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줄곧 풀린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유제이는 고개를 하늘 쪽으로 들더니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숨을 쉬는 게 갑갑한 건지, 정돈되지 않은 손놀림이 목 끝까지 잠겨 있던 셔츠를 거칠게 풀어헤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풀리지 않는 단추가 있자 유제이는 그것을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쥐어뜯은 후, 훤히 드러난 목을 마구잡이로 긁기 시작했다.
“하지 마!”
“…내가 왜 그때 고작 유리 조각 하나 들고 설쳤는지 알아? 어쨌든 형한테 상처를 입힐 자신이 없어서 그랬어. 그래서 여차하면 내 몸이나 찌르면서 협박하려고 했지.”
나를 죽이겠다는 건지 본인을 상처 입히겠다는 건지 그때는 잘 몰랐는데, 역시 나를 건드릴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유제이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나를 힘으로 누르고 가지는 못하지 않을까 하는 미약한 기대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야.”
하지만 그 기대는 이어진 제이의 말에 의해 산산조각 나 버렸다.
“나 지금 그냥 하는 말 아니야. 이제 지긋지긋하거든. 그 새끼한테 휘둘리면서 사는 것도, 형한테 짐덩이가 되는 것도, 멤버들이 힘들어하는 모습 보는 것도. 그러니까 지금 당장 끝낼 거야. 이게 내 한계라고, 형.”
‘…한계?’
“이번에는 내가 실패해서 위험에 빠지게 되더라도… 나를 지켜 줄 필요 없어.”
건조하게 흩어지는 유제이의 말속에서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꼭 변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까지 녀석의 앞에서 프리즘 멤버들을 지키는 것에 대한 피로감을 드러내거나, 유제이의 한계를 공격하지 않았는데,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녀석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또 내가 방해돼서 이러는 거야? 형은 항상 이번처럼… 내 도움 없이 감쪽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나는 그렇게 못 하니까.”
“…그런 게 아니야. 천천히 심호흡하고 이성적으로, 이 영상을 손에 넣었다는 게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잘 생각해 봐.”
“…….”
“프리즘은 이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됐어. 네 말대로 지긋지긋한 RH 엔터테인먼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그런데 고작 강혁우 같은 놈을 죽여서 네 손을 더럽히고, 또다시 족쇄를 차겠다는 거냐? 이번에는 네 의지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지 마!”
“…….”
“나는 너희 절대 포기 못 해. 너희가 행복해지길 원해서 이렇게 발버둥치는 건데 네가 없어지면 아무 의미도 없다고.”
내가 간절하게 말을 늘어놓는 동안, 유제이는 단 한 번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망할. 아예 대화가 안 돼.’
아니, 포기하면 안 된다.
머리를 굴려라, 서유태.
내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한승범의 유약한 몸에 유제이를 제압할 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럴 힘이 있는 놈들이 올 때까지 버티면 되는 거 아닌가?
‘이미 멤버들한테 문자를 보낸 뒤로 꽤 시간이 흘렀어. 곧 멤버들이 도착할 거야.’
나는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하곤, 차분히 숨을 훅 내쉬었다.
‘최대한 버텨서 시간을 끌자. …그리고 멤버들이 오면 저놈을 잡아다 진정할 때까지 묶어 놓자.’
그렇게 다짐한 나는 다시 녀석의 팔을 붙잡았다.
유제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기울인 채 침묵했다. 그러다가 얼마 뒤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형한테 손을 대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 같아.”
“그래, 그러면 그냥 얌전히 형 말 들어야지, 제이야.”
이때까지만 해도 억지로든 미소 지을 여유가 있었는데.
“그래서 말인데, 집을 쓸데없이 넓게 지어 버려서… 남는 방이 많거든. 그중에 밖에서 잠글 수 있게 혹시나 해서 만들어 둔 방이 하나 있어.”
“그게 지금 무슨 상관…….”
“지금까지는 써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꽤 유용할 것 같아.”
그 뒤로 이어진 제이의 말을 듣고, 어깨를 붙잡히자마자 뭔가 불길해지기 시작했다.
“형, 다칠 수도 있으니까 웬만하면 그냥 조용히 붙잡혀 줘.”
“…뭐?”
아니, 저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나를 거기에 처넣어 두겠다는 건가? 이건 패륜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충격에 얼이 빠져 있는 사이, 제이가 나를 단번에 둘러멨다. 지면에서 몸이 붕 뜨는 감각에 반사적으로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XX,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 XX!”
해가 지나 내 나이가 이제 서른다섯이 됐다.
이렇게 고집불통 일곱 살짜리처럼 까꿍 들려 다닐 나이가 아니란 말이다.
“내려놔!”
내가, 살다 살다 서유성보다 어린 놈한테 이렇게 붙잡혀서 끌려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망할, 60kg을 간당간당하게 넘기도록 찌워뒀을 때 어떻게 해서든 그걸 유지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머리통을 내리쳐서 기절시킬까?’, ‘잘만 하면 명치를 발로 찰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과 함께 급소를 가격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한가득 떠올랐다. 아마 지금 나를 끌고 가는 놈이 제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벌써 상대의 머리통을 두더지처럼 패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잘못 쳐서 애가 다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결국에는 사라지지 않아 나는 고작 말아쥔 주먹으로 녀석의 가슴팍을 퍽퍽 칠 수밖에 없었다.
“이 싸가지 없는 놈!”
“소리 지르면 안 돼, 형. 주변 이웃들이 이상하게 생각해서 나올지도 모르잖아.”
“그걸 아는 새끼가 이딴 짓을 해?”
“나는 어찌 되든 상관없거든. 그런데 형은 나를 납치범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을 거 아냐. 어차피 지금도 내가 강혁우를 죽일까 봐 무서워서 찾아온 거면서.”
‘…이런 데에 머리 낭비하지 말라고.’
어떻게 해서든 버텨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던 중, 스포츠카의 배기음이 들렸다.
‘…드디어!’
그쪽으로 다급히 고개를 돌려 보자 흰 스포츠카가 보였다.
남이훤의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장소와 차가 딱 스쳐 지나가는 찰나, 드라이브 나온 개처럼 창문을 활짝 열어 둔 채 얼굴을 내놓고 있던 이치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유제이의 어깨에 거꾸로 매달린 나를 보며 이치세가 보인 반응은 이것이었다.
“오잉.”
그렇다. 이치세는 진귀한 것을 봤다는 듯 얼빠진 소리를 한번 흘린 채 쌔앵하고 나의 앞을 지나쳤다. 운전자인 남이훤이 우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 갈 길을 가 버린 탓이었다.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나는 멀어져 가는 스포츠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거기 서, 이 자식들아…….”
이 우습기 짝이 없는 상황을 코앞에서 목격해 버림으로써, 나는 실감했다.
‘아, 모든 상황이 분위기를 따라 주지는 않는구나.’하고.
이 와중에 유제이는 또 착실하게 대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직도 포기 안 한 거냐.’
그동안 유턴을 해 다시 미친 속도로 이쪽으로 달려온 차가 끼이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리고 차 안에서 뭐라 뭐라 안에서 시끄럽게 옥신각신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건장한 남자 여럿이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무슨 콩트 찍는 것도 아니고.
“봐, 내가 형 맞다고 했잖아!”
“아, 그럼 일찍 말하든가.”
나는 그놈들을 보자마자 기지를 발휘하여 대문이 닫히지 않도록 허공에 붕 떠 있는 다리를 문 사이에 걸었다. 그리고 냅다 신경질적인 소리를 꽥 질렀다.
“퍼뜩퍼뜩 안 오냐!”
아마 밖에서는 내가 신은 운동화의 밑창만 보일 테지만, 이미 목소리로 내 이성이 간당간당하다는 사실을 바로 감지한 녀석들이 기겁을 하며 달려왔다. 난리 난리도 이런 개난리가 없었다.
우르르 몰려온 무리의 가장 앞에 있던 차운이 내가 저항하는 동안 대문이 닫히지 않도록 우당탕 몸을 비집어 넣었다. 그리고 내가 끌려가는 것을 보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절박하게 외쳤다.
“안 돼, 형 잡아! 못 보내!”
그러자 차운의 뒤를 따라오던 이치세가 ‘아이고, 우리 형!’ 하더니 나를 냉큼 낚아채 힘으로 빼앗았다.
“아!”
진심으로 허리가 두 동강 날 것 같았다.
드디어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이 웃기지도 않은 상황에 대한 자괴감, 허리의 현실적인 통증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끙끙 앓고 있던 중, 내 몸을 쌀가마니처럼 옆구리와 팔꿈치 사이에 끼워 넣은 이치세가 약간 질색하는 표정으로 속닥거렸다.
“와, 예전 몸이랑 비교가 안 되는데, 무게가? 이 모양이니까 그렇게 덜렁 들려서 끌려가지. 천하의 서유태가 쫀심 좀 상했겠어.”
“닥쳐.”
상황이 단번에 엎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유제이는 한 손으로는 벌겋게 부은 눈가를 벅벅 문지르고, 나머지 손으로는 덜렁덜렁 허공에 들려 있던 내 발목을 움켜쥐곤 낮게 웅얼거렸다.
“…내놔.”
이미 프리즘 멤버들이 들이닥친 이상, 나를 어디에 묻어 놔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차운 혼자 왔다면 어떻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치세가 온 순간부터 이미 상황은 종결되어 버렸단 말이다.
아, 주머니 속의 칼을 휘두르는 것도 유제이에게는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유제이는 결코 프리즘 멤버들에게 그러한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유제이가 강혁우에게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는 뜻이었다.
‘일단 급한 불은 껐는데…….’
그런데 유제이는 아직까지도 눈앞의 목표에만 집착을 하고 있었다. 지금 녀석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상태인지를 단번에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방해하지 마!”
급기야는 형들에게 소리 지르기까지 하는 제이를 지켜보던 남이훤이 나와 제이 사이를 막아선 후, 진정하라는 듯 놈의 턱 아래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얼씨구, 이거 완전 맛탱이 갔네. 우리 막내, 얼굴 상한 거 봐라.”
그리고 고개를 숙여 제이와 지긋이 시선을 맞춘 후, 쐐기를 박아 넣었다.
“…네가 이럴까 봐 형이 계속 숨기려고 했던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
그 말에 제이의 몸이 움찔 떨리며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했다. 그에 남이훤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대화를 이어 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멤버들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조인찬에 의해 퍽 밀려나고 말았다.
“아, 미쳤냐.”
남이훤의 거친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조인찬은 유제이의 앞에 섰다.
그리고 유제이의 낯짝을 확인하자마자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참더니 뺨을 칠 것처럼 오른손을 천천히 들었다. 하지만 끝끝내 그것을 휘두르지 못한 채 손을 떨더니, 결국 들고 있던 쇼핑백으로 유제이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
제이는 그것을 피하지도 않은 채 그냥 그대로 맞고 있었다. ‘퍽’도 아니고 ‘팍’도 아닌, 애매하게 힘이 빠진 소리만 난 탓에 쇼핑백이 구겨지는 미세한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렇게 조인찬의 손에서 벗어난 쇼핑백은 유제이를 쳤을 때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어어…….”
“헉.”
평생 못 볼 거라 생각했던, 프리즘 내 최고 평화주의자의 폭력에 둘째 형과 셋째 형이 입을 떡 벌리며 첫째 형을 꽉 붙잡았다. 꼭 치과에서 환자들의 품에 안겨져 쥐어 터지는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남이훤은 눈썹을 비딱하게 든 채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유제이는 여전히 아무 반응 없이 바닥을 내려보고 있었다.
바닥에는 쇼핑백 속의 내용물, 유제이가 학생 시절부터 좋아했던 간식거리가 한가득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다. 나머지 프리즘 멤버들은 입에 대지도 않는 것이었다.
“…유제이.”
눈치를 보고 있는 멤버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숨을 몰아쉬던 조인찬은 바로 유제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매섭게 호통쳤다.
“이, 정신 나간 새끼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