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334)
334화
아이는 지금 이 공간이 퍽 마음에 들었다.
처음 와 보는 곳이라 아주 낯설었지만, 운동장처럼 넓고 깨끗한 집에, 아직 포장도 까지 않은 장난감이 수북하게 놓여 있었다. 학교에 있던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온 ‘삼촌’으로부터 그게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날아오를 것처럼 기뻐 방방 뛰며 박수를 치기까지 했다.
그러자 삼촌은 아주 난처한 기색으로 몸을 연신 굽히며 소파에 앉아 있던 붉은 눈동자의 남자를 돌아봤다. ‘애가 너무 어려서.’, ‘죄송합니다, 대표님.’이라는 말을 주워듣긴 했지만, 아이는 그것이 자신을 두고 하는 이야기인 줄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외모로 나이를 파악하는 게 어려운 나이였던지라 아이는 붉은 눈동자를 가진 남자를 ‘아저씨’라 불렀다. 왜냐하면 아이의 세계에서 그런 까만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주 큰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운전을 했던 남자처럼 ‘삼촌’이라고 불러도 됐겠지만, 글쎄… 그건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사실 아주 밝은 성격을 가졌던 아이도 그 ‘아저씨’를 보며 조금 무섭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남자는 말수가 아주 적어 아이가 종알종알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해 주는 일이 좀처럼 없었고, 눈빛이 매우 차가웠으니까.
하지만 삼촌으로부터 이 장난감은 모두 아저씨가 사 준 것이라는 말을 들은 후로 그 경계심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이제 조금 더 친해졌으니 같이 놀면 좋을 텐데, 아저씨는 금방 집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에 조금 시무룩한 얼굴을 하자 삼촌은 아저씨가 매우 바쁜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며 달래 주었다.
항상 바쁘다는 말로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 덕에 혼자 시간을 때우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는 ‘괜찮아! 나 기다리는 거 잘해!’라고 활기차게 대답한 후, 거실의 TV 앞에 앉아 좋아하는 히어로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다.
– [나는 정의의 사도, 레드! 정의의 이름으로 죄 없는 사람들의 삶을 짓밟은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 힘내! 힘내라, 레드!
필사적으로 악당과 싸우는 히어로를 보며 발가락을 달싹거리던 중, 리모컨을 잘못 건드려 채널이 돌아가 버렸다. 이상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잘생긴 형들이 알록달록한 불빛 아래에 서 있었다.
– 어어, 안 되는데에!
히어로가 악당에게 반격을 당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화면이 돌아간 것을 본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TV 앞으로 뛰어갔다. 그러자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리며 가장 가운데에 있던 형이 아래로 훅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그에 깜짝 놀라 손으로 제 눈을 가렸다. 그리고 그사이, 옆에 있던 삼촌이 갑자기 전화를 받으며 나가 버렸다.
– 티비에 무서운 거 나오니까 다른 거 해야지. 다른 거 해야지…….
아이는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다급히 TV의 전원을 꺼 버리고 방금 자신이 본 것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기 위해 장난감이 쌓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까 못다 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피규어 세트를 뜯었다.
워낙 고가의 장난감이었던지라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있었지만, 아이의 관심사는 오직 히어로뿐이었다. 한참 정신없이 피규어를 가지고 놀다가, 구석에 내던져 놓은 악당을 우지끈 밟아도 아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 소리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여느 때와 같이 얼굴을 화색으로 물들이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 아저씨!
그러자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아까 집을 나섰던 아저씨가 정말 돌아와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인형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형’과 함께 말이다.
어쩐지 아까 TV 속에서 본 남자와 닮은 듯한 형이었다. TV에 있는 형보다 좀 더 잘생겼고, 눈 밑이 검게 내려앉았으며, 더 말라 보였다는 게 그나마 다른 부분이라고 해야 할까.
킁, 몰래 냄새를 맡아 보니 자신이 싫어하는 약 냄새가 났다.
병원에 다녀온 걸지도 모르겠다.
– 뭐겠어, 유태야. 강혁우 아들이지.
대화 중에 ‘강혁우’라는 이름이 계속 언급되는 걸 보니 아버지의 친구인 것 같았다. 그에 방긋 웃으며 ‘아빠의 친구냐’고 묻자 형은 주춤, 한 발 뒤로 물러났다.
– 어쩌려고 데리고 왔어. 나보고 어떡하라고…….
아, 낯빛이 새하얗게 물들고 나니 더욱 TV 속의 그 사람과 비슷해 보였다.
역시 똑같은 사람인 건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있던 사이,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삼촌이랑 놀까? 혼자 있느라 심심했지?
삼촌은 배도 볼록 나오고, 수염도 나고, 목소리도 걸걸해야 삼촌인데, 왜 형아는 자기를 삼촌이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놀아 준다는 말이 기뻐 답싹 그의 품에 안기자 포옥, 하고 부드럽게 마주 안아 주는 팔이 느껴졌다.
원래 형들은 버벅거리면서 불편하게 안아 주는데, ‘유태’라는 형은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 그래서 삼촌인 건가? 그런 의문을 가졌지만, 아이는 곧바로 번쩍 들린 채 장난감이 놓인 방으로 향하는 것을 보곤 금방 생각을 비우고 기대감을 부풀렸다.
방에 아이를 내려놓고 내내 몸에 두르고 있었던 레드 망토를 눈에 담은 ‘형아’는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 보통 애들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그에 아이가 고개를 마구 끄덕이고는 ‘왜?’라고 물으니 작은 목소리로, ‘…그냥, 삼촌 동생은 이런 걸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서. 그냥 책 읽고 나한테 안겨 있는 게 다였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말하는 형의 얼굴은 어쩐지 아주 외로워 보여서, 아이는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고개를 푹 숙이곤 주둥이를 쭉 내밀었다. 그냥, 형 얼굴을 보면 어린 동생들처럼 와앙 울어 버릴 것 같아 발끝으로 콩콩 바닥을 찍으며 신경을 돌리려 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발견한 ‘형아’는 ‘아니야, 내가 잘못 말했네. 잊어버려.’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장난감 상자를 흔들며 아이의 흥미를 끌었다.
– 나는 정의의 사도, 레드! 정의의 이름으로 죄 없는 사람들의 삶을 짓밟은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안아 주는 게 너무나도 능숙했던 그는 히어로 놀이에는 조금 서투른 듯했지만, 금방 적응하여 악당 역할을 곧잘 소화하곤 했다. 정말 애니메이션 속의 악당처럼 바닥에 쓰러지는 걸 본 아이가 쪼르르 다가와 울먹거리며 자신을 부르면 씨익 웃으며 아이를 와락 안아 주었던가.
그러면 아이는 뒤늦게 꺄르륵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목에 팔을 담아 매달렸다.
그리고 아이가 그렇게 안겨 올 때마다 그는 몇 번이고 아이를 꽉 안아 주었다.
“나, 형 정말 정말 좋아!”
아이는 그 따뜻한 품 안에 가득 들어찰 때마다 깊은 행복감을 느꼈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항상 외로웠다.
아이의 아버지는 좀처럼 집에 들어오질 않았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아이가 가족 없이 덩그러니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24시간 밀착하여 돌봐 주는 보모가 있긴 했지만, 그 나이대의 아이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사랑을 어찌 모두 채울 수 있겠는가. 그런 아이가 서유태처럼 온전히 사랑을 안겨 주는 사람을 만나고,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서유태는 아이가 지금까지 만나 본 그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를 가득 만끽하며 헤헤 미소 짓고 있을 즈음, 목에 두른 아이의 손에 카라가 걸려 옷감 아래 피부가 드러났다.
흰 피부가 온통 보라색으로 죽어 있었다.
아이는 눈이 아플 정도로 선명한 색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걱정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형아, 몸이 보라색이야. 여기 왜 그래?”
서유태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머뭇거렸다.
그럴듯한 핑계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충 ‘넘어졌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벌리려는 찰나, 핸드폰을 든 최적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보자마자 잠깐 움직임을 멈춘 서유태는 아이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금 몸을 낮춰 아이의 손을 잡아 현관문 쪽으로 이끌었다.
“가자.”
“어디 가?”
“돌아가야지. 너희 아버지한테 연락했어.”
이만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한 아이는 조금 아쉬운 듯 입을 삐쭉 내밀었지만, ‘아버지가 오고 있다’는 사실 또한 기뻤기에 떼도 쓰지 않고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그래도 조금 아쉬웠는지 쥐고 손을 잡아당겨 서유태가 몸을 숙이게 만든 후, 그의 귀에 속닥거렸다.
“형아, 저거 가져가도 돼?”
오늘 내내 가지고 놀았던 레드 피규어와 망토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에 서유태는 네가 원하는 건 모두 가져가도 된다고 답했지만, 아이는 고개를 젓고 자기가 말한 두 개의 장난감만을 챙겼다.
아빠를 만나면 자랑해야지. 오늘 정말 정말 재미있었다고.
그렇게 다짐하며 말이다.
* * *
[채율이 아버님, 시간 맞춰서 학교에 왔는데…….]“…….”
[채율이가 안 보여요.]그 말을 들은 순간, 강혁우는 땅 아래로 몸이 훅 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그건 안 돼. 그러다가 채율이가 내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퍼져 버리면…….’
보모가 무어라 무어라 변명을 하는 것 따위는 들리지도 않았다. 언젠가 뉴스에서 보았던, 당시에는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다고 흘려 넘겼던 실종 아동들에 대한 이야기로 점령된 머리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유괴, 실종, 뺑소니 사고, 인신매매 등 가능성은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웠던 가능성은,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아이를 납치해 갔다는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끌려가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상상하니 손발이 떨려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공포였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서 아이의 등하교 시간에 맞춰서 픽업을 하도록 보모에게 그렇게 신신당부를 해 놨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야, 이 XXX이, 애 하나 제대로 보라고 내가 돈 주는데 뭐? 애가 안 보여? 무슨 짓을 해서든 찾아! XX, 너 죽여 버릴 거야, 내가. 애 못 찾으면 네 가족 다 찾아서 네 앞에서 죽인다.”
결국 유모에게 격노를 터트리며 욕설을 마구 퍼부은 후, 강혁우는 곧장 뛰쳐나갔다.
“채율아! 김채율!”
그리고 목이 터져라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학교와 집 근처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행인을 마주칠 때마다 이런 외모의 아이를 본 적이 있냐고,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 주며 묻기도 했지만, 어떤 힌트도 얻을 수가 없었다.
“헉, 허억… 헉.”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땀을 소매로 훔치며 숨을 몰아쉬던 강혁우는 결국 망설임 끝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지금 당장 애가 없어졌으니 나중 일은 생각하지 말아야 하나?
삐리리릭.
그런 갈등을 하며 입안의 살을 짓씹던 중, 이새화에게서 전화가 왔다.
.
.
.
다급히 최적현이 보낸 주소로 향한 강혁우는 곧바로 ‘한승범’의 손을 잡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강혁우는 아들을 보자마자 다리의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숨을 몰아쉬며 흉한 신음을 흘렸다.
“아빠아!”
반가움에 쪼르르 달려온 아이가 품에 안기려고 했지만, 강혁우는 곧바로 그를 저지하곤 아이의 팔을 억세게 붙잡은 채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려 들었다. 그리고 입가에 묻은 쿠키 부스러기, 손에 쥔 레드 피규어와 어깨에 두른 망토, 노느라 붉게 달아오른 볼을 뒤늦게 발견했다.
“…….”
배신감이 들었다.
나는 지금 너를 찾느라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며 몇 번씩이나 지옥을 오갔는데, 너는 그동안 저 원수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있었던 건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가 순간 너무 밉게 느껴졌다.
“너… 누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래.”
“…아, 빠?”
처음 보는 아버지의 딱딱한 표정에 아이는 놀라 딱딱하게 굳어 버렸지만, 강혁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결국에는 선을 넘어 버렸다.
“네가 지금 제정신이야!”
위로 들어올린 강혁우의 손이 그대로 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아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버거운 불안감을 ‘걱정’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을 뒤집어씌운 채 아이에게 떠넘기기 위한 행동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겁을 줘야 다시는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아이는 성인 남성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픽 고꾸라졌다가 자신이 맞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듯 뺨을 부여잡고 강혁우를 올려봤다.
“아, 아아아…….”
그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당장은 통증보다 놀란 마음이 더욱 큰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눈에 담자마자 강혁우는 요동치는 눈동자로 자신의 손을 내려봤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았다.
다급히 아이에게 손을 뻗으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채율아, 채율아, 아빠가 잘못했어. 미안해.”
“아아악! 싫어! 싫어어!”
아이는 제 머리 위에 커다란 손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자마자 거의 경기를 일으키듯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을 보자 자신이 손을 올릴 때마다 체념한 것처럼 눈을 감았던 조인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감았던 눈꺼풀이 다시 열리고, 원망이 가득 담긴 형형한 눈빛이 자신을 향했던 기억이 뇌리에 꽂혔다.
안 된다.
내 아들은 그렇게 키우지 않을 것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육아 서적까지 읽어 가며 손찌검 한번 하지 않고 키운 자식이란 말이다.
저 아이만큼은 나를 저런 눈으로 바라봐서는 안 됐다.
나를 온전히 사랑해야만 했다. 저건 내것이다.
“채율아, 제발…….”
강혁우는 자신의 손을 뿌리치고 그토록 미워하던 서유태의 품에 파고드는 아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니야. 그냥 손이 움직인 거였어. 습관처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워서.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 하여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