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313)
313화
눈을 떠 보니 또다시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이제는 이곳이 도대체 어디인지 헷갈리지도 않았다.
‘병실인가. 몸은… 아까보다는 훨씬 낫군.’
게임 오버가 되면 자연스레 태초 마을에 도착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제는 꽤 여러 번 맡아 본 병실 특유의 이 향을 맡고 있으면 내 집에 있는 안정감마저 느껴졌다.
‘…아니, 사실 구라야.’
집은 개뿔. 엄청 불편하다. 그런 생각과 함께 돌연 솟아오르는 예민함에 미간 사이가 팍 좁아졌다. 시계를 봐 보니 한재운 가족들의 집에 방문하고 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은 것 같았다. 아직은 좀 더 휴식을 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눈을 번쩍 떠 버린 것에는 내 예민함이 작용했음이 틀림없었다.
‘아오, 완두콩 공주도 아니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잠자리 가릴 건데.’
내가 이래서 밴에서도 못 자고 일이나 하다가 피곤해하는 거다. 그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데도 고치지 못하는 건 조금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이것도 다 내가 타고나길 예민하게 태어난 탓이겠지.
정말 나 자신이 지겨웠다.
“…….”
돌려막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다지 의미가 없는 생각을 바쁘게 떠올렸다. 농담 따먹기라도 괜찮았다. 아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진중하지 못한 태도를 유지하는 게 나았다. 어쩐지 한승범의 몸은 한재운의 가족들로 인해 겪는 일들에 다른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듯해서.
– [더 건강하게 낳아 주지 못해서 미안해.]
마지막으로 눈앞에 나타난 그 글자와 쓰러질 즈음 느겼던 통증을 고려해 보면, 한승범의 몸은 선천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한승범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지키려는 마음이 아주 강한 것으로 보였고 말이다.
‘뭔가, 한승범에게 이상한 힘이 주어진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렇게 이런저런 가설을 떠올리다가 ‘끙’ 앓는 소리를 내자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몸은 좀 어때?”
나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마른 잎새도 이런 기분은 아니겠지.”
“그래도 이제는 나름 여유 생긴 것 같네. 농담도 하는 거 보니까.”
“너는 아직인 것 같고.”
개떡같은 분위기를 살려 보고자 나름 농담 비스무리한 것을 뱉었다. 그러자 최적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푸흐흐 웃고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올렸다.
그리고 ‘당연하지. 몇 번 반복해도 익숙해지질 않는걸’이라고 중얼거렸다. 퍽 피로가 서려 있는 듯한 모습에 결국 끝까지 철판을 까는 것에 실패한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그리고 스치듯 본 녀석의 오른쪽 손바닥이 뭔가 붉었던 것 같아 흘끗 눈동자를 굴리자 최적현은 표정 변화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버렸다. 나를 데리고 오다가 어딘가에 쓸리기라도 한 건가?
“…미안하다.”
“괜찮아. 이러려고 옆에 있는 거니까.”
“이왕이면 택시 타려고 하는 편인데 그냥, 기사 터진 이후로는 웬만하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택시 별로 안 좋아하잖아.”
변명처럼 애매하게 중얼거리는 말에 최적현이 무슨 소리 하는 거냐는 듯 대꾸했다. 아주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핸드폰으로 제 할 일을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 버리는 행동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 입을 닫았다.
‘아니, 맞긴 맞는데…….’
녀석의 말이 맞았다. 나는 가깝지 않은 인물과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상황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원래도 원래도 그런 상황을 기껍게 여기지 않는 편이었다만, 아버지의 스캔들이 터진 이후로 더욱 신뢰할 수 없는 사람과 마주하는 상황이 불편해져 버렸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런 거 가릴 상황이 아닌 것도 맞지 않던가.
‘그냥 왔다갔다 하는 길에 던져 두고 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도 차 하나 없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모든 일이 번거로워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매번 일이 커지니 ‘그냥 면허를 따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최적현은 꼭 내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먼저 말을 꺼냈다.
“앞으로도 운전은 하지 마. 위험하니까. 차라리 내가 데리러 갈게.”
한승범의 몸에는 항상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고, 그 주기가 결코 짧지 않으니 혹여나 있을 사고를 우려하는 듯했다. 냅다 ‘응!’이라고 대답하기에도 뭐하고, ‘싫어.’라고 대답하기에도 뭐한 당부에 나는 그저 애매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어…….”
그러자 최적현은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몸은 앞으로도 계속 그러는 거야?”
“…아마도. 계속 운동하고 식사량도 늘리려고 노력하는데 딱 여기까지가 최대치인지 이 이상으로는 크게 개선이 되지는 않더라. 이것도 그나마 초반보다는 많이 나아진 거야. 이 몸에서 눈뜬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진짜 기본적인 활동도 감당 안 됐거든.”
“그래? 내 체감으로는 최근 들어서 더 심해진 느낌인데.”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훨씬 나아. 판테이온 멤버들도 전보다 체력이 좋아진 것 같다고 했었고.”
“그러면 결국 예전보다 건강 자체는 나아진 게 맞는데 이렇게 문제가 터지는 일은 늘었다는 거네.”
“…….”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어정쩡하게 시선을 회피하고 있다가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죄 힘이 빠져 있던 몸이 꽤 무거워 버벅거리고 있으니 최적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무슨 바닥에 있는 토끼라도 집어 드는 것처럼 내 갈비뼈 부근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이, 이게 뭔.’
어쩐지 같은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한 느낌이 들었으나, 놈은 결과적으로는 내가 상반신을 세우고 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환자복 사이로 보이는 한승범의 팔다리를 보다가 미간 사이를 미세하게 찌푸렸다. 방금 내 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안 대략적으로 짐작해 본 두께나 무게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너는 원래 몸으로도 자주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렸었지. 스트레스도 흡연으로 풀거나 종종 며칠을 내내 시체처럼 자면서 풀었고.”
뭔가 숙제를 안 했는데 불시에 검사가 시작되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진실대로 말하기에는 조금 죄책감이 들었으나 거짓으로 둘러대기에는 최적현이 내가 사는 꼴을 전부 알고 있었던지라 나는 거의 반쯤 포기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
“너도 알다시피 네 원래 몸은 워낙 건강했잖아. 그때는 나도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였으니까 지금하고는 완전히 정반대였다고 봐야겠지.”
최적현은 180cm를 넘는 신장에 잘 관리된 몸을 가지고 있는, 평균보다 훨씬 큰 체격이었지만, 그조차도 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마 같은 키가 되었다고 해도 내가 훨씬 더 근육량이 많고, 무게도 더 나갔겠지.
– 역시 쉽지 않네.
– 후, 당연히 어려워야지, 체급 차이가 나니까. 게다가 나는 체육관 다닌 지 오래됐고 우리 도련님은? 주먹질은 무슨… 교양이랍시고 펜싱이랑 승마 위주로만 돌리지 않으셨습니까.
– 어쩔 수 없어. 집안 규칙이라 어렸을 때부터 배워야 했거든.
함께 재미 삼아 스파링을 할 때마다 최적현이 체급 차이로 꽤 많이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링 위에 서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는 게 참 우스웠다.
‘망할.’
그 시절을 떠올리며 조금 씁씁한 감정에 빠져 있던 중 최적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그 몸으로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스스로도 알고 있잖아, 네가 얼마나 예민한 성향을 타고났는지. 지나칠 정도로 강인했던 예전 몸으로도 그렇게 문제가 생겼는데 지금 몸은 어떻게 될까.”
그는 말끝을 흐리는 대신, 너 스스로도 알고 있지 않냐는 듯 병원복을 걸치고 있는 내 몸을 쭉 훑어봤다.
“그건 평생을 돌보며 살아야 하는 몸이야. 작은 스트레스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무리를 하면 반드시 몸으로 나올 테니까. 그 극단적으로 효율이 낮은 몸으로 조금이라도 평온한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는 항상 노심초사하면서 살아야겠지. 건드리면 터지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
“하지만 너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너무 미숙해. 몸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혹사되면 이상이 생기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 과장해서 말하면 네다섯 살 아이들이 적정선을 모르고 무리해서 활동했다가 열이 나는 것과 똑같아.”
“아니, 무슨 그런 비유를…….”
내 나이가 이제 서른 다섯이다.
30살은 도대체 어디에 까먹고 저런 말도 안 되는 비유를 든단 말이냐. 어처구니가 없어 그대로 벙쪄 있었으나 최적현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단적으로 말하면 너는 굳이 한승범의 몸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의 몸에 들어갔어도 반드시 문제가 생겼을 거야. 선천적으로 예민한 성향에 온갖 고난을 겪었는데 멀쩡하게 살 수 있을 리가. 그런데 몸까지 걸림돌이 되어 버린 이상, 앞으로도 이런 일은 반복되겠지. 앞으로 큰 병에 걸리게 될 수도 있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당장이라도 다 그만두고 요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그게 무슨 소리야. 프리즘 놈들이나 너도 비슷하게 살고 있잖아. 이 정도는 다들 기본으로 하고 사는 거 아니었어?”
프리즘 멤버들을 예를 들어 반박하자 최적현은 매우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즉답했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 유태야. 네 주변에는 다들 어떻게 해서든 너를 따라가고 싶어서 발버둥치고 있는 사람들뿐인데 당연히 그 아이들도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상당히 벗어났다고 봐야지.”
아, 부정하고 싶은데 부정할 수가… 없었다.
당장 프리즘 멤버들만 해도 내가 옆에 있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정상적인 양의 연습을 소화했을지도 몰랐다. 내가 비정상적인 연습량을 소화했던 것이야말로 아이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프리즘 연습 시간 논란’의 근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정상의 자리까지는 올라갈 수 없었겠지. 지금 네 복수도 마찬가지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잖아?”
“…….”
웬일로 먼저 내 입장을 대변해 주나 싶었다. 저놈도 이제 불혹의 남자가 되더니 공감의 스킬과 사회적 대화를 완벽히 익히게 된 건가 하는 생각을 한 찰나, 최적현이 특유의 개또라이 미소를 머금은 채 뜬금없는 말을 뱉었다.
“그래서 말인데, 네 원래 몸은 어디쯤 있는 걸까?”
“…저번에 말했잖아, 나도 모르겠다고.”
“잘 생각해 보면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날 본 걸 최대한 얘기해 볼래?”
‘뭐지?’
나는 녀석의 뜬금없는 질문에 알쏭달쏭하다가도 일단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기 위해 잠깐 내 몸으로 돌아갔던 때를 떠올려 봤다.
“이상한 집이었지. 보통 사람이 살고 있으면 사진이라든가, 취미나 평소 좋아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을 만한 물건들이 놓여 있잖아. 그런데 그런 것 하나 없이 정말 생존을 위한 것만 놓여 있었어. 너희 집하고도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너희 집은 인테리어용 소품이 꽤 여러 개 있는데, 거기는 그것마저 없었어. 그런데도 사람은 살고 있더라.”
“…그 사람 얼굴은 봤어?”
“아니, 못 봤지. 중간에 몸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게 돼서……. 그래도 나한테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어.”
“그걸 어떻게 장담해.”
“그냥, 알 수밖에 없었어. 몸이 이상할 정도 완벽하게 관리되어 있었거든. 옷, 머리카락, 하물며 손톱 발톱까지……. 보통 생판 남한테 그렇게까지는 못 하잖아.”
그렇게 말하곤 ‘머리카락이 침대까지 늘어지도록 길었는데, 엉킨 곳이 없더라. 나도 그 정도로는 관리 못 한다.’고 농담식으로 덧붙이며 녀석을 올려봤다.
하지만, 시선은 마주치지 않았다.
“…그래?”
녀석은 허공을 응시한 채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 서늘하게 식은 붉은 눈동자를 발견하곤 순간 흠칫 놀라 숨을 들이켰지만, 최적현은 이미 다른 곳에 신경이 팔린 듯 내 반응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평소와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돌아봤다.
그 뒤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나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 갔다.
아마 자연스레 강혁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프리즘 멤버들의 숙소 생활을 언급하고,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식으로 말했던가.
“아, 그러고 보니 서유성은 혼자 독립해서 산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서유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서유성이 살아 있을 적에는 무슨 동족 혐오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 질색을 하더니 이제는 내가 좋아할 만한 화제를 꺼내려 나름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니, 어렸을 때부터 내가 계속 데리고 살았지. 그놈 어렸을 때부터 손이 참 많이 가서 내가 다 챙겨 줘야 했어.”
서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내가 픽 웃는 소리를 내자 녀석은 눈을 접어 싱긋 웃으며 평소와 같은 투로 말했다.
“…만약 독립을 했다면 많이 불안했겠네.”
“그랬겠지.”
“응, 그 아이가 혼자서는 어떻게 살지, 너는 전혀 모르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