고 성가신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서유태는 필요한 때가 아니라면 굳이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유태의 성격에 대해 약간은 파악하고 있었던 공성화는 그 대답에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다.
– ‘…이길 수 있어.’
왜냐하면 본인은 제이의 솔로곡의 안무를 이미 습득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프리즘의 극성 팬으로서 그들의 활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공성화는 프리즘의 무대를 하나도 빠짐없이 돌려 보는 취미가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솔로곡부터 유닛, 그룹곡까지 프리즘의 모든 곡의 안무를 출 수 있었다.
스케줄로 인하여 절대적인 연습 시간의 한계가 있었던 그가 무리 없이 2차 경연 무대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덕분이었다.
이미 토대를 모두 세워 둔 자신과 다르게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시작해야 하는 한승범. 공성화는 이 둘 사이에 쉽사리 채울 수 없는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공성화가 차마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한승범의 정체가 서유태였으며, 그동안 한승범을 저평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대중의 앞에 프리즘의 곡으로 서유태와 본인의 연결 고리를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판테이온 멤버들이 자신에게 묻히지 않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즉, 서유태의 몸으로 춰 본 적이 없는 노래를 판테이온 멤버 없이 소화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디메리트’가 아닌 ‘리미터 해제’를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연습 때랑은… 뭔가 분위기가 다른 것 같은데.’
공성화가 그에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레전드 싱어> 무대를 위한 연습은 서유태의 하루에 편성된 아주 긴 연습 시간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리고 프리즘 멤버들마저 경악할 정도로 막대한 연습량을 서유태가, 또래에 비해 체력이 약한 한승범의 몸으로 매일같이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강인한 정신력과 그동안 쌓인 월등한 경험치를 활용한 치밀한 체력 분배 덕분이었다.당연히 공성화가 지금까지 본 연습은 효율을 위해 에너지를 조절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그것마저 바쁜 스케줄로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고, 경연 당일 리허설 때는 본인의 무대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던 공성화가 서유태의 ‘본격적인’ 무대를 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아니, 사실 그는 지금도 본인의 무대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어차피 본방에서는 극적인 향상을 기대할 수 없고, 주변을 의식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신경을 쏟는 편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 Baby, Don’t be afraid
It’s just a game
서유태가 제 파트를 소화하기 위해 앞으로 나온 순간, 공성화는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시선을 빼앗겼다.
“…….”
그리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아, 이건 못 이긴다.’ 하고.
공성화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촬영장에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심지어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모든 출연진을 평가하는 역할을 맡은 프리즘마저도.
“하하! 제정신인가.”
서유태의 무대를 보던 유제이는 경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정말 의식하지 않은 사이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의 성격상 머릿속으로 사전에 계획하지 않은 말을 카메라 앞에서 뱉는 일은 평소에 거의 없었지만,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직접 목격하고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걱정하지 마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그저 일어나야만 했던 일이었어.
“진짜 말도 안 된다고…….”
지금의 서유태는 유제이를 완벽하게 흡수하여, 한승범의 체형으로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다시 출력하고 있었다.
그에 차운은 저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며, 이치세는 손을 휘휘 저으며 ‘끝났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남이훤은 ‘미쳤다!’ 하고 외치며 손바닥으로 책상 위를 마구 내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조인찬은 일렁이는 눈동자로 조용히 무대 위의 서유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동경과 감탄 그리고 애정이 묻어 나오는 청록색을 눈에 담은 공성화는 서서히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승범이 센터에 나온 순간부터 무대의 집중도가 달라졌어.’
촬영장에 놓은 수많은 카메라가 오직 서유태를 비추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꿈꿀 만한 압도적인 재능이었다.
“와…….”
그렇게 스크린에 가득 채워진 서유태의 모습을 보며 무대의 옆쪽에 앉아 있던 출연진들이 감탄사를 뱉었다.
“어떻게 저 정도로 마른 몸에서 저런 힘이 나올 수 있는 거지?”
저것은 단순히 근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머리카락부터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본인의 신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능력과 자신이 있어야만 나오는 동작들이었다.
지금의 서유태는 프리즘을 앞에 두고 마치 ‘감히 너희가 나를 평가하는 것이냐’고 비웃는 듯했다.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순간, 공성화가 느낀 것은 패배의 분함도 아닌, ‘부럽다’는 감정이었다.
서유태는 공성화가 동경하는 빛을 가지고 있었다.
“…….”
마음 깊은 곳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짜증 나.’
공성화를 남자 아이돌 1군의 수장 자리에 오르도록 만들어 준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높은 자존심과 승부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프리즘을 깊게 사랑하는 이유와도 연관이 있었다.
단순히 ‘긍정적인 관심’만을 가지고 좋아할 대상을 찾았다면 그는 귀여운 콘셉트의 걸 그룹을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제쳐 두고 공성화가 프리즘의 팬이 된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프리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프리즘.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와 능력을 가지고 대한민국 가요계에 지울 수 없는 가장 큰 흔적을 남긴 전무후무한 그룹.
공성화는 전성기 시절 그들의 무대를 보고 진심으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얼만큼 노력하든,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소용없을 테니까. 같은 업계를 꿈꾸는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그들은 괴물 같은 존재였다.
애초에 연차를 그 정도로 쌓고,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알 정도로 거대한 스캔들을 몇 번씩이나 겪은 그룹이 지금 이 위치에 서 있는 게 말이 되나? 세대 교체가 이상할 정도로 빠른 이 업계에서?
– [오빠들은 외… 않늙어? 나만 나이먹는 거야?]
– [프리즘 때문에 세대교체가 안 되잖아 ㅁㅊㅋㅋㅋㅋ 진짜 언제적 프리즘이냐]
– [프리즘은 전설이다……]
– [솔직히 프리즘 이후로 나온 그룹 다 프리즘에 못 비빔 ㅁㄹ 파릇파릇한 애들 계속 나오고 그 안에서 1군 2군 나누는 거는 알겠는데 프리즘 뛰어넘을 그룹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음]
프리즘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압도적이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대를 눈앞에 두고, 그를 규격 외의 존재라고 여기며 경쟁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싶어지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었다. 하지만 유달리 자존심과 승부욕이 강했던 공성화가 취한 것은 그보다 한 단계 더 위의 회피였다.
– …멋있다. 진짜 멋있다.
이기지 못할 존재라면 사랑하는 게 가장 편하다.
그 대상을 자신의 일부로 품어 버리면 이길 필요가 사라지니까.
그 노력 끝에 공성화는 좌절하는 일 없이, 넘볼 수 있는 영역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피했는데, 왜!’
괴물들은 여전히 저 위에,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지금 무대 위에 오르는 이들은 모두 인간. 그렇게 판단했기에 [레전드 싱어>의 출연을 결심했다.
– Killing, 도망치려 하지 마
어차피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게 뭐지?
이상한 존재가 섞여 모든 것을 휘저어 놓고 있었다.
견고하게 선을 그어 만들어 둔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를 인지하는 것에 걸린 시간은 고작 15초.
마치 억겁과도 같은 그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 공성화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레전드 싱어> 이전에 본인과 대중들이 ‘한승범’을 향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과대평가가 아닌, 과소평가였음을 깨달았다.
완벽한 패배였다.
* * *
[센터 포지션 1위: 한승범]2차 경연이 끝나고, 복도의 구석에서 프리즘의 만장일치로 나온 결과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서유태에게 공성화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1위 축하해요, 승범 씨.”
“감사합니다.”
“…스케줄 때문에 중간 점검에서 빠졌을 때 배려해 줘서 고마웠어요. 그거 말하려고 왔어요.”
짧게 감사 인사를 하자 서유태는 언제나 그랬듯,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공성화가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승범 씨, 혼자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요. 스토커 또 만나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러자 다른 후배들과 대화를 나누던 유제이가 두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걸어와 서유태의 어깨 위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웃는 낯으로 물었다.
“무슨 이야기야?”
“아, 승범 씨한테 붙은 이상한 스토커가 있는데, 최근에 그놈이 승범 씨 근처에 있었던 것 같아서요. 조심해야죠.”
“…아, 그래? 몰랐네.”
별생각 없이 뱉은 설명에 유제이는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 서유태를 내려봤다. 서유태는 보이지 않도록 이를 짓씹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에 공성화가 고개를 갸웃거릴 즈음, COMA-1이 있는 대기실 쪽이 떠들썩해졌다.
“사고?”
“엄청 크게 났대요. 척추를 잘못 다쳐서 아마 앞으로…….”
“그래서 임승훈 씨 계속 연락 없었던 거야?”
기묘한 술렁거림이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내용으로 ‘임승훈’이라는 RH 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공성화는 ‘저런, 딱하기도 하지.’라고 동정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만 가 봐, 성화야. 레이즈 멤버들이 찾더라.”
그 뒤로 유제이의 말에 따라 공성화가 자리를 뜨자 유제이는 서유태의 팔을 이끌며 말했다.
“우리도 이만 가죠, 승범 씨.”
“…….”
“…승범 씨?”
유제이의 부름을 듣지도 못한 건지 서유태는 한참을 딱딱하게 굳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돌연, 입을 틀어막더니 유제이의 손을 뿌리치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에 깜짝 놀라 다급히 그 뒤를 쫓아간 유제이가 발견한 것은…….
“헉, 욱… 웨엑!”
변기의 앞에 주저앉은 채 위액을 토해 내는 서유태의 모습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