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벌컥!
도망치듯 대기실로 뛰어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제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봤다. 누가 봐도 멀쩡하지 않은 꼴로 문을 급하게 열고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제이의 얼굴에 놀란 기색은 없었다.
그는 시선으로 내게 ‘그러니까 왜, 그 사지에 네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이냐’는 질문을 하는 듯했다.
“…….”
나는 제이의 그 시선을 마주한 후에야 깨달아 버렸다.
운 형과 치세 형이 우승 축하 인사를 하러 판테이온의 대기실에 가겠다고 했을 때 제이가 가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한 이유를, 어떤 상황에서든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한다고 여겼던 차운 형이 제이의 불참을 묵묵히 용인한 이유를.
“축하할 수 없었지?”
덤덤한 목소리가 건넨 질문에 나는 ‘…응’ 하고 작게 대답하곤 이내 눈을 꾹 감은 채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후…….”
제이의 앞에서 감정적으로 무너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약하게 눈물을 흘리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단 말이다.
하지만 밖에는 형이 있었다. 결국 나와 제이가 숨어들 수 있는 장소는 이곳뿐이라, 나는 발이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요즘 나는 이상했다.
강혁우의 발에 걷어 차였을 때도, 임승훈에게 목이 졸렸을 때도 그저 건조하게 마른 속이 마모되기만 할 뿐, 이렇게 무언가가 새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어쩐지 더 고통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사는 것은, 욕구를 가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은 내가 잃은 것과 얻지 못한 것, 지금껏 필사적으로 외면했던 고통과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나를 절망에 빠지게 만든다.
‘자포자기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런 감정을 느낄 필요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형을 잃었던 시절로 돌아가는 건 또 견딜 수 없을 만큼 두려워서, 형은 그걸 바라지 않을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단지 휘말릴 뿐이었다.
눈을 감은 채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자 제이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내게서 눈을 뗐다. 그 시선 끝의 구석에 특별히 볼만한 게 있는 것도 아니었던 점을 고려해 보면 나를 배려하여 한 행동이겠지.
제이는 처음부터 내가 이렇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미리 읽을 수 있을 만큼, 현명하거나 나 자신을 잘 알지 못했다.
만약 그전에 이렇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과는 바뀌었을까?
‘아니, 나는 알고도 갔을 거야.’
그 아이들의 옆에 있는 형이 정말 행복해 보이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것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이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 …다행이다, 행복해 보여서.
그게 형을 불행하게 만든 내가 져야 하는 책임이었다.
“가지 말라고 할걸 그랬어.”
하지만 제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등을 툭 건드리는 손길에 뒤를 돌아보자 운 형의 얼굴이 보였다.
“…형.”
표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주름진 곳 하나 없는 무표정은 꽤 익숙한 편이었지만, 낮게 가라앉은 눈빛이 평소의 것과 달랐다.
“판테이온 애들은 어떡하고 온 거야. 축하해 준다며.”
길게 이어지는 침묵이 어려워 애써 웃으며 그렇게 물었지만, 형은 바로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나를 응시하다가, 내가 고개를 아래로 떨궈 얼굴을 숨길 즈음에야 입을 열었다.
“네가 더 중요하니까.”
진작 고개를 숙여 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고저 없이 툭 던져진 말에 나는 그만 와락 얼굴을 구기고 말았다.
그러자 운 형은 약간 어색한 듯, 머뭇거리다가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뭇 지금 내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유태 형과 다른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유태 형이었다면 거침없이 내 머리를 한번 푹 누르고 등을 세게 쳤을 텐데.
이 순간마저도 이미 돌아오지 못하게 된 사람을 떠올리고 있는 내가 한심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서투르게 유태 형의 공백을 메우려는 운 형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형은 조용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판테이온 멤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나한테는 어쨌든 프리즘이 가장 우선일 수밖에 없거든.”
그 말에 ‘그러면 유태 형은?’ 하는 물음이 반사적으로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지금 이 상황에 힘들어하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다. 모두가 고통스러운데도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미안해, 나 때문에…….”
그렇게 사과하자 운 형은 ‘넌 왜 항상 그렇게 미안한 게 많아.’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머리에 얹은 손을 버벅거리며 떼더니 민망한 듯 바쁘게 다른 말을 늘어놓았다.
“어차피 선배가 후배 대기실에 오래 머물러도 좋은 소리 못 들을 거고… 이치세가 너 걱정된다고 빨리 가 보라더라, 자기가 다 정리해 두고 간다고.”
그리고 내 얼굴을 다시 한번 흘끔 보더니 푹 한숨을 쉬곤, ‘남이훤 그 정신 나간 놈은 머리 아프다고 담배 피우러 갔어. 전자 담배 때려치운다더라. 걔에 비하면 아주 괜찮은 거지.’ 하고 덧붙였다.
‘아까부터 남이훤이 안 보였던 이유가 그거였구나.’
겉으로는 그냥 고개를 주억거리기만 했지만, 속으로는 차라리 그게 낫지 않은가 싶었다. 어쨌든 다른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운 형이 들어온 이후로 간간이 오른쪽 다리를 떨던 제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운 형을 향해 물었다.
“밖에 형 있어?”
“아니, 이제 그쪽도 슬슬 돌아갈 준비 해야 해서 대기실로 돌아갔을 거야, 왜?”
“잠깐 편의점 나갔다 오려고.”
유태 형이 밖에 없다는 대답을 듣자마자 유제이는 가슴께를 주섬주섬 만져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성의없는 대답과 함께 쏜살같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운 형은 그 뒷모습을 보며 2초 정도 어안이 벙벙한 듯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이마에 손을 얹더니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하, 담배 얘기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나는 귀신같은 멤버들보다 반박자 느리게 상황을 파악했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단기간에 골초가 될 수 있나?’
유태 형이 죽기 전까지만 해도 담배 냄새를 맡기만 하면 질색하며 형들을 타박하던 막내가 이제는 완전히 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오늘만 용서해 줘, 형. 스트레스가 쌓였나 봐. 오늘은 다들 힘들었잖아.”
씁쓸한 마음을 삼키며 그렇게 말하자 운 형은 깊게 한숨을 쉬며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나는 그에 작게 웃어 보이고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 근처를 손목으로 꾹 눌렀다. 그리고 제이가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 유태 형이 항상 피우던 것과 똑같은 담뱃갑을 내려보다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나, 유성이 죽고 나서 형네 집 자주 찾아갔었거든.”
“…알지. 나도 그랬으니까.”
“갑자기 모르는 곳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계속 만나러 갔는데 그때마다 형은 우리를 피했고……. 결국 볼 수 있는 건 쓰레기밖에 없었어. 밥은 제대로 먹긴 했던 건지, 저 파란 담뱃갑만 수북하더라.”
“…….”
“그냥, 저거 보고 있으니까 그때 생각이 나서.”
장례식장에서는 멀쩡한 것처럼 우리의 앞에 서 있었던 형의 모습이 순간 머릿속에 떠올라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양손으로 강하게 눈가를 짓누르자 운 형이 내 곁으로 다가와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나는 그 무게에 의지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형을 불행하게 만들기만 하는 것 같아…….”
제이도, 서유성도, 남이훤도 없는 쥐 죽은 듯 조용한 대기실에 억눌린 호흡 소리만이 날카롭게 울렸다.
* * *
그 뒤로 형에게 여러 번 연락이 왔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며칠간 완전히 퓨즈가 끊어진 것처럼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던 나는 몇 번 그 전화를 놓치고 말았다.
한참 뒤에 일어난 나는 꽤 많이 쌓여 있는 부재중 전화를 보고 깜짝 놀랐던 것 같다.
– 와, 그 형한테 저렇게 전화 많이 오는 거 처음 보네. 기념으로 캡처해 둬라.
– 아니면 연락하는 입장 이번 기회에 공감 좀 해 보라고 받지 마.
오죽하면 남이훤이 그렇게 농담을 했겠는가.
물론 남이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 줄 이유는 전혀 없었기에 나는 서둘러 형에게 전화를 하곤 연락을 너무 늦게 확인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형은 그제야 안심한 것처럼 묵힌 숨을 내쉬며 괜찮다고, 자고 있다는 건 다른 멤버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내가 괜찮다는 것을 제대로 확인한 후, 형은 프리즘의 다음 계약 소속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전에도 그랬듯, 재계약 시기에 맞춰 여러 회사에서 계약 제안이 들어오긴 했는데 그곳들을 전부 거절하라기에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 어… 최적현 보고 회사 차리라고 했거든. 너도 알다시피 판테이온 애들도 곧 계약 종료되잖아. 그런데 애들이 하도 같은 회사 가고 싶다고 떼쓰길래 고생 좀 했다.
– …그랬구나. 축하해.
판테이온의 다음 계약 문제를 해결하느라 새로운 회사를 차린 모양이었다. 형은 아이돌 활동과 운동 외의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었던지라, 이새화와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은 예상 범주 안의 일이었다.
– 뭔 축하야, 너희도 끌고 올 건데. 다른 회사는 못 믿어.
– 뭐?
하지만 우리까지 그 회사에 데려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에 잠깐 벙찐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형은 ‘듣고 있냐?’며 무뚝뚝한 소리를 뱉었다.
– 그렇다고 해서 최적현도 100%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너희도 정신 똑바로 차려. 개같은 조항 확인 못 하고 덜컥 사인하지 말고.
그리고 이어진 말에 ‘당연하지, 그 사람은 좋은 사람도 아니고 우리한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 형은 그 사람이 시야에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기겁을 하고 제이는 질색하는데 도대체 누가 방심을 하냔 말이다. 그런 이상한 사람은 형밖에 없다.
이새화는 우리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적대적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할 정도로 말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당연히 뒤따라오는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면서도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실낱같은 희망에 가슴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 ‘만약 같은 회사에 소속되면 언젠가 같은 무대에 서는 날도 올 수 있지 않을까?’
멤버들도 나와 다를 바가 없었는지, 유태 형의 제안에 반발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운 형은 낯빛을 창백하게 물들였으며, 제이는 되는대로 인상을 찌푸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것이 지금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답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프리즘의 재계약 여부에 관한 기사가 점점 더 많이 확산되자 세라들은 매일같이 지금의 회사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오곤 했다.
–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이번에야말로 탈 RH하게 해주세요]
– [프리즘 완전체 재계약 (탈 RH) 정권 지르기 10년차]
– [┗ 늒비네여]
– [그냥 회사를 차려 줘 얘들아 먹여 살리는 건 우리가 알아서 할게]
예전부터 팬들의 의견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를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드디어 팬들의 소원들 들어줄 수 있게 되었다.
– …너희는 자유야.
우리는 자유다.
그 사실을 곱씹으며 작게 미소 지은 순간, 초인종의 벨소리가 울렸다.
띵동.
‘…뭐지?’
다른 멤버들은 다 스케줄에 나가 돌아올 때가 아직 되지 않았는데 도대체 누가 찾아온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인터폰의 화면을 확인한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문 열어라, 조인찬.”
강혁우가 문앞에 와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