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우강원?’
거리가 상당히 먼 데다가 워낙 작은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무 의심 없이 흘려 보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한승범’과 조인찬 사이에 연관성은 없었다.
기껏 있어 봐야 이 [레전드> 싱어의 심사위원과 출연자 정도일까.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별다른 친분을 쌓은 것도 아닌, 남이나 다름없는 관계에 이 상황은 조금 위화감이 있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조인찬이 왜 내게 이만큼의 꽃을 안겨 주었으며,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지, 당연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내가 우강원의 인기척을 눈치채고 반사적으로 시선을 그가 있는 방향으로 돌리자 마찬가지로 그를 확인한 조인찬은 ‘아…….’ 하는 정돈되지 못한 소리를 흘리며 다급히 나를 돌아봤다. 나는 아직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으나, 녀석은 내가 곧 떠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다급히 내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뻣뻣하게 굳은 채 제 손을 응시했다. 무의식중에 나온 행동이었는지, 녀석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천천히 내 얼굴을 올려보곤 숨을 헉 들이켰다.
무언가 큰 실수를 저지른 것처럼, 녀석의 얼굴이 창백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녹색 눈동자가 이리저리 허공을 불안하게 떠돌더니 결국 바닥으로 추락했다.
낭패감이 역력한 그 얼굴을 끝내 숨기지 못한 채 조인찬은 벌벌 떨리는 손을 거두었다. 숨이 멎기라도 한 것처럼 차가운 정적이 흐르다가,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미안.”
고개를 푹 숙였던 탓에 그 사과를 할 때,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조인찬은 그 한마디를 뱉고,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아이처럼 허겁지겁 자리를 떠났다.
“잠깐…….”
아무리 생각해도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 나는 바로 녀석을 쫓아가려 했으나 곧 내 앞을 막는 차운에 의해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갈게.”
“…….”
본인이 가겠다는 이야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나를 보며 차운은 차분히 ‘괜찮다’는 말을 뱉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으라는 듯 내 어깨를 아래로 꾹 누른 뒤, 조인찬의 뒤를 따라갔다.
나는 결국 두 사람이 대기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굳게 닫힌 대기실의 문에는 ‘프리즘’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중, 뒤에서 우강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승범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강원을 바라봤다.
“매니저 형이 찾고 있어. 돌아가자.”
그는 처음에 서 있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는지, 평소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보다는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저번에 호텔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거나, 자리를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그에 입을 꾹 다물었다가, 조용히 답했다.
“…알았어.”
.
.
.
숙소로 돌아가 식사를 하기까지 승리의 여운으로 떠들썩해진 멤버들 사이에 우강원은 홀로 침묵을 유지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멤버들과 함께 기뻐했던 놈이 갑자기 그렇게 가라앉은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기에 마음이 어려웠다.
‘조인찬한테도 연락이 없고…….’
상 위에 잔뜩 쌓여 있는 음식을 하나 집어 억지로 굼뜨게 입에 넣고 있자 도유다가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요란스러운 투로 대화를 시작했다.
“와악, 진짜 맛있다. 저 아까 배고파서 죽는 줄 알았잖아요. 새벽이 다 돼서야 저녁을 먹다니…….”
“계속 프로틴 바 먹지 않았습니까. 이미 권, 장, 카로리 넘었습니다.”
“그게 어떻게 밥이야, 간식이지. 따뜻한 쌀이랑 고기 안 들어가면 그건 밥 아니야.”
“도애지.”
생방송이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고, 방송이 끝난 뒤에서 제작진이나 주변 출연진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식사 시간이 너무 늦어져 버렸다. 그 탓에 식당이 거의 문을 닫아 시킬 수 있는 음식이 얼마 없었다.
나는 한식 위주의 상차림을 뚫어져라 보며 젓가락을 뻣뻣하게 쥐고 고사를 지내고 있는 이화영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녀석의 수저 위에 갈비 한 조각을 올려 주며 말했다.
“…일단 지금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먹어. 내일 제대로 된 거 시켜 줄 테니까. 에너지를 그렇게 썼는데 제대로 안 먹으면 근육 빠진다.”
‘저 형 또 저런다’며 멤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이화영이 미간 사이를 팍 찌푸리기도 전, 우강원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니콜라스랑 거의 띠동갑 이상은 차이가 나는 것 같네.”
“…….”
지금껏 멤버들이 최대한 의식하지 않고 흘려 넘기려 했던 사실을 명확하게 짚는 말이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지만, 아까의 일로 우강원이 내 정체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예상을 하고 있었던 나는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띠동갑보다 더 나지, 삼촌뻘이니까.”
그 대답에 이화영은 새파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내 왼팔을 붙잡았으며, 도유다는 음식물을 잘못 삼켰는지 켁켁거리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백기량은 지진이라도 나는 것처럼 요동치는 눈동자로 우강원의 기색을 살폈고, 이단비는 침착하게 도유다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이 와중에도 나기 젠은 앞에 있는 닭다리를 집어 먹었고 말이다.
우강원은… 내 반응을 가만히 확인하다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는지 시선을 내리깔고 생각에 담겨 있다가 연이어 물었다.
“…프리즘 선배님들께도 그렇게 하셨던 거예요?”
아까와는 말투가 확연히 달랐다.
나는 명백하게 윗사람을 대하는 듯한 존댓말을 저지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수저를 움직이며 대꾸했다.
“어, 다 그렇게 키웠어. 프리즘 놈들도 나보다 어렸으니까. 특히 제이나 서유성은 더.”
밥맛은 아까부터 없었고, 이미 나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수저를 놓친 채 입을 벌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억지로든 식사를 이어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했다.
프리즘 멤버들의 눈에는 어화둥둥 막내라고 하더라도 유제이는 판테이온 멤버들에게 까마득한 선배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그 유제이를 특히나 더 어리게 보는 듯한 말을 하자 멤버들의 얼굴에 혈색이 사라졌다.
“혹시나 하고 생각은 했었어요. 프리즘 선배님들과 그만큼의 관계를 쌓은 사람들 중에, 이미 세상을 떠났고 뛰어난 리더십과 춤, 작곡 실력을 모두 갖춘 건 당신밖에 없으니까요.”
우강원은 처음에는 조금 동요하는 듯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어렵사리 말을 이어 갔다.
“저는 지금까지 이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걸 피하려고 했어요. 상식적으로, 그냥 애가 거짓말을 하는 거 아닐까, 스트레스 때문에 뭔가 착란을 일으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도 무시하려고 했고요.”
“왜?”
“…‘승범이’의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기억하십니까. 그때 당신이 어떤 상태였는지. …사람이 그렇게 한순간에 여위는 건 처음 봤어요. ‘승범이’는 항상 걱정될 정도로 악착같이 버티는 사람이었는데 컵을 들거나 일어서는 일상적인 일조차 버거워했잖아요. 그 와중에 그 사람은 당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는 말까지 했죠…….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시한폭탄 같았습니다.”
그 당시의 내 모습을 떠올리는 듯 눈을 질끈 감은 놈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만약 제가 당신의 정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걸 들키면 ‘승범이’가 혹시 나 때문에 더 궁지에 몰려 잘못되지 않을까,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무서웠습니다. 나는 분명 악의 없는 말을 뱉었는데, 칼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고통스러워했던 그때처럼…….”
“…….”
“왜 그런 말을 해서, 왜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서 ‘승범이’에게 상처를 준 거냐’고 저를 책망하는 목소리를 듣는 꿈을 몇 번씩이나 꿨습니다. 그리고 내 반응이 상처가 된다면 차라리 그냥 묻어 두고 그냥 없었던 것처럼 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그날 일을 언급하지 않는다 싶었더니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은 도유다나 젠, 이단비가 특이한 거지 사실 우강원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게 보통이었다. 당시 한계까지 몰렸던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더라도, 현실이 그랬다.
우강원은 무엇 하나 잘못하지 않았는데, 당사자인 내가 우강원을 원망하지 않는데, 도대체 왜 저 녀석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거구나, 다른 멤버들처럼 제대로 납득한 게 아니었는데도.”
그 질문에 우강원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렇게 버틴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았죠. 저는 계속 무서웠어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를 폭탄을 밟아 버릴까 봐.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가 당신의 상황을 최대한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죠.”
“…….”
“그리고 프리즘 선배님들과 당신 사이의 설명할 수 없는 유대 관계를 볼 때마다 점점 납득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그 모습을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당신의 존재를 인정할 준비가 된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우강원의 목소리는 용기가 서려 있었고, 단단했다.
나와 시선을 맞추던 놈은 변함없이 견고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선배님’은 왜 프리즘 선배님을 두고 여기 계신 겁니까.”
다른 멤버들은 모두 그 직설적인 질문에 당황한 듯 숨을 멈추고 내 눈치를 봤지만,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우강원과 마찬가지로 녀석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줄 준비가 되었기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막 눈을 떴을 때, 한승범은 비정상적인 가정 환경에 놓여 있었고, 나는 거기에서 하루라도 빨리 탈출할 수 있도록 경제력을 갖춰야 했어.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이 일뿐이라 아이돌을 목표로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
한승범의 가정환경을 언급하자 멤버들은 그날 내가 호텔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보였던 반응을 떠올렸는지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이어 말했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그룹에 들어가서 회사에 휘둘리면서 관심도 없는 놈들을 멤버랍시고 떠안기는 싫었으니까 개인으로 인지도를 쌓고, 그룹 활동을 금방 정리할 수 있는 Survive IDOL은 절호의 기회처럼 느껴졌지.”
멤버들의 안전을 위해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긴 했지만,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오로지 진실만을 쭉 뱉으며 막 빙의했을 때의 생각을 돌이켜 보곤 당시의 나는 스스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곤 숨을 깊게 내쉬었다.
“…문제는 내가 쓸데없이 정이 많다는 걸 너무 늦게 인정했다는 거야. 품에 한번 들인 사람들을 내칠 수 있는 성격이 못 되는데 거길 나간 순간부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 하필 거기에 또 너희 같은 놈들이 있었고…….”
나 자신의 한심함에 자조를 흘린 나는 곧 웃음기를 지워 내고 멤버들을 조용히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너희를 사랑하게 되었어. 너희가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 마음에 거짓은 없어.”
“…….”
“이제 모두가 알게 되었듯 나는 한승범은 아니지만, 여전히 너희의 리더야. 적어도 활동 기간까지는 책임지고 제대로 마무리 지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나를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입을 우물거리던 도유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형!’ 하고 이전과 똑같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활동 기간이 끝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