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한승범과 한재운은 한 살 차이였다.
그런데도 그 둘 모두에게 아버지의 피가 이어졌다는 것은 한재운의 아버지가 한승범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재운의 어머니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승범의 어머니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건가.’
어린 한승범과 그의 친부모가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한승범의 방에 남아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한재운의 아버지는 끝까지 불륜 사실을 숨긴 채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난 후, 죄를 뉘우치는 일 없이 한재운의 어머니와 재혼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 [아버지가 모르는 여자와 나보다 조금 어린 남자아이를 데려왔다.]
– [그냥 이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승범은 그 광경을 모두 지켜봤을 것이다. 그리고 한재운을 중심으로 꾸려진, 그 완벽해 보이는 가정의 유일한 오점이 되어 버린 듯한 기분을 느끼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기만이 또 어디 있나.
한승범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일기에 적어 두었지만, 나는 정말 한승범이 그를 용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기에는 너무 많이 외로웠고, 그럴 수 있는 성정 또한 되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마저 저버리면 정말 혼자가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아직 생계를 온전히 떠안을 수 없는 미성년자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보호자를 원망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므로. 한승범은 그저 지칠 대로 지쳐 현실에 주저앉은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하면 나는 더더욱,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
‘아버지’라는 이름이 화면에 떠오르는 것을 옆에서 함께 지켜보고 있었던 매니저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봤다. 아마 내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던 탓이겠지.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잠시 통화를 하고 오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후, 작업실을 나섰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곳까지 걸어가 이어폰을 연결하고 통화를 받았다.
[승범아…….]그러자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처럼 먹먹한 목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들려왔다.
‘내가 실종됐을 때는 가만히 있었으면서… 한재운이 사고 친 거 하나로 이렇게까지 반응할 줄이야.’
한재운과 한승범의 차이가 도대체 뭐라고.
한재운의 어머니는 몰라도 아버지쪽은 한승범하고도 피가 이어지지 않았던가. 심지어 한재운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했을 것이고. 평소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고려하여 아내의 눈치를 보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저 절절한 목소리를 듣고 보니 그것도 아닌 듯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에 꼭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서, 나는 그냥 그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할래?]“…….”
[독립했어도 가끔씩은 집에도 오고 그래야지……. 가족끼리 얼굴도 보고…….]나는 쭈뼛쭈뼛 건네진 그 말에 눈을 꾹 감았다. 지극히 평범한 부모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말을 난생 처음으로 해 준 타이밍이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라니, 이런 촌극도 따로 없었다.
그에 작게 한숨을 쉰 나는 ‘금방 가겠다’고 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 * *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갈까 하다가 뭔가… 그럴 기분이 들질 않아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에서 누군가가 허겁지겁 뛰어 나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승범아!”
한재운의 부모였다. 나를 발견한 그들은 무슨 구세주라도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내 손목을 잡고 집안으로 마구 끌고 들어갔다.
“식사는? 식사는 했니? 배고프면 밥 좀 차려 줄까? 오랜만에 엄마 밥 좀 먹을래?”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눈에 띄게 태도가 달라진 것을 보니 뭔가 내게 바라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속내가 뻔히 드러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한재운은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한재운의 방 쪽으로 흘끗 시선을 주며 대답했다.
“방에… 쉬고 있어.”
나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올렸다. ‘지금 대형 사고를 친 주제에 쉴 생각이 나냐’는 속마음을 읽은 한재운의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제 아들을 감싸고 돌기 시작했다.
“지금 경찰 조사하고 와서 되게 피곤할 거야, 승범아. 가뜩이나 애 힘들 텐데 너무 그러지 마.”
“뭐가 힘듭니까, 가해자면서. 어엿한 성인이면 본인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죠.”
“…말 조심해! 재운이 가해자 아니야!”
보기 드물게 단호한 목소리가 나왔다 싶었더니 그의 아내가 옆에서 시퍼렇게 날이 선 눈빛으로 그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다. 정말, 저 두 사람은 변하질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한 나는 딱딱한 투로 하나마나 한 질문을 입에 담았다.
“가해자가 아니라는 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냥 술김에 실수한 거야. 성추행도 아니었다고. 엉덩이나 가슴 만진 것도 아니고 그냥 다리랑 허리에 손 스친 게 다야.”
“합의하지 않은 신체 접촉은 추행입니다.”
“그냥 스친 거라니까? 그 정도는 길 지나가면서도 있는 일이잖아.”
“도대체 뭐를 근거로 그렇게 믿는 겁니까.”
“당연히 재운이 말이지! 그 여자, 지금 어떻게 해서든 합의금 받으려고 자작극 벌이는 거야.”
“…온갖 고생 다 하고 이제야 자리 잡아 가는 배우가 본인 이미지 다 포기하면서까지 합의금을 받으려고 한다고요.”
“합의금이 아니면 지금 재운이한테 사람들 시선이 다 가 있으니까 그게 질투 나서 재운이 인생 망가트리려고 그러는 거겠지. 아니면 이렇게라도 유명세 타려고 하는 거든가.”
물어본 내가 멍청했다.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대답을 듣자마자 두 사람과의 대화를 포기한 채 한재운의 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인터넷에 ‘성추행 처벌’, ‘성추행 기소 유예’, ‘성추행 경찰 조사’, ‘한재운’, ‘한승범 동생’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고 있는 한재운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갑자기 등장한 나를 보며 깜짝 놀라는 반응을 깡그리 무시하고, 곧장 그의 앞으로 걸어가 입을 열었다.
“피해자한테 사과는?”
“…….”
그러자 녀석은 당혹감에 풀어졌던 얼굴을 다시 애매하게 굳히며 시선을 피했다. 안 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녀석의 손목을 낚아채, 거실까지 질질 끌고 나갔다.
“놔, 놔!”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한재운이 거세게 저항하자 붙잡고 있던 손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한승범의 약하기 그지없는 몸이 그 기세에 휘말려 뒤로 한 걸음, 두 걸음 밀려났다. 그 모습을 본 한재운은 그것 보라는 듯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 비웃음을 머금었다.
“어차피 다 그 여자도 좋아서 나 꼬신 건데 내가 왜 사과해야 하는 건데. 변호사가 사과하라면 할게. 재판 결과 잘 나오려면 하기 싫어도 이 악물고 미안한 척할 테니까 형은 신경 꺼.”
벼랑 내몰려 혼란스러운 탓인지 아주 충동적인 태도였다. 사방팔방에서 욕을 먹고 있으니 죄다 본인의 적처럼 느껴지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웃어?”
그러자 희미하게 웃음기를 지우지 못했던 얼굴이 단번에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며 내 주위를 맴돌던 한재운의 부모들 또한 나를 보곤 놀라움을 숨기지 못한 채 입을 틀어막았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한승범은 소심하며, 유약하고, 바보 같을 정도로 착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본인들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여기까지 부른 것이겠지. 하지만 그들의 바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듯, 나는 표정근을 움직이는 방법마저도 한승범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었으니까.
“피해자한테 가서 무릎 꿇고 사과해. 선처해 주든, 해 주지 않든 가서 손발이 닳도록 빌어. 그리고 만약 그 사람이 네 얼굴 따윈 보고 싶지 않다고 하면 말대답하지 말고 나와. 그게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네가 혼나기 싫어서 부모님한테 한 거짓말, 어차피 증인 있어서 법정에서는 먹히지도 않을 테니까.”
나는 피해자를 위해 이 자리에 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재운의 가족들이 어떻게 되든 관심없었다. 강혁우는 과거의 내가 그랬듯, ‘한승범’ 또한 가족의 정에 휘말려 이미지에 타격을 얻길 바라고 있었겠지만 나는 한재운의 가족들이 길가에 나앉든, 사람들에게 돌을 맞아 죽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피해자는 다를 것이다. 피해를 당한 사실이 있다면 반드시 사과를 받아야만 했다. 끝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뻔뻔한 가해자를 볼 때마다 피해자가 얼마나 큰 절망감을 느끼는지,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용서할지, 용서하지 않을지는 피해자의 선택이었지만, 사과는 정말 최소한의 도리였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사과 정도는 하라고. 그 말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렇게 말한 후, 망설임 없이 뒤돌아 나가려 하자 한재운의 부모들이 기함하며 내 몸을 붙잡고 늘어졌다.
“잠깐, 우리 좀, 제발 우리 좀 도와줘. 승범아!”
“더이상 할 말 없습니다.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요.”
“왜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네가 사람들한테 말해 주면 되잖아. 우리 재운이 그런 애 아니라고, 다 그 여자한테 속고 있는 거라고! 우리 재운이, 아직 너무 어리잖아. 이대로 내버려 두면 우리 재운이 인생은, 꿈은 어떡해!”
“지금 저보고… 2차 가해를 하라는 겁니까? 고작 저런 뻔한 거짓말을 믿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우리 가족이잖아. 가족끼리 믿어 주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믿어 준다는 거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내가 얼마나 열과 성의를 다해서 너를 키웠니. 다른 집 같았으면 그냥 고아원에 버렸어. 그런데 나는 끝까지 너를 책임지려고 했잖아. 남의 자식 키우는 거 아니라는 소리 수백 수천 번 들으면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그런데 이런 것 하나도 못 해 줘?”
그 말을 들은 순간, 귀에 이명 소리가 들렸다.
내 자식이 받았던 고통을 이 눈으로 지켜보는 것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상황은 없다. 견고한 마음이 사랑하는 이가 감내했던 고통과 상처 앞에 뿌리째 뒤흔들리며 찢어지는 듯했다.
– 너랑 네 동생 고아원에 갖다 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라.
– 나 혼자 살기도 바쁜데 너희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냐. 너희 얼굴만 보면 지긋지긋해, 아주.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동안 마음 깊숙이 꽁꽁 숨겨 두었던 내 오랜 흉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제는 다 아물어 통증조차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오랜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심장이…….’
발작의 전조처럼 심장이 기형적으로 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고통이 버거워 상반신을 휘청거리다가, 티가 나지 않도록 가슴을 움켜쥐었다.
과연 이 아픔은 한승범의 것일까, 나의 것일까.
‘…망할.’
부모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내가 받았던 고통을 내가 사랑한 아이가 똑같이 느끼는 일 따위는 정말 바라지 않았다.
“…….”
아, 안 된다.
이건 안 된다.
나만 그런 일을 당한 것이라면 끝까지 참을 수 있었을 텐데.
그동안 참고, 또 참았던 분노가 입 밖으로 시뻘겋게 쏟아지는 듯했다.
“재운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엄마 정말 죽어!”
이 자리에 서 있는 게 한승범이 아니라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착해 빠진 아이는 저 말에 겁을 집어먹어 놀아났을 게 뻔하니까.
내 옷자락을 제멋대로 잡아당기며 소리치는 꼴을 가만히 내려보고 있자니 불쾌감이 솟구치는 듯했다. 자기 아내 뒤에 숨어서 말 한마디 못하는 등신 새끼는 말할 가치도 없었고.
나는 주머니 속 기계의 버튼을 누른 후, 그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어 떼어 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속삭였다.
“그럼 죽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