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I’m Taking Revenge, I’ll Take Down The Top Idols RAW novel - Chapter (34)
34화
나는 젠과 대화를 나눈 이후로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미용실 가서 머리에 비즈를 박고 싶다며 날뛰는 놈을 막는 게 어디 쉬웠겠는가.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다.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한 생물인지라 사소한 환경의 변화, 마음가짐의 변화 하나만으로도 크게 변하는 법이다. 스타일 뜯어고치기를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 있었다.
– 어, 승범이랑 젠! 미용실 잘 갔다 왔… 헉.
– 무슨 일… 으아악! 누구세요!
– 용 됐네. 진짜 용 됐네……. 우리 젠젠이 어디 가고 갑자기 패션 피플이 들어왔어. 승범아, 나도 좀 스타일링해 주면 안 되냐?
– 승범이는 왜 스타일링도 잘해? 못하는 게 뭐야? 나만 다 못 해?
주변의 시선도 달라지고 말이다.
나는 미용실에 다녀오고 젠의 말도 안 나오는 패션 아이템들을 상자에 담아 봉인해 버렸다. 추억으로 가지고 있되 다시는 꺼내지 말라고.
그 이후로는 진득하게 연습만 할 뿐이었다.
‘내가 설마 햇병아리를 처음부터 제대로 키워 보려는 생각을 하다니.’
처음에는 그냥 적당히 1차 경연만 끝내면 손절 할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대로는 썩히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제대로 꾸며 놓으니 그런 생각은 배가 되었다.
특이한 페이스, 길쭉한 신장, 허스키한 목소리에서 지금까지의 아이돌들과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런 놈이 팀에 한 명쯤은 있으면 그룹에 유니크한 느낌이 들지.’
젠은 투박한 원석에 가까웠다. 공이 많이 들지만, 그것을 갈고닦을 능력만 있다면 가치 높은 보석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 저는 열심히 해요. 잘할 자신도 있고요. 형은 그런 사람한테는 잘해 주잖아요? 댄스 브레이크 연습 도와주세요.
아주 당차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요구했던 이단비에 비하면 젠은 갓난아기 수준이었다.
– 리다, 저는 오늘 무엇을 하면 되는 겁니까? 리다의 지시에 따라 전부 하겠습니다.
구체적인 연습 내용을 모두 짜 줘야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꾹 참고 견뎠다.
이단비가 이상할 정도로 독했던 거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기본적인 성실함마저 갖추지 못했다. 젠은 아무 생각이 없을 뿐, 연습에는 매우 열심히 참여하는 기특한 놈이었으니까.
‘힘들었다…….’
작고 소중한 인내심을 붙잡으며 빡빡하게 연습을 진행한 결과, 우리는 유의미한 변화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 변화에 첫 번째로 멤버들이 놀랐고, 두 번째로 지나가던 다른 팀의 연습생들이 흘끔흘끔 쳐다봤으니 말 다 했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오늘은, 세 번째로 트레이너를 놀라게 할 차례였다.
바로 트레이너 중간 평가 날이었으니까.
“오늘 트레이너 중간 평가, 한번 잘해 보자!”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그렇긴 한데 우리 좀 잘한 것 같아. 빨리 보여 주고 싶다.”
중간 평가를 앞두고 점심을 먹으며 멤버들이 해맑게 웃었다.
평가를 하는 날,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앞선다면 그것은 준비를 잘한 것이었으니 좋은 징조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 나도 그 말 하는 거 조금 부끄러워서 참고 있었는데, 우리 좀 괜찮은 듯.”
“이게 다 승범이가 열심히 프로듀싱 해 준 덕분이지! 무대 기획도 멋있게 해 줬고.”
나는 뿌듯함에 삐죽삐죽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내리며 말했다.
“내가 뭘. 형들이 열심히 해서 잘된 거지.”
“에이, 겸손 떤다. 우리 한 대장! 멋지다! 잘생겼다!”
“설마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냐, 승범아? 좀 귀엽네?”
카메라 앞에서 펼쳐진 나의 필사적인 겸손에 멤버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양손으로 턱을 괴며 미소 지었다.
“맞아, 나 열심히 했어. 그러니까 멤버들도 그만큼 아주 잘해 줄 거라고 믿고 있어. 안무나 가사 실수 같은 건 아예 없을 거야. 그렇지?”
“…….”
“…….”
멤버들은 그저 입을 다물고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옳지.’
기대감에 들떴던 멤버들이 빠르게 진정을 되찾았다.
사실 실수를 단 한 번도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한 말은 아니고,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가지도록 만들기 위해 한 말이었다. 그런데 멤버들이 생각보다 더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다.
‘내가 도깨비도 아니고 뭐 그 정도로 화를 내나. 한 번 정도는 봐주지, 당연히. 다들 오바가 심하네.’
하하 호호 웃으며 국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었다.
그리고 생각해 봤다.
나는 정말 한 번 정도는 용서할 수 있는가?
‘음?’
상상해 보니 뭔가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진짜 실수하면 못 참고 어떻게 해 버릴 것 같았다.
“…….”
인생은 그런 법이지.
원래 거짓말은 삼가는 게 좋다.
* * *
“우선 여러분께 말씀드려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연습실의 벽면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중간 평가의 진행을 기다리던 중, 자리에서 일어난 제이가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여러분도 우리 트레이너진이 들어오고 나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죠?”
“프릭 트레이너님…….”
연습생들은 제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프릭이 없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맞아요. 프릭 트레이너가 자리에 없죠. 아쉽게도 프릭 트레이너가 개인적인 이유로 우리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렇게 급작스럽게 말씀드리게 되어 저희 트레이너들도 마음이 조금 무겁습니다.”
제이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눈썹 끝까지 늘어트리곤 매우 슬픈 얼굴로 말했다.
나는 그 가식적인 모습에 헛웃음을 뱉을 뻔했다.
‘무겁기는 개뿔.’
프릭 조져 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던 게 눈에 선한데 어쩜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구라를 치는지 모르겠다. 누가 저렇게 가르쳐 놨는지 정말 궁금할 정도였다.
“…….”
‘아, 나네.’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애를 여우 새끼로 키워 놨네.
나의 실수.
“하지만 저희는 여러분이 프릭 트레이너의 공백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쳐 드릴 테니까요. 너무 걱정하진 말아 주세요.”
“네에!”
“네!”
정말 짧게 프릭의 하차에 대한 화제가 마무리되었다.
오히려 프릭이 불쌍할 정도였다.
‘연습생들은 원래부터 프릭을 별로 안 좋아했고… 온통 미운털이 박혔구먼.’
아마 제작진도 뽑아 먹을 대로 뽑아 먹고 남은 것도 없는 프릭이 사고를 친 것이 아주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예의상의 마무리조차 제대로 짓지 않은 채 내쫓은 게 여과 없이 느껴졌다. 뭐 어쩌겠는가, 본인이 쌓은 업보인데.
“자, 그럼 첫 번째 순서로 [Motorcycle> 팀, 나와 주세요.”
자리에 앉아 순서표를 살펴본 제이가 우리 팀을 불렀다. 제작진과 따뜻한 대화를 나눠 순서를 손봐 뒀기 때문에 우리의 순서는 첫 번째였다.
“아, 왜 저 팀이 1번이야. 망했네.”
“제발 2번만 걸리지 말아라. 제발! 나, 쟤네 바로 뒤에 무대 하기 싫어.”
앉아 있던 자리의 양옆에서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오며 가며 다른 연습생들도 우리가 연습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에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 같았다.
“뭐야, 모두가 두려워하는 [Motorcycle> 팀이네요.”
“엥? 얘네가 어벤져스 팀이었어? 다들 반응이 왜 이래?”
“아니에요. 어벤져스는 화영 군 팀…….”
연습생들의 반응을 본 트레이너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나는 젠의 머리에 후드를 제대로 씌워 주며 신신당부했다.
“자신 있게 잘해. 이번이 중요하다고 했어.”
“네.”
– 이번에 트레이너 반응 제대로 뽑아내야 이미지 바꿀 수 있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 트레이너님을 기절하게 만들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오늘이 정말 중요했다. 어쩌면 본방보다도.
사람들은 괜찮은데 싶다가도 트레이너들이 별로라고 하면 별로인가 보다 하고, 별로라고 생각하다가도 트레이너들이 뒤집어지는 반응을 보면 잘했나 보다 한단 말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멤버들을 이끌며 평가실의 정중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신호를 줬다.
“둘, 셋.”
“안녕하세요! [Motorcycle> 팀입니다!”
우렁찬 인사 소리에 웃음을 흘린 보컬 트레이너가 마이크를 잡았다.
“연습 열심히 했어요?”
직설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멤버들이 비둘기처럼 내 얼굴을 쳐다봤다. 대충 ‘얘가 잘 대답할 거예요.’라는 표정이었다.
“네,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가까스로 웃음을 참은 나는 마이크를 들어 차분히 대답했다.
“하하, 이 팀 리더는 승범이네요? 승범이는 보면 매번 리더야.”
“맞아요. 그런데 리더십 있는 사람들은 뭘 해도 항상 리더를 맡게 되어 있어. 그런 쪽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확실히 있나 봐.”
“리더에 대한 멤버들의 신뢰가 엄청난 게 벌써부터 저희 눈에 보입니다. 이런 팀은 준비를 잘했을 가능성이 높죠.”
트레이너들은 우리의 포지션이 적혀 있는 서류에 아직 눈길을 주지 않은 상태였고. 나는 리더의 표시인 ‘L’ 스티커를 보이지 않는 곳에 붙였다.
즉, 트레이너들은 리더가 누구인지 정확한 정보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리더라는 것을 알아봤다는 것이다.
그것을 눈치챈 다른 팀 연습생들이 저들끼리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와, 한승범은 뭐 보기만 해도 리더인 거 다들 알아보시네.”
“대박. 우리 팀은 리더 누구냐고 따로 물어보셨잖아.”
이런 장면들 하나하나가 내 이미지 형성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이번 2차 경연에서의 나의 목표는 리더십과 무대 프로듀싱 능력에 대한 확실한 이미지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래. 더 떠들어라. 아주 고맙다!’
저렇게 마이크 달고 카메라 찍히는 각도에서 떠들어 주면 아주 고마웠다. 따봉이라도 날려 주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트레이너들이 긍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안 제이는 가만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오, 썅. 저놈 또 저러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을 쭉 훑어보는 걸 보니 제대로 회복했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놈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이 팀 무대 기획안이랑 소품 신청서 보니까 벌써 골 때려. 이것만 보면 무슨 연말 무대 준비하는 사람들 같아요. PD님, 이거 허락해 주셨어요?”
“지원 많이 받았어요. 최고!”
“하하! 프로그램이 아주 잘되고 있나 봅니다.”
메인 PD가 장난스레 손가락으로 동전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대답하자 트레이너들이 소리를 내며 웃었다.
다행이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티를 냈다면 나는 그대로 한 마리의 티라노 사우르스가 되어 PD를 잡아먹을 수도 있었다.
“승범이야 뭐… 믿고 보는 친구니까. 강원이도 멤버들 잘 챙겨 줬을 것 같고. 어떻게 준비했을지 아주 기대가 됩니다.”
“자, 그럼 무대 시작해 볼까요?”
“네!”
짧게 대답한 우리는 곧바로 무대의 대형에 따라 간격을 맞추어 섰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멤버들을 보며 트레이너들이 벌써부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가서 준비할 때 어버버 넋 빼놓고 있으면 다 끝장이야. 혹시라도 그러는 날은 그냥 한승범 이성 날아가는 날이라고 생각해.
– 넵.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겠습니다.
미리 멤버들에게 말해 둔 것이 아주 톡톡히 효과를 보는 순간이었다.
오른손을 들어 제작진에게 사인을 보내자 준비된 MR이 흘러나왔다.
당일에는 소품을 활용하여 무대 초반부 연출을 할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연습실에서 그것을 재현하기에는 어려웠기에 적당히 생략 사인을 주며 넘겼다.
– 부르릉!
오토바이의 엔진음이 지나가고, 박진감 넘치는 빌드 업이 이어졌다.
– 쿵!
충돌 효과음과 함께 순간 반주가 사라지고, 멤버들은 등을 보인 채 앉아 자세를 취했다.
그 사이로 후드를 확 걷어 젖히며 머리카락을 거칠게 턴 젠이 멤버들의 등을 발로 딛어 센터 쪽으로 뛰어올랐다.
“어?”
트레이너들은 젠의 모습을 눈에 담고, 쥐고 있던 펜을 떨어트린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