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
결과적으로 이화영은 어찌저찌 운전을 하긴 했다.
몸을 움직일 때 팔꿈치나 무릎이 종종 부딪히긴 했으나 PPL로 제공된 차량이 이화영이 평소 운전했던 것보다 좀 더 작았던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중에 갑자기 사이드미러가 접히는 일이 생겨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제대로 도착은 했으니 잘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는가.
…내가 옆에 앉아 이것저것 챙겨 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 아가, 아니 뭐라는 거야. 화영아, 사이드미러!
당황한 내가 말실수를 하자마자 이화영의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마른 하늘에 와이퍼가 벅벅 움직인 걸 생각해 보면 오히려 방해가 된 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은 편했다.
‘사이드미러 때문에 순간 당황해서 실수했다……. 편집해 달라고 해야지.’
참고로 도유다는 차에 타는 내내 땀을 뻘뻘 흘려 댔다. 후반부에 가서는 엉덩이가 뜨겁다며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지만, 이화영은 끝까지 ‘엉뜨’를 꺼 주지 않았다.
– 헥헥, 그래도 형이 이제 저한테 장난도 걸 만큼 친근함을 느낀다는 거잖아요. 그걸 실감할 수 있다면 제 엉덩이가 벗겨져도 저는 괜찮아요. 니콜라스 화영 리라는 남자에게 장난을 받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니… 정말 야생동물 길들이는 데도 이 정도는 안 필요할 거예요.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형의 사랑 달게 받을게요.
– …….
– 장난 맞죠, 형?
– …….
– 형?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도유다의 얼굴은 점점 흙빛이 되었지만, 나는 그저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봤다. 이화영을 어렸을 때부터 지켜본 입장에서는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저런 행동을 취한 순간부터 멤버들을 꽤 편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놈도 이제 멤버들한테 나름 마음을 열고 있긴 한 건가.’
그렇게 풀 빌라에 도착한 뒤로는 약 한 시간가량 우강원 차량을 기다려야 했다.
멤버들이 그렇게 신뢰하던 우강원은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 아주 천천히 운전을 했고, 그 와중에 길을 잘못 들어 조금 멀리 돌아왔다고 했다.
‘PD가 그사이에 폭삭 늙었군.’
나는 우강원 차량을 따라오던 제작진 차량에서 추적추적 기어 나오는 PD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보아하니 자꾸만 산으로 가는 우강원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느라 꽤 많은 정신력을 소모한 듯했다.
‘그러게 왜 운전 경력도 얼마 안 되는 놈들한테 장시간 운전을 시켜. PPL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곧 스스로 ‘…아, 그래. 중요하지.’라는 답변을 내놓고, 새하얗게 털린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우강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네비 안 켰어?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 되잖아.”
“…켰지. 켰는데 젠이 노래 부르고 춤 추다가 엎어 버려서…….”
“아.”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대략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초보 운전이면서 저 산만한 놈을 조수석에 태우고 갈 생각을 하다니, 우강원도 참 용감무쌍한 놈이었다.
“나의 방광!”
우강원의 노고를 알기는 하는 건지 젠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놀라운 어휘력을 뽐내며 탓탓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차에서 빠져나온 백기량은 비틀비틀 거실로 걸어오더니 소파에 털썩 쓰러졌다.
“왜 그래.”
상태가 제대로 꽤 안 좋아 보여 녀석의 이마에 손바닥을 대자 이단비는 그냥 오는 내내 젠을 상대해 줘서 지친 거라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설명해 주곤, 중얼거렸다.
“차라리 젠 형이랑 유다 형을 같은 차에 태웠으면 좋았을걸…….”
눈에는 눈, 바보에는 바보가 필요하거늘 괜히 바보 둘을 분리해서 대참사가 일어난 듯했다.
무슨 저렇게 어린놈이 천방지축 자식 때문에 기가 다 빨린 아버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냥 구워 버리지 그랬어. 우리는 그렇게 했는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흐물흐물 녹은 채 선풍기 앞에 흉하게 엉덩이를 내놓고 있는 도유다를 향해 손짓을 하자 이단비는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네요. 숙소로 돌아갈 때 한번 시도해 볼게요. 기대된다.”
아, 들린다.
두 바보들의 인권이 쭉쭉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묘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나는 애써 정신을 돌리기 위해 풀 빌라 내부를 쭉 둘러봤다.
‘나쁘지 않네.’
수위가 낮은 수영장이 있고, 머무는 인원의 수보다 방의 수가 더 많은 넓은 숙소였다.
‘처음 얘기 나올 때는 바다를 가자고 하더니 결국에는 바뀌었나 보군.’
나는 제작진들이 어떤 장소를 선택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우강원이 PD를 따로 찾아가 ‘바다는 안 된다.’고 단단히 못을 박아 둔 모양이었다. 분명 ‘왜 바다는 안 되냐’는 질문이 돌아왔을 텐데 거기에는 도대체 뭐라고 변명을 했을지 조금 궁금하긴 했다.
‘거짓말도 별로 못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며 흘끗 우강원을 보자 녀석은 어느샌가 회복을 마치고, 주섬주섬 아령을 들고 와 운동을 하고 있었다. 활동기에 예정된 워터 페스티벌 때문에 몸을 만들어 두려는 모양이었다.
‘누가 장시간 운전하고 저렇게 바로 운동을 하냐.’
그러고 보니 프리즘도 해당 페스티벌의 초청을 받아 오랜만에 나올 예정이라고 하던데, 다들 열심히 운동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매번 이즈음만 되면 곡소리가 나왔던가.’
– 아, 진짜 죽겠다. 우리도 느린 편은 아닌데 유태 형 따라가려니까 벅차다.
– 저 형 맨날 체육관 가면 관장님이 인재 놓쳤다고 한숨 쉬잖아. 근수저 진짜 최악이다.
프리즘은 워낙 ‘피지컬 좋은 그룹’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만큼 기대도 높아 매번 혹독한 트레이닝 메뉴를 소화해야만 했다. 그에 비해 판테이온은 영하고 컨셉추얼한 느낌이 더 강했기 때문에 막 무리를 해서 몸을 만들 필요까지는 없었다.
‘나는 얄짤 없이 이것저것 껴입고 올라가게 되겠지. 최대한 안 말라 보이도록…….’
하지만 지금까지 워터 페스티벌에 참가할 때마다 기대감 어린 시선을 받았는데 이제는 안쓰럽게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게 상당히 어색하긴 했다. 다들 이 악물고 웃통 까는 곳에 혼자 팔랑팔랑 돌아다니는 나뭇가지가 설마 내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아니, 한승범도 근육 보여. …살이 너무 없어서 최소한의 근육이 겉으로 드러나는 거긴 하지만.’
그렇게 현실을 부정하던 나는 우강원이 휴대용으로 들고 온, 원래 몸으로는 번쩍번쩍 들었던 무게의 아령을 살며시 들어 보았다. 그러자 갓 태어난 치와와처럼 팔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조졌군.’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근육 이전에 기본적인 살도 없는데 도대체 무엇이 되겠는가.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라.’
엄청난 현타와 함께 우강원과 카메라 감독의 안쓰러운 시선이 한승범의 앙상한 팔에 꽂혔다. 나는 끝까지 그것을 외면한 채 조용히 아령을 내려놓고 냉장고에 있던 바나나를 꺼내 기계적으로 우걱우걱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금 나 자신의 모습의 조금 흉했음을 인정하며 다짐했다.
‘운동은 카메라 없을 때 하자.’
* * *
진이 다 빠져 버린 멤버들이 잠깐 휴식을 취하는 동안, 멤버들의 기를 빨아먹은 장본인인 두 바보들은 수영장에서 맘껏 물놀이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분명 수영장의 수위는 그렇게 높지 않을 터인데 좀처럼 마음이 놓이질 않았던 나는 줄곧 녀석들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한 우강원이 본인이 보고 있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를 거절했다. 결국에는 우강원까지도 내가 지켜봐야 하는 대상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마냥 감시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수영장 근처의 테이블에 노트북을 가져와 일을 하거나 춤이든 노래든 연습을 하려고 했지만, PD에게 일 좀 그만 하라며 노트북을 압수당했다.
– 안 되겠어. 승범 씨! 그거 압수야. 오늘은 쉬어야지.
그에 어쩔 수 없이 챙겨 온 책이라도 읽으려고 했건만, 제발 좀 가서 놀라며 책까지도 빼앗겼다. 리얼한 게 가장 좋다며 도유다와 나기 젠, 이단비가 잔뜩 흥분한 채 게임을 할 때도 안 건드리더니 도대체 문제였을까.
‘어렵다…….’
나는 결국 플라밍고 모양의 대형 튜브 위에 멍하니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도대체 뭘 해야 여가 시간을 잘 보내는 건지 잘 감이 오질 않았다.
…마냥 쉬고 있으면 조금 불안한 것 같기도 했고.
‘왜 프리즘 놈들 채팅방이 이렇게 조용하지? 이쯤 되면 뭐 먹었냐고 연락이 와야 하는데.’
그렇게 자유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야외 테이블에 또다시 옹기종기 모였다. 뭐, 초록색 병이 테이블에 한가득 있었기 때문에 저녁 식사보다는 그냥 술상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렸겠지만.
– 또 라면 먹게?
– 네, 가볍게 한 봉지만 끓여 먹으려고요. 원래 물놀이 뒤에 라면은 국룰이잖아요.
– 한 봉지 같은 소리 하네. 그거 5봉 한 묶음이잖아.
– 그래요. 5봉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요?
– …많이 먹어라.
보통 MT를 오면 술 게임을 하며 감당 못 할 정도로 취하는 게 당연했지만, 우리 그룹의 멤버진을 보아라. 그렇게 놀게 생겼는가.
나는 애초에 술자리를 즐기지 않았고, 우강원은 근 손실을 막기 위해 금주를 하고 있었으며, 백기량은 숙취가 심해 술을 무서워했다. 그나마 음주를 즐기는 편인 이화영은 선비처럼 조용히 술을 마시는 편이었고 말이다.
노는 것도 해 본 놈들이 잘한다고, 한평생 성실하게 얌전히 살던 놈들 데려와서 ‘지금부터 재미있게 놀아 봐라’ 하면 당연히 안 되는 게 뻔했다.
– 미스터 리가아 조하하는 랜덤 게임! 무스으은 게임! 게임 스타트!
– …조용히 해.
– 조용히 해 없습니다. 나기 젠만 당할 수 없다. 당신도 하는 것입니다. 마시면서 배우느으은 랜덤 게임!
– 정신 차려.
어리석은 나기 젠이 어디서 배워 온 건지 모르겠는, 지나치게 한국 사람 같은 인트로를 뱉으며 폭주했으나, 이화영의 경멸 섞인 차가운 반응에 곧바로 잠잠해졌다.
– 키힉, 키히힉, 젠 다섯.
– 젠젠젠젠젠. 유다 셋.
– 유다유다유다. 젠 넷.
그때부터였던가, 유다와 젠 외에는 아무도 없는 비참한 술게임이 시작된 것은.
‘이러다가 분량도 제대로 안 나오겠네.’
‘이렇게까지 노잼인 MT 처음 본다.’는 반응 외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나마 팬들은 ‘아, 우리 애들 놀음하다가 인생 말아먹는 일은 없겠구나.’, ‘건전하게 자란 아이들이구나.’ 하고 안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예고편으로 쓸 수 있도록 한두 잔은 마셔야겠지, 하는 생각에 바보들에게 맞춰 홀짝홀짝 술을 마시던 내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이것이었다.
‘…한승범 술 마시면 안 되겠는데?’
도대체 몇 잔이나 마셨다고 이렇게 얼굴이 화끈거리고 정신이 몽롱해지냔 말이다. 나는 원래 마시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마시는 사람이었던지라 이렇게 금방 취기가 오를 수도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런 몸을 두고 알콜 쓰레기라고 하던가.’
“저는 판테이온 활동 끝나면 일단 부모님이랑 해외여행…….”
“아, 나는 형이랑 같이 작업해 보기로…….”
멤버들이 뭐라뭐라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웅웅 들렸다.
‘카메라 앞에서 계약 이후 이야기는 아직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그런 걱정에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뜨자 제작진들이 서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게 보였다. 멤버들이 너무 취한 것을 확인하고, 철수한 것이었다. 사람이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을 놓고 있었다니, 이렇게 거하게 취한 건 또 오랜만이었다.
“으음…….”
몸을 웅크리고 작게 신음을 흘리자 초록색 병을 벌서 세 병이나 비웠는데도 상대적으로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던 도유다가 내 등을 두드렸다.
“혀엉, 제 말 들었어요?”
“…뭐라고?”
“형은 판테이온 활동 끝나고 뭐 하고 싶냐고요. 이제 형이 말할 차례잖아요.”
나는 그 말에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초첨이 잘 맞지 않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봤다. 그리고 작게 빛나는 별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유성이 보고 싶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