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330)
330화
“승범아!”
“형!”
아래로 쏟아진 몸이 쿵, 하고 무대 장비에 부딪친 후,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몽롱한 정신으로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자 방금까지만 해도 내가 서 있었던 무대가 보였다. 아무래도 나는 저기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등판이 조금 후끈거리고, 손목이 미세하게 삔 것처럼 아릿했다.
만약 리프트처럼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면 큰 부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그냥 음악 방송용 무대에 불과했기 때문에 위에서 막 뛰어내려도 팔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높지는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짧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정도라고 해야 할까.
“꺄아아아악!”
“어떡해!”
순간 시야가 새카맣게 물들어 당황했는데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곧바로 들리는 것을 보니 정신을 잃은 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내 착각이었을 수도 있고.
“빨리 다음 무대 진행해야 하니까 자리 비워야 해요! 이동하겠습니다! 스태프분들 안내 부탁드립니다!”
“승범이 다쳤는지 안 다쳤는지만 팬들이 제대로 확인하게 해 달라고요! 그게 먼저 아니야? 불안하다고! 무섭다고! 엉엉…….”
이미 분위기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된 것 같았다.
원래대로였다면 기분 좋은 응원법과 환호 소리가 가득 차야 할 공간이 시장판처럼 어수선해졌다. 팬들 중 누군가는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고, 누군가는 스태프에게 거칠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멤버…….”
“…해 주세요! 빨리!”
“승범아…….”
고막이 너무 울려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저 날카롭게 찢어지기만 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빠르게 뛰는 심장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니, 괜찮아지기는커녕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었다.
‘서유성…….’
– 형, 천천히 들이마셨다가, 뱉는 거야.
– 여기 나 외엔 아무도 없어. 괜찮아.
이럴 때마다 익히 들었고, 도움이 되었던 서유성의 목소리를 머릿속으로 천천히 곱씹던 나는 멍하니 속으로 중얼거렸다.
‘…방송은?’
[네, 잠시 사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나 씨, 다음에 만나 볼 분들은 어떤 분들이죠?] [아, 대원 씨, 어디서 꽃향기가 솔솔 나는 것 같지 않나요? 음원 공개를 하자마자 SNS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던…….]MC들이 바로 다음 무대를 진행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무대에서 떨어지자마자 제작진 측에서 화면을 전환하고 재빠르게 사태를 수습한 것 같았다. 생방송 편성이었기 때문에 정말 당연하게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송은 진행되고 있었다.
– [서유태 빠져서 또 오늘 6명이서 무대 했다던데]
– [왜 서유태는 항상 그렇게 일이 생겨서 무대를 못 올라간다는 거야? 아니 아버지가 자꾸 사고를 치면 제대로 해결을 하고 그룹 활동을 하라니까? 리더면 좀 책임감 있게 멤버들을 도와야 하는데 왜 오히려 민폐를 끼치냐고]
– [┗ 괜히 팬덤 갈라치기 하기 싫어서 다물고 있었는데 진짜 못참겠다 그 아버지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냐고… 열심히 설득한다고 ‘네, 아드님 예쁘게 잘 있을게용♥’ 하는 놈이었으면 애초에 이딴 짓 안 벌였지 차라리 그냥 죽이라고 해라? 멤버가 힘든 시간 보내고 있는데 그렇게 이기적으로 내새끼만 챙길 거면 아예 유태 곡도 쓰지마 좋은 건 다 빼다가 쓰면서 뭔 ㅋㅋㅋㅋ 세라에 까빠 악개 판치는 거 진짜 지친다…] [┗ ┗ 그냥 팬덤이 워낙 크니까 별별 사람들 다 모인 것 같음…… ㅇㅇ 다른 팬덤도 다 이래요]
‘생방송인데…….’
어떻게든 방송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멤버들의 중요한 무대를 이렇게 망쳐 버린 것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것마저도 사치였기에, 나는 서둘러 바닥에 추적추적 손을 짚고 팔에 힘을 주었다.
‘…빨리 일어나야 해.’
바닥에 쓰러진 나를 보며 팬들은 이제 완전히 패닉에 빠진 것 같다. 나 때문에 다들 놀란 것 같은데 계속 나자빠져 있어 봤자 그들의 불안감을 키우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서둘러 이곳에서 나가야만 했다.
‘제대로 방송을 진행하려면 빨리 무대를 비워 줘야 할 텐데.’
더 이상 방송에 민폐를 끼쳐서도 안 됐고 말이다.
저린 팔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질 않았다.
아까 숨을 잘 못 쉬어서 이러는 건가?
팔 한쪽으로 겨우 지탱하여 일으켜 세운 상반신이 몇 번인가 고꾸라지는 것을 반복하자 그저 난잡하게 웅성거리기만 하던 소리가 나를 향한 불안감으로 한데 모여 어어어, 하고 알아들 수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 [진짜 좋아하는데 덕질하면서도 계속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으니까 점점 흥미가 식는 듯……]
– [나는 행복하려고 덕질하는 거라 미안하지만 힘들어도 힘든 모습 안 보였으면 좋겠다 요즘 돌판에 순덕 있어봤자 얼마나 있다고… 그냥 피곤하기만 함]
– [이게 맞냐? 서유태 아버지가 또 사고칠까 봐 겁나서 온 팬덤이 다 눈치보고 벌벌 떠는 게? 서유태가 제대로 처리했으면 이런 일도 안 생겼을 거 아냐]
나는 그에 어깨를 퍼뜩 떨며 어영부영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정말 생각보다 몸이 괜찮아서 움직일 수 있었던 건지, 아니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지나치게 분비되어 통증이 잘 안 느껴져서 움직일 수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빨리 일어났다.
왜 그렇게 놀랐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는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소스라치며 일어나 황급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우연히 건너편에 놓인 시계가 보였다.
내 안에서는 벌써 무대에서 떨어지고 30분 정도의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데, 현실은 또 그렇지 않았는지, 무대에서 떨어진 이후로 한 바퀴를 채 돌지도 못한 시침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마 무대에서 떨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난 것 같았다.
“승범 씨!”
또,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이끌려 무대 쪽을 확인하니 잔뜩 놀란 스태프들이 내게 한꺼번에 우르르 내게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한순간, 그 광경이 거대한 파도가 내게 정면으로 들이닥치는 것처럼 보였다.
고작 무대 위에서 넘어진 것뿐인데 나 때문에 지나치게 일이 커지고 있었다.
이만하면 됐다.
나는 더 이상 일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제발,’
조금만 조용해지면 알아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냥 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해 주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주제에 혀끝에 걸린 말을 뱉어 버리면 정말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거라는 자각은 있어 내내 벌어진 채 호흡을 도맡고 있던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끈적끈쩍한 타액이 목구멍과 혀뿌리에 얽혀 숨을 막고,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다.
“안 다쳤어요?”
“근처에 병원 있으니까 매니저랑…….”
‘괜찮습니다. 오지 않아도 돼요.’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회장 안이 너무 시끄러워 들리지 않았는지, 아니면 내 말을 그냥 듣고 싶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했다.
“괜찮습니다. …나 괜찮아요. 오지 마세요.”
하지만 그들은 이번에도 멈춰 주지 않았다.
난 결국 그들이 다가온 거리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로 좁은 거리를 또다시 물러났다.
그만큼 적게 멀어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거리가 딱 그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에 눈을 질끈 감은 찰나, 뒤통수 바로 뒤에 갑자기 큰 소리가 내리꽂혔다.
“승범아!”
“한승범!”
“승범아, 괜찮아?”
팬들의 목소리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요동치는 눈동자로 그들을 돌아봤다.
그리고 고막에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껴 한쪽 귀를 막고 그 자리에 잠시 휘청였다.
– [제발 유태가 이상한 글 안 봤으면 좋겠다 쟤네 팬 아니야… 유태가 자기 좋아해 주는 사람들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팬들 말 얼마나 귀담아들으려 하는 사람인지 아니까 더 걱정돼]
– [쟤네랑 같은 취급하지 말아 줘]
아, 그랬지. 무대에서 멀어질수록 팬들에게 가까워지는 건 당연했다.
그런 기본적인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게 참 우스웠다.
팬들은 내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그동안의 걱정을 모두 쏟아 내기 시작했다.
“승범아, 아까 무대 장비에 허리도 부딪혔잖아. 모서리에 찍었던데 안 다쳤어?”
“머리는? 떨어지면서 머리는 안 부딪쳤어?”
“얼굴은 안 다쳐서 다행이다.”
“빨리 병원 가! 빨리!”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한꺼번에 많은 질문과 외침이 쏟아졌다. 그에 숨이 턱 막혀 감시 고개를 돌린 사이, 나를 향해 다가오던 스태프들이 정말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팬들과 스태프 사이에 갇히게 될 것이다.
그 이유 모를 공포에 잠식된 나는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팬들을 향해 머리가 바닥에 닿을 만큼 허리를 숙였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응원하러 와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은 내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이기 때문일 터였다. 그렇다면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최대한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빨리 병원에 가라는 팬들의 말을 두 번, 세 번, 네 번, 곱씹다가 다시 스태프들을 향해 말했다.
“저 잠깐만, 병원 좀 다녀오겠습니다. 폐 끼쳐서 정말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덤덤한 목소리로 뱉어진 그 말에 장내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진 게 느껴졌다. 팬들이나 스태프들이 내 말에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대충 긍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지는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조명이 비치지 않는 무대 뒤편으로 빠져나갔던 것 같다.
“하아, 하… 헉.”
사람이 많은 곳까지는 완전히 멀쩡한 사람처럼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조금 구석진 곳에 이르자마자 나는 벽을 손으로 짚어 기대며 아예 뛰기 시작했다. 한 짓도 없는데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것 같았다.
‘매니저, 매니저는 어디 있지? 빨리 회사에 연락을…….’
혼란스러웠다.
내가 나를 응원해 주는 팬들을 보며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고, 죄스러웠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닌 것 같기도 했고.
‘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매니저가 올지도 몰라.’
말도 안 되는 변명과 함께 나는 꾸역꾸역 주차장을 향해 다리를 움직였다.
어쩌면 나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
막상 주차장에 도착하고 보니 정말 아무도 없었다. 판테이온의 차량은 당연히 주차해 뒀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정작 운전할 사람이 여기 없는데 여기에 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전화…….’
그것을 뒤늦게 자각하고 서둘러 주머니를 손으로 짚어 봤지만. 무대를 하러 들어간 사람의 주머니에 핸드폰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이 덩그러니 주차장에 놓인 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드디어 직면하게 되었다. 그대로 힘이 빠진 나는 주차된 차량의 사이에 좁은 공간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느껴지지 않았던 통증이 갑자기 물밀듯 밀려와 서 있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사람이 없는 주차장마저도 한계까지 예민해진 내게는 모두 자극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타이어의 마찰음, 주차장 특유의 페인트와 먼지 냄새, 알림들의 불빛까지 전부 내 신경을 갉아먹고 있었다.
‘XX, 진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추워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등신같이 겁을 먹어서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떻게든 떨림을 멈춰 보고자 벤의 타이어 휠을 동아줄처럼 움켜쥐었다. 그냥 주변에 쥘 만한 게 그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제발, 그만 좀 떨라고!’
발작에 가까울 정도로 몸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한 순간,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내 팔을 콱 움켜쥐었다.
“놓아!”
갑작스러운 자극에 기겁을 한 나는 필사적으로 그 손을 뿌리치려다가 더 강한 힘으로 팔을 잡아 내리고, 이윽고 몸 전체를 강하게 압박하는 팔에 밭은 숨을 내뱉었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호흡의 속도가 느려지자 내내 침묵한 채 가만히 나를 붙들고 있던 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해.”
…누구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