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86)
286화
자신이 겪었던 것과 비슷한 경험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과거의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받게 될 상대를 걱정하는 방식과 그것을 이미 이겨 낸 경험이 있기에 당사자성을 토대로 ‘저렇게까지 엄살부릴 일은 아니다.’, ‘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 결국에는 해결되더라.’ 등의 건조한 태도를 취하는 방식.
“여전히 배우는 법을 모르는구나, 유제이.”
서유태는 제 안에 있는 사람들에 한해 전자에 가까웠으며, 최적현은 명백한 후자였다.
서유태는 무뚝뚝한 성격과 이성 위주의 사고방식 탓에 공감에 어려움을 겪는 편이었고, 최적현은 애초에 공감을 위한 시스템 자체가 치명적인 수준으로 엉성했으므로 그 둘 사이에는 타고난 공감력의 수준에 절대적인 차이가 있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것이 두 사람의 방식이 갈리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둘은 그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을 뿐이었다.
사람은 모두 상대가 어떤 인격을 가지고, 지금까지 어떤 경험을 쌓아 왔으며, 자신의 조언을 통해 어떤 행동을 도출할지 완벽하게 통찰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두 가지 방법은 모두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오류를 품고 있었다.
서유태는 고통을 과대 해석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었으며, 최적현은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서유태의 방식은 깊은 위로를 통해 맞서 싸울 용기를 안겨 줄 수 있으나 사람에 따라 퇴영적인 태도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최적현의 방식은 당장의 고통을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게 만들어 ‘나도 언젠가는 이겨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줄 수도 있으나 다양한 실패의 원인을 상대의 무능함으로 단정지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완벽한 조언이란 허상에 불과했다.
“…비키십시오. 당신이 나설 자리 아닙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선다는 말이지? 내가 저 아이의 보호자인데.”
그렇다면 유제이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안겨 줄 수 있는 이는 과연 누구인가.
그 질문의 답은 ‘양쪽 다 아니다’였다.
“내가 분명 예전에도 말하지 않았던가? 너는 가만히 있는 게 가장 도움이 된다고.”
“…….”
“아무것도 모르는 채, 보호받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 우리 안에 머무르며 행복하게 살아. 그게 저 아이를 방해하지 않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야.”
서유태의 접근은 유제이를 작은 존재로 만들었다.
굳이 그 크기를 설명하면… 딱 서유태의 품 안에 들어서서 안락하게 보호받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할까.
“당신은 그런 일방적인 관계가 옳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왜냐하면 너는 무능하니까.”
“…뭐라고?”
“무능한 사람이 본인의 한계를 과신하면서 설치는 것만큼 번거로운 게 없지. 봐, 지금 네겐 나를 밀어낼 능력조차 없는걸.”
“…….”
“주제 파악을 해야지. 상황이 따라 주질 않고, 능력이 따라 주질 않는데 무작정 어린아이처럼 동등한 관계를 바라며 떼를 쓰기만 할 건가? 그게 ‘이상적’이며 ‘바른’ 것이니까?”
그러한 삶의 방식을 취하며 큰 문제 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분명 있었기에 유제이가 그를 선택한다고 하여 비난하기는 어려웠다. 변화는 생각보다 큰 고통과 용기를 필요로 하며, 변화를 통한 결과가 이전만 못할 수도 있었으므로.
“당신은 뭘 모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이대로 내버려 두면 결국 형은 고갈될 거야. 지금도, 내 도움이 없으면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고!”
“…하, 이래서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른 거였군.”
“그러니까 비켜. 나는 아직 할 얘기가 남았어!”
그러나 유제이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태가 기껍지 않았다.
서유태와 동등한 크기가 되어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갈망, 자신을 짊어지고 있는 서유태가 언젠가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본래 본인의 타고난 모습이 ‘결코 작지 않다’는 자각에서 기인된 위화감이 유제이를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쾅
“건방지게 굴지 마, 유제이.”
“큭!”
“이번 일에 관해서는 알아서 처리할 거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왜 귀담아듣지 않는거지?”
“…그걸 어떻게 믿어. 지금까지 나를 안심시키려고 괜찮다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입에 달고 산 사람인데!”
“아니지. 그게 아니야. 핑계 대지 마. 넌 그저 부정하고 싶은 것뿐이잖아, 네 도움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웃기지 마. 나는 그런 게!”
“그것도 아니면… 관계의 주도권을 잡고 싶기라도 한 건가? 저번처럼 너희를 일방적으로 버릴 수 없도록?”
“…….”
“지금 저 아이가 지친 건, 너를 보호하는 게 버거워서가 아니라 네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위험에 발을 딛으려고 하기 때문이야. 네 도움은 결국 또 다른 짐이 되기만 할 뿐이라고.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혹여나 네가 실패해서 위험에 빠지게 되면 저 아이는 어떻게 해서든 너를 지켜 내야 하거든. …아직도 그걸 모르겠어?”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유제이가 각오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매섭고, 잔인한 곳이었다. 서유태라는 거대한 존재를 서서히 갉아먹어 결국에는 무너트릴 정도로. 서유태는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두려워했다.
“네 용기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지. 경찰 조사와 여론의 뭇매가 어떻게 사람을 갉아먹는지, 사람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니까.”
서유태는 그의 주변 환경이 이미 유제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판단했으며, 유제이를 잃는 순간 자신의 안위마저 보장할 수 없게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유제이는 자신의 질량 중 가장 큰 비중을 자랑하는 존재 중 하나였으며, 이미 그는 그중 하나를 잃고 무너진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너…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겠다는 건지 알고 있는 거야?
유제이를 지킬 수 없게 되는 것은 서유태에게 거대한 공포로 와닿았고, 자신을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려 드는 유제이의 탈피는 그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었다. 유제이의 의지와는 다르게 말이다.
– 네 도움 필요 없어. 다른 누구의 도움도!
– 그 사실은 앞으로 몇 년이 흘러도,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어린애처럼 고집부리지 말고 돌아가!
그것이 지금 이 갈등의 원인이었다.
“언제나 급급하게 눈앞의 상황에 매몰되어 있기만 하지. 그걸 알아내는 게 네가 가진 유일한 능력이니까. 그런데 정작 문제를 해결하고 통제하는 것에는 미숙하니 무작정 감정을 부딪치기만 하다가 상황을 악화시키잖아.”
서유태와 다르게 최적현의 접근은 유제이에게 있어 공격에 가까웠다.
지금껏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버거운 진실을 억지로 마주하게 만들어 유제이를 마구 찔렀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작은 존재에 불과했는지 실감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멍청하기라도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희희낙락 살아갈 수 있다면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
하지만 최적현은 유제이가 피가 철철 흘리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의 세상에 남아 있는 고려 대상은 오직 하나뿐이었으므로.
“…당신이 저의 무엇을 안다는 겁니까. 멋대로 떠들지 마십시오.”
유제이가 이십 대를 벗어난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적현이 보기에 유제이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자신보다 다섯 살 어린 서유태를 보호할 대상으로 여겼으니, 그보다 또 다섯 살 어린 유제이는 최적현의 눈에 얼마나 어리숙해 보이겠는가.
하지만 그의 세상에는 어른과 아이의 구별은 희미했으며, 가장 중요한 기준은 ‘상대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였다. 그리고 그가 판단하기에 지금 유제이는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차라리 이치세가 나았으면 나았지…….’
매번 이렇게 문제를 일으켜 서유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바에야 차라리 그냥 사라지는 게 낫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저 아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건 내가 할 테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껍기까지 했다.
거슬렸던 것을 치워 버릴 명분이 생긴 셈이었으니까.
“방해돼.”
그 말을 들은 순간, 유제이는 생각했다.
아, 나는 왜 항상 이러는 거지?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내가 이새화처럼 형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면 상황이 달랐을까?’
그리고 그 결론의 부조리함에 낙담하며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자신은 앞으로도 몇 년이 흘러도 평생 서유태의 나이를 따라잡을 수 없을 테니까.
“…….”
방금까지만 해도 별생각 없이 맞서 싸우던 상대가 갑자기 커다랗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은 서유태의 그런 표정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결정적이었다.
‘해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면 그냥 포기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유제이는 그러한 패배감에 마냥 빠져기만 할 수는 없었기에, 비참함이 가시지 않아 얼얼한 입을 억지로 움직였다.
“…지금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인정하겠습니다. 이번에 제 접근 방법이 미숙했다는 것도요.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죠. 저 사람도 그걸 바라는 것 같으니까요.”
유제이는 서유태에게 최적현, 서유성과 함께 묶여 제정신이 아닌 놈 취급을 받았던 이였다.다양한 실패의 원인을 오로지 상대의 무능함으로 단정 짓는, 최적현의 매도에 가장 중요한 것을 무작정 포기해 버릴 만큼 약한 사람은 또 아니었던 것이다.
“대표님은 제가 아주 마음에 안 드시는 것 같지만, 이대로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
“당신도 분명 미숙했던 시기가 있었을 테니 이해해 주시겠죠?”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유제이는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에 맞춰 변화할 용기를 가질 만큼, 커다란 존재를 타고났다.
현실이 아무리 각박해도 어쩌겠는가.
주어진 상황을 꾸역꾸역 헤쳐나가는 수밖에.
그가 프리즘에 끝까지 남아 있기 위해 부족한 재능으로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던 것이야말로 그런 면모의 일부였다.
“더 고민하고, 신중하게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형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당신처럼 이상한 사람뿐이라면, 그때야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될 것 같거든요.”
최적현은 눈물이 고인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며 쏘아붙인 후, 자리를 뜨는 유제이의 모습을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바라봤다.
그러고는 곧 흥미를 잃은 채, 서유태가 앉아 있는 조수석을 향해 걸어갔다.
“…….”
무언가 이상했다.
서유태는 아무리 갈등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유제이가 매도당하는 상황을 그저 가만히 관망하고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 거의 초반부터 다시 뛰쳐나와 적당히 하라며 최적현마저 밀어냈겠지.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서유태가 가만히 있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의미였다.
“…….”
그런데,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머릿속에 불쑥 떠오른 의문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낀 최적현은 서둘러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창백한 낯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감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한승범은 원래부터 극단적으로 흰 피부를 가졌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냥 잠에 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최적현은 서유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유태야, 잠깐만 일어나 봐.”
“…….”
서유태는 잠자리에 예민했기 때문에 원래대로였다면 조수석의 문이 열린 순간 눈을 떴어야 했다.
서유태는 지금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유제이의 앞에 있다는 강박 아래 발생한 긴장으로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최적현의 앞에서 긴장이 풀려 버렸다. 그 극단적인 변화를 과연 한승범의 몸이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최적현은 절박한 마음으로 서유태의 어깨를 세게 흔들었다.
“서유태.”
하지만 굳게 닫힌 눈꺼풀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흔드는 대로 힘없이 흔들리던 몸은 최적현의 팔 안으로 훅 무너져 축 늘어질 뿐이었다.
최적현은 다급히 그를 붙잡는 것에 성공했으나 이내 손을 흠칫 떨 수밖에 없었다.
“…….”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를 확인한 최적현은 답지 않게 거친 말을 뱉었다.
“…젠장!”
서유태의 의식이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