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315)
315화
나는 이미 회사 측에 가족과의 연을 끊었으니, 그들과 관련된 문제에는 이제 더 이상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을 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그냥 못 본 척할 수 없었기에 나는 이번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 휘영 배우와 만날 약속을 잡은 참이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그녀가 소속된 회사의 사무실로 찾아가니 TV에서 종종 본 얼굴의, 피부를 모두 가리는 정장을 입은 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승범 씨. 이왕이면 조금 더 좋은 자리에서 인사 나누고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만나 뵙게 됐네요. 건강은 좀 어떠세요? 쓰러지셨다고 들어서 걱정 많이 했어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도 언젠가 한 번쯤은 뵙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정말 아쉽습니다. 건강은 이제 많이 회복된 상태이니 걱정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나자마자 되는 대로 원망을 쏟아부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녀를 먼저 찾아갈까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녀 입장에서는 한재운의 주민등록등본상의 형인 내가 꼴 보기도 싫을 수 있지 않은가. 그 가능성을 생각하며 망설이고 있었던 나는 예상과는 상당히 다른 상대의 태도에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속마음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은 채 차분한 낯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그녀는 내게 의자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본인도 자리에 앉자마자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 일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 분명 저희 쪽에서는 한승범 씨가 거론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생각이었는데 통제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동생분께서 제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승범 씨가 피해를 받게 되어서 정말 유감이에요.”
도대체 왜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한 걸까 궁금했는데, 잘못된 기사로 고생을 했던 내가 계속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본인이 당한 일에 대한 억울함이 훨씬 커 주위가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저렇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만난 지 고작 몇 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미련할 정도로 정직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재운 가족들과 사이가 별로 안 좋다는 건 저 사람도 이미 알고 있겠지. 기자며 너튜브며 온통 그 이야기로 도배됐으니까. …그래서 이러는 건가?’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그 말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괜찮습니다. 원래 기사는 그런 거니까요. 저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그거야말로 휘영 씨의 잘못이 아닌데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한재운이 저지른 일에 대해 그녀에게 사과하지는 않았다. 이미 한재운 가족들과 나 사이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어 둔 상태에서, 한재운을 대신하여 그녀에게 사과를 건네 버리면 그들과 한편인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저 사람 성향상 별로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네.’
나는 이 자리에 한재운의 가족으로서 그녀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기에, 사과가 아닌 다른 말을 뱉기로 했다.
“선처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고 하셨죠. 하루빨리 휘영 씨께서 원하는 결과를 얻고, 마음에 조금이나마 평온을 되찾을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차분하게 내뱉은 말에 그녀는 조금 당황한 듯 아까까지만 해도 잘 유지하고 있었던 평정심을 잃은 채 입을 미세하게 벙긋거렸다. 그리고 곧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인터넷에 떠돌던 이야기… 정말이었던 모양이네요.”
한재운을 감싸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응원하기까지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녀는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자극적인 가정사가 사실이었음을 실감한 모양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질문에 굳이 답하지 않은 채 그저 옅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저런 두루뭉술한 말에 괜히 맞다고 했다가 덤터기 쓰는 일 따위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재운을 욕하는 글 중에는 진실인 것도 있고 거짓인 것도 있었으니까.
“…….”
내 반응을 본 휘영은 아차 싶었는지 ‘아’ 하고 다급한 소리를 내더니 손을 마구 저으며 미안하다고, 대답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 손을 저어 괜찮다는 표현을 한 후,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이번 일 때문에 마음고생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지금은 좀 어떠십니까.”
그리고 그녀의 긴장을 풀기 위해 조곤조곤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연스레 화제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내 입장에서 스물 초반인 그녀는 한참 자라나는 새싹처럼 보였기에, 저절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몸이 워낙 위협적인 생김새를 가지고 있어 나보다 한참 작은 존재에게는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는 습관이 배어 있었던 탓도 있었다.
내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힘들었어요.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한재운 씨가 제게 한 짓도, 그 후에 제게 일어났던 일까지 모두 다요.”
“그 후에 일어난 일이요?”
“저는 이번 일에 대해 제대로 매듭을 짓고 싶었어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마땅한 벌을 받는 것처럼요. …그런데 소속사 대표님도, 동료 연예인들도 다 저를 말리더라고요. 그냥 나만 참고 넘어가면 되는데 왜 굳이 그 멍청한 인간 하나 벌주자고 지금까지 열심히 쌓아 온 것들을 모두 무너트리냐고, 조금만 참자고요.”
저 말을 들으니 그녀에게 어떤 일들이 생겼을지 대략적으로 짐작이 갔다.
[아 그래서 어딜 만졌냐고 ㅋㅋㅋ 잘 모르겠으니까 CCTV 영상 공개 ㄱㄱ] [CCTV 영상 있는 사람? 공유 좀] [이미지 망가진 거 너무 아깝다 성폭행 당한 것도 아닌데 그냥 팔다리 만진 거 정도면 가만히 있지 ㅜㅜ] [휘영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되게 사납고 신경질적인 느낌이네… 응원은 하는데 적응이 좀 안 된당] [청순으로 팔아먹던 배우라 이미지 나락가는 건 어쩔 수 없음 ㅇㅇ]세상은 넓고 등신 새끼들은 아주 많다. 피해자를 응원하기는커녕 흠 하나 생겼다고 만만하게 보고, 급기야는 성희롱까지 일삼거나 그녀를 불편함과 피로감을 야기하는 존재로 여기며 공격하는 악플러들을 나조차도 꽤 자주 발견했는데, 그녀라고 해서 그걸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출연 논의 중이던 영화에서도 다 잘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들 이번 일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휘영 씨가 정말 딱일 것 같다고 하더니 갑자기 ‘이 캐릭터와는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어 버리더라고요.”
휘영은 원래 깨끗하고 흰 피부와 부드러운 이목구비, 긴 생머리로 청순한 ‘첫사랑 이미지’를 셀링 포인트로 삼는 배우였다. 대중들은 청순함과 순결 사이의 말도 안 되는 연관성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 일은 그녀의 이미지에 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끼쳐 버렸다.
‘CCTV 영상이 유출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까지 다들 돌아서는 건가.’
그녀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건 이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
‘그래서 나도 조인찬의 원본 영상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거고.’
휘영은 그나마 운 좋게 주변에 있었던 스태프가 증언을 해 주었기 때문에 CCTV 영상을 공개하지 않고도 본인의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번 일을 수면 위로 올리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속으로는 정말 서운하지만, 그분들의 입장도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사람의 인생에는 항상 번듯하고 근사한 일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지만, 저는 대중에게 언제나 그런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여야만 하는 직업을 선택했고, 그분들은 회사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상품 가치를 떨어트리는 행동을 막고 싶었던 거겠죠. 저도 그랬는걸요, 내가 쌓아 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게 너무 절망적이라 모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질 않았어요.”
한차례 그렇게 말을 쏟아 낸 그녀는 숨을 흡 들이마시더니 지금까지 내내 테이블 쪽을 향해 고정해 두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한재운 씨인데 왜 제 이미지가 실추되는 거죠? 왜, 제가 겁을 먹고 숨어들어야 하는 거죠?”
그 눈동자에는 현실의 절망과 고난으로는 절대 가릴 수 없을 만큼 선명한 빛이 서려 있어, 나는 잠시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쏟아 내면 쏟아 낼수록 점점 더 단단해지는 듯했다.
“저는 정의로운 사회를 원해요. 앞으로 제 후배들이 똑같은 일을 당했을 때, 침묵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꿈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사회 말이에요.”
“…….”
“그런 사회를 만들려면 누군가는 말을 하기 시작해야 해요. 그리고 숨어드는 일 없이, 승리해야 하고요. 제가 바라는 건 오직 두 개뿐이에요. 그 사람이 이 업계에서 완전히 퇴출되어서 돌아오지 않는 것. 그리고 저 자신이 끝까지 배우로서 살아남아 선례가 되는 것.”
그리고 단단하게 일어선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로 나를 마주 본 채, 이어 말했다.
“사과 편지는 계속해서 오고 있어요. 그런데 변호사의 첨삭을 받았는지 평소 글솜씨나 말솜씨와는 아주 다르더라고요. 책잡을 내용도 없었고요. 아마 제가 용서하지 않아도 감형은 이루어지겠죠. 제가 승범 씨를 오늘 만나고 싶다고 했던 이유는 사과를 하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이것 때문도 있었어요.”
“말씀하시죠.”
“…한재운 씨는 정말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나요? 스스로 이 업계에서 자취를 감출 생각이 있던가요?”
나는 그 질문에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휘영은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럴 줄 알고 있었어요. 제가 화를 내니까 술김에 말하더군요. 어차피 문제 삼아 봤자 당신만 손해라고. 그래도 그냥…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어요’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
“…….”
그 뒤로는 차가운 정적이 이어졌다.
실망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소리가 나지 않도록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천천히 밀어 휘영의 앞에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게 뭐냐는 듯 의문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올려봤다. 나는 그를 흘끗 바라보곤 다시 커피를 조금 마셔 입안을 적신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재운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사무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노트북을 꺼내 그 안에 들어 있는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이걸 왜 제게 주는 거죠? 승범 씨한테는 아무것도 득 될 게 없잖아요.”
녹음본은 모조리 듣고 난 후에 그녀가 가장 먼저 한 말은 그것이었다.
– [다른 집 같았으면 그냥 고아원에 버렸어. 그런데 나는 끝까지 너를 책임지려고 했잖아. 남의 자식 키우는 거 아니라는 소리 수백 수천 번 들으면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그런데 이런 것 하나도 못 해 줘?]
그럴 만도 한 게 그 안에는 한재운 가족들의 나를 향한 공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편집된 증거 자료는 힘을 잃어버리기에 나는 그 내용을 잘라 내지 않은 채 그녀에게 원본 파일을 건넸다.
만약 이게 세상에 공개되면 또다시 이미지가 소모되는 것은 거의 예정된 미래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방금 말했듯, 이 업계는 피해자에게 너무나도 가혹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번 일만큼은 망설일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흔들림없이 응시하며 나직하게 대답했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