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312)
312화
“그럼 죽어.”
나직한 목소리가 쥐 죽은 듯 조용한 거실에 울렸다. 그러자 한재운의 가족들은 꽤 긴 시간 동안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나는 그들을 조용히 내려보다가 쥐고 있던 손을 허공에 뿌리치며 이어 말했다.
“당신 하나 죽는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안 변해.”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한재운의 어머니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제 남편을 바라보곤 물었다.
“여보, 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그, 글쎄, 나도 제대로 못 들은 것 같아.”
그녀가 이 상황에 굳이 남편에게 질문을 한 이유는 그가 앞장서서 나를 꾸짖기를 바랐기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겁쟁이에, 항상 은근슬쩍 자기 자신만을 우선시하는 한재운의 아버지는 그 의도를 대충 짐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교묘하게 회피했다.
그의 대답에 한재운의 어머니는 답답한지 발을 동동 구르며 제 남편을 향해 재차 호소했다.
“지금 당신 아들이 나한테 죽으라고 했잖아!”
언제는 또 가족이니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또 남의 아들이었다. 순종적이었던 한승범과 완전히 다른 나를 본인이 감당할 수 없으니 피가 이어진 남편에게 이 상황을 책임을 넘기는 것이었다.
“…어, 그러게……. 왜 그랬지?”
하지만 한재운의 아버지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생각이 전혀 없었는지 말도 안 되는 대답으로 또다시 빠져나갔다. 그러자 한재운의 어머니는 이제야 그의 행동이 의도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고 입을 벌린 채 헛웃음을 뱉었다.
“당신 정말!”
배신감이 역력한 얼굴은 끝까지 한재운의 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아내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나와 부딪치며 지금의 내가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것을 깨달았기에 나와의 충돌을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
눈치를 보느라 뻣뻣하게 굳어 있는 주제에 마른침을 꿀떡 삼키느라 목젖만 왔다갔다 움직이는 꼴이 꽤 추하게 느껴졌다. 한재운의 어머니는 또 그녀 나름대로 이 상황에서 남편과 다툼을 벌여 봤자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가슴이 점점 더 차갑게 식어 버리는 듯했다. 저들에게 더 실망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더 바닥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결국 나는 눈을 길게 감고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이제 됐어.’
그리고 결심했다.
“셋 다 죽든 말든 아무 관심 없으니까 알아서들 해결해. 어차피 당신들 진짜 죽을 생각 없는 건 뻔히 알고 있지만.”
“뭐, 뭐라고?”
“진짜 죽고 싶은 사람은 그런 얼굴 안 하거든. 그런 말도 꼭 남의 인생 짓밟으면서까지 악착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이 하더라.”
어떻게 보면 포기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승범이 남겨 놓은 것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풀이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문제집 속 인덱스와 심이 여러 개 들어 있는 샤프 그리고 녀석의 핸드폰에 남아 있는 ‘아버지’라는 이름까지 말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한승범이 다시 이 몸에 돌아왔을 때 일시 정지를 해 놓은 영상을 다시 재생하는 것처럼 흘러가지는 못하겠지만, 자식처럼 키운 아이가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것을 어떻게 감히 함부로 건드릴 수 있겠는가.
어찌 보면 미련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건 내가 서유성이 죽은 이후로도 녀석의 방을 건드리지도 못했던 것과 비슷한 마음이었다.
“목숨 가지고 협박질 하는 것만큼 같잖은 짓도 없지. 그 정도의 관계가 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잖아, 정작 이쪽은 당신들한테 오만 정이 다 떨어져서 남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정이 떨어질 게 뭐가 있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가만히 두고 보자 하니까 점점 도를 지나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안 그러고 말 잘 듣더니 너 요즘 정말 왜 그러니! 뒤늦게 안 오던 반항기가 오기라도 한 거야?”
“…무슨 잘못을 했냐고.”
“그래!”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당장 여기 있는 한재운의 존재부터가 당신들 잘못인데? 뻔히 가정 있는 사람이 다른 곳에서 애 만든 주제에 자기 아내 죽자마자 기회라도 온 것처럼 제대로 된 설명 하나 없이 다 데려와서 눌러앉혔잖아.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그게 잘한 짓인지.”
“…….”
“그 뒤로는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면서 한재운 입에 들어갈 거 실수로라도 내 입에 들어갈까 전전긍긍하다가 급기야는 투명 인간 취급까지 했고. 사람을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본인들 상황 불리해지니까 지금까지 나한테 했던 짓은 싹 다 모르는 척하고 이제 와서 감히 가족이니 뭐니 떠들면서 당연하다는 듯 도와 달라는 거야.”
“…그건, 그냥 엄마도 재운이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서…….”
“마지막 생방송 날에는 도대체 왜 꾸역꾸역 찾아온 거지? 내가 그렇게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가족인데 당연히 가야지! 아무리 그래도 축하해 주는 게 예의니까…….”
“…자기 아들 카메라에 한 번이라도 더 비추려고 온갖 치장을 다 시켜서 들이닥친 주제에, 내가 아이돌로 데뷔하겠다고 했을 때 한재운 인생에 걸림돌이라도 될까 봐 죽기 살기로 반대한 주제에 축하? 당신 그거 아니잖아. 어떻게든 내 유명세 이용해서 자기 아들 득 보게 하려고 했던 거지.”
적어도 한승범이 마지막까지 그를 아버지라 여겼다면 나는 그것을 억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최대한 녀석의 가족들을 이성적인 태도로 대하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였다.
“당신들 머릿속 따위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도 훤히 보이니까 내 앞에서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마. 못 본 척 눈감아 주는 거에도 한계가 있어.”
나 자신의 분노나 불쾌감 따위는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나는 지극히 이성적인 사고로, 한승범을 지금 이 일방적이며 유해한 관계로부터 잘라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나는 지금부터 한승범의 보호자로서, 내 역할을 다하겠다.
“더 이상 당신들과 엮이기 싫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제게 연락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순간부터는 그냥 남인 겁니다.”
“그러면 재운이는 어떡해! 우리 재운이 고작 그거 하나 잘못했다고 벌써 사람들한테 죽어라 욕먹고 작품 다 취소되고 있는데 진짜 안 도와줄 거야?”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니 그냥 겸허하게 받아들이세요. 어차피 뭘 해도 연예계에 복귀하는 건 무리일 겁니다.”
그렇게 통보한 후, 나는 그들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승범아!”
한재운의 아버지가 나를 쫓아 뛰어나온 것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며 어깨 위의 손을 세게 뿌리쳤다. 노골적인 혐오의 시선에 그는 조금 놀란 듯 주춤주춤 몸을 뒤로 물렸다.
“…방금 제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겁니까?”
“아니, 이해했다. 요컨대 우리한테 서운했던 거잖아. 이제 잘 알았으니까 서로 배려하면서 잘 풀면 되는 것 아니니.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 아니다. 네가 정 못 견디겠으면 엄마나 재운이랑은 연락 안 해도 돼. 그런데 아빠랑은 해야지.”
“…….”
“오해가 조금 있는 것 같은데 아빠는 너 진짜로 사랑했어.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냥 엄마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앞에서는 표현하지 못했던 거니까 승범이가 이해 좀 해 줘.”
아무 죄책감 없이 내뱉어진 ‘사랑했다’ 말 한마디에, 나는 순식간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만약 한승범의 일기를 읽지 않았더라면, 한재운의 가족들이 ‘한승범’에게 취했던 태도를 눈앞에서 보지 않았더라면 그 말에 조금이라도 흔들렸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한승범의 친부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으며 참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한승범의 사랑받지 못했던 과거와 거기에서 비롯된 외로움을 안다.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을 포기하고, 끝내는 도망쳐 나와 처음 보는 이의 품에 안겨야만 했던 슬픔을 안다.
“…사랑?”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분노가 해일처럼 밀려와 내 몸을 마구 할퀴는 듯했다. 지독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속이 점점 메스꺼워지고 손끝이 잘게 떨려 왔다.
이대로 파도에 부딪힌 몸이 서서히 부서져 사라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명한 중오였다.
“당신이 감히 사랑을 입에 담아?”
아까까지만 해도 필사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차분한 목소리가 기이하게 뒤틀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눈알이 쏟아질 것처럼 시큰거리고, 흐트러진 호흡이 버거웠다.
“차라리… 차라리 끝까지 입 다물고 있기라도 하지.”
그놈의 변명, 변명, 변명. 어떻게 이리도 간단히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무너트리는 것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보내 주었다면 속은 죄 썩었어도 겉모습은 지저분해 보이지 않게, 조용히 마무리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한 발 물러나면 한 발 더 욕심을 내는 건가. 왜 굳이 뭐 하나 더 잡겠다고 손을 뻗어 가슴을 긁는 것인가.
“이제 와서 간식이라도 던져 주는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하면 죄다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거야? 지금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굶주려서 말라 죽어 가고 있었던 애니까!”
…도대체 왜 자꾸만 한승범을 가여운 아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인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거야? 한승범을 더욱 상처 입히면서까지?’
가슴이 썩다 못해 문드러지는 듯했다.
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한승범은 그가 저질렀던 모든 일을 용서했을 것만 같아서, 정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아서…….
“도대체 뭐가 달라졌는지 아직도 알아보지 못한 주제에 감히 사랑한다는 말을 지껄여?”
“…달라져?”
그런데도 이제 그를 용서해 줄 수 있는 한승범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서 더욱 그랬다.
번쩍번쩍 하얗게 번지는 시야에 눈을 질끈 감고 무릎을 손으로 짚었다.
그렇게 자꾸만 늘어지는 상반신을 겨우 지탱한 채 나는 쇳소리가 나는 호흡을 최대한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턱선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 식은땀이 턱 끝에 매달릴 즈음에야 호흡을 정돈하는 것에 성공한 나는,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로 저주를 퍼부었다.
“헉, 다시는 아버지인 척 굴지 마……. 당신은 그럴 자격 없으니까. 당신이야말로 이 모든 일의 원인이고, 그 사실은 앞으로 무슨 짓을 해도 절대 변하지 않아. 하, 절대 용서받을 수 없어. 평생 죄책감에 허우적거리면서 살아. …나는 죽을 때까지 당신이 저지른 일을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그러자 한재운의 아버지는 그제야 내내 두르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진 채 나를 시퍼렇게 뜬 눈으로 내려봤다. 그리고 한승범의 몸에 생긴 이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도 당황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은 채 뒤돌아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에 의문을 느낀 순간, 심장이 기이한 움직임으로 튀는 느낌이 들며 가슴에 싸한 통증이 번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애매하게 겪었던 신체적인 문제 중에 가장 선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눈에서 통제할 새도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를 경험하자마자 직감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체력과 스트레스에 극단적으로 취약한 몸, 종종 느껴지는 가슴께의 통증과 어지러움, 잦은 실신.
그 모든 것들은 이 몸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울지 마. 제발 울지 마.”
한승범의 어깨 한쪽을 감싸 안은 채 그렇게 중얼거리던 중, 서서히 몸이 무너지며 바닥이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근처에 차를 주차해 두고 상황을 지켜보던 최적현이 뭐라 뭐라 소리치며 다급히 이쪽을 향해 오는 것이 보였다.
‘아, 다행이다.’
그에 안심하며 눈을 감자 깜깜해진 시야에 상태창의 문구가 떠올랐다.
[시스템 배려 대상의 신체에 이상을 감지. 복구를 시작합니다.]그리고 시스템의 딱딱한 말투와는 사뭇 다른, 누군가의 말이 나타났다.
[괜찮아. 엄마가 우리 아들 아프지 않게 지켜 줄게.] [엄마는 승범이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어.] [더 건강하게 낳아 주지 못해서 미안해.]어깨를 떠받치는 감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